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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히 강화도 안먹혔으면 버텨볼만 했다
반대로 조선도 계속 버티면서 고립될수 밖에 없었지
+홍이포 역저격하는 정신나간 총통사수들이 존재 근데 식량때문에 반발 커지던 상황이라서
올라가다 힘 다 빠질듯
영화에서 대포설치하자너
김경징이를 원균과 같이 부관참시해야
원래 식량창고는 성 안에 짓게 되어있는데 경강상인이랑 유착관계로 인해 성 밖에다 지은걸로 알고있음 그래서 식량고갈
ㅇㅇ 과장이 심함
ㅇㅇ 실제 청군은 한두번 깔짝 거리다 걍 산밑에서 시간보내고 있고 남한산성내부에서는 싸워야하느냐 항복해야하느냐로 신하들끼리 마우스배틀했음
성안에 식량만 넉넉했어도 강화도 뚫려도 상관없었음 어차피 인조가 한 2주정도만 더 버텨도 청나라놈들도 시간없어서 퇴각했어야했으니..
올라가다 힘 다 빠질듯
올라가다가 숨차서 뒈질판
솔직히 강화도 안먹혔으면 버텨볼만 했다
타카기양
김경징이를 원균과 같이 부관참시해야
식량난이 더 극심해서 어차피 오래 못버텼을거
타카기양
원래 식량창고는 성 안에 짓게 되어있는데 경강상인이랑 유착관계로 인해 성 밖에다 지은걸로 알고있음 그래서 식량고갈
타카기양
성안에 식량만 넉넉했어도 강화도 뚫려도 상관없었음 어차피 인조가 한 2주정도만 더 버텨도 청나라놈들도 시간없어서 퇴각했어야했으니..
하지만 그만큼 백성들은 더 굶어 죽었겠지
강화도 뚫린게 문제가 아니라 강화도 뚤리면서 왕자, 대비, 왕비들이 싸그리 잡힌게 문제지.
저거보다 더한것도 뚫더라.
영원성 : 우린 뚫린적 없는데?
영화에서 대포설치하자너
대포: 하 시발 이거 언제 부수고 있어;;
근데 17세기 대포 수준으로 저걸 무너트릴 순 있냐?
ㄴㄴ 홍이포가 세지는 않음 간단한 거지
무너트리긴 하겠지. 그런데 못올라가.
대포 : 세조때 화약제조R&D를 아예 폐기시킴 그러므로 화약이 없어서 무용지물 됨 그 여파로 신기전도 사라짐
대포가 화약이 없어서 무용지물이라니 그러면 이순신 장군은 대포가 아니라 입에서 번개 쐈냐?
성종이 지 애비가 벌인 삽질을 많이 복구시켜놨지
어떻게 알았지? 환생인임?
화약에 질이 썩어졌고 화승총병으로 대체 될 수 있었는 데 돈 줄이자고 궁병을 주 지상병으로 대체 한게 그럼 잘 한 거 ????
세조가 화약 과 과학쪽을 안 접었으면 적어도 궁병으로 대체 되는 일은 없었을 텐데
무슨 화학 공학이 발달해서 질소고정법이 나온 것도 아니고 한반도에 화약재료 수급할 곳이 없는데 어떻게 궁병을 화승총병으로 대체를 해 게다가 세조때를 한참 넘은 선조 때까지도 화승총거르고 활로 전쟁해도 잘 했는데 굳이 궁병을 버릴 이유가 또 어디있음 총병 자주쓰던 일본도 화승총을 주 병력으로 구성하진 않았다
고대학 교수가 그러던데 ? 총술은 가르쳐 두면 총 만 쥐어주면 바로 전력에 투입되는 데 활은 날씨 기후 기타등등에 영향을 많이 받고 주 재료인 물소뿔은 중국에서 수입해 오는 거 였는 데 제약이 많이 컸다 그렇다해서 활은 하루만 훈련을 안 해도 다시 전력에 투입되려면 최소 7일은 훈련을 해야 그나마 화살을 다룰 수 있었다 라고
양성 속도야 그럴지 몰라도 양성 후 사격능력에 관해서는 화승총이 활보다 좋다고 볼 이유가 부족함 그렇다고 조선이 궁술할줄 아는 사람이 적은 나라도 아니었고 무엇보다 조선은 화약재료 수급이 거의 안 됨
최무선이 화약제조 개발하지 않음 ? 고려때 화약제조 기술을 했는 데 ? 역사상 최초로 화약 개발에 성공하였으며, 이를 통해 왜구 진압에 큰 역할을 했다. 그게 조선에도 세조전까지 계속 R&D 되어서 신기전이라는 현대식 자동발사화포가 나온 거 아님 ? 그게 딱 문종 죽고 없어짐 이건 그럼 누가 삥땅 해 먹어서 사라진 거라는 소리 ?
