멜서스 트랩의 논리가
식량은 산술급수로 증가하는데 사람은 기하급수로 증가하니 사람을 줄여야 한다 였는데
자본과 벌금의 관계도 비슷할 거 같음
범죄를 저지를 수 있는 한 주체가 가질 수 있는 자본은 기하급수적으로 상승하는데
벌금의 계산은 산술급수식으로 증감되니
결국 벌금이 자본력에 대한 형벌이 아니라 자본활동에 대한 코스트화되는 상황이 도래한 것
그러니까 그게 벌금으로 퉁쳐져서 발생한 문제고
벌금을 얼마를 냈든 접대를 얼마를 했든 일단 자본으로 처리 못하는 형벌, 위 만화상에서는 영업정지처분같은 행사를 강제할 뭔가가 있어야 한다는거라고 생각함
집행기관이 그걸 안쓰는 게 문제니 집행기관이 그걸 쓰게 만들어야 한다는거
내 답글에 대한 니 답글에다가 내가 반박을 했나?
나는 이렇게 이해했었는데 아니었나보다 라고 했지
거기에다가 대고 니는 뭐라고 했음? '근데 집행기관이 그걸 안쓰는데 준비하든말든 뭔상관임ㅋㅋㅋ' 이라고 한 거 너 아님?
그 상태에서도 내가 '그렇다면 그 수단을 쓰게 만들어야 한다' 는 식으로 이야기하니까
'뭔 수로 쓰게 만드냐' 라고 한건 너 아니냐고
주장에 대해 다른 관점을 적용하고 싶으면 말이라도 곱게하던가
'니 주장은 어차피 불가능할텐데' 라는 식으로 이야기하면 내가 뭐 곱게 '아이고 내 주장은 어차피 안되겠구나' 라고 해줘야됨?
꺼라위키에서 소개하는 내용이긴 한데
혹시 원천봉쇄의 오류에 대해 들어본 적 있냐
"어떤 특정 주장에 대한 반론이 일어날 수 있는 유일한 원천을 비판하면서 반박 자체를 막아 자신의 주장을 선제적으로 변호하고자 하는 비형식적인 논리적 오류의 일종이자 방어기제, 변호와 맥락을 같이하는 것으로 엄밀히 말하면 불공정한 전략으로 평가를 받고 있다"
라고 하는데
필요성의 존재에 대한 이야기에 필요성의 충족이 불가능함을 이야기하는 것은
필요성에 대한 반론이 일어날 수 있는 원천을 비판해서 반박 자체를 막는다는 거 아니냐?
자, 정리하자?
1. 니가 이해한게 맞음. 벌금도 행정처분도 전부 50만원으로 퉁쳐짐
2. 애시당초 "제도가 있는데 제도가 안지켜지는 상황 을 제도로 보강한다"는 헛웃음이 나오는 주장을 꺼낸건 너임
그래서 계속 묻잖아. "어떻게" 지키게 할거냐고?
자기홀극 같은 엉터리 난제에 도전한건 너지 내가 아님
내 첫번째 주장인 '수단의 필요' 가 '수단은 이미 존재하며, 그것이 시행이 되지 않는다' 로 반박되었을 때
내 두번째 주장으로' 그렇다면, 그 시행을 강제해야 할 수단이 필요하다' 로 바뀌었을 때
그 주장에 대해 '그 필요성을 충족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라고 했다면 결국 니 의견은 '시스템의 수정의 필요성을 논하는 것은 불필요한 짓이다' 가 되는 거 아니냐고
그럼 그게 시비거는 게 아니고 뭐임?
남의 논지, 주장을 필요없는 것 취급하는건데?
또한, 문제는 발생했고, 문제에 대한 해결법의 필요성에 대한 논의에 있어서
그 해결은 불가능하므로 필요성의 충족은 불가능하며, 따라서 필요성의 존재에 대한 논의는 불필요하다는 식의 이야기를 한다면
그럼 결국 니 답은 '따라서 문제를 해결하려면 시스템을 붕괴시키던가, 아니면 문제를 방치하던가' 가 되는거 아님?
문제 해결책에 대한 필요를 논의하는 쪽한테 시스템 박살낼 거 아니면 손가락이나 빨고 있으라는 이야기가 시비거는게 아니면 뭐임?
아니 내가 해결책을 뭘 제시를 한 것도 아니고
그 해결책이 엉터리거나, 혹은 잘못 적용될 여지가 있는 그런것도 아니고
문제애 대한 해결책이 필요한다라는 쪽에, 아니 뭐 그래 '그게 불가능하다' 라고 이야기할 수는 있지
근데 '니 논의는 불필요한 논의다' 라는 식으로 이야기하면 그게 시비거는게 아니게 된다고?
1. 불가능한걸 논의하면 자동적으로 불필요한 논의 아님?
불가능한걸 논의했는데 불필요하지 않은 논의의 예가 있나?
