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에 나와서 꽤 큰 논란을 촉발시켰던 밀리터리 TPS 게임 스펙옵스 더 라인은 강력한 반전주의적 메시지와
현실의 플레이어/게임 속 플레이어 캐릭터의 관계에 대한 과격한 해석으로 큰 화제가 되었다.
그런데 그러한 논란들 속에서 유독 국내에서는 크게 조명받지 못한 숨겨진 내러티브가 있다.
이 글에서는 이 주제에 대해 심층적으로 다룬 Raycevick의 42분 짜리 리뷰를 기반으로,(https://youtu.be/8dzstxE_5Rc)
스펙옵스 더 라인의 숨겨져있는 제 3의 내러티브를 조명하고자 한다.
먼저 스펙옵스 더 라인에는 크게 2가지의 "직접적" 내러티브가 있다.
하나는 가장 눈에 띄는 내러티브로 바로 그 당시 흥하던
콜 오브 듀티류의 밀리터리 슈팅 장르에 대한 직접적인 안티테제다.
이 내러티브에서 플레이어는 전형적인 닳고 닳은 군인 플레이어 캐릭터인 마틴 워커를 조작하며,
전형적인 엄폐기반 슈팅게임을 기대하며 진행하게된다.
모두들 알겠지만, 점점 전형적인 밀리터리 영웅담과는 다르게 백린탄 사용을 기점으로 플레이어 캐릭터와 2명의 사이드킥 캐릭터들이
과격하게 전범으로 타락하는 과정을 거치게 되며, 이 결과로 플레이어는 뒤통수를 거하게 처맞게된다.
또한 백린탄 사용을 기점으로 플레이어와 플레이어 캐릭터 간의 관계에 의문을 표시하는 2번째 내러티브 역시 작동하는데,
가장 대표적인 것이 로딩스크린 문구 중에 "미군은 비무장 전투원의 사살을 허용하지 않습니다. 근데 이건 진짜가 아닌데 왜 신경을 쓰나요?"라면서
대놓고 마틴 워커는 플레이어가 아니라는 점을 상기시키는 부분이다.
이런 명확한 장치는 스토리 진행과 맞물려 플레이어 "캐릭터"인 마틴 워커가 정작 플레이어가 기대했던 모습과 정반대로 행동하면서,
실제로 플레이어가 마틴 워커를 통제하고 있지 않다는 점을 극명하게 부각시킨다.
그렇다면 마지막 3번째 내러티브는 무엇인가? 마지막 3번째 내러티브는 바로 플레이어인 우리는 게임내 세계에 참여하는 것이 아니라 관찰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 내러티브를 설명하기 위해서는 일단 스펙옵스 더 라인의 기승전결을 조금 따져봐야 된다.
1. 일단 게임은 전형적인 헬리콥터 미니건 시퀸스로 시작된다.
2. 그런 다음 인트로 컷신이 나오고, 기본적인 두바이의 배경상황을 설명해준 다음,
"처음"으로 두바이로 진입하는 플레이어 캐릭터와 사이드 킥 2명이 등장한다.
3. 임무 상황은 점점 악화되고, 플레이어의 의사에 반하는 마틴 워커 대위의 명령으로 백린탄 포격을 하였다가 민간인 다수가 몰살당한다.
여기서부터 콘래드 대령이 무전기를 통해서 마틴 워커와 직접 소통하기 시작하며,
마틴 워커 대위는 "플레이어의 의견하고 상관없이" 33대대의 지휘관 콘래드 대령을 모든 비극의 원인이라고 비난하기 시작한다.
4. 점점 마틴 워커와 그의 팀이 정신적으로 불안해지는 가운데(이 시점 이후로 환각이나 환청이 대놓고 들린다),
CIA 요원에게 속아서 두바이의 모든 수자원을 파괴해버리고 만다.
4. 이후 끊임없이 플레이어와 마틴 워커를 도발하던 33 대대의 라디오 DJ의 본거지에 무작정 쳐들어가 죽여버리고....
5. 처음 인트로에 나왔던 헬리콥터 추격 시퀸스로 되돌아온다. 다만 이번에는 추락시점에서 끊기지 않고, 워커는 불시착 후에 살아남는다.
