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주 여진이 통일 되기 전인 16세기 중후반 무렵. 같은 건주 여진에 속했던 닝구타 세력과 동고 세력은 한 세대 가까이 원수 지간으로 지냈다.
그 원인은 바로 동고의 주인 커쳐 바얀의 아들인 얼기 와르카가 비적들에게 피살된 사건 이었다.
그 전말을 처음부터 살펴보자면 대강 이러하다.
닝구타 부의 일원중 아하나 워지거라는 사람이 있었다.
아하나는 샄다라는 지역에 살고 있었는데 그는 그 곳의 영주인 바스한 바투루의 여동생을 아내를 아내로 맞이하고자 했다.
바스한 바투루는 아하나가 가난하다고 하여 자신의 여동생을 주지 않았다. 대신 그는 자신의 여동생을 동고부의 영주 커쳐 바얀의 아들 얼기 와르카에게 시집보냈다.
그러던 어느날 얼기 와르카가 비적들에게 살해당하는 일이 벌어지는데, 이 때 '아하나'라는 이름의 동명이인이 비적들 중에 있었다.
그 탓에 아하나가 결혼상대를 빼앗긴 원한 때문에 일을 저지른 것으로 파악한 커쳐 바얀은 이 일의 책임을 닝구타 세력에 떠넘겼다.
두 세력간의 분위기가 험악해지자, 당시 여진에서 가장 강력했던 국가인 하다의 지도자, 완 한(Wan Han)이 이들을 중재하려고 했다.
그러나 완 한의 중재는 닝구타의 소오창가가 괜히 커쳐 바얀을 속여먹으려다 실패하면서 완전히 뽀록이 났고, 결국 닝구타 세력과 동고 세력간 전쟁이 발생했다.
전쟁은 닝구타의 지속적인 패전으로 말미암아 닝구타의 열세로 이어졌다. 닝구타 세력은 세력이 분산된 반면 동고는 원수를 갚기 위해 하나로 뭉쳤기 때문이었다.
결국 닝구타 세력은 하다에게 병력 지원을 요청하여 가까스로 동고의 공세를 물리칠 수 있었다.
그러나 이 때문에 닝구타 세력의 힘은 크게 위축되었고 하다에 힘이 묶이게 되었으며, 동고와도 원수지간이 되어버렸다.
닝구타 세력의 힘은 1580년대 초엽까지 상당히 약해져 있었으나, 곧 닝구타를 묶어두던 하다가 내분과 외부 세력의 개입으로 힘이 약해지고
여진 세력 전체가 혼란에 휩쌓인 틈을 타서 힘을 키울 수 있었다. (명나라의 여진내 세력분쟁 개입도 한 몫 했다.)
그 중심에는 닝구타의 새로운 지도자로 부상한 젊은 지도자, 누르하치가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