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고대 역사에 대해 안다고 생각하는 것들은 사실 정말 상당 부분이 불확실 하다. 사실 그럴 만도 한것이, 기록이 있는 역사적 사건들도 갑론을박이 벌어지고 학계의 정론도 10년 단위로 바뀌는 판에 기록도 없는 시대의 역사는 당연한 것이 아니겠는가?
가장 대표적으로 가장 오래된 평화조약의 기록이 남아있는 카데시 전투의 경우는 "우리 이집트 군이 습격을 당했다, 근데 우리가 이겼다!!!" 라는 말도 안되는 수준의 생략이 있다.
근동의 경우는 그나마 기록이라도 있지만, 이 시기에 독자적인 기록을 남기지 않고 그대로 사라진 문명들도 있다. 우리나라의 청동기 시절 고조선 같이 말이다.
북,중앙 유럽의 청동기 문명 또한 마찬가지 인데, 이 지역에 문명이 있었다는 것은 확실 하지만 기록이 거의 없다 보니까 고고학 유물들을 통해서만 그 역사를 짐작할수 있을 뿐이다.
그만큼 아는 것도 거의 없는데, 얘들이 청동기를 썻다는 것과 인구밀도가 매우 낮았다는 것 정도가 확실하고 나머지는 추측의 영역이다.
네브라 스카이 디스크 같은 물건으로 "아 얘들이 천문지식도 가지고 있었구나" 정도의 추측 같은것 말이다.
어쨋든 인구밀도가 극도로 낮은 만큼, 조직적인 전쟁행위는 벌어지지 않았을 것이라는게 역사학자들의 중론이였다. 대부분의 무기들, 특히 칼은 의식용 물건으로 취급받았고, 거의 빠짐없이 악기들과 같이 발견되었다는 것이 그 추측을 뒷받침 하였다.
그러다가 1996년 북동부 독일 톨렌즈 계곡에 고고학계를 발칵 뒤집어놓은 사건이 벌어졌다.
바로 근처를 지나가던 평범한 시민이 돌로 만든 화살촉이 박힌 사람 팔뼈를 발견한 것이다.
그 사람은 뭔가 역사에 대한 조예가 있었는지, 경찰 대신에 역사학자들을 불렀고 이를 시점으로 고고학계를 발칵 뒤집어놓은 "톨렌즈 계곡 전투지"에 대한 발굴이 시작된다.
온갖 종류의 무기와 군사물자가 발굴되고(망치, 몽둥이, 창, 칼, 단검, 활과 화살, 심지어 군마까지(?!)), 그와 함께 1만 3천개에 달하는 인간의 유해조각들까지 발굴된 것이다.
대부분의 유해들은 20-40대의 젊은 성인 남성 및 몇몇 여성과 어린이들의 것이었고, 단 하나도 빠짐없이 무기로 인한 치명적인 외상을 가지고 있었다.
탄소연대 측정결과 이 지역에서 기원전 1300-1200년 사이에 전투가 벌어졌다는 결론이 내려졌고, 대대적인 고고학 발굴이 시작된다.(참고로 카데시 전투가 기원전 1274년에 벌어졌다.)
발굴이 지속되었고, 고고학자들은 다음 특이사항들을 발견한다.
1. 25%의 유해들은 톨렌즈 전투 이전에 상처를 입고(아마도 전투에 참여해서 입은 부상) 자연치유된 흔적을 보인다. 이는 전투에 반복적으로 투입된 전사계급이 상당수 존재했다는 추측의 근거로 쓰이기도 한다.
2. 많은 유해에 도검류로 받은 상처가 남아있으나 칼은 단 하나도 남아있지 않다. 아마도 전투가 끝난후 전리품으로 노획당한듯 하다.
3. 말이 전투현장에 투입되었다. 처음 발견된 팔뼈는 사실 궁수가 기마병을 부상시킨 것으로 판명되었다.
4. 성인남성이 아닌 유해들은 군대를 따라다니던 식솔들이였거나, 아니면 이 지역에 토착민으로서 전투 도중 혹은 직후에 침략군에게 학살 당한 것으로 보인다.
더 깊숙한 조사가 이루어졌고, 그 결과 해당 지역에는 잘 정비된 가도와 다리가 위치해 있었다는 것 까지 알아낸다.
