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리장성은 산해관 까지다. 이 후 고구려땅 일대에 두려움을 느낀 명나라 영락제는 만리장성을 30년 동안 더 늘려 갔다고 한다.
원래 이부분에서 끝나고 그 반대 영토는 한반도 영토 였는데 계속 역사 왜곡을 해옴
호태왕비는 일제가 지금의 자리로 옮겨 놓은 것입니다. 원래는 황하 이북에 있었던 것으로 추정됩니다. 우리는 일본이 역사
왜곡을 많이 했다고 알고 있지만, 진짜 본격적인 역사왜곡은 명나라와 사대조선이 했습니다. 명나라는 중국 쪽에서
구-신당서, 삼국지, 자치통감, 요사, 원사, 금사 등 그 이전 시기의 모든 사서를 다 다시 썼습니다. 그러면서 조선으로
하여금 고려사와 삼국사를 다시 쓰게 만들었죠. 지금 우리가 보는 고려사는 열 번이 넘게 고쳐 써서, 쓸 때마다 그걸
연경으로 들고 가서 검수를 받고 또 다시 고쳐 쓴 결과입니다. 삼국사도 대폭 축소 왜곡해서 삼국사기를 만들었고, 아예
새로 삼국유사 같은 것도 만든 것입니다. 이런 책에 진실이 있을 리가 없습니다. 명나라가
한 일은 역사 왜곡이 전부가 아닙니다. 지명도 이동했죠. 태산, 갈석산, 패수, 탁군, 연경 같은 주요 역사 지명들을
대대적으로 옮겼고, 각 성의 경계도 모두 바꿨습니다. 예를 들어 탁군이라는 곳은 삼국지의 유비의 고향으로서, 삼국지연의를
보면 서두에서 유비가 황하변에서 무역선을 기다리는 장면으로 시작합니다. 즉 탁군이란 황하변에 있는 지명인 것이죠. 그런데
지금 탁군을 지도에서 찾아보면 북경 인근에 있습니다. 그리고 거긴 황하가 흐른 적이 없죠. 한편 관우의 고향은
운성시로서, 역시 황하의 북변에 있습니다. 탁군이 북경 인근이라면, 이 둘은 서로 만나서 의형제를 맺을 수가 없었겠죠.
천km 이상 떨어져 있는 사람과 만나서 의형제를 맺을 리는 없으니까요. 고려말의
충신이자 문인인 이제현의 시 중에 "탁군"이라는 것이 있는데, 이 시에는 탁군이 황하와 태행산 사이에 있다고 적시되어
있습니다. 태행산은 황하 북변에 있는 산이며, 청나라에서 편찬한 역사지도인 대청광여도에 분명한 위치가 표시되어 있습니다.
그렇다면 탁군의 위치는 그 산과 황하 사이의 땅이 확실한 것이죠. 탁군의
위치가 중요한 이유는 바로 이 곳이 치우천황과 황제가 쟁패했던 곳이자, 수나라가 고구려를 침공할 때 백만 대군을
최종적으로 집결시켰던(즉 수나라와 고구려의 경계) 곳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탁군 바로 인근에 있는 패수는 한나라(한무제
당시)와 고조선의 경계였고, 고구려와 수나라의 경계였으며, 이후 신라와 고구려 또 신라와 발해의 경계였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것이 바로 낙양에서 황하 바로 건너편 인근이라는 것이죠. 그렇다면 이것은 고구려와 발해 신라가 모두 대륙을
차지하고 있었다는 증거가 아닙니까? 나는 지금 만주나 현재의 하북성 같은 곳을 말하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지금
이 영상에서는 중국이 발해의 수도를 길림성 모처에서 발견했다는 것을 다루고 있지만, 발해가 세워진 동모산도 거기일 리가
없습니다. 대청광여도를 보면 운성시 조금 위에 있는 현 임분시가 평양이라고 되어 있고, 거기가 고구려가 망한 곳입니다.
