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당 최근우
3.1운동의 시초가 된 2.8 독립선언의 민족 대표 11인 중 하나
이 2.8 독립선언에 참여한 조선 유학생들을 변호한 것이
건국훈장을 받은 단 둘 뿐인 일본인 독립유공자 중 한 사람인 후세 다쓰지 선생
그러나 최근우는 1940년 친일 단체인 오족협화회의 부회장 직을 역임한다
오족협화
만주국을 이루는 다섯 민족(만주족, 조선인, 일본인, 한족, 몽골족)이 함께 살자는 개소리
심지어 중화민국의 오족공화(한족, 만주족, 몽골족, 무슬림, 티베트인)을 표절한 거라 더욱 추하다
그런 주장을 이름으로 삼은 친일단체 오족협화회
그 중에서도 높은 간부 자리인 부회장
2.8 독립선언 및 독립운동에 참여했었던 건 사실이나,
친일단체에 참여한 변절자, 배신자.
2009년, 친일인명사전은 그의 이름을 명단에서 삭제한다.
그리고 밝혀지는 사실
'최근우는 여운형 선생 등이 참여한 비밀결사, 건국동맹의 일원'
국내에 유일하게 남았던 독립운동 단체이자 비밀결사, 건국동맹.
최근우는 건국동맹의 일원으로 있으면서 친일단체인 오족협화회의 부회장 직을 맡고,
이를 역이용해 만주에 있던 해외의 독립운동 단체들과 연락을 주고받고, 공작을 진행했다.
우당 최근우 선생은 친일단체에 잠입해 독립을 위해 힘쓴 밀정이었다
그리고 마침내 맞이한 해방
그러나 그가 존경하고 따르던 여운형 선생은 정치적 분쟁 속에 암살당하고
당대 정권의 반복되는 회유와 권유를 거절하다가 여러 차례 구속당해 고초를 겪는다
1960년, 마침내 4.19 혁명으로 독재자가 물러나자, 그는 사회당을 창당하지만
다음 해, 쿠데타를 일으킨 군사정권에 의해 체포된 그는 구속당해 옥사한다.
서슬퍼런 일제의 옥살이도 추격도 버텼는데 해방 조국에서....
친일파 출신이 만든 세력한테 최후를 맞으셨네 참..
아...독립투사계의 다크나이트 같으신 분이였네...
TMI 우남은 대통령이 되고 난 후, 대화할 때 "짐은..."이라는 군주의 수사를 즐겨 썼고 주변인의 회고록을 보면 은근히 군주 느낌을 많이 냈다고 한다. 한반도에 공화정이 처음으로 자리 잡던 시기이고 국민들 역시 생소했던 터라 대통령이라는 자리를 군주 같은 자리로 인식하고 있었다며 변명을 하는 측도 있지만, 사실 수긍하기 어려운 변명에 불과한 게 우남은 젊은 시절 활동 대부분을 대통령제 민주주의 국가인 미국에서 활동하고 거주했으며 일제강점기 내내 활동할 때도 민주주의 정치체제에 입각한 대한민국 임시정부 내에서 대통령이나 총리 같은 직책을 수행한 사람이다. 일반 국민들이 그렇게 본다 하더라도 지 스스로 짐은.. 그러면서 왕 흉내를 헷갈려서 그럴 일은 절대 없고 스스로 권력에 취해서 왕 코스프레를 한 것에 불과하다. 그리고 일반 국민들부터도 이미 우남과 어울릴 정도로 정상적인 지식을 갖춘 사람이라면 민주주의와 왕정은 구분할 줄 알고 그런 사람이 많으니까 4.19 혁명 같은 혁명이 일어난 것이다. 다만 우남의 주변에 있었던 사람들은 그걸 구분할 줄 알면서도 일부러 아첨을 하느라 왕 취급했던 것일 뿐... 현대사회에서도 독재정권에게 세뇌교육을 당하며 자란 저소득 저학력 노인층에게는 아직도 이와 같은 인식은 지금도 한국사회에 잔존해 있긴 하다.
독립운동가가 모습을 숨기면서까지 독립운동에 매진하고 당대 독재정권의 회유를 거절하고 고초를 겪었지만 결국 친일독재자에게 죽었다는 점이 우리나라의 부끄러운 역사 중 하나네요;;
마지막이..
