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의 설명이 길기 때문에 요약을 하자면 삼국시대는 조선 시대와 다르게 부모가 일방적으로 결혼 상대를 정하는 그런 식의 결혼은 하지 않았음.
물론 저 시대에도 중매 결혼 개념이 있기는 했지만 자유 연애로 인한 결혼도 얼마든지 가능했고 고구려와 신라에서 그 흔적을 찾아볼 수 있었다고 함.
게다가 신라는 이혼도 자유로웠고 남성과 여성의 권리가 최대한 동등하게 부여된 그런 시기였기도 함. 물론 고려를 넘어 조선 시대로 가면서
"자유 연애로 인한 결혼? 그거 먹는 거임?"이라는 인식이 지배적일 정도로 부모가 짝지어주면 그대로 따라서 결혼해야 하는 것이 당연한 사회가 되었지.
그래서 조선 시대에서 남녀의 혼례식 때 첫날밤을 치르기 전에 신랑이 호롱불에 비친 신부의 얼굴을 처음 봤다는 얘기가 일상처럼 나왔던 이유이기도 함.
한국에서 남녀의 자유 연애로 인한 결혼은 일제 강점기가 시작된 1910년대부터 서서히 시작되었고 1920년대에 들어서는 부모가 일방적으로 짝 지어준 결혼을
극렬하게 극구 거부하는 사례가 매우 많아졌지. 부모가 짝지어주는 일방적인 결혼이라는 구시대적 요소를 아주 싫어했던 대표적인 사람이 몽양 여운형 선생이었고.
하지만 이건 다 기억안나고 옥저는 민며느리제
아아 못난 후손은 면목이 없습니다..
물론 그런 사례가 없지는 않았지만, 그래서 정해준 정혼자랑 결혼하지 않는다고 부모의 엄청난 반대에 시달렸다는 마을의 총각 처녀 이야기가 조선 시대 이야기에서는 거의 클리셰처럼 나오잖아.
지니는 내꺼야!
어느 시기든, 심지어 현대에도 상위층은 결혼을 비즈니스 수단으로 사용하는 경향이 있음.
그럼에도 과거 남녀간 차별이나 성문화가 개방적이였음, 우리가 생각하는 유교스러움은 조선후기에 나타나는게 많고
님이말하는 조선시대도 전기에는 자유연애가 흔했음 후기에 들어와서 유교의식이 강해지고, 더욱이 뒤로가면 부농이 늘어나고 신분제가 해체되면서 나도 양반이다라는 사람들이 많아져서 님이 말하는 부모님이 정혼자를 정해주는게 흔해진거지 단순히 조선시대 특정 시기를 들어서 조선시기 자체와 이전 시기의 차이를 구별하는 것도 좀 그럼
조선도 연애할 사람들은 연애 했음.
물론 그런 사례가 없지는 않았지만, 그래서 정해준 정혼자랑 결혼하지 않는다고 부모의 엄청난 반대에 시달렸다는 마을의 총각 처녀 이야기가 조선 시대 이야기에서는 거의 클리셰처럼 나오잖아.
그래서 여운형 선생도 내가 자유롭게 연애를 해서 결혼하고 싶었는데 내 부모님이 마음에도 없는 정혼자를 일찍부터 붙여줘서 억지로, 강제적으로 결혼을 해야 했다고 매우 불만을 드러냈던 이유도 여기에 있었고.
몽양선생은 얘기만 들어보면 세기의 미남 취급이셨던데 ㅋㅋ 그래서 더 그랬을지도
조선초기만 해도 우리가 생각하는 유교적이고 구시대적마인드의 국가가 아닌 의외로 현대적인 시스템이 많던 나라였는지
하지만 이건 다 기억안나고 옥저는 민며느리제
루리웹-4231582932
지니는 내꺼야!
해리포터 좀 봤네
자유연애에 일부다처제라니 나같은 유게이에겐 너무 해로운 곳이군
난 민며느리제야!
고구려 사람들은 좋아하면 바로 했다지않던가
요긩
아아 못난 후손은 면목이 없습니다..
서로 좋아하면 하는 건 지금도 마찬가지라구 ㅎㅎ
설득력없는소리
산모는 어디 가고 왜 마망만 있는가
https://youtu.be/kzrCK4vG1WU 이런 풍습도 있고 ㅇㅇ
바로는 안하자너..
고려 조선 시기 오면 변화된게 유교를 본격으로 받아 드리는 시기하고 맞물려 들려가는...
삼국시대라해도 자유연애가 흔한건 아님, 일반 백성이야 조선이나 삼국시대나 자유연애 비중이 좀 높았긴 했지만, 귀족으로 올라가면 가문은 즉 가문의 결합이기에 어느시대나 어린 자식들이 자유연애하면 부모님들이 집안의 이익과 비합치되기에 반대하는 경우도 많음, 그렇다고 하도 예외는 있지만, 본문 읽어보면 약간 논거도 이상함 원화는 여성을 중심으로 모이긴 헀지만 이는 연애와는 다름 원화에서 여성간의 다툼으로 폐지되고 남자가 여사스럽게 치장해 이를 중심으로 모이는 것으로 대체됬는데 그럼 화랑들이 게이였다는거임? 아니지너...
koner
그럼에도 과거 남녀간 차별이나 성문화가 개방적이였음, 우리가 생각하는 유교스러움은 조선후기에 나타나는게 많고
koner
어느 시기든, 심지어 현대에도 상위층은 결혼을 비즈니스 수단으로 사용하는 경향이 있음.