6. 이후에 사이드킥 2명은 모두 비참하게 죽고,
마틴 워커 대위는 콘래드 대령의 거처까지 쳐들어가서 "사실 콘래드 대령은 진작에 죽었고,
니가 그동안 받은 무전은 니 책임을 부정하기 위한 너의 인지부조화 때문에 생긴 환청이다."라는 진실을 마주하게 된다.
여기까지가 스펙옵스 더 라인의 "직접적인 내러티브"다 첫번째, 두번째 내러티브가 여기에 속한다고 볼수있다. 그렇다면 마지막 세번째 내러티브는 무엇일까?
바로 인트로의 헬리콥터 추락에서 마틴 워커 대위는 사망했고, 우리가 그후 플레이하는 두바이는
사실 진짜 두바이가 아니라 죽어가던 마틴 워커 대위의 플래쉬백이라는 것이다.
즉, 인트로 시퀸스 이후에 바로 "실제" 마틴 워커 대위의 두바이 진입 장면으로 시간이 되돌아가는 것이 아니라,
마틴 워커 대위의 머릿속에 있는 환상의 두바이가 재생되는 것이 우리가 플레이 하는 스펙옵스 더 라인이라는 뜻이다.
내 글에 증거가 있냐고? 그냥 순 지 뇌피셜로 막 지껄이는 거 아니야? 라는 의문도 들수 있으니
이제부터 찬찬히 살펴보자.
세번째 내러티브는 인트로 헬리콥터 추격신 부터 착실하게 시작된다. 여기서 간과하는 것이,
인트로 헬리콥터 추격신이 헬기추락으로 끝나고나서 가장 처음 나오는 것은 두바이의 상황을 설명하는 컷신이 아니다.
바로 누군가의 거친 숨소리와 흐려지는 시야이다.
논리적으로 보았을때 이건 마틴 워커 대위가 추락의 충격으로 기절한 것을 표현한것이다.
문제는 정작 이 시점에 다시 도달하면 해당 암전 컷신과 거친 숨소리가 등장하는 것이 아니라
헬리콥터가 블랙아웃 된 뒤 환영 시퀸스로 넘어간다.
블랙아웃이 뭐가 별거냐고 할수 있는데, 일단 인트로 시점에는 넣어놓은 컷신과 사운드 이펙트를
여기에만 넣지 않는 것은 뚜렷한 의도가 있다고 의심해볼수 있다.
그리고 비교적 정상적으로 진행 '되어야될' 백린탄 이전 챕터를 잘 살펴보면, 뜬금없이 콘래드 대령의 얼굴이 여기저기 박혀있는 것을 볼수있다.
간판에 무심하게 얼굴만 박혀있거나, 저렇게 빌딩을 뚫고나온 모래에 초현실적으로 얼굴만 프린팅 되는 형태로 등장한다.
만약에, 직접적으로 묘사된 내러티브가 전부 다였다면 이 두바이는 현실이여야 되며,
아직 워커가 백린탄으로 인한 심리적 충격을 받기 전이므로, 이러한 징후가 보여서는 안된다.
이곳이 현실이라면 말이다.
또한 백린탄 투하 도중에 화면에 비친 마틴 워커 대위가 온몸에 불이 붙은채로 괴로워하기도 한다.
기억해야 될것이, 백린탄 투하 이후에 민간인 학살을 확인한 것이 트라우마의 계기가 되며, 후반부에 발생하는 초현실적인 환상과 환각의 심리적 근거가 된다.
즉, 아직 민간인들의 시체를 확인하기 전인 투하 도중에는 이러한 현상이 보이면 안된다는 것이다,
이 곳이 현실이라면 말이다.
마지막으로 이런 모든 간접 증거들을 빼놓고도 무시할수 없는 직접적 증거가 있는데, 바로 "두번째"로 헬리콥터 추격전을 플레이하면,
그냥 대놓고 마틴 워커 대위가 혼란스럽다는 투로 "아니 이거 우리 벌써 했던건데? 이거 우리 전에 했던거야!"라고 무전을 친다
"벌써 했었다"는 말은 플레이어가 플레이하고 있는 두바이가 "현실"이라면 불가능한 말이다.
여기가 현실이라면, 마틴 워커는 두바이에 처음 온 것이고, 이 장면도 처음 겪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곳이 현실이라면 말이다.