2. 시스템을 부수라고는 안했음. 시스템을 부수는게 아니라, 민중의 힘으로 해당 인자를 직접 끌어내 축출하는게 유일한 답이고 그 축출이 정상적으로 기능할 여지가 있는 상황이기만 하면 현행 제도(만화속 기준)로도 문제없다니까? 초법적 개짓거리에 초법적 개뚜드림이 주어지는 상황이면 됨
2-1. 근데 다시 생각해보니 결국 민중의 초법적 응보를 다시 형법이 때려눕히려들테니 민중이 형법마저 깨부수거나 해야만 이야기가 성립하니 시스템을 부숴야 하긴 하겠네
해결책은 있다니까요 일단
근데 그건 절대로 니가 생각한 제도적인 뭔가로는 안됨. 제도적 해결책은 실현이 불가능하고 따라서 "그런 발언에는 의미가 없음"
무슨 히토미 만화처럼 린치 합법화 같은 꼴이 나면 몰라
그건 그것대로 다대한 문제가 생기겠지
없어 응 없어. 제도적으로는 뭘 못해
그러니까 지금 그 필요성은 불가능함에 대한 필요성이라고 주장하는 그 자체가 원천봉쇄의 오류이며
그 필요성에 대한 논의를 불필요한 논의라고 말하는 거 자체가 시비거는거라고
내가 이 글에다가 '그래서 이런 문제에 대해 제시해봐야 변하는거는 힘들거고 실제로 아무것도 바뀌지 않았는데' 라고 하면 그건 시비거는게 아니게 됨?
아니 지금 내가 뭐에 불타는건지 이해를 못하는 거 같은데
나는 '고르디우스의 매듭이 있으니 이걸 풀어야 한다' 라고 했고
니는 지금 '그걸 푸는 방법은 매듭 자체를 잘라버리는 것이다' 라고 하고 있는거임
문제를 해결할 방법이 필요하다라고 말하는데
거기다가 문제 자체를 파괴해야한다라고 하면 그게 답이냐고
횃불과 괭이, 혁명, 시스템의 파괴로 해결 되겠지, 그걸 내가 부정하는 게 아님
니가 지금 착각하는게 나한테 지금 무슨 멋진 방법이 있어서 그걸 부정하는 게 아니라고
내 주장에 있는건 그냥 단순한 '문제가 있으며, 해결해야 한다' 이거 뿐임
그리고 거기에 대해서 '문제의 해결은 혁명 뿐이다' 라는 결론은 문제를 해결하는 게 아니라 문제를 파괴하는거고
문제를 파괴해도 문제는 없어지겠지
근데 그게 해결한거임?
그래 까놓고 말해서 혁명으로 다 치운다고 하자
그거밖에 방법이 없다고 치면
그럼 그 다음은 뭘 어떻게 할건데?
'문제를 해결할 해결책이 필요하다' 라는 주장에다가
'문제의 해결이 불가능하다' 라는, 따지고 보면 논의의 다음 스텝에서 제안되어야 할 이야기를 '사실이니 마땅히 할 수 있는 이야기이며 시비거는 것이 아니다' 라고 주장했으니
'혁명을 통해 시스템을 파괴한 다음엔 어떻게 할 건가?' 라는 이야기에 니가 생각한 답이 있겠지?
나한테 답은 없음 애초에 난 니가 나한테 말하는 전개 방식 자체가 옳다고 동의하지 못하겠으니까
니가 전개하는 이야기 방식이 옳다고 여긴다면 너도 혁명 다음을 생각해뒀겠지?
나한테 답은 없음
나는 필요성을 주장했을 뿐임
너는 사실로써 답을 제시한다고 스스로 생각하고 있겠지만
그건 그냥 문제를 파괴하는 것만이 답이라고 이야기했을 뿐이며
최소한 거기서 멈추는 게 아니라 '그것은 필요없는 논제다' 라고 이야기하고 있음
그러한 논리 전개가 옳으며 필요성을 주장하는 이는 마땅히 그 다음을 준비해야 한다고 여긴다면
니가 말하는 혁명과 그것을 통한 문제의 파괴 다음을 너도 생각해 뒀겠지?
나는 그러한 논리 전개를 옳다고 여기지 않으니 주장 그 자체로도 주장의 논리 자체는 완결되었다고 보는데
너는 그러한 논리 전개를 옳다고 여기니까 주장 그 자체로는 완결되지 않으며 다음 주장에 대한 논리가 있어야 한다고 보는거겠지?
자 보세요
길게 말씀하신거 읽었는데요, 그렇기에 조금 우울한 이야기를 할게요?
우리 모두가(최소한 대다수가) 죽음은 나쁘고 어떻게든 죽는 사람을 줄이고 싶어합니다
하지만 결국 인구수만큼의 죽음은 빠르건 늦건 찾아오는게 현실이예요. 초과학 초기술력이 있어서 탤로미어를 갈아치우든 의식을 스토리지에 전송하든 엔트로피가 버티고 있는이상 우리는 설사 수억년이 걸리더라도 죽고 말아요
"좀더 길게 살게 한다"는 수단이라면 얼마든지 있겠죠. 하지만 죽음을 해결할 수는 없습니다. 자, 그럼 "죽음은 나쁘니 해결해야 한다"는 명제에 의미가 있습니까?