기술이 있음과 재료수급의 어려움은 따로 생각해야지... 수십문의 대포를 쓴다 하여도 총병을 주력으로 쓰러면 그에 곱절로 화약이 필요하며 화약을 끊임없이 보급하기는 무리가 아주 큼 또 주력의 교체라 함은 2가지 방법이 있음 지금 활 잘쏘는 군인들 대려다가 그 짧은 훈련인가 나발인가 시켜서 활 버리고 총을 들린다 아니면 활 잘쏘는 군인들보다 많은 청년을 대려와 총 훈련를 시킨다 둘 다 불가능
둘 다 결과물을 알고 내리는 결론 아님 조선시대 태생이 아니니까 미래사람으로서 결론을 내리면 그 당시 화약개발을 한참 하던 시기였음 문종 죽기전까지도 화약에 개량 기타 기술 과학개발에 세금을 팍팍 계속 썼음 근데 소제가 단종을 뒤집어 엎고 왕위에 오름 그 이후에 한명회에게 시켜서 이 사업을 다 폐기처분시킴 그 사업 폐기 이후부터 왜구가 쳐 들어옴 만약이라는 건 없지만 세조가 역사대로 안 하고 반대로 했다면 임진왜란은 아예 없었을 지도 몰랐다 이거죠
세조는 화약 무기 개발 중단시킨 적 없음. 오히려 세조 때 되면 염초 제조법이 민간에도 많이 풀려서 지방에서도 화약 제조를 많이 하고 민간에서 제조하는 화약 성능이 더 좋아짐 총통위 폐지를 화약 무기 개발중단으로 생각한거면 큰 오산인게 총통위가 없어진 이유는 오히려 화약 제조가 대중화되면서 굳이 총통위를 통해 화약을 관영 통제할 필요가 없어지다 보니 그런거임
반대로 조선도 계속 버티면서 고립될수 밖에 없었지
식량만 미리 옮겨두었어도... 아니 강화도에 김경징만 안 보냈어도...
식량도 식량인데 물 충분히 나왔던가?
ㅇㅇ 시냇물 흐름
소노 모모카
물 없으면 식량도 아무소용 없으니까
식량 있었어도 수뇌부들 경험 문제로 밥하는 솥이 일반 작은 솥 밖에 없었다고 하네요. 남한산성에 당시 만삼천명이 있었다고 하는데 그인원들 빨리 다 먹일려면 커다란 솥이 있어야 하는데 작은 솥 밖에 없다고 했으니 한끼 배식을 하루 종일 해도 못했을 거라더군요. 거기다가 군 최고 수뇌부와 말 많은 대신들이 모여있으니 현장 지휘에 온갖 참견을 해데서 잘 갈수 있는 배도 산으로 가는 경우가 많았다고 하더군요.
소노 모모카
정말 비극 그자체다 임란 끝난지 얼마 되지도 않아서 또 저리 전쟁 터지고 ㄷㄷ
마속 : 조선이 저만큼 ㅄ은 아닌가봐요 ㅎㅎ
위에서 돌만 던져내려도 뚝배기 깨지겠네
+홍이포 역저격하는 정신나간 총통사수들이 존재 근데 식량때문에 반발 커지던 상황이라서
오오 포국의 기상 오오
홍이포가 밑에서 쏘는건데 조선 천자,지자총통은 고도의 이점이 있으니 기술력을 커버했음 문제는 화력전으로 어떻게 될 물량이 아니었단거...