이 모든 증거를 종합해보면, 세번째 내러티브에서 "실제로" 두바이에서 일어난 일은 다음과 같다.
1. 현실의 마틴 워커가 두바이에 도착한다.
2. 두바이에 도착한 뒤 여러가지 끔찍한 전쟁범죄 행위들을 저지른다. 그 중에 하나가 백린탄으로 민간인들을 오발하여 학살한것.
현실의 마틴 워커도 이 시점에서 부터 콘래드 대령을 탓하고 비난하며 집착하기 시작했을 것이다.
3. 그러던 와중에 CIA 요원에게 낚여서 사막에 고립된 두바이의 모든 수자원을 파괴해버리고 만다.
4. 워커는 자기 팀원들과 함께 33 대대에게 쫓기다가, 헬리콥터로 탈출을 시도한다. 그리고 이 시점에서 부터 게임 플레이가 시작된다.
5. 워커 대위는 인트로의 헬리콥터 추락으로 인해 사망하게 되고, 추락한 헬리콥터에서 서서히 죽어가던 워커는
두바이에서 자신이 벌인 일들에 대한 플래쉬백을 겪는다.
우리가 인트로 이후 엔딩까지 플레이하는 두바이는 이 버전의 두바이인 것이다.
정리하자면, 세번째 네러티브에서 플레이어는 일반적인 게임같이 마틴 워커 대위를 통해 "두바이"라는 공간에 "참여"하는 것이 아니라,
마틴 워커 대위의 머릿속에서 펼쳐지는 두바이의 모습을 통해 자신을 자책하며 죽어가고 있는 실제 마틴 워커를 "관찰"하는 것이다.
사실 이 관점에서 보면 "현실이 아닌데 왜 신경씀?"이라는 말은 우리에게 던지는 말이 아니라 마틴 워커에게 던지는 말이다.
즉, "마틴 워커 대위 당신이 노력을해도 너는 민간인을 죽인 학살자라는 것이 바뀌지 않으며, 이 곳은 현실이 아니라 꿈에 불과하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 외에도 첫번째와 두번째 내러티브로는 설명이 잘 안되는 플롯 포인트들이 세번째 네러티브에서 해소된다. 예를 들어서...
왜 후반부로 갈수록 환각과 환청이 점점 증가할까?
왜냐하면 게임 후반부로 갈수록 워커가 겪은 실제 사건들이 줄어들기 때문이다.
특히 "실제" 마틴 워커 대위는 이미 인트로 시점의 헬기가 추락하면서 사망했으며
그 이후 시점의 일들은 대부분 실제로 일어난 적이 없기 때문에,
그 이후 시점 부터는 아예 게임내 현실과 가상의 경계를 자유자재로 넘나드는 연출이 많아진다.
예를 들자면 콘래드 대령의 거처에 다다르면 기본적인 논리로는 설명이 안되는 33대대의 항복식이나 물이 가득찬 야외수영장,
혹은 몸에 불이 붙은채로 마틴 워커에게 달려드는 사람들(당연히 꿈속에서 백린탄의 죄책감이 형상화 된것이다.)이 등장한다.
왜 백린탄 투하 이전에도 초자연적인 현상이 보이는가?
왜냐하면 우리는 "실제" 두바이를 플레이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우리는 마틴 워커 대위의 머릿속에 들어와있으며,
인트로 이후의 모든 것이 두바이에서 "실제" 마틴 워커 대위가 겪은 일들을 반영한 플래쉬백이라고 생각한다면 자연스럽게 납득이 가능하다.
특히 뜬금없이 콘래드 대령의 얼굴이 여기저기 보이는 것은 현실의 워커가 콘래드를 모든것의 원흉으로 지목하고 싶은 욕망이 표출된 것이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왜 플레이어에게는 백린탄 투하에 대한 선택지가 없는가?
왜냐하면, 우리가 접하는 백린탄 투하는 실제 일어나고있는 일이 아니라,
인트로 이전 시점의 "실제" 마틴 워커 대위가 벌인 백린탄 투하가 재생 된것이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실제 게임 플레이 시점상으로는 트라우마가 있어서는 안됨에도 불구하고 "백린탄 투하 도중"에 환영으로 워커 대위의 죄책감이 표출되는 것이다.