아 물론 나는 당신의 말대로 문제 자체의 파괴에 일가견이 있는 사람입니다. 가령, 죽음은 나쁘니 지금 당장 모두 죽어버리면 적어도 현 지구 인구수만큼의 사망으로 죽음이 그친다거나 하는 주장 말이죠
이 결론을 좋아하든 말든(저도 이 결론은 별로 취향이 아닙니다) 우리는 이 다음 논의가 가능합니다. 가령, 정말로 백년 후 후손 수억명의 죽음을 더 끌고가면서까지 인류를 유지하는 대신 지금 전부 죽는게 가치가 있는가 그 가치란 무엇인가 등등등등등등
근데 불가능한 명제에 매달려서 "죽음을 해결해야 한다"고 던져버리면 거기서 이야기는 더 나아갈 수가 없어요
무의미하다고요
존대를 사용하시니 존대로 답해드리겠습니다만
'죽음' 이라는 현상을 비유로 드셨는데
죽음이라는 현상은 당신이 던진 논제에 비교대상이 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죽음은 그 현상이 발생하는 것 자체는 문제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당신이 제시한 사회문제는 그 발생 자체가 문제입니다. 왜나하면, 저 현상이 발생한다는 것 자체가 자본을 견제하는 시스템이 제대로 굴러가고 있지 않는다는 뜻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죽음은 그것이 발생하는 현상 자체는 문제가 아닙니다. 문제가 된다면, 죽음과 엮인 주변인들과 그 다음이 문제죠.
죽는 사람을 줄인다는 것은 죽음이라는 현상 자체를 제거하는 해결이 아닙니다. 죽음이라는 현상을 미루고 또한 그것이 야기하는 구성원들간의 혼란 및 고통을 경감하기 위한 해결이지.
그러나 자본의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것은 저 현상의 발생을 제거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사회의 시스템이 제대로 굴러가야 시스템에 대한 신뢰도를 얻을 수 있으며, 그것에 실패할 경우 사회에 대한 신뢰도는 떨어지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죽음은 자본에 의한 사회문제에 대해 비교할 수 있는 주제가 되지 못합니다.
그러므로 애초에, 제 주장은 '죽음을 해결해야 한다' 는 주장이라고 단어를 치환해서 말할 수 없습니다.
이것을 치환해서 말할 수 있다고 인지하신다면, 당신이 '이것은 해결 불가능한 문제' 라고 단정짓고 있기 때문에 그렇게 인지하는겁니다.
그런데, 해당 문제의 해결 불가능성은 해결하기 어려운, 사실상 해결 방법이 보이지 않는 수준에 이르는 것일 뿐이지 '죽음' 이라는 자연적이고 필연적이며 그 현상을 맞이하는 개인에게 있어 그 다음이 있는지 없는지조차 알 수 없는 어떠한 종류의 '끝' 이 아닙니다. 물론 해당 문제를 제도적으로 해결할 수 어렵다는 당신의 주장은 틀리지 않습니다. 모든 종류의 권력은 모든 종류의 다른 권력과 야합하기 쉬우며, 그 목적은 스스로의 권력을 공고히 하기 위함입니다. 사람에게 욕심이 있는 한 이러한 종류의 문제는 끊임없이 발생할 것이며 그렇기 때문에 제도적으로 해결하기 어려움이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어려운 문제' 이지 '불가능한' 문제라고 빗대는 것은 성급하게 단정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특히 '죽음' 에 빗댈 수 있을 정도의 불가능성을 함유한다고 생각하신다면 그것은 엄연히 성급한 판단이라고 말하겠습니다.
만약 당신이 죽음을 어떠한 해결이 불가능하다고 볼 수 있을 정도로 어려운 종류의 문제로 봤고, 죽음은 매우 해결이 어려우므로 그걸 해결해야 한다는 주장이 의미없다고 이야기하신다면, 그것의 '해결에 대한 필요성' 을 주장하는 것이 왜 의미없습니까? 그것의 필요성이 너무 많이 주장되어 있기 때문에 그 이상의 주장이 필요하다는 식이라면 납득하겠습니다만, 그것이 '의미없기 때문에' 불필요하다는 식의 주장은 납득할 수 있는 논리 전개가 아니라고 말하겠습니다.
죽음의 원인에 대한 회피, 혹은 해결 방안을 죽음이라고 이야기하신거라면, 이미 사람들은 그것의 해결에 대한 필요성을 성토하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불치병, 혹은 난치병에 대한 치료법이 개발되기를 소망하며 또한 사지가 불구가 된 이들이 정상적으로 생활할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불치병이라고 해서, 신체의 소실이 회복될 수 없다고 해서 그것에 대한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포기해야 합니까? 지금 제가 불타는 것에 빗대서 이야가하면, '그것이 필요하다' 라고 하는 것 조차 함구해야 합니까? 그 방법을 생각해낼 수 없다면?
'불가능한 명제에 매달려서 해결해야 한다고 던져버리면 더 나아갈 수 없다' 고 하셨는데, 왜 나아갈 수 없습니까? 맬서스 트랩이 제시되었을 때 멜서스는 이 문제는 사람을 줄이지 않는 이상 해결 불가능하다고 봤었을 겁니다. 그 주장에 대해 모든 사람들이 동의하여 하버-보슈 질소 고정법을 이용해 질소비료를 얻어낸다는 아이디어를 통해 식량생산을 폭발적으로 증가시키지 못했다면 과연 멜서스의 생각대로 되었겠죠.
