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나라 최후의 승상 육수부와 최후의 황제 소제의 동상)
군대 다녀온 유게이라면 익숙할텐데, 군대 정신교육 시간에 맨날 나오는 레파토리가 있다. 대충 화전양면전술하면서 베트남 나오고, 병사들을 아끼라면서 오기가 병사 종기 빨아주는 이야기좀 나오고. 근데 오기는 지금으로 치면 참모총장이 관용차 안타고 병사랑 행군하고 같이 똥국에 주먹밥 먹은건데 그건 왜 이야기 안해주는지는 더 모르겠다.
여튼 맨날 반복되는 정훈교육중에, 군인의 중요성 하면서 나오는 이야기 중 하나가 송나라는 문치주의 때문에 약해져서 금나라한테도 치이고 몽골한테도 쳐발려서 어어어 하다가 망한 나라라고 가르친다. 과연 그럴까?
땡! 반만 정답이다. 왜냐? 실제로 문치주의 때문에 군사력 약해서 훅훅 밀려난건 맞다. 하지만 그냥 밀려나진 않았다. 송나라는 존 시나 잘 버텼기 때문이다.
물론 북송이 요나라한테도 쳐맞고, 금나라한테도 쳐맞고, 동시기인 고려한테도 반쯤 무시당했을 정도로 군사력이 약한건 맞다. 그러니까 밀려나서 남송이 생기지. 하지만 밀려나기만 했을 뿐, 송나라는 망하지 않았다. 송나라는 문화승리 1보 직전일 정도로 잘 발달된 사회가 있던 터라, 군사력 약해도 쳐맞고 금방 회복했다. 어느정도냐면, 저명한 역사학자들에 따르면 송나라는 산업혁명 직전의 수준이었다. 대략 다른 나라보다 500년 가까이 앞서 있었다.
농담이 아니라, 화약이 송나라 시절에 만들어졌다. 나침반도 송나라가 만들었다. 현대식 방적기도 있었는데다가, 수차와 저수지를 활용해서 어마무시하게 효율적인 농사가 가능해졌다. 우리가 아직도 써먹는 이앙법을 송나라에서 만들었다. 상업도 발달했다. 문화산업도 발달해서, 그냥 안에서 연극만 보면서 멍때려도 1주일 내내 볼 수 있을 정도였다. 세계 최초의 어음, 혹은 지폐도 송나라 때 만들어졌고, 주식회사도 있었다. 본격적인 과거제도도 이 때 시작했다. 이 때가 12~13세기라는걸 감안하면, 동시기 동아시아들은 물론이고 전 지구상에서 가장 발달된 산업과 문화를 가지고 있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농담이 아니라, 송나라 때 만들어진 발명품들은 아직도 죄다 현역이다! 지구상에서 화약, 나침반, 지폐 안쓰는 나라가 있으려나?
이 때 서양은 한창 십자군전쟁하고 있었을 때다. 좀만 더하면 문화승리해서 로켓발사해서 문명 비욘드 어스 찍기 씹가능이었다. 대체 이런 국가가 어떻게 망할 수 있을까?
안녕?
근데 위에서 몽골이 내려오네? 망했어요!
송나라 두들겨패던 요나라도 박살내고, 금나라도 박살내고, 고려도 두들겨 쳐맞고 동유럽은 폐허로 만드는 신조차 모독하는 세기의 개깡패, 신이 내린 재앙인 몽골들이 쳐들어왔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남송은 대충 50년을 뻐겼다. 이 사이에 남송을 돕는 동맹국같은건 없었고, 베트남처럼 정글이 빠방하거나 이집트처럼 멀지도 않았다. 남송은 몽골의 주적 1순위였고 쉴새없이 두들겨 맞았다. 고려가 잘 버텼다고 하는데, 그 시기에 이미 고려는 두들겨 맞고 몽골 부마국 된지 오래였다.
하지만 버텼다. 사실 버틴 정도가 아니라 반세기동안 피튀기면서 제법 잘 싸웠고, 대칸인 몽케 칸도 남송과의 전투중에 전사했을 정도였다. 결국 몽케칸 다음 대칸인 쿠빌라이 칸 시절에 가서야 그동안 포섭한 남송의 인적자원과 물적 자원들을 활용해서 남송을 쓰러트리는데 성공했다. 과연 문치주의 국가인데다가 군사력도 약한 편이어서 허구헌날 맞고 살았던 송나라가 어떻게 버텼을까?
