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순신은 원균을 42회 가량 좋지 않게 기록했다.
연도별로 보면 1593년에 17회, 1594년에 11회, 1597년에 12회로 집중돼 있다.
1592년, 1595년, 1596년에 원균에 대해 적은 기록은 거의 없다.
1592년은 전라좌수사 이순신과 경상우수사 원균이 조선 수군의 지휘권을 공동으로 행사하면서 왜적을 무찌르던 시기였다.
1593년은 이순신과 원균이 3도수군통제사 자리를 놓고 겨룬 해였다.
1594년에는 원균보다 나이가 어렸던 이순신이 3도수군통제사로서 조선 수군 전체를 지휘했다.
1595-96년은 원균이 충청병사로 옮겨가 수군이 아니었다.
1597년에는 원균의 모함과 왜군의 모략으로 옥에 갇히는 몸이 되었다.
칠천량해전 패전 이후, 수군통제사에 재임명된 후 남해 등지를 두루 살폈으나 남은 군사는 120명, 병선은 12척이 고작이었다.
그리고 이순신은 왕에게 한통의 편지를 쓰는데....
만양 정말 만약에 원균이 없었다면 임진외란은 어떻게 흘러갔을까 궁금해지네
한반도 내륙 자체생존 방어전으로 바뀌고 이미 일본본토도 공격 받고 있을듯하네요
원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