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5때 잃어버린 형제를 찾는 두 사람.
화면으로 서로 얼굴 마주하며 확인
서로 말하는거 확인해보니 어릴적 기억이 맞음.
두 사람은 평생의 한을 풀게 되는데
이렇게 평생의 한을 풀게 된 배경에는 극적인 사연이 있음.
서울에 장모가 계시는데 마침 장모의 생신이 이 무렵이였음.
경제활동 때문에 동생은 부산을 떠날 수 없어
어쩔 수 없이 아내와 아들만 서울로 올려보내 장모님 생신을 같이 보내게 하려고 했음
아내와 아들이 여의도 광장을 지나던 도중
아들이 자신의 아빠를 찾고 있는 아빠 이름이 적힌 이산가족 벽보를 발견!!!
아나운서가 상황 정리.
마침 아내도 남편의 사연을 알고 있었기에 벽보에 붙은 전화번호 등을 가지고 KBS로 들어가 상봉신청을 함.
이렇게 아들의 우연치않게 본 아버지의 이름 덕분에
아버지는 평생의 한을 풀게 됨
생각하는거 하고 다름 저때 이산가족은 남한사람끼리 한거임
너는 마음이 대머리구나
남한 안에서도 난리통에 피난길에 다른 방향으로 찢어졌다 평생 못만나게 된 가족이 엄청 많았음.
알면 됐어
이산가족 상봉은 서로 살아있는걸 확인만하고 다시 헤어져야 하는게 진짜 더 슬프더라;
그래도 헤어진 경우가 더 많은건 맞지만
전국민 호적등본도 불확실할때
저 시절은 지금하고 달라서 전쟁통에 뿔뿔이 흩어지면 연락할 방법이 없었진다더라...
이산가족을 찾습니다. 재밌다. 보면 경이로울 정도여... 어케 이 쥐똥만한 크기의 나라에 이산가족이 생길 수가 있나 하면서 김일성이를 욕하게 되지.
'어... 아빠 이름 본 게 단데, 테레비에 나온다'
이산가족 상봉은 서로 살아있는걸 확인만하고 다시 헤어져야 하는게 진짜 더 슬프더라;
뭐 임마?
생각하는거 하고 다름 저때 이산가족은 남한사람끼리 한거임
izuminoa
그래도 헤어진 경우가 더 많은건 맞지만
어?..;;;;;
뭐 임마?
전국민 호적등본도 불확실할때
뭐 임마?
남한 안에서도 난리통에 피난길에 다른 방향으로 찢어졌다 평생 못만나게 된 가족이 엄청 많았음.
남북 이산가족 상봉이 있고, 피난길에 흩어진 이산가족 상봉이 있어. 누가 이사람을 모르시나요도 남쪽 이산가족 방송이었던걸로 기억해.
뭐 임마?
저 시절은 지금하고 달라서 전쟁통에 뿔뿔이 흩어지면 연락할 방법이 없었진다더라...
단순히 625전쟁만이 아니라 일제시대+2차대전+625 까지 1940~1955 까지 멀쩡하질 않아서
뭐 저 방송을 실시간으로 본 사람 나이대를 생각하면 당연한 반응이긴 하지... 1983년 6월 30일 ~ 1983년 11월 14일 까지 했었던 오래전 방송이니까. 나도 짤과 유툽으로만 봤었으니...
나 한 쪽만 대머리라는게 머릿속에 맴도는데 얼마나 쓰레기임?
Haepou
너는 마음이 대머리구나
Haepou
알면 됐어
당신은 마음씨가 대머리에요짤
부처님 눈엔 부처님만 보인데요
거기서 이런 댓글이 왜 튀어나오는거야 홍수가 터져도 대머리거릴래
쓰레기라는걸 아니깐 개선의 여지가 있어. 공자님도 길 가운데 똥싸는 놈은 냅두고 길가에 똥싸는 사람은 혼내라고 하셨어.
이산가족을 찾습니다. 재밌다. 보면 경이로울 정도여... 어케 이 쥐똥만한 크기의 나라에 이산가족이 생길 수가 있나 하면서 김일성이를 욕하게 되지.
70년대에 전국민 주민등록을 시키고도 저걸 80년도에 생각했다는게 지금 생각하면 이해 안가는 일이긴 하긴함 어떤 의미론 지금이 그만큼 세상이 빠른거기도 하고
어느정도 주변을 돌아볼수 있는 경제 요건이 되어서지 않을까요? 70년대부터에서야 경제 성장 지표가 눈에 띄게 변하니까 80년대에서야 뭔가 다른걸 생각할 여유가 생겼지 싶습니다.
아, 적다 생각났는데 TV보급률이 가장 큰 요인이었을겁니다. 찾아보니 1970년, 쇠고기 한근이 450원이던 시절에 TV의 가격은 약 92,000원 이라고 검색되네요.
근데 얼굴만 봐도 닮은게 형제는 형제다
와중에 아들은 쭉 어안이 벙벙한 표정이라서 왠지 웃김 ㅋㅋㅋㅋ
[이미강등된회원입니다]
'어... 아빠 이름 본 게 단데, 테레비에 나온다'
단순히 남북 이산가족이 아니더라도... 그 난리통에 고아가 된다거나 이런 사례도 많았다고 하니
이산가족찾기 프로그램인데 역사상 최고의 방송이벤트로 평가 받았음. 심지어 유네스코에도 등록됨 처음에는 3시간만 생방송을 할려고 했는데 사람들이 몰려들어서 몇달동안 정규방송 취소하고 생방송을 함. 방송만 나오면 온 국민이 울었고 시청률도 70%도 넘음. 전세계로 방영도 됨
http://world.kbs.co.kr/special/dispersed_families/page/introduce.htm?lang=k 잘 몰랐는데 찾아보니까 굉장히 많이 상봉했군요... 총 100,952건의 이산가족이 신청하고 53,536건이 방송에 소개 1983년 11월 14일 새벽까지 총 10,189명의 이산가족이 상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