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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 어느 시점의 기루를 비추며, 누군가의 독백으로 575화의 막을 연다. 이 대사의 화자가 누구인지는 정확히 모르겠다.
나레이션 : 還記得 那個年代
아직도 기억한다, 그 시기를.
那個 最了解我的人
나를 잘 알고 있었던 그 사람을.
그리고 상황을 알고 보니, 잔병(殘兵) 일당이 기루에서 거사를 한 판 거하게 치르고 온 모양. 술에 떡이 된 잔병 부하 몇몇이 기녀들의 부축을 받으며 짐수레에 오른다. 기녀들은 다음에 언제 올 것이냐 묻고, 잔병 부하들은 조만간 올 테니 기다리고 있으라 대답하며 배웅한다. 마차를 끌고 이들을 데리러 온 것은 다름 아닌 손숙(孫淑)이었다. 손숙이 잔병이랑 함께 하는 것으로 보아 시점은 복양 전투 이후 인듯.(15권 125화 참조. 사마 가문은 강동 투자를 위해서 손숙-요원화 간에 가짜 결혼식을 올렸다.)
굳이 손숙이 잔병 일당을 마중나온 것은, 이런 일을 담당하던 소맹(小盟)이 일이 생겼기 때문이라 한다. 가짜 부인 역할을 수행중이더라도, 손숙이 요원화에게 호의를 가지고 있는 건 사실이기에 기루에서 나오는 모습을 탐탁찮게 생각한다. 그 와중에 대머리 곽왕은 손숙이 나타나는 바람에 요원화 형님의 좋은 분위기를 초쳤다는 얘기를 하고 앉아 있다.
이곳 지리를 용케도 잘 알고있다는 손숙의 비꼼에 요원화는 대답하길, 잔병(殘兵) 사람들은 임무 수행 도중에 내일을 넘기지 못하고 죽는 사람들이 왕왕 있어서 여유가 될 때 이렇게나마 시끌벅적하게 송별연을 펼쳐주는 것이라 한다.
기루를 빠져나가며 요원화의 외모에 환호하는 기녀들. 손숙은 그런 기녀들의 일면을 지켜본다. 그렇게 골목을 빠져나오며 손숙은 기어코 요원화에게 질문한다.
손숙 : 你常來的嗎?
자주 왔었어?
요원화 : 以前有
전에는.
요원화 : 一個賣命 一個賣笑 本是同類
한쪽은 목숨을, 한쪽은 웃음을 팔아치우니 본디 닮은꼴 아니겠어.
여기서 賣笑는 직역하면 ‘웃음을 판다’라는 뜻이지만, 속뜻은 기녀가 풍류와 교태를 팔아 빌어먹고 산다는 함의를 포함한다. 이를 통해 요원화의 말을 재해석 해보자. 목숨을 팔아치운다는 것은 ‘목숨을 어디 맡겨놓은 것마냥/목숨이 없는 것마냥’ 행동함을 의미한다. 즉, 죽음을 무릅쓰고 사람을 죽이는 걸로 빌어먹고 사는 암살자의 삶이나, 교태와 웃음을 팔아 빌어먹고 사는 기녀의 삶이나 근본적인 면에서는 다를 게 없다는 것이다. 누가 먼저고 뒤고 할 것도 없는 동류인 것을 까짓 거 끼리끼리 어울리면 좀 어떠냐는 자조에 해당한다.
그런데 여기서 갑자기 끼어드는 대머리 ‘곽앙’. 그는 요원화가 이미 가정을 이뤘음을 밝힌다.
곽앙 : 可惜... 西施已死
안타깝게도..서시(西施)는 죽었지만.
곽앙 : 當下 又來了毛嬙...
지금은 또 모장(毛嬙)이 와있고...
자꾸 분위기를 흐리는 곽앙의 개입에 옆에 있던 ‘장뢰’는 입닥치라고 하지만, 요원화는 손숙도 ‘우리 편’이 되었다며 자신의 과거를 밝히는 것에 개의치 않아한다. 그리고 방금 전의 논의를 계속 이어나간다.
요원화 : 司馬家需要擴大勢力 而孫家需要資金
사마가는 세력 확장을, 손가는 자금을 필요로 하지.
利益爲上 各取所需
이익이 최우선이니, 각자 필요로 하는 것을 취할 뿐.
妳也只是個交易人質
넌 결국 사고파는 인질일 뿐이고
而我 更非什麼名門公子
나도 명문 공자 따위가 아니지.
