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합해보면, 조선은 숭유억불의 기치를 내걸고 유교를 숭상하고 불교를 탄압하는 걸 기치로 내걸고 건국한 나라였고, 그게 건국 이념이었음.
하지만 창업 군주인 태조 이성계부터가 무학대사에게 대사라고 칭해줄 정도로 독실한 불교 신자이기도 해서 초장부터 어긋났지.
실제로 신료들이 불교를 계속해서 탄압해야 한다고 조선시대 내내 상소를 올린 것은 이루 말할 수 없이 많았음에도 거기에 제동을 많이
건 것은 조선 왕실이기도 했기에, 아이러니하게도 조선은 숭유억불을 기치로 내건 국가임에도 왕실 덕분에 그나마 명맥을 유지할 수 있었음.
몇몇 사찰에서 조선 왕실과 관련된 유물이 발견되거나 출토되고, 거기에 한 술 더 떠서 수양대군이 직접 사찰을 지어준 경우도 있었다고 하니
유교의 불교 탄압을 막은 조선 왕실의 왕권이 결코 약하지는 않았다는 방증이지. 조선 왕실에서도 필요에 따라서 불교를 이용했었고.
물론 그렇게 비호해줬음에도 불교는 결국 신라와 고려 시대 때의 전성기와 위세를 결코 회복하지 못했으니 조선은 숭유억불 국가는 맞았음.
고려때 너무 해쳐먹어서...
불교 절들이 치던 개판을 유교 서원이 똑같이 물려받더라;; 결국 인간이 문제다
그러기에는 지들이 지은 죄가 많아서지..
지금도 종교로 마음의 위안을 얻는데 그때면 말할것도 없지머 그래도 고려때 워낙 해쳐먹었으니 산으로 쫓겨나는거까진 다들 그러려니 했을테고
왕실에서 비호해주는곳 빼곤 일부 절들은 유생들이 땅밟기 시전하면서 테러하기도 했음.
조선은 적당한 구실과 명분이 생겨 사찰을 해체한다는 소식이 들리면, 인부들이 오기 전에 지역 유생들이 먼저 연장을 들고 솔선수범 함. 즉, 저런 일이 실제 궁중에서 벌어지면 문무백관들이 "핫하~!!!" 하면서 "내가, 내가 조질꺼야 헑헑" 하면서 축제의 장이 열렸을 것... 사실 신미대사도 세조 치세에 불경을 한글로 번역하는 등 민초들에게 훈민정음을 보급하기 위해 노력을 한 훌륭한 인물인데, 후세의 머나먼 조계종 후배들의 삿된 욕심으로 욕만 바가지로 먹는 땡중이 되어버림.
???:왕이면 왕답게 똑바로 하란말입니다
그러니깐 지 조카도 무참히 내쳤지. 지 꼴리는대로살았으니깐!
"부처극락 불신지옥!!!"
사찰 땅 몰수하고 자기 정치 세력 기반인 사대부에게 줄라고 한 슬로건이라던데 그래서 사찰들 다 산으로 갔다고 하고
고려때 너무 해쳐먹어서...
헌돈이 나라말아먹을만큼 했지
사찰 땅 몰수하고 자기 정치 세력 기반인 사대부에게 줄라고 한 슬로건이라던데 그래서 사찰들 다 산으로 갔다고 하고
왕실에서 비호해주는곳 빼곤 일부 절들은 유생들이 땅밟기 시전하면서 테러하기도 했음.
유교-탈레반: 햣하!!! 파괴와 약탈과 학대다-앗!!!
두부 내놔! ㅋㅋㅋ 연포탕! 연포탕을 먹자 헑헑
하지만 그 선비가 다시는 그 절에 가는 일은 없었다.
숭유억불이네
뭔 큰 공사 있다치면 스님들 징용 끌려가고 종이, 두부 같은 특산물(?) 납부도 해야하고 툭하면 한량들 와서 어이 중놈아 우리 경치구경하고 시읊으면서 놀테니까 얼른 요리 한상 내오너라 시전 거기에 가끔 땅밟기나 교리배틀 같은 시비도 걸리고 이래서 되려 조선총독부가 불교에 더 우호적이었다는 말까지 나왔고, 단편소설 사하촌에 나온 땡중들 같이 친일하면서 재산불리기에만 몰두한 타락한 중들도 나옴
그러기에는 지들이 지은 죄가 많아서지..