전투가 벌어지기 500년 전 즈음에 건설 되었지만, 전투가 벌어진 시점에 다시 복구 되었다고. 이 건축물은 이 지역 어디엔가 수백년 동안 다리와 가도를 사용한 상당한 규모의 정착지가 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그리고 위의 사진에 사각형으로 하이라이트된 부분에서는 1478개의 뼛조각이 12 제곱미터에 불과한 공간에 한데 몰려 있는 채로 발굴되어, 전투에서 패배한 측이 최후의 항전을 벌이다 몰살당한 지역으로 추측 되기도 한다.
최종적으로 대략 750명에서 1500명의 사망자가 발생하였다고 추측되었으며,
통상적인 전근대 전투의 사상자 비율로 볼때 양측을 합해 총 3000명에서 5000명 사이의 전투원들이 투입되었다고 추측된다.
이 발굴은 말 그대로 고고학계를 발칵 뒤집어 놓은 사건이였는데, 3천명에서 5천명이 동원되는 전투는 고대 기준으로 정말 엄청난 규모이기 때문이다. 일단 유럽의 중세초기에 기록된 대부분의 전투들이 이정도 규모로 벌어졌고,
그런 역사적 맥락을 차치하고서라도 군대를 갖다온 유게이들이라면 1500명 정도를 먹고, 입히고, 훈련시키는게 얼마나 힘든 일인지 당해봐서 알것이다. 근데 1제곱킬로미터 당 3~5명 정도 살던 시대에 이 3000~5000명이 모여서 전투를 벌였다?
즉 최소한 1500명에서 2500명을 모으고, 먹이고, 입히고, 훈련시키고, 지휘할만한 조직이 있었다는 뜻이며, 흔적도 없고 저언혀 기록에 남지도 않았지만 상당한 수준의 정부가 존재했을수도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고대 유럽의 청동기 문명에 대한 기본적인 가정을 뒤흔드는 엄청난 발굴이였던 셈이다.
참고로) 전투가 벌어진 것으로 추정되는 연대인 기원전 1200년대는 유럽과 지중해 일대에 혹독한 기후변화와 환경재앙이 강타하던 시기였다. 이 시기에 그리스 일대에는 사막 식물군이 서식했다 추측될 정도.
이 시기에 수많은 민족들이 몰락해가는 농업으로 인해서 자신들의 땅을 버리고 새로운 땅을 찾아 남쪽으로 향했으며,
북유럽에서 시작된 것으로 추정되는 대규모 기후난민들은 도미노 효과를 일으키면서 남쪽으로 향하는 더 많은 난민들을 발생시킨 것으로 추측된다.
이렇게 생긴 수많은 기후난민들 중에 일부는 그 당시 최고의 문명국들이던 미케네, 이집트, 히타이트를 침공하였는데,
일명 '바다민족'으로 불리는 이들은 미케네(그리스), 히타이트를 철저하게 파괴하였으며, 그 후폭풍으로 이집트는 2류열강으로 전락하고, 그리스에서 메소포타미아까지 뻗어있던 대부분의 청동기 문명들이 쇠퇴하였다.
어찌나 붕괴가 심했는지, 이 시기에 동지중해 일대의 거의 모든 대도시들이 파괴되거나 버려졌다고 할정도.
아직 톨렌즈 계곡에서 어떤 사람들이 왜 싸웠는지도 모르지만, 톨렌즈 계곡 전투는 어쩌면 바다민족의 침공과 청동기 문명의 붕괴로 이어지는 거대한 해일의 시작이였을지도 모르는 셈이다.
만약 청동기 문명의 붕괴가 무엇인지 모른다면, 이 글을 읽어보는 것을 추천한다.
고대시절에는 종교가 곧 정부였던 시절이잖아...
고대사뿐만 아니라 중근세의 역사도 결국 기록을 남긴 사람의 주관이 반영되어있어서 주류 학설이 이랬다 저랬다 바뀌는 경우가 많으니 뭐.
어우 쑥쓰럽네. 난 그저 번역해서 수입해오는 거임. 재미있게 봤으면 출처들어가서 좋아요 한번 눌러줬으면 좋겠음.