고구려가 망한 직후 대조영의 부친인 클클중상(乞乞중상, 大중상은 우리말 클클 중상의 한자 표기입니다)이 태산(산동성의
태산이 아니라 산서성의 곽태산으로, 이 곳이 옛 밝달의 황제들이 봉선의식을 행하던 곳입니다)의 뒷편에서 전열을 정비하여
나라를 세웠다고 했으므로 그 쪽 인근이 발해의 건국처가 되는 것이죠. 모두 황하 이북 산서성에서 일어난
일입니다. 지금도
산서성에 가면 기념품점에서 삼족오를 판다고 하죠. 그 사람들은 그게 뭔지 모릅니다. 다만 조상 대대로 만들어오던 것을
계속 만들고 있을 뿐이죠. 바로 그 지역이 고조선과 고구려가 있던 곳이라는 것은 까맣게 모르는 채 말입니다. 역사를
왜곡하고 지명까지 이동시킨 영락제는 이곳 사람들을 특히 두려워 하여, 산서성 사람들을 전국 각지로 흩어 놓았습니다. 그
사람들이 고향을 떠나면서 불렀던 "늙은 느티나무"라는 노래는 아직도 전해지고 있죠. (늙은 느티나무는 장수대제의
별명이기도 합니다) 고구려의 정기를 끊어놓기 위해 그렇게 애를 썼음에도, 군국주의 일본이 중국을 침공했을 당시 산서성
사람들은 변변치 못한 무기를 가지고도 매우 용맹스럽게 항전하여, 일제의 간담을 서늘하게 만들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이
지역에서는 단 한 사람의 부역자도 나오지 않았다고 하구요. 고구려의 기상은 여전히 살아있는 것입니다. 명나라와
조선의 경계는, 다름아닌 만리장성입니다. 명나라 때 그 성을 쌓았던 것이 확실하고, 그 곳이 두 세력의 경계였던 것은 그
때 뿐이니까 그렇게 확신할 수 있는 것입니다. 진시황의 만리장성은 황하 북변에 있고, 현 만리장성은 우리 민족의 원수인
영락제가 30년 걸려 쌓은 것이죠. 그는 조선을 대륙에서 몰아내고 대륙을 차지했음에도 조선을 너무나도 두려워하여, 이렇게
엄청난 성을 쌓게 되었던 것입니다. 조선이 대륙을 잃어버린 계기는 왕자의 난 때문인 걸로 판단됩니다. 왕자의 난은
조선왕조실록에 나오는 것처럼 몽둥이 들고 몇 십 명이 일으킨 궁정 쿠테타가 아니라(그런 것은 亂이라고 하지 않습니다),
수 십만 대군을 동원하여 벌인 엄청난 규모의 전쟁이었던 겁니다. 그리고 이 전쟁에 명나라 건국세력을 끌어들인 이방원이
그들에게 뒤통수를 맞아 결국 그 넓은 땅을 다 잃어버리게 되었던 것이죠. 당연히 이성계는 그런 아들을 용서할 수 없었고,
그래서 이성계가 이방원에게 화살을 쏘았는데 차마 얼굴을 맞추지는 못하고 바로 얼굴을 스치고 지나갔다는 얘기나, 이방원이
이성계를 모셔오려고 함흥에 계속 사자를 보내도 이성계는 사자를 모두 죽이고 결코 한양에 가지 않았다는 얘기들이 남아있는
것이죠. 물론 여기서 말하는 함흥은 함경도가 아니라 만리장성 이북을 말하는 것입니다. 훗날
장성 이북의 여진족이 강성해져서 청나라를 세우고 이들이 다시 대륙의 주인이 되면서 조선과 청나라의 경계가 모호해졌고, 그
때 압록강과 토문강을 경계로 한다는 협약이 맺어진 걸로 보시면 되겠습니다. 각설하고,
우리의 땅은 기껏 동북삼성까지가 아닙니다. 한족들은 겨우 섬서성 정도나 차지하고 있던 불한당(이 말에 왜 漢이라는 글자가
들어가는지 생각해 보십시오)같은 놈들이고, 대륙은 고구려 백제 신라와 후일 고려가 다스리던 땅인 것입니다. 마치 국민당
정권이 대륙을 다 잃어버리고 대만섬으로 들어갔듯이, 우리도 그 넓은 땅을 다 잃고 원시림이었던 이 반도로 기어들어오게
됐던 것이죠. 이 땅에는 고구려 백제 신라, 고려의 성이나 궁궐이 단 하나도 발견된 바 없습니다. 있다면 일본과 친일
사학자들이 만들어놓은 것들이 있겠죠. 석굴암도, 불국사도, 무녕왕릉도, 다 이 나라들이 원래 한반도에 있었던 것처럼
보이게 하기 위해 조작해 놓은 가짜 유적(역사 테마 파크?)에 불과합니다. (그렇지 않다면 무녕왕릉에 들어있던 관의
목재는 왜 일본산 금송이겠습니까?) 역사 왜곡은 명나라와 사대조선이 했지만, 그 역사 왜곡이 진짜인것처럼 보이게 만든
것은 일제와 친일 사학자들인 것입니다. 조선이
이 땅에 들어올 때 수 많은 관료와 수 십 만의 군인들이 함께 들어왔기 때문에, 한국인은 그 어떤 나라 사람들보다 머리도
좋고 체력도 뛰어납니다. 그리고 다른 어떤 나라도 따라올 수 없는 전투민족이기도 하구요. 지능과 체력과 성향은 유전되는
것이기 때문에, 지극히 당연한 결과인 것입니다. 우리는
서쪽의 도적놈들이 훔쳐간 우리의 땅과 역사를 반드시 되찾아야 합니다. 중국이라는 이름도 명나라때 처음 쓰기 시작한
것으로, 가당치 않은 표현입니다. 서쪽의 도적때가 무슨 세상의 중심이라고 감히 중국을 참칭하는 것입니까? 역사를
잃어버린 민족은 미래도 잃어버린 것입니다. 역사만 바로 세운다면 우리는 반드시 과거의 영광을 되찾을 수
있습니다. 우리가
원래 대륙의 주인이었기 때문입니다.
기승전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