분명 조선시대인데 대포병전도 가능햇던 인간 대포병 레이더들
역시 하이그라운드
굶어죽던 마속의 느낌이 저랬을까
한달만 더 버텼으면 우리가 이기는데 강화도도 떨어지고 성내에 식량도 떨어지고 제일 큰문제는 성안의 병사들이 더이상 싸울 의지가 없었지.
ㄴㄴ 기록에 의하면 오히려 항복 직전까지 병사들의 사기는 높았다고함
무슨 기록? 승정원 일기에는 병사들의 마음이 돌아서서 더이상 싸울수 없다고 말했는데
홍서봉(洪瑞鳳)이 아뢰기를, “오늘날 군사들의 마음은 외적보다도 심하니, 권도(權道)가 없어서는 안 됩니다.” (http://db.itkc.or.kr/inLink?DCI=ITKC_ST_P0_A15_01A_26A_00060_2013_037_XML) (인조 15년 정축(1637) 1월 26일(병인) 맑음) 26일에 장수와 사졸들(신경진과 구굉의 진영의 장사들)이 또 대궐 아래로 나아가 화친을 배척한 사람을 붙잡아 보낼 것을 청하면서 말하기를, “대포에 맞아서 성첩이 모두 다 파괴되어 사세가 이미 더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는데도 문사들은 단지 고론(高論)만 일삼고 있으니, 문사들에게 망월대를 지키고 막도록 하소서.” (중략) 하고, 이내 대궐에 들어가 곧바로 진달하려고 하였다. 승지 이행원(李行遠)이 말하기를, “비록 위태롭고 급박한 날을 당했더라도 대내(大內)가 멀지 않은 곳에서 어찌 감히 이런 짓을 하는가.” 하고, 이어 병조 낭청에게 이르기를, “그대들은 대궐문을 지키면서 어찌 난병(亂兵)이 여기에 이르게 하였는가.” 하면서, 칼을 뽑아 들고 쳐죽이려고 하니, 장수와 사졸들이 말하기를, “승지가 칼을 뽑으니 용맹하다고 이를 만하다.그러나 적을 베는 데는 용감하지 못하고 도리어 죄 없는 사람의 목을 베려 하는가. 승지는 재주와 꾀가 있는 것 같으니 만일 오랑캐의 진중에 데리고 가면 성공할 수 있을 것이다. 속히 나오라. 속히 나오라.” 하자, 동료들이 권하여 이행원을 피하게 하였다. 임금이 다른 승지를 시켜 군사들을 온화하게 타이른 뒤에야 진정되었다. 《병자록》 《잡기》 (연려실기술 25권中) 꺼라위키에 병자호란 이야기 기록 좀 한다고 링크 이것저것 뒤져봤었지
나도 승정원일기에서 봤는데 뭐지? 여기 잘 정리됐네 https://m.blog.naver.com/PostView.nhn?blogId=kkumi17cs1013&logNo=221223567501&referrerCode=0&searchKeyword=%EB%82%A8%ED%95%9C%EC%82%B0%EC%84%B1
당시 산성 안의 사실을 기록한 남한일기/병자록 등의 기록을 보면 군사들이 불만을 가지고 칼을 만지며 주전파 대신들을 내놓으라며 시위를 벌였다고까지 기록되어 있음. 군사들 사기는 땅에 떨어졌다고 봐야 함.
저건 강화도 함락전인거 같아. 내가 본건 항복 직전인 1월말의 내용이거든.
그렇구나. 내가 잘 몰랐네
덕분에 나도 오랜만에 관련글 찾아봤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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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리웹-7523971332
ㅇㅇ 과장이 심함
루리웹-7523971332
ㅇㅇ 고증오류임
루리웹-7523971332
준비가 제대로 안되있었음. 원래 목적은 강화도로 가서 항전하려했거든
루리웹-7523971332
영화 남한산성의 원작인 김훈 소설 남한산성 자체가 "어찌할 수 없는 상황에서의 인간의 움직임"을 묘사하기 위해 상황을 실제보다 더 과장했다고 했음.