플레이어가 백린탄을 투하하고 있을때, 실제로 벌어지고 있는 일은
헬리콥터 추락으로 죽어가고 있는 마틴 워커 대위가 자신이 벌인 민간인 학살을 괴로워하고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세번째 내러티브에 관점에서 볼때, 백린탄 투하를 "플레이어인 우리가 선택"한다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고 볼수있다.
왜냐하면 우리가 있는 게임속 두바이는 현실이 아니라
마틴 워커가 자신이 저질러버린 끔찍한 학살들에 대한 죄책감,
자신의 행동이 어쩔수 없었다고 정당화하려는 욕구,
다른사람들을 탓하면서(특히 콘래드) 자신의 책임을 회피하고 싶은 절박함등을 모두 반영시킨 꿈과도 같은 공간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플레이하는 두바이의 핵심에는 이미 게임 시작 전에 백린탄으로 민간인을 학살해버린 워커 대위의 정신적 트라우마와 죄책감이 있으며,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단지 전쟁이라는 비극 속에서 무너져가는 워커의 내면세계를 숨 죽여 지켜보는 것 밖에 없기 때문이다.
첫번째와 두번째 내러티브가 플레이어와 게임이라는 장르의 관계에 대한 과격한 질문을 던졌다면,
마지막 세번째 네러티브는 온전히 마틴 워커라는 개인의 비극만을 조명한다.
두바이에서 플레이어는 진짜로 마틴 워커의 행동을 바꾸지 못한다. 그는 이미 자신이 벌인 모든 일들을 후회하며 추락한 헬리콥터 옆에서 죽어가고 있으니까 말이다.
대신에 여기서 우리는 마틴 워커라는 한 개인의 정신이 자신의 과거에 짓눌려 비참하게 파멸하고,
결국에는 꿈 속에서 조차도 도망치지 못한 채 죽음을 맞는 것을 숨 죽여서 지켜볼수밖에 없다.
참고)스펙옵스 더 라인의 메인 작가인 월트 윌리암스는 인터뷰에서 직접
" 이 게임의 모든 시퀸스는 마틴 워커 대위가 인트로 씬에서 사망하기 직전의 회상이라 생각하고 썼다."고 밝혔다.
https://www.ign.com/articles/2012/07/20/the-story-secrets-of-spec-ops-the-li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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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가장 먼저 이야기하고 싶은건,
한국인이 이 게임을 완전히 이해하고 공감하기 어려울 수 있다는 것임.
한국인 뿐만 아니라 미국인이 아니라면
거의 대부분에게 해당함.
왜냐?
이 게임은 온전히 미국, 미국인, 미국 사회를 겨냥하고 있는 게임이기 때문.
쉽게 말해 이 게임의 의의는 당시 미국 사회에 대한 비판임.
그래서 그 당시 미국 사회에 대한 이해가 없으면 이 게임을 온전히 이해하고 공감하기는 어려움.
이 게임이 발매된 것은 2012년임.
왜 2012년이라는 날짜를 강조했냐면,
2012년은 이라크에서 완전히 철군한 해이기 때문임.
미군이 이라크에서 철군하기 시작하는게 2011년부터임.
문제는 이라크에서의 철군이 미국 사회에 문제를 하나 일으켰다는거임.
알다시피 아프간 전쟁과 이라크 전쟁은 미국 내에서조차 평가가 좋지 않았던 전쟁임.
다른 나라들로부터는 물론 미국 내에서조차 명분 없는 전쟁이라는 비판을 받고,
결과가 시원한 대승이었냐하면 그것도 아니고.....
이런 사회 분위기 속에서 아프간-이라크로부터 돌아온 참전 군인들은 영 좋지 않은 대우를 받게 됨.
(아프간-이라크전이 세간에서 어떤 평가를 받는 전쟁인지는 다들 알거라 생각함.)
나름대로 조국을 위해 사지로 나가 목숨 걸고 싸웠는데,
고향으로 돌아와보니 정치인들은 티비에서 내가 목숨 걸고 싸웠던 게 다 헛짓이었다는 말만 매일매일 되풀이하고
사회에서도 은근히 사람이나 죽이고 온 놈 취급이고
국가에서는 불명예스러운 전쟁 취급하며 쉬쉬하느라 영웅 대접이라도 제대로 받은 것도 아니고....
