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중에 박연이라는 이름을 하사 받은 네덜란드인인 벨테브레이는 본래 사략선의 선원이었던 사람임. 쉽게 말해서 다른 국가의
상선을 나포하는, 실질적인 해적선의 선원이었다는 것이고, 이는 네덜란드 정부에서도 허가 받지 못하는 불법 행위였음.
즉, 네덜란드 정부의 인정을 받지 못하는 불법적인 사략선은 해적선으로 간주되어서 네덜란드 정부에서는 이를 사형으로
엄격하게 다스렸을 정도임. 게다가 키리시탄(기독교인)들을 강력하게 탄압하던 일본에서도 조선으로부터 이들을 넘겨받는 걸 거부했지.
결국 저런 몇가지 요인들이 겹쳐서 어차피 고국으로 돌아가봐야 죽을 게 뻔한 박연 입장에서는 그냥 귀화하면서 눌러 앉고 결혼도 하고
벼슬을 받아서 나라의 녹을 받아먹고 지내는 것이 차라리 더 나은 인생이었을지도 모름. 물론 죽을 때까지 고국을 그리워하는 마음은 있었겠지만.
하지만 하멜의 경우에는 박연과는 사정이 매우 달랐는데, 하멜은 박연과는 달리 해적선의 선원이 아닌, 네덜란드 상선의 선원으로서 떳떳한 뱃사람이었던데다가
고국인 네덜란드에 가족도 있고 본래 집안도 유복한 집안이었던지라 조선에서 아무리 잘해준다고 해도 계속 눌러앉아 있을 이유가 없었음.
근데 네덜란드에서도 불법인 사략선이면 그냥 해적 아님?
면장을 받았으니까 사략선 아니야? 면장 없으면 그냥 해적선이잖어
면장 없으면 애초에 사략선이 아니지 그냥 해적선
사락선이 약탈한거 먹는 댓가로 민영화한 해군 같은건줄 알았는데 내가 뭘 잘못 알았나
찾아보니까 박연은 네덜란드 동인도회사 소속 사략선의 선원이었다는데? 동인도회사가 공식적으론 민간기업이었다지만, 실질적으론 국가의 식민지 확장을 담당하는 국영기업에 가까운 존재였는데, 그런 곳에서 직접 굴리는 사략선이 본국 정부랑 관련이 없고 사형대상이다? 도저히 말이 안되는 소리임.
박연은 하멜이랑 대화해보려다가 네덜란드말 잘 안나오는거보고 아 시발 돌아가기엔 늦었구나!! 했을거같아
우린 그걸 해적선이라고 부르기로 합의했어요
그리고 아무리 잘해줘도 보험금 타려면 개고생했다 해야하니 디스 잔뜩 넣고
근데 네덜란드에서도 불법인 사략선이면 그냥 해적 아님?
ㅇㅇ. 맞어.
불법 사략선은 그래도 일단 표면적으로는 '허가증만 안받았을 뿐이지 나라의 적국 선박들만 나포한다'등의 선은 지키려고 노력은 했음. 그래서 정부 고관들의 은밀한 지원을 받거나 아니면 식민지 총독들이 못본척 한다던가등의 일들이 있기도 했고. 물론 당하는 쪽 입장에서는 빼박 해적들이지.
?? 사략선은 허가받고 하는거 아닌가?
영국은의 경우에는그랬지. 그래서 프랜시스 드레이크도 해적이었지만 엘리자베스 여왕에 의해서 제독으로 임명되기까지 했잖어.
사략허가 나왔는데 나중에 정치적 이유로 박탈당하거나 아예 처음부터 사략허가를 위조하는 경우도 있었다고 함.
존댓말 주입기가 무서워서 도망친 게 아니었던 거야?
면장을 받았으니까 사략선 아니야? 면장 없으면 그냥 해적선이잖어
yarra8282
사락선이 약탈한거 먹는 댓가로 민영화한 해군 같은건줄 알았는데 내가 뭘 잘못 알았나
박연은 허가 받지 않은 쪽이었음.
