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달 전 쯤에 들었는데 인터넷엔 처음 써봄. 부모님 사정때문에 내 유년기는 거의 대부분 할머니와 보냈었고 병으로 인해서 현부심을 받았을 때
본인도 아프시면서 3년 넘게 날 챙겨주시기도 했음. 고3 때 부모님이 이혼했을 때도 가끔씩 와서 주무시고 가셨지. 그런데 1년 전 쯤에 신경성
관절염 이런 게 있다고 해서 고모가 마련한 전세집으로 이사를 가심. 왜냐하면 나는 아무 능력도 없고 아버지도 할머니를 모시기가 벅찼거든.
그 때부터 파키슨 병으로 의심되는 증상은 있었어. 자주 까먹는 거라던가 손을 떠신다던가 하는 거. 아버지는 검사를 해보려다가 그 당시에 돈이
없어서 결국 검사를 미뤘는데, 그 당시에 했으면 미연에 방지 할 수 있었을 거라고 후회하시더라. 고모가 챙겨주시면서 나아졌다고 하는데 그게
걱정끼치기 싫어서 거짓말을 하는 건지 아니면 정말로 우리와 살 때보다 괜찮으신 건지 얼굴을 못 봐서 모르겠어.
우리 할머니는 그다지 이타적인 사람이 아니야. 착한 사람도 아니지. 그런데 난 22살까지 그런 착각을 했어. 어릴 때 내 가슴 속에 새겨진 할머니는
강인한 어머니이자 교회 사람들과의 교우도 좋은 대단한 사람이었거든. 하지만 머리가 크고 나서 같이 생활해보니 그렇지 않더라. 우리 할머니는
이타적인 게 아니었어. 단지 가족에게 지나칠 정도로, 집착스러울 정도로 헌신할 뿐이었지. 가족에게 너무 신경을 쓰느라 우리 아버지가 과거에
일으켰던 사건사고들을 집까지 팔아가며 덮어준 것이고, 삼촌과 고모를 필사적으로 지원해준 것이며, 나를 키우는 것조차 힘들어 했던 아버지를
도와준 것이었지. 그 이타심 속엔 내가 없더라. 파키슨병 초기라 해도 마지막으로 같이 살았던 당시의 할머니는 멀쩡한 편이셨으니 확신할 수 있어.
아, 할머니에게 있어서 나는 아버지의 부속물같은 거구나. 만약 아버지의 자식이 아니었다면 할머니는 나를 도와주지 않았을 것이다. 라는 거를 말이야.
실제로 할머니가 마지막으로 해주셨던 옛날 이야기 중, 가장 충격적이었던 건 아버지가 알고보니 대학 시절 속도위반을 했었고 아이를 불법낙태했단 거야.
난 생전 처음 들어 보는 사실에 분개하며 낙태에 대해 따졌지만 할머니의 반응은 소름끼쳤어. '그게 왜? 어차피 남인데 니가 왜 신경쓰냐.' 이건 분명히
세대차이기도 할 거야. 태어나기 전의 아이는 생명이라고 생각하지 않거나 사고를 쳤을 때의 낙태는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하는 어른들도 많으니까.
하지만 그것, 가족과 남이라고 하는 경계선을 칼같이 그어놓고 웃어보이는 할머니의 얼굴은 예전처럼 느껴지지 않았어.
그렇기에 병이 있다는 소식을 듣고 나서 난 슬픈 감정보다 허무한 감정이 먼저 들었지. 슬퍼해야 하는 건가? 걱정해야 하는 건가.
일단 아버지와 얘기를 해보기도 하고 어머니랑도 얘기를 했지. 어머니는 할머니를 싫어하시기 때문에 참 건성으로 대답하시더라.
근데 엄마의 이런 점이 옛날 같았으면 정말 화가 났는데, 지금은 화가 나질 않더라. 난 언제까지고 할머니의 편일 거라고 생각했는데.
할머니가 아버지, 고모, 삼촌을 위해 희생하고 모든 사고들을 수습한 걸 생각하면 한명이라도 더 많이 할머니의 편이 되어야 하는데.
낙태에 대한 할머니의 생각을 듣고 나서부터는, 할머니가 파키슨 병을 앓았다는 좋지 않은 소식을 듣게 되어도 예전만큼 슬프지가 않았어.
그리고 그렇게 느끼는 자신에게 혐오감을 느껴야 할 지 조차 구분이 안 가. 할머니가 돌아가시면 나는 어떤 반응을 할까? 난 정말 모르겠어.
모든 사람한테 착한 사람은 등신이라고 한다. 솔직히 난 너희 할머니쪽에 한표 던지고 싶은데
낙태가 옳은 건 아니지만 살다보면 옳지 않아도 해야될 때가 있다고 생각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