이걸 알기 위해서, 잠깐 송태조 조광윤이 남긴 유훈을 보자.
“충후함으로 전조의 자손들을 돌보고
관대함으로 사대부들의 바른 기풍을 진작하며
다스림으로 백성들의 삶을 부양하라."
송태조 조광윤은 드물게 전 왕조의 왕족들을 죽이지 않은 몇 안되는 시조였다. 그래서 송나라 전의 왕조인 후주의 시 씨 가문은 포청천이나 수호지에서 나오는 '단서철권'이라는 반역죄만 아니면 절대로 죽이지 않는 무적의 사면권과 일정 수준의 권력을 유지했다. 그리고 문치주의의 나라답게 적극적으로 과거제도를 활용해 유교적 정신을 갖춘 사대부들을 잘 육성했고, 백성들의 복지수준도 매우 높은 수준이었다. 즉, 저 유훈에서 강조된 시 씨 가문, 사대부, 백성들이 일치단결해서 몽골과 맞서 싸웠거든.
하지만 결국 1276년에 남송 수도인 임안이 함락되고 황제였던 공제도 끌려갔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남송은 포기하지 않았다. 승상인 문천상은 9살의 소제를 황제로 삼고, 애산이란 이름의 이름의 작은 섬으로 도망쳐서 망명정부를 세웠거든. 대충 지금의 홍콩쯤 되는 위치임.
근데 그 작은 섬인 애산에 의병만 20만이 넘게 모였다. 그렇다. 나라 망한다고 자발적으로 의병이 20만명이나 모였던 것이다. 사대부들도 자기 목숨을 걸고 죄다 모여서 끝까지 저항했다. 시씨 가문의 후예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문치주의떄문에 문약하다고 까였지만, 그 문치주의때문에 그만큼 버틴 셈이다. 심지어 송나라 최후의 명장인 장세걸은 항복만 하면 높은 지위를 보장받았는데도, 친척인 장홍범이 몇차례나 투항을 요구했음에도 남송에 대한 충성심으로 거절했다.
물론 그렇다고 넘어가면 몽골이 아니다. 몽골은 미친듯이 공격했다. 투항한 송나라 해군들로 해군을 육성해서 애산을 쉴새없이 두들겨댔다. 이 때 몽골의 수군 제독이 된 장홍범은 애산으로 들어가는 식량과 식수를 전부 끊어버렸다. 그러니 피로도가 쌓일대로 쌓인데다가, 군량미도 바닥난 남송은 더 이상 버틸 재간이 없었다. 그런데도 2년 가까이 버텼다. 하지만 점차 최후의 순간이 다가왔다. 우승상인 문천상이 붙잡혔고, 병사들은 먹을게 없어서 모래를 먹고 마실게 없어서 바닷물을 마시면서 버텼지만 가망이 없었다. 3월 18일, 남송 해군의 몇 배나 되는 몽골 해군이 사방에서 이미 지칠대로 지친 남송 해군을 포위하고 화살비를 쏴댔다.
그 상황에서도 남송은 포기하지 않았다. 마지막 해전에서 어떻게든 포위망을 하자 마지막 수단으로 한군데로 모여서 대규모 탈출을 감행했던 것이다. 그러나 남송의 패망은 바로 지척까지 다가와있었고, 결국 좌승상 육수부는 마지막 황제인 소제와 함께 배에서 뛰어내려 자결했다.
그런데도 최후의 명장인 장세걸은 포기하지 않고 기어이 몽골 해군의 포위망을 뚫는데 성공했다. 장세걸은 대월, 지금의 베트남으로 도망쳐서 재기를 노렸으나 그마저도 실패했다. 모질게 거센 태풍이 몰아쳐서, 그나마 탈출한 남송의 해군을 전부 휩쓸어버렸기 때문이다. 폭풍이 가라앉고나서 몽골군이 바다위에 둥둥 떠다니는 송나라 해군 시체를 수습한 것만해도 10만이었다고 하니 얼마나 끔찍한 참사였을지 대충 짐작이 감?
허탈함과 분노에 가득찬 장세걸은 자결했다는 말도 있고, 끝까지 태풍에 저항했다는 말도 있지만 대략 아래와 같은 유언을 남겼다고 한다.