???:왕이면 왕답게 똑바로 하란말입니다
???:땡중새끼가??
머?
안선생님 시인이되고싶어요
조선은 적당한 구실과 명분이 생겨 사찰을 해체한다는 소식이 들리면, 인부들이 오기 전에 지역 유생들이 먼저 연장을 들고 솔선수범 함. 즉, 저런 일이 실제 궁중에서 벌어지면 문무백관들이 "핫하~!!!" 하면서 "내가, 내가 조질꺼야 헑헑" 하면서 축제의 장이 열렸을 것... 사실 신미대사도 세조 치세에 불경을 한글로 번역하는 등 민초들에게 훈민정음을 보급하기 위해 노력을 한 훌륭한 인물인데, 후세의 머나먼 조계종 후배들의 삿된 욕심으로 욕만 바가지로 먹는 땡중이 되어버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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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미대사가?
지금도 종교로 마음의 위안을 얻는데 그때면 말할것도 없지머 그래도 고려때 워낙 해쳐먹었으니 산으로 쫓겨나는거까진 다들 그러려니 했을테고
산으로 쫓겨나난게 아니라 산말고는 유생들이 다 불태워서…
그때는 종교가 마음의 위안 수준이 아니라 세계관 그 자체였을테니
수양대군의 경우는 왕자시절부터 나 불교신자요 떵떵거리고 다닌 좀 특이케이스임. 말기의 세종이라던지 불교 믿은 왕은 간혹 있지만 그사람들도 숭유억불 자체를 무시하진 않았는데 수양은 걍 무시함.
서유혼
그러니깐 지 조카도 무참히 내쳤지. 지 꼴리는대로살았으니깐!
방원이네 장남 : 아버님도 장남만이 답은 아니라고 하셨잖습니까? 제가 보니 우리 조카도 그렇습니다 ㅋㅋ
진짜 목 따고싶다...
뭐든 고이면 썩음.
사실 우리나라 불교는 도교+토속신앙까지 믹스된 무언가라서 민생과 떼놓을수 없는 상황이긴 함 ㅎㅎ 스님이 풍수지리보고 구마의식도 하니까...
불교 절들이 치던 개판을 유교 서원이 똑같이 물려받더라;; 결국 인간이 문제다
사실 서원은 존재자체가 공자를 ↗까버린거라 유교의 산물이라고 하기 어렵지...
국가 말렵이 되면 그건 어디나(....)
교회도....그렇듯 어디든 시스템은 통제불가능한 선까지가면 인간의 악의를 보여주디
나라가 망할 시기면 종교든 사상이든 그 본질은 이미 훼손될대로 훼손되어 간판과 권위만 남는 현상이 일어남
최전성기에 망한 나라들도 있어서 쵸큼 애매함. 그걸 예외라고 부르기로한 합의가 있다면 뭐 할 말이 없지만.
역시 ㅈ간이 문제군
- 무소유 -
- 풀소유 -
지금도 국유림 유원지 드나들 때 출입료 내는 건 사찰 쪽에 가는 게 많다고 하지. 뭐...조선 때 수천 개였던 사찰들이 수십 개로 줄면서 산으로 쫓겨난 것도 하나의 이유지만.
가끔 기독교만 타락했고 불교는 그런적 없다!는 오리엔탈리즘 신자들이나 과격한 반기독교 성향들이 잊는 사실이지
루리웹-2783972519
"부처극락 불신지옥!!!"
오다 노부나가가 제육천마왕이랍시고 히에이잔 밀어버린덴 이유가 있음 ㄹㅇ
승병이랍시고 무력 갖추고 뻑하면 속세에 개입하려드니 속세 권력자로써 안빡치면 그게 더 이상한 거
그나마 다른 다이묘들은 종교로써 얘네 존중하고 후원도 해주고 했는데 오다 노부나가는 그런게 없는 인간이었짘ㅋㅋㅋㅋㅋㅋㅋㅋ
엌ㅋㅋㅋ 지들이 말한 지옥이서 지들이 허우적 거리니 추하죠?
당시 천황보다 부자였던 이시야마 혼간지와 히에이잔
뚜막파크 레인져스
쇼군보다도 더욱 부자.