루리웹-7523971332
청나라도 못 들어오고 조선은 근왕군으로 슬금슬금 역포위하면서 풀 수 있었는데 강화도가 개털리면서...
루리웹-7523971332
아주 일방적으로 처발리기만 한건 아니긴 하지만 전체 전세가 워낙 나빠서 별 소득없는 저항이었지
[삭제된 댓글의 댓글입니다.]
루리웹-7523971332
ㅇㅇ 실제 청군은 한두번 깔짝 거리다 걍 산밑에서 시간보내고 있고 남한산성내부에서는 싸워야하느냐 항복해야하느냐로 신하들끼리 마우스배틀했음
그렇다면, 실제 병자호란은 조선도 꽤 잘싸운 전쟁이었음? 난 그냥, 일방적으로 처발린 전쟁인줄로만 알았지
아니 처발린건 맞음. 그나마 건질만한게 광교산 전투, 금화 전투 정도인데 이것도 적을 대파했다기보다 그냥 조선군이 붕괴를 막고 전장을 이탈했다 정도임.
다만 남한산성이란 요새 자체가 견고해서 이게 군사적으로 뚫리지는 않았다는 것. 식량이 부족한게 제일 컸어.
루리웹-7523971332
한국 산성은 내부트롤러 안나오면 안뚫린다가 디폴트임 걍화도 뚫려서 겜 끝났으니 gg친거지
강화도 함락된 것도 그렇고. 일반적으로 알려져있는 것처럼 강화도에서 김경징이나 수군 대장 누구더라.. 하여간 그 양반 둘이 깽판 쳐서 뚫린 것은 아니긴 한데 결국 청군의 급속 도하를 막지 못하고 섬 전체가 함락 당한 것은 사실임.
잘 싸운 건 아니고 기록적인 진격 속도에 머 해보기도 전에 지휘부가 고립되면서 허무하게 진거지. 임진왜란 선조는 도망을 잘가서 버티기승리가 가능했지만 인조는 도망을 똑바로 못해서 망함.
병력이 남한산성 & 강화도로 나뉘는 바람에 ㅈ됐음ㅇㅇ 강화해협이 좁아서 판옥선 같은 큰배를 운용할 곳이 못 되는데, 장신은 수군대장이라는 놈이 판옥선을 끌고 올라옴. 청군은 썰물 때를 노려서 도하. 장신은 배가 침몰할까봐 그냥 퇴각. 하다못해 병력 상륙시켜서 고기방패 노릇이라도 해가며 사람들 대피시켰으면, 강화도를 뺏겼어도 전투를 계속 이어나갈 수도 있었을 텐데. 여튼 아쉬운 게 많음.
도망치는 타이밍 잡는 것도 재능이지. 고종도 런각 못재고 있다가 경복궁 전투 도중에 일본군한테 잡혔잖어
인조쉑 도망도 제대로 못다니네 ㅡㅡ
최근에 나온 병자호란 관련 책을 보면 단순히 장신이 모지리라 퇴각한건 아님. 청군이 노린게 그냥 썰물이 아니라 강화 해협에 급류가 밀려들어올 때고 그 시간에는 물 위에서 함대를 유지할 수가 없음. 그리고 병력을 상륙시켜서 사람들 대피시켜야 했다고 하는데 대피할 배는 또 어디서 구하겠음? 급류에서 상륙을 시키는 것도 문제고 상륙해야 할 바로 그곳에 청군이 도하한 것인데 사람들을 대피시킬 방도가 없어. 님 말대로 원래 강화도를 제대로 지켰어야 할 중앙군 병력이 인조 따라 남한산성으로 들어가버린 시점에서 강화도는 제대로 막기는 어려웠지. 그나마 적진 지리에 익숙하지 않은 청군이 강화해협 물 때를 잘 몰랐다면 막을 수 있었을텐데 기록에는 제대로 안 나오지만 누군가가 그걸 제대로 알려줘버린거에서 뭐...