저때쯤에 저기서 얼마 안떨어진 덴마크에서 이런걸 만들어 냈을 정도니 전차와 군마는 당연히 있었을 것이고 전차를 동원한 대규모 전쟁도 틀림없이 있었을듯
이집트나 아즈텍 같은 애들은 수십만 동원하는 시점까지도 왕=사제였잖아
기원전 1300년이면 거의 같다고 봐야지. 제사장=왕. 혹은 저 시대는 아직 민족이나 국가관은 고사하고 충성에 대한 제대로 된 개념도 잡혀있지 않은 상태에서 원시적인 신앙심, 즉 종교에 기대어 충성과 결집을 이끌어야 했고 그래서 왕은 신 자체 혹은 신의 아들 내지는 신의 대리인이라는 종교적 숭배가 기본 바탕이 됨.
그거. 바로 제정일치 사회니까요
모르지.. 부족사회까진 샤머니즘 형태의 종교가 지배집단 형태가 흔한데 만명단위 전투를 벌이는 거대사회면 이야기가 달라지니까. 고대사회에 대한 통념이 깨지는거지.
7천년전 유골에서 B형 간염 바이러스의 유전자가 검출되는 수준이니 3천년이면 근황임
괜히 후대 문명의 발달단계를 논할 때 제정분리가 중요하게 다뤄지는 게 아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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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hite Cat
고대시절에는 종교가 곧 정부였던 시절이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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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hite Cat
기원전 1300년이면 거의 같다고 봐야지. 제사장=왕. 혹은 저 시대는 아직 민족이나 국가관은 고사하고 충성에 대한 제대로 된 개념도 잡혀있지 않은 상태에서 원시적인 신앙심, 즉 종교에 기대어 충성과 결집을 이끌어야 했고 그래서 왕은 신 자체 혹은 신의 아들 내지는 신의 대리인이라는 종교적 숭배가 기본 바탕이 됨.
Petro
그거. 바로 제정일치 사회니까요
Petro
괜히 후대 문명의 발달단계를 논할 때 제정분리가 중요하게 다뤄지는 게 아님
Petro
모르지.. 부족사회까진 샤머니즘 형태의 종교가 지배집단 형태가 흔한데 만명단위 전투를 벌이는 거대사회면 이야기가 달라지니까. 고대사회에 대한 통념이 깨지는거지.
Estrellade
이집트나 아즈텍 같은 애들은 수십만 동원하는 시점까지도 왕=사제였잖아
이집트같은 다신교는 샤머니즘 종교가 뭉치고 뭉쳐서 그리된거임
선생님 3줄요약좀 해수세요
이런거 재밌지 지중해쪽 sea peoples 이야기도 재밌었는데
와드
님 고대사 썰풀어주는거 몆개 봣는데 ㄴ존잼
어우 쑥쓰럽네. 난 그저 번역해서 수입해오는 거임. 재미있게 봤으면 출처들어가서 좋아요 한번 눌러줬으면 좋겠음.
고대사뿐만 아니라 중근세의 역사도 결국 기록을 남긴 사람의 주관이 반영되어있어서 주류 학설이 이랬다 저랬다 바뀌는 경우가 많으니 뭐.
오래되서 그 주관적이고 단편적인 기록조차 많이 유실되었을 고대사까지 가면 뭐...ㅋㅋㅋㅋㅋ
이런글 너무 좋다
재밌당. 이런 글 써줘서 고마웡!
고대사는 있는데 왜 연대사는 없나요
저때쯤에 저기서 얼마 안떨어진 덴마크에서 이런걸 만들어 냈을 정도니 전차와 군마는 당연히 있었을 것이고 전차를 동원한 대규모 전쟁도 틀림없이 있었을듯
거의 3천년이 되어도 사람 뼈가 덜 썩고 남아 있네
꽃게색이야
7천년전 유골에서 B형 간염 바이러스의 유전자가 검출되는 수준이니 3천년이면 근황임
뭐야 왤케 재밌어요
뭐 우리나라 고인돌만 해도 뭐...
루리웹-3422263659
고생물학도 비슷한 것 같에...ㅋㅋㅋㅋㅋㅋㅋ 동굴우화처럼 우리는 결국 동굴 벽에 비치는 그림자만 보고 해석하는 거니까.
다시봐도 재미있네
인류 최초의 직업이 사냥꾼이랑 군인이라지
글 재밌다 ㅋㅋㅋ
잘 읽었다
님글 재밌어요
무섭다 바다민족...
뼈가 한군데 모여있는건 어쩌면 전투가 끝나고 사망자만 따로 모아서 처리한 걸수도 있음 시신을 방치하지 않고 처리하는것 역시 문명화의 증거임
동래성의 해자처럼인가......
그럼 우리가 모르는 역사가 더 오래전부터 있었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