"하늘이 송나라를 망하게 하려거든 나의 배를 모조리 바다 속에 가라앉게 하소서!"
그런데, 그럼 결국 송나라는 망했는데 뭐 의미 없는거 아님? 버티긴 잘 버텼네 ㅇㅇ 이런 말을 하는 유게이가 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아직 쿠키 영상 남아있다.
애산이 함락되고, 겨우 살아남은 남송의 의병 잔당들은 겨우겨우 본토로 되돌아와서 숨어들어가는데 성공했다. 사실 수장된거만 10만이고 모인게 20만이니 몇 만정도는 살았겠지? 그 중에서 살아남은 잔당중에 진씨 노인이 있었다. 90을 넘겨서도 허리가 꼿꼿하고 기력이 정정했던 그 노인은 죽는 날까지 애산 전투에서의 일을 동네 사람들한테 이야기 해줬다는데, 그 이야기를 듣고 울지 않는 사람이 없었다고 한다. 하긴 복지수준 빵빵한 송나라에서 살다가 원나라 되고 뜬금없이 4등국민되서 칼 하나 맘대로 못쓰게 되었으니 당연한 일이지. 여튼 이 진 노인에게 딸이 둘이 있었는데, 이 딸이 주오사라는 사람에게 시집가서 자식을 여덞 명이나 낳았다. 그런데 그 당시 하층민들이 그렇듯이 찢어지게 가난했던데다가 몽골의 수탈이 심해서 비실비실하다가 역병이 돌아서 결국 막내아들과 손윗 형 단 하나만 살아남았는데, 형은 동생을 위해서 마지막 남은 볍씨 10알정도 남은걸로 풀죽을 쑤어서 동생을 먹이고 자기는 아사했다.
살아남은 막내아들 주중팔은 겨우겨우 땅을 빌려서 가족들을 묻고 절에 들어갔다. 나중에 중팔은 이름을 바꾸고 반 원나라 운동에 투신하게 되는데, 누굴까?
오잉? 주중팔의 모습이...!
축하합니다! 주중팔은 명태조 주원장으로 진화했습니다!
그렇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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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줄 요약
1. 송나라는 문치주의지만 그거때문에 망한게 아니라 그냥 상대가 개깡패 몽골이라서 망한거다.
2. 그때 뻐길 수 있었던건 다 문치주의로 뿌려놓은 씨앗이 발화해서 나라가 일치단결했기 때문.
3. 그냥 망한줄 알았지? 사실 아니었음.
P.S 그러니까 이딴 정신교육 할 시간에 장병복지나 똑바로 해주면 애산전투 씹가능.
사실 송이 망한건 문치주의 때문이 아니라 외교능력이 절망적일 정도로 괴멸적이었던 탓이 큼
군사력이 허약해서 요나라 막으려고 금나라한테 손벌렸다가 말아먹어서...심지어 고려에서 대놓고 금나라 못믿을 놈들임 해줘도 무시하고 했다가 망했지...
플러스 금나라도 생각해야지...
금나라한테도 두들겨 맞긴 했는데, 결국 어찌저찌 버티긴 버텨서 수습해놨는데 그 떄 몽골이 뙁!
몽골이 존시나 쌘걸..
이집트처럼 멀거나 베트남처럼 정글이면 모르겠는데 하필 바로 앞마당.
문치주의로 못 치고 올라간 것도 맞지. 국력이 그렇게 압도적이었으면 금나라 따위는 혼자 몰아내고 중원 먹었어야 했는데 몽골 끌어들여서 금나라 조지려다가 금 먹은 몽골한테 탈탈 털린 거잖아.
근데 문제는 그 때 금나라 정책이 '몽골을 못막겠으니 일단 송나라 먹고 그 힘으로 몽골막자'여서 선택의 여지가 없었음. 금에 먹히느냐 몽골에 먹히느냐니까.
연운 16주 내준게 이 모든 비극의 시작 ㅋㅋ
그것도 있는데, 요나라 몰아내고 금나라에 주기로 한걸 군사력 없어서 도움요청한놈들이 쌩까면서...대체 뭔 깡으로 그런거지;
ㄹㅇ 송나라 개쩔긴 하더라. 그 몽골이랑 그것도 최정예랑 반세기나 피터지게 싸움...
졌지만 잘 싸웠다의 표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