현재 상황에 불가능하기에 그 원인을 파괴해야 한다는 결론은 나올 수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멜서스는 멜서스 트랩을 제안했습니다. 문제의 해결의 불가능성은 그 자체로 그 문제의 심각성을 배가시킵니다. 문제의 해결이 힘들다면 그 문제는 언제고 우리의 목을 죄여 올 것이기 때문입니다. 또한, 그러한 문제의 불가능성을 외면하여 어처구니없는 해결책을 내세우는 것 또한 지양해야 합니다. 해결책이 제대로 돌아가지 않았을 경우, 그 해결책을 시행하기 위한 자원, 시간 등의 비용이 소모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러한 문제에 대한 해결책을 필요로 하는 논의를 비효율적이라 말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해결책을 필요로 하는 논의란 문제를 문제로써 인식하는 논의이기 때문입니다. 심지어 앞서 말씀드렸던 멜서스 트랩의 예시에서조차 '사람들을 줄여야 한다' 는 멜서스 나름의 해결책은 멜서스 트랩의 해결책이었지 멜서스 트랩 자체가 아닙니다.
저는 이 문제의 해결이 어렵다는 데 동의하며, 그 이유는 사람들의 욕심이 존재하기 때문이라고 여깁니다. 사람에게서 욕심을 제거할 수 없으므로, 욕심이 가속화하는 것을 다른 사람들의 집합체, 사회적 시스템 등으로 견제할 수 있어야 합니다. 법은 엄정해야 하며, 자본으로 움직일 수 없어야 합니다. 지금까지의 시스템이 그러한 문제를 해결할 수 없었다면, 그러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방법과 제도 생각해야 합니다. 어쨌든 문제는 문제이고, 문제는 해결해야 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문제가 해결이 불가능하다고 판단하기 때문에 그 문제를 파괴하는 것만이 답이며 문제의 해결책을 단지 '필요' 로 하는 제안에 있어 의미없고, 나아갈 수 없는 제안이라고 주장한다면 그것은 '해결 불가능하기 때문에 문제는 없는 것이다' 라는 주장이 되어버립니다.
당신은 당신이 문제를 제시해놓고
이에 대한 이해와 해결의 필요성을 주장하는 사람에게
문제의 해결은 불가능하며 문제는 파괴될 뿐 해결의 시도는 무의미하다
라고 말 한 것이라고요.
심지어 제 주장은 해결책이 필요하다 였을 뿐인데.
설령 무의미하다고 한 들, 문제의 인식마저 무의미하겠습니까? 아니죠. 문제를 문제로써 인식하는 한 당신 말대로 무의미한 논쟁이 되는 일은 없을 겁니다. 오히려 '혁명을 통한 문제의 파괴'로 인해 문제를 인지하지 못하게 됬을 때 언젠가, 물론 다르지만 비슷한 문제가 발생하기 마련이겠죠. 공산주의가 괜히 부패했겠습니까? 자본주의의 문제가 자본의 권력을 견제하지 못해서 사회가 자본에 이끌려다니기 때문에 발생하듯, 공산주의의 문제 또한 초법적 행정기구의 권력을 공산주의의 인민이 견제하지 못하기 때문에 국가가 행정부 수반에 휘둘리기에 발생합니다. 문제의 인지는 중요하며, 오히려 당신이 말한 것처럼 혁명을 통해 문제 그 자체를 파괴하여 치워버리는 것 이상으로 핵심적입니다. 설령 혁명을 통해 문제를 파괴하더라도 그 문제의 발생 가능성은 언제나 염두에 두어야 합니다. 공산주의의 전철을 밟기 싫다면 말입니다.
앞서 말했듯 이 문제의 해결에 있어 정말로 방법이 없고 혁명밖에 답이 없다면, 시스템을 무너트려 문제를 파괴하고 그러한 문제가 발생하지 않을 것 같은 시스템을 재구축하는 것 외에는 답이 없다고 해도, 그러한 사실이 '필요성에 대한 주장' 에 대한 반박이 되지 못합니다. 필요성에 대한 주장은 문제의 인식과 동시에, 혹은 직후에 발생하는 논의입니다.
1.문제가 존재하는가?
2.문제를 해결해야 하는가?
3.문제의 해결책은 적절한가?
로 나누었을 때 2번에 해당한다고요. 2번의 논의가 완료된 다음에 3번의 논의가 진행되어야 합니다. 해결책의 제시는 엄연히 3번에 해당하는 논의이며, 이러한 논의에서 제안되어야 할 혁명의 필요성은 2번의 논의에서 제안되더라도 논지에 맞지 않습니다. 제가 초반에 당신에게 '뭘 원하는거냐' 라고 했죠. 왜 그랬겠습니까? 그냥 제가 멍청해서 그랬을까요?