故 유일한 박사께서 괜히 죽을때까지 본인이 독립운동을 지원했고, 미군 첩보부의 조직원으로 활동하셨다는 것을 숨겼으며, 우남이 같이 정치하자고 꼬셨는데도 거절하셨던 것이 아님요.
서슬퍼런 일제의 옥살이도 추격도 버텼는데 해방 조국에서....
아...독립투사계의 다크나이트 같으신 분이였네...
마지막이..
친일파 출신이 만든 세력한테 최후를 맞으셨네 참..
TMI 우남은 대통령이 되고 난 후, 대화할 때 "짐은..."이라는 군주의 수사를 즐겨 썼고 주변인의 회고록을 보면 은근히 군주 느낌을 많이 냈다고 한다. 한반도에 공화정이 처음으로 자리 잡던 시기이고 국민들 역시 생소했던 터라 대통령이라는 자리를 군주 같은 자리로 인식하고 있었다며 변명을 하는 측도 있지만, 사실 수긍하기 어려운 변명에 불과한 게 우남은 젊은 시절 활동 대부분을 대통령제 민주주의 국가인 미국에서 활동하고 거주했으며 일제강점기 내내 활동할 때도 민주주의 정치체제에 입각한 대한민국 임시정부 내에서 대통령이나 총리 같은 직책을 수행한 사람이다. 일반 국민들이 그렇게 본다 하더라도 지 스스로 짐은.. 그러면서 왕 흉내를 헷갈려서 그럴 일은 절대 없고 스스로 권력에 취해서 왕 코스프레를 한 것에 불과하다. 그리고 일반 국민들부터도 이미 우남과 어울릴 정도로 정상적인 지식을 갖춘 사람이라면 민주주의와 왕정은 구분할 줄 알고 그런 사람이 많으니까 4.19 혁명 같은 혁명이 일어난 것이다. 다만 우남의 주변에 있었던 사람들은 그걸 구분할 줄 알면서도 일부러 아첨을 하느라 왕 취급했던 것일 뿐... 현대사회에서도 독재정권에게 세뇌교육을 당하며 자란 저소득 저학력 노인층에게는 아직도 이와 같은 인식은 지금도 한국사회에 잔존해 있긴 하다.
한국 독립후 조선 왕족의 후손이 과하게 찬밥 대접을 받은것도 이것 때문. 이승만 입장에선 감히 짐에게 위협이 되는 왕권 경쟁자라 밀어낼 수 밖에 없었음
1950년대 신문 보다가 놀란 게 있는데, '서울은 보통 명사라 수도 이름으로 적당하지 않다.' -> '미국은 사람 이름 따라서 도시 이름 만든다' -> '미국 수도는 워싱턴인데 우남시는 안 되냐?' 이걸로 열라 여론 조성하려는 움직임이 있었음. 419 없었으면 서울시민이 아니라 우남시민이 될 뻔했음
이승만은 실제로 왕이되고 싶어했지 ㅋㅋㅋㅋ
실제로 서울에 거대한 우남 동상도 있었는데 4.19혁명 당시 분노한 민중들에 의해 파괴되어 철거당했죠.
결국 하와이에서 왕놀이 하다 늙어죽긴 했지라 ㅋ
독립운동가가 모습을 숨기면서까지 독립운동에 매진하고 당대 독재정권의 회유를 거절하고 고초를 겪었지만 결국 친일독재자에게 죽었다는 점이 우리나라의 부끄러운 역사 중 하나네요;;
루리웹-17586726
故 유일한 박사께서 괜히 죽을때까지 본인이 독립운동을 지원했고, 미군 첩보부의 조직원으로 활동하셨다는 것을 숨겼으며, 우남이 같이 정치하자고 꼬셨는데도 거절하셨던 것이 아님요.
빨갱이들 해결하면 다음은 니네들 차례다 일제놈들아
그 논리로 해방후 우익 독립운동가들이 친일파와 손울 잡고 좌익 독립운동가들 숙청했죠 ㅋㅋ
저 놈의 군사정권은 애꿏은 어른들은 왜 죽이는건지 ㅉ.. 안타깝기 그지 없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