고려후기 무신정권때도 우리나라 불교도 이럴 조짐이 보이더라...사찰에서 병력 모아서 무신정권에 반기를 들었거든..들고 일어날 명분이 없던건 아닌데 그래도 쇼킹하긴 하지...
1000년 넘은 종교 탄압은 어렵지
유교 ㅋㅋ 까는 소리 하지 말라 그래...
그만큼 이성이 발전한 현대에 와서도 종교는 여전히 세계적 주류인 걸 뭐 현상에 대한 과학적 접근이 힘든 시대에서야 암만 탄압해봐야 ㅎㅎ
억불 기준이 고려때라서
숭유억불. 유교를 숭상하고 불교를 '억압'한다. 숭유멸불이 아닌 것에 감사하십시오. 몽크.
지금도 억기(抑基) 정책 써서 교회 세력 좀 줄였으면
역사가 너무 길어서 뿌리를 뽑을수 없으니 왕정은 이용한거지. 유교는 통치 교리였고 실제 백성들은 신앙은 토속이랑 불교 아니였나
애초에 공맹의 시대에도 기존의 민초들에게 있는 종교적인 색채에 유학적인 이념과 사상을 덧씌우면서 발전한 것이 유학이라
조선초만해도 태조가 친불교 성향이었고, 세종도 석보상절이라는 불교책을 아예 훈민정음으로 간행시켰고, 세조는 원각사를 지어줬지. 이후 조금 잠잠하나 했다가 명종의 모후인 문정왕후가 대놓고 불교 우대해서 결국 조선 중기까지도 왕실이 불교와 떨어지지 못해서 성공하지는 못함. 애초에 고려때 폐단이 있긴해도 천년가까이 민중하고 같이한 종교라서 갈아엎지도 못했지만
그 왕실 절인 회암사를 태종이 써준 무학대사비 빼고 유생들이 다 때려부수고 불태운게 충분히 승유억불 했다는 증거 아닌가. 지금도 고려때부터 이어지는 절 재개발 하다보면 땅속에서 코잘리고 머리잘린 불상이나 석탑 나오는게 한두개가 아닌데. 왜란이후에나 탄압이 좀 풀린거지.
확실히 왜란 등을 거치면서 불자들의 활약을 조정에서 인정하며 더 유해진 것은 사실임
유교의 나라라고는 하는데 백성쪽에선 유교를 접하기가 존나게 힘듬 글(한자)을 읽을수 있기를 하나 아님 서적을 쉽게 구할수 있기를 하나 절처럼 불경을 소리내서 읽어주기를 하나 그리고 간혹 경전 설명해주는 사람들 하나둘씩 튀어나오고 양반쪽에선 유교퍼지는게 쉬워도 백성쪽에선 진입장벽이 너무 높은 장르였음
괜히 세종이 정음을 만들어서 민초들에게 보급하려 했던 것이 아니지 조선 중후기쯤 되면 한글로 번역한 경서의 축약된 지식들이 널리 보급되기는 하였다고 함
숭유억불도 조선 초기중기 까지만 선비들 중심으로 이루어졌고 그마저도 왕실은 불교를 민생종교로 봐서 어느정도 보호함 임진왜란 이후로는 승병들의 활약으로 그 위상이 높아져 사실상 숭유억불 문화는 없어졌고 국가,민간주도로 사찰이 많이 지어지기도 했음
세조였나? 신하가 불교를 존나게 까니까 야 칼 가꼬와라 너 죽여서 부처에게 사죄하련다 하지 않았남
수십번 팔만대장경 달라고 떼쓰던 일본한태 그거 안 준거 다행임...
정작 건국초기 숭유 억불의 제창했던 정도전의 논리는 불교의 폐단과 모순에 대해서 지적했지 스님 떄려패고 사찰 불지르라고 한게 아니었는데 유교탈레반들 선넘는건 지금의 ㅁㅁ들하고 유사하네
이게 정치적인 이유도 있는데 조선초기에 불교숭앙하던애들이 세조, 문정왕후같이 소위 유림들한테 비난받던 인물들이다보니 조선중기에 사림들이 득세하는 시점부터 맹공격 받을 수 밖에 없었음. 아무래도 직접적으로 왕실을 욕할 순 없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