결국 저기 기녀들도, 요원화도, 더 나아가 손숙도 오십보백보라는 날카로운 지적. 강동-사마가 서로의 합의 하에 팔려온 것이나 마찬가지인 손숙과 사마가 따까리인 요원화는 결코 ‘진짜 부부’가 되지 못한다는, 서로의 입장을 재확인 하는 대사다. 손숙도 진즉부터 이를 마음에 두고 있었는지, 아래의 대사를 던진다.
손숙 : 或許 總有一天...
어쩌면 언젠가...
總有一天 我會被賣到一個更有利的地方
언젠가 난 더 이익이 되는 곳에 팔려갈지도 몰라.
那時的你 也會在嗎?
그때에, 너도 있어줄거니?
我同樣在賣笑 而你在賣什麼?
나도 웃음을 팔아 치우는 건 마찬가지인데, 넌 무얼 팔고 있니?
손숙은 이 대사를 하필 뚜쟁이를 바라보며 이야기 하는데, 그 말인즉슨 손숙도 자신이 저 기녀들과 그리 다른 처지가 아님을 내심 인정하고 있었던 것이다. 손숙은 요원화의 소매를 세게 움켜쥐며 쥐어짜듯 이야기하길,
손숙 : 你那妻子 也是你工作的過客吧
네 처도 네가 하는 일에서 스쳐지나갔을 뿐인 길손이었잖아.
對吧
내 말 맞지?
既是自己人 也別忘了該做什麼
그럼 같은 편이 된 만큼, 무얼 해야 하는지 잊지 말아줘.
現在的你 能否好好地工作,
지금의 넌, 좀 더 일을 제대로 하는 게 어때.
待我好一點
나한테 잘 해주란 말이야.
손숙의 말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자신은 웃음을 팔아 치우는 입장임을 똑바로 알고 있으니, 당신도 목숨을 팔아치우는 업종에 종사하고 있는 이상 그 ‘임무’를 똑바로 수행하란 이야기다. 다시 말해, 지금은 ‘가짜 부부’ 역할에 충실히 몰입해서 자신한테 잘 대해주란 소리. 더 나아가, 자기 전에 있었던 소위 ‘부인들’ - 모장과 서시, 번(樊) 부인과 소맹(小盟)은 서로 감정이 오고 간 사이가 아니라 임무 도중에 필요상 만난 기계적인 관계에 불과하다며 두 건의 사랑을 낮잡아 취급하는 것이기도 하다. 또한 그 안에 자신도 포함되어 있음을 똑똑히 알고 있고. 자신 역시 저 두 여인과 동렬에 놓여있지만 지금 이 순간만이라도 ‘부부’로서 대해달라는 이야기다.
손숙은 나지막히 요원화의 어깨에 기대고, 둘을 태운 짐수레는 천천히 기루 골목 사이를 나아간다. 둘만의 시간을 보내며 손숙은 독백하길..
독백 : 走進妓巷 卻另有感受
기방 거리에 들어섰지만 다른 것을 느끼게 되었는데
那是一種同爲一類的釋懷
서로 같은 부류라는 것에 가뿐해지는 마음이었다.
但願這條路 永遠走不完
그저 이 길이 영원토록 끝나지 않길 빌었다
如果我走了 你會跟嗎?
만약 내가 떠나면, 그대 따라올 텐가요?
那時的你 也會在嗎?
그때에, 당신도 곁에 있을련지요?
손숙의 독백 가운데, 과거와 현실이 교차한다. ‘가짜 부부’였던 사이에서, 주인마님과 주군의 부하인 사이로. 아두(阿斗)를 납치한 손숙의 배 위에, 요원화는 말 통째로 들이 박으며 선상에 오른다. 예상치 만난 만남에 손숙(이제는 손 부인)의 눈이 커다래지고, 그녀는 불현듯 그런 생각을 한다. 아두를 구하러 온 것은 분명하나 자신을 생각하는 마음이 조금은 남아 있지 않았을까, 그런 설마 하는 마음. 마침 나 떠나는 날에 그대도 곁에 있을 거냐는 독백에 대답하기라도 하듯 시기적절하게 나타났으니.
독백 : 不能掌握我男人的心
내 님의 마음을 붙잡을 수 없었던 건.
是我技不如人,
재주(技)로는 당해 낼 길이 없어서일까.
還是...妓不如人
창기(妓)로는 당해 낼 길이 없어서일까.
그녀는 요원화를 왜 붙잡지 못했는지 한탄한다. 왜 자신은 요원화의 마음을 얻지 못했을까. 부인(婦人)역할을 수행하는 수완(技)이 앞선 두 여인들보다 모자라서? 아니면 풍류와 교태, 자신이 파는 웃음(妓)이 두 여인들보다 모자라서?