이걸 반영하는 지표 중 하나가 바로 미군 자.살률 추이임.
가장 정점을 찍었던게 2012년이지? 2012년이 어떤 해라고? 이라크 전쟁이 끝난 해.
사실 이 문제가 시작된건 아프간-이라크 전쟁보다 더 이전임.
이런 문제가 처음 시작된건 다름 아닌 베트남 전쟁이었음.
미국이 베트남에 패한 이유가 전투에서 패해서가 아니라는건 잘 알거임.
미국이 베트남에 패한 이유는 외교전과 여론전이 밀려서였음.
그 정도로 베트남전에 대한 반대 여론이 미국 내외에서 높았고,
지옥같던 베트남에서 돌아온 군인들에게 돌아온 대접은
'공산주의와 목숨걸고 싸운 영웅'이 아니라
'패잔병' '약소국 괴롭히는 깡패' '민간인 학살이나 하다 돌아온 놈' 같은 비난이었음.
오죽하면 베트남전 참전군인들을 조롱하는 의미로 "baby killer"라는 말까지 생김.
약소국에서 어린애들이나 죽이다 온 놈들이다 이거지.
이 배경에서 나온 영화가 다름아닌 람보 1
레이거노믹스의 영향으로 후속작들이 마초 액션영화로 나오다보니
람보의 이미지도 졸지에 힘만 쎈 마초가 되어버렸지만,
본래 람보 영화는 베트남전 참전 군인 처우 문제을 다룬 진지한 사회 고발 영화였음.
이 영화에서 람보가 마을 사람들에게 받는 대접을 보면 어떤 상황인지 바로 알 수 있을거임.
자유를 위해 목숨걸고 싸우고 돌아왔지만 결국 사회에 적응 못 하는 정신병 환자가 되버렸고
사람들은 그런 자신을 언제 사고칠지 모르는 폭탄으로 취급함.
스펙옵스: 더 라인이 베트남전부터 시작된 이 고질적인 문제를 염두에 두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게임 상의 장치 중 하나가 바로 음악임.
스펙 옵스: 더 라인에 나오는 주요 음악, 노래들 중 상당수가 베트남전 시기의 것들이거든.
대표적으로 게임을 실행하면 바로 나오는
지미 핸드릭스의 미국 국가 기타 솔로곡 처럼 말이지(https://www.youtube.com/watch?v=YMr19qBD8EE)
작중 시간적 배경은 무기로 보나 장구류로 보나
분명 2010년대임에도 불구하고
명백히 의도적으로 시대에 안 맞는 음악을 쓰고 있는거임.
베트남전 이후 라고 해도 반전 주제의 노래가 없는게 아닌데도.
아주 의도적으로 플레이어들에게 베트남전을 상기 시키는거지.
오히려 아프간-이라크 전쟁에 비하면 베트남전 이후는 그나마 나았음.
실패한 전쟁 취급이긴 해도 공산주의와 싸웠다는 명분이라도 내세울 수 있었고
정치권에서도 공화당 매파들을 비롯한 우파들은 지속적으로 베트남전을 옹호했거든.
근데 아프간-이라크 전쟁은 이런 것도 없었음.
명분조차 불확실했던게 팩트고 우파들조차 손절해버렸으니까.
이 전후의 군인 대우는 PTSD 문제에 있어서 굉장히 중요함.
PTSD 치료를 위해 정말 중요한 것 중 하나가
자신의 젊음을 바친 희생이 헛되지 않았다는 것을 자타가 인정 해주는 것임.
이 때문에 2차대전이나 한국전쟁 참전 군인들은 비교적 PTSD를 적게 겪었음.
물론 그들도 온갖 죽을 고비와 끔찍한 경험을 했던건 마찬가지지만
나치 독일, 일본 제국, 북한은 그 때는 물론이고 지금까지도 자타가 공인하는 악의 축이 맞고
그렇다보니 자유를 수호한다는 명분도 명확했고
결과도 어느정도는 성공적이라고 할 수 있었으니까.
우리한테 익숙한 한국전쟁을 예로 들어보면
88올림픽을 보면서 PTSD를 벗어난 참전군인들이 많았다는 이야기가 있음.
내가 희생해서 구한 나라가 발전해서 올림픽까지 개최하는 모습을 보면서
확실한 의미와 보람을 찾았다는거지.