Grace Shin
면장 없으면 애초에 사략선이 아니지 그냥 해적선
yarra8282
우린 그걸 해적선이라고 부르기로 합의했어요
네가 옳다. 진짜로.
그럼 샤락선주가아니라 해적이잖아;
Grace Shin
찾아보니까 박연은 네덜란드 동인도회사 소속 사략선의 선원이었다는데? 동인도회사가 공식적으론 민간기업이었다지만, 실질적으론 국가의 식민지 확장을 담당하는 국영기업에 가까운 존재였는데, 그런 곳에서 직접 굴리는 사략선이 본국 정부랑 관련이 없고 사형대상이다? 도저히 말이 안되는 소리임.
아, 그래? 그런데 박연을 해적으로 바라보는 시각도 있어서 나는 그냥 이쪽 견해를 따른 것 뿐임.
사략선이 곧 해적이니까... 국가의 허가를 받은 해적이냐, 그냥 지들끼리 날뛰는 해적이냐의 차이일 뿐임. 실제로 대항해시대 해적의 대부분이 사략선이었고. 뒷배 없는 해적따윈 금방 잡혀죽을 뿐이었거든.
경계가좀 코애걸면 코걸이 귀에걸면 귀걸이긴한데 허가증같은건 있던걸로암
하멜은 공기업 직원이었고 박연은 소말리아 해적이었다는거네
박연은 하멜이랑 대화해보려다가 네덜란드말 잘 안나오는거보고 아 시발 돌아가기엔 늦었구나!! 했을거같아
박연이 탓던 배는 이후 나포되어서 전원 사형당함 말이 나오고 안 나오고가 문제가 아니였음;;
사략선 일 자체가 개빡세서
이미 인생의 거의 절반을 조선에서 보낸 상태라(32세에 조선에 왔고, 하멜이 올 시점에는 58세) 고향으로 돌아가려 시도할 시기는 한참 지나긴 했지.
그래도 기록 보면 붙잡고 하루 종일 울었다고 나옴. 고향 땅이 그립긴 했을 듯
이미 한국에 잘 적응하기도했고 사략선일이면 최고난이도 직업이기도하니 조선이 편할지도모르지
허가받은 해적선이 사략선 아님?
근데 하멜에 대한 조선측 기록은 없나? 기록이라곤 하멜표류기만 계속 언급되던데
효종실록에 기록되어 있음
박연처럼 잘대해줬는데 나중에 배타고 떠났다고 적혀있다더라
거기선 뭐라고 나와있음? 하멜이 계속 궁궐근처에 살았던게 아니라서 기록이 자세하진 않을 것 같은데
제주 목사 이원진이 치계하기를, "배 한 척이 고을 남쪽에서 깨져 해안에 닿았기에 대정 현감 권극중과 판관 노정을 시켜 군사를 거느리고 가서 보게 하였더니, 어느 나라 사람인지 모르겠으나 배가 바다 가운데에서 뒤집혀 살아 남은 자는 38인이며 말이 통하지 않고 문자도 다릅니다. 배 안에는 약재·녹비 따위 물건을 많이 실었는데 목향 94포, 용뇌 4항, 녹비 2만 7천이었습니다. 파란 눈에 코가 높고 노란 머리에 수염이 짧았는데, 혹 구레나룻은 깎고 콧수염을 남긴 자도 있었습니다. 그 옷은 길어서 넓적다리까지 내려오고 옷자락이 넷으로 갈라졌으며 옷깃 옆과 소매 밑에 다 이어 묶는 끈이 있었으며 바지는 주름이 잡혀 치마 같았습니다. 왜어를 아는 자를 시켜 묻기를 ‘너희는 서양의 크리스챤인가?’ 하니, 다들 ‘야야(耶耶)’ 하였고, 우리 나라를 가리켜 물으니 고려라 하고, 본도를 가리켜 물으니 오질도라 하고, 중원을 가리켜 물으니 혹 대명이라고도 하고 대방이라고도 하였으며, 서북을 가리켜 물으니 달단이라 하고, 정동을 가리켜 물으니 일본이라고도 하고 낭가삭기라고도 하였는데, 이어서 가려는 곳을 물으니 낭가삭기라 하였습니다." 하였다. 이에 조정에서 서울로 올려보내라고 명하였다. 전에 온 남만인 박연이라는 자가 보고 ‘과연 만인(蠻人)이다.’ 하였으므로 드디어 금려(禁旅)에 편입하였는데, 대개 그 사람들은 화포를 잘 다루기 때문이었다. 그들 중에는 코로 퉁소를 부는 자도 있었고 발을 흔들며 춤추는 자도 있었다. - 《조선왕조실록》효종 4년 8월 6일
