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지어 편견으로 사료를 편향적으로 해석하는 사례는 지금도 비일비재하다
그렇다면 우리는 신화를 어떤 시각으로 보아야 할까?
신화가 성립될 당시의 메타포가 담겨져 있다고 보아야 할까?
중국의 역사학자 고힐강은 신화는 누층적으로 구성된다고 주장하였다
이 주장은 중국 사학계에 상당한 파란을 일으키고 만다.
그의 연구에 의하면 삼황오제, 그중에서 요순 임금중에서도
가장 말단인 순 임금의 기록이 역사적으로 가장 먼저 등장한다는 것이다
심지어 그 기록에 의하면 순 왕은 의심의 여지 없이 최초의 왕이자
최초로 농사를 지은 어진 성군이다
허나 어느순간 요가 등장하여 최초의 왕으로 기록되더니
갑자기 계보가 누층적으로 구성되기 시작했다.
즉 말단인 순이 가장 먼저, 청제가 가장 나중에 역사적으로 등장한 것이다.
당시에, 그리고 지금까지도 의외로 여길지 모르지만 삼황오제는 역사적 메타포가 담긴 신화,
즉 최소한의 진실이 담긴 역사로 간주되었는데
이런 실증적인 연구에 의하면 그건 후대에 지어진 것이었다.
당연하게도 당대의 역사적 메타포가 담겼을 것이란 연구는 모조리 관짝으로 들어간건 당연했다.
이처럼 신화는 누층적으로 구성되었고 계보에 한계에 도달했을때는
바로 창세가 등장한다.
그러므로 반고는 삼국지 시대의 오나라에서 만들어졌다.
촉은 요 임금으로 정통성을 주장하고
위는 순 임금에서 양위의 정당성을 주장했으니
자신들의 계보를 만들어낼 수 없으니 창세를 만든 것이다
이것은 단지 신화에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역사에도 적용된다
당대에는 등장하지 않다가 후세에 누적되는 많은 이야기들
그리고 더 이상 진위 여부 따위를 분간할 수 없게된 국가의 시조들 말이다
(예. 오스만의 아타만 1세. 고구려의 주몽 등등)
그러다보니 여러 종교에서 창세나 시작은 굉장히 많은
문학적인 장치와 잘 짜여진 상징성으로 가득하다
(예. 성경의 창세기)
그러므로 우리도 단군신화에 대해서 염려해야 된다.
많은 이들이 단군신화가 고조선의 어떠한 불확실한 역사적 메타포로 이루어졌으리라 생각하지만
단군신화는 삼국유사에서 갑작스레 등장하기 때문에
단군신화는 고려 시대에서 상상한 혹은
프로파간다에 의해 창작된 고려 사람들이 생각하는
(고)조선부터 이어지는 정당성과 당위성을 위해서 기록되었다는것을 말이다.
고려 사람들이 인식하는 역사적 맥락만이 담겨있다고 보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