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부림 中, 죽은 이들에 대한 샤머니즘 의식. 까마귀와 까치들이 맴돌고 있다.)
만주족이 신성시한 새는 크게 두 종류가 있다. 까마귀(Gaha, 가하)와 까치(Saksaha, 샄사하)이다. 두 새 모두 만주족의 전신인 여진족이 여러 분파로 나뉘어져 있던 시절부터 많은 씨족들로부터 대우를 받았다. 어떤 씨족은 위 새를 시조로 여기기도 할 정도였다. 이 두 새는 여진-만주족에 있어서 신앙적으로 중요한 위치에 있었다.
까마귀는 여진-만주족의 샤머니즘적 신앙과 생활에서 주로 경고의 전령으로 생각되었다. 이러한 여진족의 인식이 극대화된 이야기는 누르하치에 의해 막 통일된 건주 여진 세력과, 동여허 군주 나림불루를 주축으로 한 구국연합1간 전쟁(1593년)중에 있었던 '우리칸의 이야기'이다.
1593년, 한반도에서 임진왜란이 벌어지고 있던 당시에 여진족 역시 서로간에 거대한 규모의 전쟁을 치루고 있었다. 누르하치의 건주와 나림불루의 여허, 그리고 여허를 중심으로 한 연합군간 전쟁이었다.
1593년 음력 9월은 이 전쟁이 절정에 이르렀을 때였다. 여허의 나림불루는 호왈 3만 대군을 이끌고 건주를 향해 마지막 공격을 하려 했고, 누르하치는 이에 파수병 우리칸을 보내어 그들의 공격 방향을 탐지하려 했다.
우리칸은 누르하치의 지시대로 처음에는 동쪽으로 향하였다. 그러나 거의 1백리 가까이 정찰을 나갔음에도 불구하고 적들을 발견치 못했다. 그러던 차에 까마귀들이 우리칸의 진로를 막고 우리칸을 돌아가게 했다. 우리칸이 물러나면 까마귀들이 흩어졌으나 우리칸이 다시 앞으로 나아가려 하면 다시 모여들어 우리칸을 막았다.
결국 우리칸은 누르하치에게로 복귀했고, 자신의 주군에게 이 이야기를 전했다. 우리칸의 이야기를 들은 누르하치는 까마귀들이 우리칸을 막은 것을 하늘이 자신에게 보내는 경고로 생각하고 우리칸을 반대방향으로 정찰보냈다.
덕택에 우리칸은 나림불루의 대군을 탐지할 수 있었고, 누르하치는 적들의 공격방향을 특정할 수 있었다는 이야기다.
이 이야기를 정말로 하늘의 명을 받은 신령스러운 까마귀들이 우리칸에게 경고를 보내어 누르하치를 도왔다는 것으로 곧이곧대로 받아들일 수는 없다.
이 이야기는 두 가지 갈래로 해석할 수 있는데, 하나는 이 이야기 자체가 누르하치가 하늘에 선택받은 인간이라는 것을 표현하기 위해 후대에 조작하여 삽입한 이야기라는 것이다. 또 하나는 사건 자체는 실제로 있었으되, 그저 우리칸이 많은 수의 까마귀들이 자신의 앞에 나타난 것을 일종의 경고로 해석하고, 자신의 판단 하에 앞으로 가는 것을 멈추고 돌아간 것에 불과하다는 견해이다. 후자의 견해에 따르면 누르하치 역시 그 이야기를 듣고 그저 우리칸이 겪은 일을 '하늘의 경고'로 해석했을 뿐이다.
이 이야기 자체는 실제로 있었을 가능성이 있다. 그러나 앞서 말했듯이 실제로 누르하치가 하늘의 도움을 받은 것이라 할 수는 없고, 그저 우리칸과 누르하치가 까마귀들의 특이 현상을 '경고'로 해석한 것에 불과할 것이다. 하지만 반대로, 이 이야기는 당시 여진족들이 까마귀를 어떻게 생각했는지를 파악할 수 있다는 점에서 매우 중요한 이야기이다.
까마귀가 비단 경고의 전령으로만 받아들여진 것은 아니었다. 그들은 '경고의 의미'를 제외하고도 샤먼들의 동반자였으며 동시에 하늘의 동반자였다. 그렇기에 까마귀는 경계해야 될 대상이 아니라 환영받는 대상이었다.
까치 역시 하늘의 전령겸 조력자였는데, 까마귀보다는 본격적으로 받들어진 시기가 늦은 것으로 유추된다.
까치는 청나라의 개국 신화에서 교로 하라(청황실 가문) 시조 부쿠리용숀의 탄생에 중요한 역할을 했다. 불후리 연못에서 세 명의 선녀가 목욕을 하는 동안, 까마귀의 몸을 빌은 신이 하늘의 명을 받들어 붉은 과일을 옷 위에 가져다 놓았는데 선녀중 한 명인 퍼쿨런이 그 과일을 먹고 잉태를 하게 되었고 이후 태어난 자식이 부쿠리용숀이라는 이야기다.
또한 부쿠리용숀의 후손인 판차가 양목답올과 우디거 세력의 공격으로 말미암아 본래 살던 오도리 성에서 도망칠 적에도 까치가 도와주었기도 했다.2
부쿠리용숀 신화는 사실 청 황실이 후르하 신화를 차용하여 본인들의 왕실의 신성성과 만주족의 동질성을 강조하기 위해 '제조'한 신화이나, 후르하 역시 여진의 한 갈래였으며 만주족에 편입된 족속임을 염두에 둘 필요가 있다.
어찌되었건간에, 이 신화가 차용되어 '청의 개국신화'로 재탄생 함으로서 청조에서 까치가 차지하는 위치는 상당히 커졌다.
청이 입관한 뒤, 까마귀와 까치는 나란히 청의 국조(國鳥)급의 위치를 점유하게 되었다. 그것은 이후 수백년간 전통처럼 이어졌다.
---
아래는 각주
1.동여허 나림불루와 서여허 부자이를 중심으로 구축된 대(對)건주 동맹군, 해서여진 4대국인 여허, 울라, 호이파, 하다, 동해 여진 계통인 주셔리와 너연. 몽골의 코르친과 그들 산하의 시버, 구왈차 총 아홉개 세력이 동맹을 구축하여 건주를 상대하려했다.
2.이 이야기는 1433년 몽케테무르 세력이 양목답올이 규합한 우디거 세력에게 공격당한 사건을 설화로 재창작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