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세기 말에서 17세기 초 여진사를 보다보면 이런 생각이 들 수 있다.
'여진족끼리 왜 정략혼인을 하는걸까. 정략혼인 맺어도 얼마 뒤에 또 전쟁하는 케이스가 존내 많은데.
당시 형국상 여진 통일은 필수불가결이어서 정략혼을 맺어도 결국 언젠가는 서로 전쟁을 할 수 밖에 없는데 여진세력간 외교적 정략혼 관계가 필요한가?
그냥 자기 세력에 속한 대신들이나 몽골에 시집보내는게 낫지 않을까?'
하지만 다르게 생각해보자면 정략혼관계가 있었기 때문에 그나마 이 정도 빈도로 전쟁이 난 것이지 정략혼 관계가 없었다면 훨씬 더 많은 전쟁이 있었을 것이다.
정략혼 관계는 원래 몇 달에 한 번씩 세력간 전쟁이 날 것을 그래도 몇 년에 한 번씩 전쟁이 나도록 줄여준 역할을 한 것이라 할 수 있고,
또 임시적으로라도 동맹관계를 체결하는데에도 도움을 주었다.
거기다가 타 세력에 대한 통제력 강화에도 정략혼을 이용할 수 있었으니* 여진 세력간 정략결혼은 필수불가결한 행동이었다.
* : 이에 대한 대표적 예시로 하다의 완 한이 탘시에게 자신의 양녀를 시집보내어 탘시가 속한 닝구타 버일러 세력에 대한 자신의 통제력을 강화한 것을 들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