마지막으로 '어떻게' 보완제도를 만들 것이냐? 라는 당신의 질문에 대해서
'이 문제에 대한 해결책이 필요하다' 는 결론에 모두 동의하고
이러한 문제에 대한 해결책은 어떻게 생각하는가? 에 대해서 이야기하겠습니다.
앞서 말했듯 이 문제의 본질은 사람이 욕심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발생합니다. 사람이 욕심이 있기 때문에 끊임없이 스스로의 권력을 불리려고 하며, 자본주의에서는 자본이 권력을 대행하기 때문에 시스템의 형태로 견제되어야 할 자본이 견제받지 않고 시스템을 휘두릅니다. 게임스탑이라는 이름으로 알려진 이슈에서 자본가들은 자신들이 위기에 처하자 시스템을 수정하기에 이릅니다. 당신이 올린 글에서, 개인의 욕심을 자본을 이용해 충족시킴으로써 형벌으로써 내려졌어야 할 자본의 회수를 비용 수준으로 절감시켰습니다.
문제의 해결은 당신이 말한 대로 일종의 혁명, 그리고 권력에 대한 끊임없는 감시와 견제의 활성화입니다. 또한 이러한 감시와 견제는 자본으로부터 자유로워야 하며 자본 이외의 동기가 존재해야 합니다. 그러한 동기는 명예욕이나 사회 윤리 등으로 충족될 수 있다고 개인적으로는 여기지만 가능성에 대해서는 확신할 수 없습니다. 또한, 혁명의 결과로써 만들어진 공산주의가 결국에는 권력의 부패를 방지하지 못한 사례로 미루어 보아 이러한 해결책이 얼마나 갈 지도 예상할 수 없습니다.
그렇다 하더라도, 이러한 문제가 발생하고 있으며, 또한 해결하더라도 언제든지 발생할 수 있으므로 문제를 끈임없이 인지해야 합니다. 일단 문제를 인지하고 있어야, 그러한 필요성을 느끼고 있어야 문제가 재차 발생하고 해결 불가능해졌을 때 다시 해결책이 고안 및 실행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문제의 해결책의 필요성을 인지하는 것은 문제 자체의 인지라는 측면에 있어서 중요합니다. '해결할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해라' 라는 이야기를 해결책 필요성이라는 논지에 빗대는 것이 시비거는 것에 불과한 것은 그래서입니다. '해결할 수 없다면, 그것은 문제가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가 되어버리기 때문입니다.
시비걸려고 물어보는 거 같냐고요?
네. 시비거는가 같아서 물어보는것 같습니다.
아니라고 생각한다면, 당신의 논지가 문제의 인지와 해결의 필요 단계에서 필요한 논지인지 생각해 보시고요.
지금도 노동자가 분신■■해도 안바뀔세상임 그냥 우리는 이렇게 사라지고 아라서 잘해보라고 할수밖에 없음 애키우는 부모님들은 피눈물나겠지만 그럼 바꾸자할때 바꿧어야지 자신이 참고 돈벌어다 집에가져가면 나아질거라고 생각하겠지만 자식은 나보다 더 힘들어지고 저 사고난 노동자가 내새끼가 될수있다는걸
진실이라기엔 작가 의도랑 많이 안 맞네.
작가는 단순히
가난하고 약자고 노동자라 선
돈많고 부자에 고위직이라 악
이런 구도로 그리지 않았음.
3부까지야 좀 그런 분위기가 있었지만
4부 이후부터 다양한 시점을 보여줌
당장 저 부사장만 해도 단순히 위법 저지르니까 개객끼 식으로 해석하는건 작품의 의도를 왜곡해서 전달하는거라 생각해.
그 매니저는 이후 이수인이
그건 변명일 뿐이고 원래 니가 그런거다라고 말하지만
이수인은 자기 정의를 관철하느라 가저에 소홀하기도 했고 이를 부사장이 챙겨주기도 하고
노무사도 목적을 위해서라면 수단방법 가리지 않는 모습을 보여주는등
그들도 딱히 선이 아니라는
관점을 보여주잖음
돈주고 룸에서 아가씨 불러준다 = 착한 사람 반성문 쓰고 나한테 무릎 꿇고 빈다 = 착한 사람 당한 사람 = 병1신임? 왜 당함? 너 유죄
우리나라 옛날에 그랜드마트나 까르프가 한게 딱 저거임 지들 나라에서는 안그러던 짓을 한국에서는 함 그래도 되는 나라니까
저 만화 자체가 까르푸 이야기니까
송곳 배경도 까르프 아니어씀?
그레이트 개색기가 아니라 그렇게 하는게 관습인데 어쩔tv저쩔tv ㅋㅋㅋㅋ
그리고 저 이후 프랑스출신 정신줄잡고있던 상사는 코리아스타일 타락에 들어갔다
그레이트 개색기가 아니라 그렇게 하는게 관습인데 어쩔tv저쩔tv ㅋㅋㅋㅋ
개작두
돈주고 룸에서 아가씨 불러준다 = 착한 사람 반성문 쓰고 나한테 무릎 꿇고 빈다 = 착한 사람 당한 사람 = 병1신임? 왜 당함? 너 유죄
판사로직 1. 전관 고용한 범죄자 = 착한사람 2. 국선변호인 쓰는 고소인 =나쁜사람
이 만화 꽤 불편한 내용들이었지 ㅜ ㅜ...
