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전쟁당시 합중국(USA)과 연합국(CSA)의 차이를 보면
인구: 합중국 - 약 2천 2백만
연합국 - 약 910만이지만 이중 노예가 350만
병력 연인원: 합중국 - 2백 20만
연합국 - 최대 100만
운용했던 최다 병력: 합중국 - 70만
연합국 - 36만
북쪽에 있는 철도는 남쪽에 부설된 철도보다 2배 이상 길었고
(21,800 마일 vs. 8,800 마일)
공업 생산력은 9배 차이났다.
어떻게 보면 시작부터 굉장히 불리했던 셈.
그렇지만 연합국의 대통령이었던 제퍼슨 데이비스는
스스로 수도를 워싱턴 D.C.에서 고작 160km 정도밖에 안떨어진 리치몬드로 옮겼고
덕분에(?) 포토멕군은 보급을 하기 더 쉬워졌다고 한다.
여러가지로 의미가 많은 전쟁임 일단 현대적인 총력전의 형태를 처음으로 갖춘 전쟁이었고 정형화된 참호의 개념이 처음 도입된 전쟁이었고 단순히 전쟁의 승패가 전장에서만 결정되는 것이 아니란 걸 보여준 정쟁이기도 함 참고로 전쟁 중 수많은 유럽군관들이 와서 참관을 했지만... 아무도 남북군 누구도 요새화 혹은 정형화된 참호를 제대로 뚫어내지 못했단 사실을 간과함. 그 뒤가 1차 세계대전의 비극
애초에 미국인을 앝잡아봤던 유럽인들이라 제대로 교훈을 얻을 생각이 있었을지도 의문이었지만... 가장 아이러니한 점은 미국도 1차대전에 참가할때 기병과 보병의 조합으로 참호를 돌파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 것이지만.
이미 50년 전에 실패한 걸 무슨 재주로... 거기다 1차대전때 참호는 남북전쟁때랑 비교도 안되는데...
의외로(?) 미국인은 자신들에 대한 자부심이 강해서 적당히 유럽의 상황을 보고서 전차, 보병, 기병의 조화로 교착된 전선을 돌파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던 모양. 물론 보병의 부족한 기동성을 보완하자는 아이디어는 나쁜 점은 아니였지만 아직 자신들이 과거 남북전쟁때 이후 크게 달라진 것이 없다는 것을 뼈져리게 깨닫게 되었다는 또다름 비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