문제가 정묘-병자호란 사이에도 청군이 쳐들어온다 쳐들어온다 하는 경보가 몇번 있었다는 거야. 그래서 그때 그때 위에다 중앙군 병력을 파견해 국경을 막기도 하고 강화도 정비도 하고 해놨는데 항상 허탕이었고 안그래도 없는 재정에 전국 10만 군사를 만든다 하면서 호패법도 실시하고 지방군 지휘할 영장도 임명하고 하는 판인데 출동준비가 계속 허탕으로 끝나니 재정낭비가 심각했던거지. 그래서 위기가 있다고 해서 바로 그렇구나!하고 강화도로 튈 수도 없는 판이었는데 거기다가 이전 전쟁에서 교훈을 얻은 청군이 유례없을 정도로 무시무시한 속도로 밀고내려왔으니 ㅠ
루리웹-7523971332
실록 보면 걍 서로 눈치게임1! 이러면서 소규모 접전만 벌이다 인조가 항복함. 사실 청나라도 똥꼬 쫄렸던 게 후방에 조선군이 고스란히 남아 있었고, 그 후방에 남아 있던 조선군이 공격해오면 격퇴라도 할 텐데 미적거려서 "ㅅㅂ 저거 뭐임?" 하던 상황에, 결정적으로 그 후방에 남아 있던 놈들이 보급선 끊으면 지옥도 펼쳐지는 판이었음. 근데 조선군은 서로 소통이 안 되고(연락이 청나라한테 끊겨서) 작전도 못 짜고 시간만 보내다 결국 포기
청나라가 이미 조선 팔기병 운영중이었음 강홍립 항복때 잡힌 병사 이괄의 난때 만주로 도망친병사들이 있었고 그 병사들을 주축으로 조선팔기군을 만들었음
기동전에 처발려서 농선전으로 어떻게든 비벼볼까 할 수준이었는데 식량없음 남한산성에서 식량없는 상황에서 40일을 버텼음
병자호란 당시 남한산성를 포위, 공격하던 청나라 군사들 중에는 조선인 출신 병사들이 있었다. 청 태종 홍타이지를 사령관으로 모시며 모국을 공격해야만 했던 이 조선인 병사들은 명나라 멸망 후, 베이징(北京)부터 난징(南京)까지 중국대륙을 누비며 청나라의 중원정복사업의 선봉에 서기도 했다. 남의 전쟁에 희생된 이 비운의 병사들은 '조선팔기'라고 불린다. 여기서 팔기란 청나라 고유의 군사제도인 '팔기군(八旗軍)'의 팔기를 뜻한다. 청나라는 종족에 따라 지배민족이었던 만주족의 만주팔기, 몽골족의 몽골팔기, 투항한 명나라 사람들로 구성된 한인팔기, 조선인 출신들로 구성된 조선팔기 등 팔기군 부대를 운영했다. 조선팔기는 매우 우수한 조총부대로 구성돼있었고 이들은 청나라의 중원지배에 중요한 역할을 도맡았다. 그러나 이들은 처음부터 자원해서 청나라에 투항한 병사들이 결코 아니었다. 이들은 임진왜란 이후 조선조정이 뼈를 깎는 노력을 통해 만든 최정예 조총수들로서 원래는 조선의 서북변방을 수호하던 조선의 병사들이었다. 복잡다단하게 얽힌 명·청 교체기의 대륙상황과 광해군과 인조정권 교체기의 혼란 속에서, 조국으로부터 버림받은 이 정예병사들은 어쩔 수 없이 변발을 하고 청군의 앞잡이가 돼서 조국을 공격해야만했다. 조선팔기군이 청나라에서 생겨나게 된 배경에는 광해군-인조정권 교체기에 연달아 벌어진 두가지 사건이 놓여있다. 바로 '사르후전투'와 '이괄의 난'이다. 1619년 벌어진 사르후전투와 5년 뒤 벌어진 이괄의 난은 모두 조선이 청나라의 침략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게 된 직접적 원인이 된 사건들이었다. 이 두 사건으로 말미암아 조선을 지키던 병사들이 거꾸로 조선으로 총구를 돌리게 됐기 때문이다.