사회고발에 가까웠으니
꽤 수작이라고 생각하는데, 상업적으론 그래서 외면 당했다는 평이라 아쉬움.
그래서 사람들이 좋은 작품이라고 말은 하지만 챙겨서 보지는 않았던 걸로 기억함.
원래 이 작가 그리는 만화가 이런 느낌임
이 작품은 드라마로 보는게 훨씬 나음. 만화 완결나기 전에 드라마가 완결났는데 미리 결말을 이야기해서 만든 내용이라 그런지 결국 비슷한 내용에 만화보다 더 깔끔했다고 생각함. 하지만 드라마라 그런지 불편한 내용이 훨씬 더 불편하게 느껴진다..
우리나라 옛날에 그랜드마트나 까르프가 한게 딱 저거임 지들 나라에서는 안그러던 짓을 한국에서는 함 그래도 되는 나라니까
루리웹-5669627383
송곳 배경도 까르프 아니어씀?
루리웹-5669627383
저 만화 자체가 까르푸 이야기니까
벌금은 물가인상 영향안받나
개네도 할말은 많을껄..국내 기업들이 로비 엄청해서 외국 브랜드에게 직간접 불이익 계속 줘서 특히 90년대는 진짜 이래도 안 나가? 수준
저거 보면 알겠지만 외국인이 첨엔 원칙대로 하려다가 시궁창같은 현실을 보고 흑화함..
회사입장에선 최고의 직원이네
한국에서는
그리고 저 이후 프랑스출신 정신줄잡고있던 상사는 코리아스타일 타락에 들어갔다
내가 제조업 다니는데 저게 맞음 ㅋ 아직도 저게 코리안 스타일 임
이후로도 ㄱㄱㄱ임...
이런넘이 칼맞고 죽어야 세상이 좋아지겠지만 그럴세상이면 진즉 변했음
20년이 지난 오늘날에 그랬다면, 저 외국인 부장이 옳았을까? 아니면 지금도 현재진행형인 문제일까.. 어렵다. 법에 충실하자며 밀어붙였어도 눈새 취급 받을지도 모르잖아..
지금도 검판새 이미지 생각하면 다를게 없을듯
근데 정작 까르푸는 한국화에 실패해서 문닫고 나갔으니 아이러니지.
현재진행형인 문제라고 생각함 기본적으로 벌금이 형벌이자 꼬리표가 아닌 장사에서 지출되는 코스트처럼 여겨진 게 어제오늘 일이 아닌지라
지금도 그대로인데 뭘 ㅋㅋㅋㅋ
심지어 저런 범칙금? 과징금 같은거 떠도 항의하거나 합의하면 할인됨 ㅋㅋㅋ
원가혁신이었네!
벌금이 형벌이 아니라 코스트로 취급되니까 저런 일이 발생하는거라고 생각함 벌금은 기본이고 자본으로 처리할 수 없는 형벌사항이 준비되어야 하지 않나 싶음
※당장 만화에도 그건 있었다. 영업정지처분
그건 미국 같은곳도 똑같아서 걍 자본주의 특 같음
영업정지처분도 벌금 50으로 퉁쳐진거라고 이해했는데 그건 아닌가보넹
이태원 해밀턴 호텔이나, 명동 화교학교 옆 노점상들 마인드가 딱 그거.
ㅇㅇ 그렇지 근데 특징이 단점이 아니라는 보증이 없듯이 자본주의의 이러한 특징은 명백한 단점으로 취급되어야 하지 않나 싶음
아니 형벌사항이 준비되어야 한다며 준비는 다 돼있지 근데 집행기관이 그걸 안쓰는데 준비하든말든 뭔상관임ㅋㅋㅋ
멜서스 트랩의 논리가 식량은 산술급수로 증가하는데 사람은 기하급수로 증가하니 사람을 줄여야 한다 였는데 자본과 벌금의 관계도 비슷할 거 같음 범죄를 저지를 수 있는 한 주체가 가질 수 있는 자본은 기하급수적으로 상승하는데 벌금의 계산은 산술급수식으로 증감되니 결국 벌금이 자본력에 대한 형벌이 아니라 자본활동에 대한 코스트화되는 상황이 도래한 것
그러니까 그게 벌금으로 퉁쳐져서 발생한 문제고 벌금을 얼마를 냈든 접대를 얼마를 했든 일단 자본으로 처리 못하는 형벌, 위 만화상에서는 영업정지처분같은 행사를 강제할 뭔가가 있어야 한다는거라고 생각함 집행기관이 그걸 안쓰는 게 문제니 집행기관이 그걸 쓰게 만들어야 한다는거
중대법만 봐도 참...
아 어떻게 하냐고 그걸ㅋㅋㅋㅋㅋ 시빌라 시스템 깔거 아닌데 샤바샤바 초법 밀실거래를 무슨수로 막아ㅋㅋㅋㄱㅋ
아니 그러니까 그 방법을 마련해야 한다는거지 방법을 마련해야 할 것 같다는 이야기에 그런 식으로 말하면 내가 뭐 어떻게 반응해야 함?