야야 그랬다는게 Ja Ja를 말하는가 보네ㅋㅋ
조선왕조실록 사이트 들어가서 南蠻 이라고 효종, 현종 파트에서 검색해보셈. 요즘은 다 조회해서 볼 수 있어서 편함
동래 부사 안진이 치계하여 아뢰기를, "차왜(差倭) 귤성진 등이 은밀히 역관들에게 말하기를 ‘10여 년 전에 아란타 군민 36명이 30여 만 냥의 물건을 싣고 표류하여 탐라에 닿았는데, 탐라인이 그 물건을 전부 빼앗고 그 사람들을 전라도 내에 흩어 놓았다. 그 가운데 8명이 금년 여름에 배를 타고 몰래 도망와서 강호(江戶)에 정박했다. 그래서 강호에서 그 사건의 본말을 자세히 알고자 하여 서계를 예조에 보내려 한다. 아란타는 바로 일본의 속군으로 공물을 가지고 오던 길이었다. 황당선이 표류해 오면 즉시 통지해 주기로 전에 굳게 약속하였는데, 지금 통지해 주지 않을 뿐만 아니라 도리어 그 물건을 빼앗고 사람을 억류하였으니, 이것이 과연 성실하고 미더운 도리인가. 차왜가 나오면 반드시 서울에 올라가 서계를 올릴 것인데, 본부(本府)와 접위관(接慰官)의 문답이 예조가 답한 서계와 다르지 않아야 일이 어긋나는 단서가 없게 될 것이다. 또 도주(島主)와 강호의 집정자 사이에 틈이 있는데, 이번 일은 매우 중대하여 만약 서로 어긋나기라도 한다면 도주가 먼저 화를 입을 것이다.’ 하였습니다." 하니, 상이 비국에 내려 의논하게 하였다. 회계하기를, "장계에 말한 아란타 사람은 몇 년 전에 표류해 온 만인(蠻人)을 말하는 듯합니다. 그러나 이들의 복색이 왜인과 같지 않고 말도 통하지 않았으므로 어느 나라 사람인지 알 수가 없었는데, 무슨 근거로 일본으로 들여보내겠습니까. 당초에 파손된 배와 물건을 표류해 온 사람들로 하여금 각자 알아서 처리하도록 하였으므로 우리에게는 잘못이 없으니 숨길 만한 일도 없습니다. 차왜가 오면 그대로 답하면 그만입니다. 역관을 시켜 복장과 말이 왜인과 같았는지를 한번 물어보고 그들의 답을 들은 다음에 만인의 실상을 갖추어 언급해야 되겠습니다. 이렇게 공문을 보내는 것이 편리하겠습니다." 하니, 상이 따랐다. - 《조선왕조실록》 현종 7년 10월 23일
나같아도 해적질 하느니 벼슬할 듯 과거 말단 해적의 대우는 조오온나 끔찍했음
설득력이 있네 하멜은 본국에 가진 게 많아서 정착할 요인이 별로 없고 박연은 반대
여수가서 하멜 기록보니까 탈출하고 싶어서 안달 난 사람 같긴 하더라. 일행의 탈출시도 기록도 있고 ㅋㅋ
그거보고 친구들이랑 이거 결국 멀쩡한 외국인을 여기서 붙잡아서 가둬서 부려먹으려다가 결국 돌아간 사람 이야기 아니여? 뭔가 노예 얘기 같다 ㅋㅋ 했었음ㅋㅋㅋㅋㅋㅋ
한마디로 박연은 사실상 그냥 해적 선원. 돌아가면 사형이고 가난한 집 평민. 하멜은 무리 동인도 회사(당시 네델란드 최고 대기업)의 정식 서기 겸 선원에 집도 은수저. 하멜 표류기도 13년간 내가 이렇게 뺑이 쳤다! 며 동인도 회사에게 13년치 월급 다 달라는 항의차 쓴거.