한국전쟁이 미국에서 워낙 관심을 못 받아서 잊혀진 전쟁 소리를 듣지만
거꾸로 생각하면 전쟁 규모에 비해 그만큼 논란거리도 별로 없었다는 얘기이기도 함.
지금도 한국전쟁 참전했다, 북한과 싸웠다고 하면 훌륭한 일을 하셨습니다 소리를 듣고
간혹 한국인이나 한국계 미국인이라도 만난다면 진심 어린 감사도 들을 수 있다는거지.
이 포인트가 PTSD 치료에 있어서 대단히 중요함.
자기가 한 일들이 의미있고 가치있는 일이었다는걸 확인하는거.
하지만 아프간-이라크 전쟁은 전혀 그렇지 않았다는거야.
이 문제가 심각해서 이 때 이후로 지금까지도 미국의 영화나 드라마엔
PTSD에 시달리는 참전 군인이 단골로 등장함.
가령 영국 드라마 셜록에서 왓슨은 아프간 참전 후 PTSD에 시달리는걸로 나오고
마블 드라마 퍼니셔에서 퍼니셔가 이라크전 참전 때의 PTSD에 시달리는 모습은 드라마의 주요 주제와도 밀접함.
스펙 옵스: 더 라인은 그런 시점에서 발매된 게임임.
이 게임의 목적은 아주 단순하고 명확함.
'니가 한 번 전장에 참여한 군인 입장이 되어봐'라는거지.
그렇기에 엄밀히 말하면 이 게임의 장르는 TPS의 형식을 빌린
'참전 군인 시뮬레이터'라고 할 수 있지.
그런 관점에서 보면 이 게임의 여러 특징들이 잘 이해됨.
왜 플레이어에게 선택지가 없는가?
-> 전쟁터에 내몰린 군인에게 선택지 따위는 실제로도 존재하지 않으니까.
왜 시키는대로만 했을 뿐인데 나한테는 비난만 하는건가?
-> 실제 군인들도 전쟁터에서 상부의 명령들을 시행했을 뿐이지만
죄책감과 PTSD는 자기가 떠안아야 하고 사회에서 손가락질 받는 것도 자신이니까.
'참전 군인 시뮬레이터'라는 측면에서, 스펙 옵스: 더 라인은 꽤 정교하고 사실적으로 잘 만들어져 있음.
CIA를 비롯한 "조국"은 군인들에게 제한된 정보만들 제공하고
때로는 심지어 가짜 정보까지 흘리면서 주인공들이 시키는대로 하도록 유도함.
선택지가 없다는 비판을 받지만 상황을 가만히 보면 실제로 상황 자체가 선택지가 별로 없음.
결과를 아는 플레이어 입장에서야 다른 선택지가 있어 보이지만,
실제 전장에서 내가 주인공과 같은 상황이라면 과연 다른 선택지가 없는 상황이 대부분임.
위에서 말한대로 상황은 급박한데 정보는 제한적이거나 심지어 거짓이거든.
플레이어에게 선택지는 하나 밖에 없음. 게임 끄고 더 이상 안 하는거.
근데 플레이어는 돈 주고 물건을 산거지
게임사에 기부를 한것도 아닌데 당연히 그럴 수는 없지?
군인에게도 전장을 떠난다는 선택지는 있어보이지만 사실은 불가능한 허상임.
전쟁터에서 군인이 '난 더 이상 못 하겠으니 집에 돌아갈래요!'하면 순순히 갈 수 있을거라 생각함?
군인으로서의 불명예, 전우들에 대한 미안함과 죄책감,
가족들을 부양할 생계 수단의 단절 등등 걸려 있는게 너무 많기도 하고.
실제로 육군, 해병대로 입대하는 젊은이들 대부분이
굶어죽기 싫어서, 먹고 살려고
어쩔 수 없이 입대하는 저소득층 출신이고
아무런 기술도 없이 몸뚱아리만 온 이들에게
군에서 줄 수 있는 건 전장에서 죽어나가는 보병 주특기 뿐임
선택지 같은 건 처음부터 존재조차도 하지 않은거지
엔딩까지 보고 난 플레이어들을
좇같은 기분을 느끼게 해주는 그 요소.