"아 자석이랑 자석을 반잘라서 여기만 N극인 물체를 만들고 싶은데" 영업정지처분같은 행사를 강제할 뭔가=자기홀극 있으면 좋겠는데 그런건 안타깝게도 발견되지 않음 엄밀히 말하자면 있긴 한데.... 그건 낫과 괭이와 횃불임 제도적으로 막는건 불가능함
그러니까 너는 지금 어차피 제도적으로는 못막을거니까 시스템을 무너트려야 한다는 대답을 원했던거네?
답을 정해놓고 물어보는것도 물어보는건데 어차피 니가 필요로 한다고 주장하는 것을 마련하는것은 불가능하다고 말하는거는 시비거는거 아니냐? 보통 이런게 답정너 아님?
아니면 시스템을 수정하는게 불가능하니 현재 상황을 수정할 생각하지 말고 손가락이나 빨고 있어라는 대답을 원했던거임? 도데체 뭘 원하는거임?
반대로 언제라도 민주주의의 근간인 낫과 괭이와 횃불이 나설 수 있는 상태를 유지할 수 있다면 정책 추가는 별로 필요없고 만화 속의 제도로 충분하지만 말이지....
뭘 원하긴 "현재도 시스템상 최소한의 구색은 되어있다"고요 아저씨 니가 바라는 영역까지 가고싶으면 붓다랑 알라한테 빌어야 되고
아니 필요성의 존재에 대해 이야기하는데다가 그 필요성의 충족의 불가능성에 대해 이야기하면 그건 시비거는게 아니고 뭐겠냐고 시스템상 최소한의 구색이 되어 있다면 그 시스템이 제대로 굴러가지 않는 게 문제가 될 뿐인거고 시비거는 걸 원함?
내 답글에 대한 니 답글에다가 내가 반박을 했나? 나는 이렇게 이해했었는데 아니었나보다 라고 했지 거기에다가 대고 니는 뭐라고 했음? '근데 집행기관이 그걸 안쓰는데 준비하든말든 뭔상관임ㅋㅋㅋ' 이라고 한 거 너 아님? 그 상태에서도 내가 '그렇다면 그 수단을 쓰게 만들어야 한다' 는 식으로 이야기하니까 '뭔 수로 쓰게 만드냐' 라고 한건 너 아니냐고 주장에 대해 다른 관점을 적용하고 싶으면 말이라도 곱게하던가 '니 주장은 어차피 불가능할텐데' 라는 식으로 이야기하면 내가 뭐 곱게 '아이고 내 주장은 어차피 안되겠구나' 라고 해줘야됨?
??? 제도적 원천차단 불가능성에 대해 얘기하는게 왜 시비냐 너한테는 사실을 사실대로 말하면 시비로 들리는 증후군이라도 있니 불가능하지 않다고는 한마디도 못하고 있잖아 너도
꺼라위키에서 소개하는 내용이긴 한데 혹시 원천봉쇄의 오류에 대해 들어본 적 있냐 "어떤 특정 주장에 대한 반론이 일어날 수 있는 유일한 원천을 비판하면서 반박 자체를 막아 자신의 주장을 선제적으로 변호하고자 하는 비형식적인 논리적 오류의 일종이자 방어기제, 변호와 맥락을 같이하는 것으로 엄밀히 말하면 불공정한 전략으로 평가를 받고 있다" 라고 하는데 필요성의 존재에 대한 이야기에 필요성의 충족이 불가능함을 이야기하는 것은 필요성에 대한 반론이 일어날 수 있는 원천을 비판해서 반박 자체를 막는다는 거 아니냐?
자, 정리하자? 1. 니가 이해한게 맞음. 벌금도 행정처분도 전부 50만원으로 퉁쳐짐 2. 애시당초 "제도가 있는데 제도가 안지켜지는 상황 을 제도로 보강한다"는 헛웃음이 나오는 주장을 꺼낸건 너임 그래서 계속 묻잖아. "어떻게" 지키게 할거냐고? 자기홀극 같은 엉터리 난제에 도전한건 너지 내가 아님
내 첫번째 주장인 '수단의 필요' 가 '수단은 이미 존재하며, 그것이 시행이 되지 않는다' 로 반박되었을 때 내 두번째 주장으로' 그렇다면, 그 시행을 강제해야 할 수단이 필요하다' 로 바뀌었을 때 그 주장에 대해 '그 필요성을 충족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라고 했다면 결국 니 의견은 '시스템의 수정의 필요성을 논하는 것은 불필요한 짓이다' 가 되는 거 아니냐고 그럼 그게 시비거는 게 아니고 뭐임? 남의 논지, 주장을 필요없는 것 취급하는건데?
'그것은 자기홀극같은 엉터리 난제이다' 라고 하면서 필요성의 존재에 대한 논의를 불필요한 것 취급한 건 넌데? 그게 시비가 아니라고?