삼국시대에서 자유 연애가 흔하지 않았다는 건 근친혼이 성행했던 상류층 사회에서 볼법한 일이었을텐데? 가문과 가문과의 혼인으로 억지로 엮일 필요가 없는 백성들이야 근친혼을 할 필요가 없으니까 자유 연애를 통한 결혼이 흔하지 않다는 건 아닌 것 같음. 그리고 조선 시대에서는 양반 가문들 뿐만이 아니라 일반 백성들 사이에서도 부모가 정혼자를 정해주면 그대로 결혼해야 하는 것이 매우 흔한 사회상이었다는 점이 삼국시대와 다른 점이잖아.
조선왕조 500년을 조선시대로 퉁치는 거에 대한 오류일 뿐이지
대전 1988
님이말하는 조선시대도 전기에는 자유연애가 흔했음 후기에 들어와서 유교의식이 강해지고, 더욱이 뒤로가면 부농이 늘어나고 신분제가 해체되면서 나도 양반이다라는 사람들이 많아져서 님이 말하는 부모님이 정혼자를 정해주는게 흔해진거지 단순히 조선시대 특정 시기를 들어서 조선시기 자체와 이전 시기의 차이를 구별하는 것도 좀 그럼
조선 전기 때까지야 남녀가 조상에 대한 제사를 공동으로 지낼 정도로 아직은 여성에 대한 권리가 쎈 시대였는데 말할 필요도 없지. 조선 후기 때 유교갸 교조화 되면서 저런 식으로 결혼 풍속이 자리잡은 거고.
그리고 이에 대한 논란도 있는데 조선시대 후기 문학작품을 보다보면 이게 우리가 알던 조선시대하고? 생각이들거임, 물론 당대 소설이 현대로치면 라노벨 급취급이라 퇴폐적인 것일 수도 있는데 마냥 우리들의 조선 후기 일반 민중들까지로 교조화되었다고 보기에는 어렵다라는 의견들이나옴
그게 단순히 교조화되서라기 보다는 전기와는 달리 한글과 서당의 보급을 통해 일반 민중들까지 교육을 받으면서 유교가 확산되고 예송논쟁의 영향으로 왕=사대부도 같은 예법을 지켜야 하는데 그럼 사대부와 백성도 똑같지 않냐는 의식이 퍼지면서 일반 백성들도 양반하고 똑같이 제사지내야 한다는 의식도 퍼짐. 즉 양반층에만 국한되면 유교 예법이 일반 백성들에게도 퍼지면서 결혼 제도 등도 일반 백성들도 점차 양반들 따라하게 된거지(참고로 조선 후기에 오면 여성 성리학자들도 늘어남. 즉 여성들에게도 성리학이 퍼지던 시기임)
조선도 조선 초중기까진 고려시절이 지배적이었는데 왜란 호란 겪으면서 싹바뀐거던가
지금은 자유연애시대인데.. 요즘은 결혼안하는 시대 ㅠㅠ 할사람은 한다지만..
아무리 그래도 여운형 선생 가장생활은... 독립운동가로서는 존경하지만 바람 펴서 낳은 자식 데려오는 건 좀...
나도 그건 절대적으로 좋게 보진 않음. 본인이 첫 결혼 상대부터 자유로운 연애로 선택하지 못한 게 본인 나름대로는 억울할 수는 있겠지만 가장으로서는 그다지 바람직하지 못했으니까.
한국사를 배우며 느낀건 우리가 이때까지 전통이라고 느끼던 개꼰대스타일의 관습들은 대부분 고작 조선시대 후기에 가서 생긴것들.. 오히려 과거로가면 갈수록 현대와 비슷해짐
삼국시대보다 못한 유게이
못 하는 거 봐선 선사 시대 이전까지 가야 돼
신라는 어느 의미에서 골품제의 덕 같은 느낌이라 봐야 맞나 남녀 보다 타고난 출신성분이 더 중요한 시대였으니
저글이 틀렸다는 예제들이 많이 있는데, 바로 온달장군 설화 혹은 야사도 있고, 서동요..는 맞는 내용이네..ㅋ 여튼 연애를 무슨 법전으로 정해 놓은 것도 아니고 삼국시대와 조선이 시기별 차이가 천년도 넘는데, 딱 정해서 이랬다 저랬다 이게 말이 되나? 조선 초기 이후에 법령과 사회제도 정비를 대대적으로 이룬 뒤에도 계속해서 제도가 바뀌었는데..
어디서 하나 주워읽고 그걸로 전체를 제단하는건 일반인의 기본소양임. 너무 그러지 말어 ㅎㅎ
그렇지.. 그래도 저런글들이 많이 올라와야지 안 그럼 맨날 돌고래, 주인아 낑낑, 쇼타쥬지, 근친합법 이런글만 올라올것 같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