이걸 플레이어 개인에 대한 게임 제작사의 무작정적인 비난으로 생각하면
충분히 불쾌하거나 어이없을 수 있음.
"아니, 선택지도 없이 시키는대로 안 하면 게임 진행 자체가 안 되게 해 놓고,
시키는대로 했더니 나를 무슨 개쓰레기 보듯이 취급하네?
그럴거면 선택지라도 주든지 존나 어이가 없네 진짜..;;"
평범한 사람이라면 당연히 나올 수 밖에 없는 반응임.
하지만 저 문구들은 플레이어 개인에게 날리는 제작사의 일침 같은 단순한 게 아님.
저건 PTSD에 시달리는 군인들을 괴롭히는 죄책감을 형상화한 것인 동시에,
당시 미국 사회가 사지를 뚫고 돌아온 참전 군인들에게 암암리에 보내던 메시지임.
"부시 정부의 명분 없는, 부당한 전쟁에 부역하다 온 살인자들.
석유 이권 둘러싼 더러운 전쟁에 이용이나 당하고 돌아온 멍청이들.
멍청하게 거짓 정보에 휘둘려서 무고한 사람들이나 죽이고 온 주제에 훈장? 전쟁영웅?
불쌍한 중동 사람들 삶의 터전 다 뒤집어 엎고 돌아오니 좋냐?
참전 군인들 처우가 불만이라고? 너희가 무슨 영웅이라도 된 것 같냐?"
아프간-이라크 전쟁 이후 미군 자.살률이 치솟았던게 괜히 그랬던게 아님.
제도적으로야 우리나라가 배워야할 만큼 군인 처우가 잘 되어 있는 편인게 미국이기도 하지만
제도와는 별개로 사회 분위기 상은 참전 군인들 대우가 형편없었던게 미국인 것도 사실임.
한 마디로 스펙 옵스: 더 라인 제작진이 게임을 통해 말하고 있는 바는 이것임.
참전 군인들에게 무작정 비난만 하는 것이 과연 옳은 것일까?
그들이 과연 '선택지가 있는 상태에서, 본인의 결정으로, 스스로 원해서 사람들 죽이다 온' 사람들일까?
실제 전쟁터가 흔히 FPS나 액션 게임에서 묘사되는 것 같은 그런 영웅놀이의 현장일까?
참전 군인들의 모습이 과연 불쌍한 시민들을 향해 기관총을 갈기면서 "히히히 나는 영웅이다 악당들 다 죽어" 같은 걸까?
괜히 스펙 옵스: 더 라인이 평단에 엄청난 호평을 받고 평점도 높은게 아님.
당시 미국의 상황에서는 정말 사회 전반에 날리는 통렬한 일침이었고,
굉장히 시의적절한 사회 고발적 내용이었던거지.
즉, 이 게임의 내용을 '참전 군인 시뮬레이터'라는 관점으로 이해하면
모든 메시지가 명확해진다는거지.
실제 군인들의 입장을 이해하게 해주고,
진짜로 비난 받아야 할 사람이 누구인가를 이야기하면서,
동시에 아무런 명분도 없는 전쟁이 얼마나 좇같은 것인지를 굉장히 효과적이고 현실적으로 전달함.
게임성 자체에는 문제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서사성 하나만으로 그런 고평가를 받는 건 다 이유가 있는거임.
그렇다고 스펙옵스: 더 라인이라고 아무 논란거리 없는 뺴박 갓-겜이다!라는걸 말하고자 하는건 아님.
일단 게임성 자체는 솔직히 좀 지루하고 시시한 부분이 있는 것도 엄연히 사실이기도 하고,
"참전 군인 시뮬레이터"라는 점에서도
"아니 나는 나쁜놈들 다 부시고 다니는 FPS게임 하고 싶었는데
왜 나한테 아무런 언질도 없이 우울증 유발하게 하는 참전 군인 시뮬레이터를 시킴? 이거 완전 소비자 우롱 아님?"
라고 해도 소비자 입장에선 기분 나쁜 부분이 충분히 있을 수 있는 것도 사실임.
하지만 그럼에도 스펙옵스: 더 라인이 지금 논란이 되는 라오어2와는 넘사벽 수준일 수 밖에 없는게
상술한 바와 같은 시의적절함임.
