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단 장자 상속제
유교적 질서에 따라 머시기 한건 핑게고
그냥 재산이 분할되는걸 막고
가문의 힘을 유지하기 위한거임.
여럿 나눠주다보니 가문 재산이 분할되서 가문이 약해지니
장자에게 몰아줘서 가문 재산 보존하는거지
이건 조선만의 이야기도 아닌게 중세에도 장자는 영주를 이어받고
차남 이후는 수도원에 보냈다 하니까.
여성에 대해서도 두 양난 겪으며 아녀자 겁탈이나 납치후 환향하는 일도 많은 판이니
여성에 대한 관점이 바뀌는것도 무리는 아니라고 봄.
그 과정에서 정조를 지키기 위해 자결한걸 미화하기도 하고
그걸 모델로 삼으니 그대로 따라야 한다며 강요되기도 함;
정작 꼰대라 불리던 송시열은 여성의 재가에 찬성하던 측이란걸 보면
성리학 이전의 문제같기도 하고..
킹덤컴 보니까 카를4세인가 아들들한테 나눠서 주던데 영토
왕이잖여; 그나마 아마 기억이 애매하지만 지기스문트는 헝가리의 왕이지 아버지의 영토인 보헤미아의 왕도 아니고 영토를 받은건 아님. 그러니까 어떤 점에선 자기 스스로 쟁취한 권위기도 하지
걍 망할타이밍에 안망한 부작용으로 사회가 보수화된거지 양란 이후에 들썩이는 사회를 좀더 강하게 구성원을 옥죄는 방식으로 안정성을 유지하는 거지같은 경우
근데 사실 여성이 자유로웠느니 하는것도 상류나 해당하지 평민들까지 조선 전기가 그렇게 좋은 시대였는가 하면 그건 또.. 조선 후기에는 공명첩으로 노비 신분을 벗기도 하고 상업등으로 재산을 축적하기도 하는 등 되려 더 개방된 부분도 많음. 장자 상속이나 여성에만 집중해서 그렇지.
사실 학문 자체에 문제는 없지..그걸 이용해서 이익을 보거나 지키려는 사람들이 문제지 성리학은 학문이면서 정치와 지배 논리기도 했으니
그리고 생각 이상으로 학자들이 백성 등쳐먹던 시기도 아니지 당파싸움이 벌어졌다지만 그러는 과정에서 대동법이 실행되고 한거니 적어도 숙종대까지 붕당 정치 체제는 그런 재건을 열심히 실현한 편임. 숙종대에선 박살나버리고 수습하는 과정에서도 두 왕을 거치며 그 과정은 계속되었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