독백 : 一個賣命,
한쪽은 목숨을 팔아치우고
一個賣笑
한쪽은 웃음을 팔아치우니
本是 天作之合...
그야말로 본래 하늘이 지어준 짝일진데..
왜 그녀와 요원화는 맺어지지 못했던 걸까. 제3자가 보기엔 누구보다 어울리는 한쌍이건만. 서로 무언가를 사고파는 ‘노예’ 처지인 점에서 참으로 하늘이 맺어준 짝이나 마찬가지인데 왜 이렇게 엇나가는 걸까.
갑판에 올라탄 요원화는 손짓을 해보이며 이리 오라는 제스처를 취한다. 그 모습을 보고 혹시나 하는 손숙의 마음은 한층 더 강해진다. 혹시라도 저 손짓의 대상이 자신을 향하는 게 아닐까. 혹시라도 요원화가 자신을 보러 온 게 아닐까 하고.
독백 : 來吧
오세요.
讓我一快
제게 기쁨을 안겨주세요.
하지만 요원화는 그녀의 기대를 배신한다.
요원화 : 留下,
남아주십시오
公子 留下
공자, 머물러주시길.
요원화의 첫 번째 留下는 마치 손숙에게 하는 것만 같다. 기루가 늘어선 골목을 지나며, 이 순간이 영원토록 이어지길 바라던 그녀의 마음에 화답하듯 그 순간에 ‘남아달라(留下)’ 얘기하는 것만 같다.
하지만 그 진상은 이어진 두 번째 대사에서 드러난다. 留下는 손숙에게 ‘남아달라’ 한 것이 아니라 작은 주군(少主)인 아두에게 자신이 날뛸 테니 함부로 움직이지 마시고 그 자리에 ‘머물러 달라(留下)’라는 대사였던 것이다.
그 대사를 통해 손숙은 마음 속 한 켠에 남은 마지막 기대를 완전히 접는다. 요원화의 손짓을 과거 그 날 뚜쟁이의 손짓과 겹쳐보며 손숙은 절망한다.
그렇다. 그녀는 요원화와 자신이 서로 똑 닮은 부류임에 기뻐했지만, 그것은 그녀가 바라던 부류가 아니었다.
사랑을 속삭이던 그 순간에 남는 것조차[留下] 불가능한 노예.
제 안위를 챙기기 보다 주인님의 몸에 생채기 나기를 걱정해 주인님한테 움직이면 다칠 우려가 있으니 머물러 달라고[留下] 신신당부하는 노예.
둘은 그런 노예에 불과한 것이다. 뚜쟁이와 기녀, 요원화와 손숙 둘 간에 무슨 차이가 있으랴. 그녀의 절망은 다음 독백으로 극에 달한다.
독백 : 謝謝
고맙나이다.
讓我看到了終點
제 눈에 종착점을 보여주셔서.
男女同類 其生不蕃
남녀가 같은 부류면 그 사이에서 태어난 자손이 번성할 수 없는 노릇이던가.
《춘추좌씨전》『노 희공(魯僖公)』 편에서 나온 “男女同姓 其生不蕃”에서 姓부분만 類로 바꿔써서 인용했다. 서로 이어진다 한들 노예끼리 맺어진 가족에서 나올 건 제2 제3의 노예밖에 더 되냐는 통탄인 것이다. 뚜쟁이와 기녀가 한 집안을 이뤘는데 그 집안이 과연 번성할 수 있을 것인가? 뚜쟁이와 기녀도 그럴진데 요원화와 손숙의 경우는 더하면 더했지 덜하지 않겠지.
가문 때문에 사랑하지도 않는 유비에게 시집가고 아이도 납치하는 손숙과
어둠 속과 빛을 가리지 않고 언제나 사람 죽이기를 밥먹듯이 하는 요원화가 맺어진다면, 그 집안이 과연 번성할 수 있을까?
손숙은 그런 깊은 절망을 위의 독백으로 표현한 것이다.
이윽고 굴원 《섭강涉江》에 나온 구문, “배가 느릿느릿 나아가지 못하고 소용돌이 물에 걸려 머물고 있었노라(船容與而不進兮 淹回水而疑滯)과 함께, 손숙은 같이 탄 선원, 주선(周善)에게 지시한다. 제3번째 타겟, 요원화도 취할 것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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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숙과 요원화 관련 글을 쓸려고 하는데, 그러자니 575화를 언급하지 않을 수가 없어서 리뷰글 찍 싸고 감...
요원화와 엮인 여자치고 오랫동안 잘 사는 꼴 본 적 없으니 쟤도 뭔가 명을 달리할거 같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