미허가 사략선이면 빼박 해적이지 뭘
여기서 최고 의문은 박연의 후손 이야기가 끊기는 부분임 부끄러워서 속이고 있던가 진짜 후손이 없었던가 둘중 하나인데 이상한 일이지
1남 1녀가 있었다고 함. 실제로 사람들이 '남만인 (네덜란드)과 조선인의 얼굴이 반반 섞였다' 며 놀라워 했다고. 근데 그 이후는 기록이 없는거보니 아마 일찍 죽었거나 자손을 못 남긴듯.
그래서 내가 이상하다는거임 왜냐하면 박연을 남겨두기 위해서 당시 조선에서 마누라도 얻게 하고 직책도 주면서 헌신했거든 그렇게 후손이 절명했다면 첩이라도 해서 이어가게 했을텐데 그걸 안했다는거임 그당시 일부일처 시대도 아닌데 그런 점을 생각하면 기록에 넣지 않았거나 박연인 후대에 뭔가 사고를 쳤거나 후손들이 당시 지금 시대도 아니고 조선시대였으니 혼혈아 차별이 더 심했으니 삭제요청 한게 아닌가 싶다는거지
당대 왕(효종?)때야 챙겨줬겠지 권력자 바뀌고 이후 잊혀지는 경우는 흔함 박연 본인은 몰라도 2대 3대 되면 그냥 조선사람이라 외국지식 있어서 중앙정부에 쓰일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자녀도 많이 낳은 게 아니라 대가 끊겼거나 잊혀졌겠지 특히 남계가 끊기면 여계 자손은 기록도 딱히 없고
글 아는 양반층하고 혼인했다면 기록이 남았을 수 있으나 이방인 귀화 후손하고 양반층이 혼인했을 거 같지도 않고 실제로 90년대에 벨테브레 네덜란드 가족후손이 와서 후손 찾았지만 못 찾았음
현실 범죄자였던내가 이세계에서의 공무원생활 시작합니다.
예전에 본 바론 동인도회사 사략함대 선원이란 소리는 당시 서구권에서 최고로 막장 중의 막장인생 으로 쳤다고 함 실제로 박연이 타고있던 배의 선원들은 박연 표류 후 얼마 안가 전원이 사살되었으니 박연 입장에선 표류가 천운이었던 셈 원래대로라면 일본이나 중국을 통해 본국 송환 했어야 했는데 하필이면 시대가 명청 교체기라 못하는 사이 현지 아내를 얻어서 눌러 살게 되었다 함 다만 같이 표류했던 선원들이라도 살아있었다면 좀 나았겠지만 병자호란때 두명 모두 전사 하면서 그야말로 이세계에 홀로 떨어지게 된 셈이었지 박연 입장에서 하멜은 이세계에서 수십년 살다가 갑자기 나타난 고향사람이었을거임
사략이면 그 나라 정부 이름 아래에서 돌아댕기는겁니다 선생님.... 불법 사략선이라는 건 존재하지 않습니다요. 보통 그걸 해적선이라고 부르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