적어도 당시 미국 사회에서는 이게 진짜 중요한 사회 문제였단 말이야.
아무 생각 없는 사람한테 갑툭튀로 뜬금없이 "갈등은 나빠! 전쟁은 나빠!
이런 싸움은 모 야메룽다!" 같은
되도않은 개똥철학을 주입하려고 이런 게임을 만든 건 아니라는거지.
참전 군인 문제가 진짜 심각한 사회 문제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이 여기에 큰 관심을 가지고 있지 않을 때,
우리 이 문제에 대해 한 번 생각해보자, 하면서 나온게 스펙옵스: 더 라인이라는 게임임.
그래서 이 게임에서 적어도 스토리와 그 안에 담긴 메시지만큼은 무시할 수 없다는거임.
당장 플레이어들이 스펙옵스: 더 라인을 하고는 기분이 상했다 해도,
다음날 마트 가는 길에 참전군인을 봤을 때, 그리고 그 참전군인을 사람 죽이고 온 살인자 취급하는 누군가를 봤을 때,
게임을 플레이하면서 느꼈던 그 억울함을 떠올리고,
그 참전군인이 사람 죽이면서 영웅놀이하다 온 놈이 아니라
그저 제한된 정보 안에서 선택지 없이 전장에 내몰려 고통받는 한 인간임을 생각할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스펙옵스: 더 라인은 충분히 의미 있는 게임이었다 할 수 있는거지.
뭐 그렇다고 해도 "스펙옵스: 더 라인"이 "게임" 으로서 훌륭했냐는 질문은
또 별개의 문제니까 결국 혹평하는 사람이 있어도 어쩔 수 없는 문제겠지만.
아무튼 이 "시의적절함"은 강렬한 메시지를 포인트로 삼는 서사물에서는 굉장히 중요한 포인트임.
사회에 대한 통렬한 일침과 그냥 단순한 쿨병 일침놀이를 가르는 기준이기도 하지.
스팩옵스: 더 라인이 뜬금없이 갑툭튀해서 "여러분 전쟁은 이렇게 나쁜거예요~" 하는
등따시게 사는 놈들의 히피 꽃노래 취급을 받지 않았던 것도
그 메시지가 적어도 당시 미국 사회에서는 굉장히 중요하고 심각한 문제를 적절하게 꼬집었기 때문임.
스펙옵스: 더 라인이 무슨 우주명작 갓-겜 같은건 아니지만
적어도 이 게임이 라오어2 따위랑 비교 당할 개똥철학, 쿨병, 일침병 게임은 아니라는 걸
이 글을 통해서라도 조금이나마 알아줬으면 좋겠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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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당히 과격한 메세지성과 네러티브로 호불호가 극렬하게 갈렸지만 라오어2사태를 기점으로 재평가받는 작품
좋은 의미로든 나쁜 의미로든 메시지를 심어주는데에 성공했으면 제몫은 한거지...
좋은 의미로든 나쁜 의미로든 메시지를 심어주는데에 성공했으면 제몫은 한거지...
상당히 과격한 메세지성과 네러티브로 호불호가 극렬하게 갈렸지만 라오어2사태를 기점으로 재평가받는 작품
매체로서의 게임으로선 훌륭했지만 게임으로서의 게임엔 충실하지 못했군
잘 읽었음.
긴 글인데도 블랙홀처럼 잘 끌리게 잘 썼네
근데 로딩메시지를 주인공한테 대입하는건 동의 못하겠음. 로딩메시지는 처음부터 끝까지 플레이어한테직접 말하고 있는데 저거 하나만 주인공한테 하는 말이라고 해석하기는 좀 무리가 있지. 이 로딩 메시지 조차 초반에는 일반적인 로딩메시지 처럼 팁인거 처럼 위장하고 있다가 플레이어를 까는 역할을 하고 있음 이 트라우마 시뮬레이터를 끌수 있는건 유저라는것 => 전쟁은 결국 많은 사람이 관심을 가지고 막아야 한다고 해석할수도 있지
전에 읽어봤던거지만 다시 읽을 가치가 있었다
전체적인 게임성이 그리 좋지 못함에도 불구하고 네러티브 만으로 이 분야 탑티어인 토먼트나 바이오쇼크와 나란히 언급되는 경지에 간 작품이라고 하니까...
찐한 분석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