ㅇㅇ 그거 외에도 직접적으로 강화도 주변에 거주하는 백정들이 알려줫을거라고 보기도 하더라고. 강홍립 항복때 동원된 군사는 거의 대부분이 평안도 군사였기 때문에 강화도 물때를 알지는 못했을거야. 이괄의 난에서 일어났던 반군도 대부분 경기가 아닌 삼남 출신들이었고. 경기도 군사는 총융청에 편제시켜서 중앙군에 넣었었으니까.
그 소통을 해야할 사람이 도원수인데 그게 김자점이라...
배야 뭐 지가 끌고 온 판옥선이 있으니까. 김경징이 그거 타고 도망쳤잖아. 실록 보면 원손은 내관?이 업고 도망쳐서 구해냈다고도 하고. 충분히 도망칠 수 있지 않았을까?
듣고보니 그도 그렇긴 하네.
화공을 펼쳐라
내부에 우물이 많아서
애초에 불로 뭔가 하는건 조선군이 전문이었음
청 : 공격하는데 성에서 갑자기 불타는 통나무들이 쏱아진다...
집접 가보니까 못뚫을만 하더라. ㅅㅂ 거길 어케뚫어
CHRESS
솔직히 40일 버텼으면 많이 버틴거지
사아아안 사아안 사아아아아안 산 산 사안 사아아아안
이런 지도 어디가야 볼수있엉?
나도 멀쩡한덴 못찾음
이거 지형도 3d맵에 고도 배율 뻥튀기해서 랜더링한 이미지일걸
광주에서 위례 갈 일 있을때 남한산성쪽으로 한번씩 넘어가는데 퇴근길에 보면 도로 옆 도랑에 빠진 차 한번씩 보임 ㅋㅋㅋㅋ
홍이포: ㅎㅎ ㅋㅋ ㅈㅅ
돌격!!!! 와아아아아아아....아...아아 하...아...와이학...하아하악...
ㅗㅜㅑ 여기서???
예전에 한번 가봤는데 사람 올라가라고 해놓은 도로도 존나 가파라서 몇번 쉬었다간듯
청나라도 속공에 올인한 도박수 쓴거라서 조선이 시간끌면 망하는 상황이었는데 남한산성도 방어전 준비가 제대로 안된 상황이라 망
청나라 : 조선 줩밥이네 ㅋㅋ 영토안뺐고 나라 존속시켜준 것만으로도 감사히 여겨라
길 열렸다고 대차게 내달린거라 남한산성서 더 버텨버리면 청군도 ㅈ되는건 마찬가지였지 비록 군대는 먹어야 움직이는건 만국공통이라 조선이 먼저 나가떨어진거고...
병자호란은 진짜 if놀이할 만하지. 강화유수 장신이 병력 이끌고 육상전을 해서라도 시간 끌어서 봉림대군 등등을 대피시켰다면 그 봉림대군이 지방에서 병력 모아서 남한산성으로 올라갈 수도 있고, 그러면 눈치만 살피던 김자점도 옳다 됐다 좋아하면서 움직였을 거고, 함경도 평안도에서도 잔병들이 모여서 내려오는 중이었을 테니, 청군은 그대로 쌈싸먹히는 거니깐. 남한산성 상황이 좋지 않았긴 해도, 진짜 저 상황까지 갔다면 성안 사람들도 용기가 막 생기고 그래서 더 기운 차리고 버틸 수 있었을 텐데. 초기 대응 ㅄ같이 해서 청군이 한양까지 내려오게 만든 김자점이나 강화도 방어 준비도 제대로 안 한 장신이나 술쳐먹고 갑질이나 해대던 김경징은 진짜 원흉 중의 원흉임.
김경징 김자점이 두새키들은 진짜...목베야됫음. 벳나?
경징이는 사약먹여 죽였음. 자점이는 귀양? 유배?보냈다가 인물 없다고 강화유수에 앉히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