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군은 어떤지 몰라도 공군은 장교가 모자라서 그런가 겸직을 되게 많이 하게 되어요.
제 경우에는 혼자서 응급처치, 지상사격, 기지방어 교관 + 생존성향상 교관을 해야 했던 때도 있었어요.
아무튼 간에 대위 상태로 그 해 말에 전역을 앞두고 있는데, 본부 계획과의 교육장교가 저보고 갑자기 기지방어 교관을 하라는 겁니다. 문제는 기지방어 교관이니까 내일 강당에서 급조폭발물 이론 교육하라고 ㅎㄷㄷ
미쳐! 내가 일이 없는 것도 아니고 그리고 강당에서 교육할 건데 자료도 없는데 어쩌라는 거지 싶었지만, 일단 PPT나 달라고 했었죠. 그런데 받아보니까 그거 만으로 시간 떼우기는 부족하더라고요. 제가 그 부대 전입 간 이후로 처음 기지방어 교육 때 누가 교육했던 거에서 바뀐게 없음, 뭐 그래도 자료가 있으니까 쓰기로 하고
거기다가 더했어요. 어떻게 해야 시간을 떼울 수 있을까.
그래서 밀덕이 할 일이 뭐겠어요? 인트라넷 뒤져봤죠.
육군쪽으로 넘어가보니까 따끈따끈한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전을 치르면서 미군이 직접 경험해서 업데이트한 화려한 IED(급조폭발물) 책자 pdf가 있었죠.
내용 분석해서 강의 때 보여줄 페이지들 다 따로 저장하고 퇴근하고서 숙소에서 스스로 만든 대본 읽으면서 강의 준비하고 강의했음.
그냥 PPT 읽고 동영상 조금 틀어주고 마는 것이 아니도록 왜 우리가 급조폭발물을 주의해야 하는가를 제대로 머리속에 박아주려고 신경써서 준비했음.
"우리가 왜 급조폭발물을 주의해야 하나?"
어린 애들이 페트병에 액체 넣고 흔들다가 펑 터지는 동영상 보여주고, 한국 뉴스에 나온 아이들이 인터넷에서 공유하는 지식으로 폭발물 제작한다는 내용 보여줌
"이처럼 최소한 전공자조차 아닌 아이들도 재료를 구해서 쉽게 만들 수 있는 것이 폭발물인데"
실제로 폭발물 테러 사건 영상이랑 사진들, 피해 정보 보여주면서 "효과는 이렇게나 크기 때문에, 우리의 적이 이걸 사용하지 않으리라고 장담할 수가 없다"고 강조해줌.
그렇게 후다닥 PPT 끝내버리고 미군 pdf 자료들 보여줬음.
"전장에서는 절대 불필요한 행동을 해서는 안된다. 그 어떤 것이 죽음의 원인이 될지 모른다."
"의자가 보인다고 앉고, 신기한 것이 보인다고 접근하고 들춰보고, 전화가 울린다고 수화기를 드는 등 이런 짓 하지 말라."
그러면서 미군 책자들 보여줌.
방치된 오토바이 가죽 좌석 밑에 폭발물 뭉치라든지, 도로변에 일부러 노출된 폭발물과 전선을 배치하고, 미군 행렬이 그걸 발견하고 정지했을 때, 행렬을 날려버리기 위한 진짜 폭발물을 숨기는 수법이라든지, 먼 곳에서 유인 또는 무인으로 로켓 따위를 발사해 관심을 끈 후, 자신들은 퇴각하고, 발사 지점을 정찰하러 온 미군 대상으로 한 폭발물을 숨기는 등의 실제 수법들을 잔뜩 알려줬음. 어떤 것이 눈에 띄면 그것에 주의를 기울이고 있을 때, 당신의 목숨을 빼앗을 진짜 함정이 있을 수 있다는 등 부비트랩 예방책도 덤으로 교육해줌.
그런데 내가 그렇게 열심히 준비해서 교육했어도 그 때 뿐이라…….
내가 전역할 때 미군 자료 파일도 같이 남겨뒀었는데, 교육할 때 그거 보여준 사람 있으려나? 아마 없을 듯
대충 시간 때우는식으로 보여줄수도 있고 아닐수도 있고 ㅇㅇ