또한, 문제는 발생했고, 문제에 대한 해결법의 필요성에 대한 논의에 있어서 그 해결은 불가능하므로 필요성의 충족은 불가능하며, 따라서 필요성의 존재에 대한 논의는 불필요하다는 식의 이야기를 한다면 그럼 결국 니 답은 '따라서 문제를 해결하려면 시스템을 붕괴시키던가, 아니면 문제를 방치하던가' 가 되는거 아님? 문제 해결책에 대한 필요를 논의하는 쪽한테 시스템 박살낼 거 아니면 손가락이나 빨고 있으라는 이야기가 시비거는게 아니면 뭐임?
아니 내가 해결책을 뭘 제시를 한 것도 아니고 그 해결책이 엉터리거나, 혹은 잘못 적용될 여지가 있는 그런것도 아니고 문제애 대한 해결책이 필요한다라는 쪽에, 아니 뭐 그래 '그게 불가능하다' 라고 이야기할 수는 있지 근데 '니 논의는 불필요한 논의다' 라는 식으로 이야기하면 그게 시비거는게 아니게 된다고?
아니면 어떻게 지키게 할 거냐는 니 질문에 대해서 내가 뭐 섣불리 뭐라도 생각해서 이야기했었어야 함? '문제의 해결은 요원하며 해결책을 생각해야 한다는 주장은 필요 없는 논지다' 는 결론에 대해 동조하라고?
1. 불가능한걸 논의하면 자동적으로 불필요한 논의 아님? 불가능한걸 논의했는데 불필요하지 않은 논의의 예가 있나? 2. 시스템을 부수라고는 안했음. 시스템을 부수는게 아니라, 민중의 힘으로 해당 인자를 직접 끌어내 축출하는게 유일한 답이고 그 축출이 정상적으로 기능할 여지가 있는 상황이기만 하면 현행 제도(만화속 기준)로도 문제없다니까? 초법적 개짓거리에 초법적 개뚜드림이 주어지는 상황이면 됨 2-1. 근데 다시 생각해보니 결국 민중의 초법적 응보를 다시 형법이 때려눕히려들테니 민중이 형법마저 깨부수거나 해야만 이야기가 성립하니 시스템을 부숴야 하긴 하겠네
해결책은 있다니까요 일단 근데 그건 절대로 니가 생각한 제도적인 뭔가로는 안됨. 제도적 해결책은 실현이 불가능하고 따라서 "그런 발언에는 의미가 없음" 무슨 히토미 만화처럼 린치 합법화 같은 꼴이 나면 몰라 그건 그것대로 다대한 문제가 생기겠지 없어 응 없어. 제도적으로는 뭘 못해
그러니까 지금 그 필요성은 불가능함에 대한 필요성이라고 주장하는 그 자체가 원천봉쇄의 오류이며 그 필요성에 대한 논의를 불필요한 논의라고 말하는 거 자체가 시비거는거라고 내가 이 글에다가 '그래서 이런 문제에 대해 제시해봐야 변하는거는 힘들거고 실제로 아무것도 바뀌지 않았는데' 라고 하면 그건 시비거는게 아니게 됨?
생각해보니까 웃기네 이 글 니가 쓴거잖아 니가 문제를 제시한거 아님? 그 문제에 대한 나름의 이해, 그리고 그 문제에 대한 해결책의 필요성을 언급하는데다가 시스템 부술 거 아니면 해결 못함 이러고 있으면 그게 말임?
왜냐면 실제로 아무것도 바뀌지 잃았고 변하는것도 힘들지? 댓글들 상당수가 바로 그 얘기중임 그들 누구도 시비걸고 있다고는 생각안함
왠지알아? 사실이거든 사실을 사실로 말하는건 시비거는게 아니라 사실임
? 반대지 시스템을 부수면 해결이잖아 혁명의 필요성으로 귀결되는 흐름이지 아니면 니가 말한 그 멋진 제도보완제도를 구체적으로 설명해주면 됨. 그게 가능하다면 횃불과 괭이의 차례는 안와도 되거든
아니 지금 내가 뭐에 불타는건지 이해를 못하는 거 같은데 나는 '고르디우스의 매듭이 있으니 이걸 풀어야 한다' 라고 했고 니는 지금 '그걸 푸는 방법은 매듭 자체를 잘라버리는 것이다' 라고 하고 있는거임 문제를 해결할 방법이 필요하다라고 말하는데 거기다가 문제 자체를 파괴해야한다라고 하면 그게 답이냐고 횃불과 괭이, 혁명, 시스템의 파괴로 해결 되겠지, 그걸 내가 부정하는 게 아님 니가 지금 착각하는게 나한테 지금 무슨 멋진 방법이 있어서 그걸 부정하는 게 아니라고 내 주장에 있는건 그냥 단순한 '문제가 있으며, 해결해야 한다' 이거 뿐임 그리고 거기에 대해서 '문제의 해결은 혁명 뿐이다' 라는 결론은 문제를 해결하는 게 아니라 문제를 파괴하는거고 문제를 파괴해도 문제는 없어지겠지 근데 그게 해결한거임? 그래 까놓고 말해서 혁명으로 다 치운다고 하자 그거밖에 방법이 없다고 치면 그럼 그 다음은 뭘 어떻게 할건데? '문제를 해결할 해결책이 필요하다' 라는 주장에다가 '문제의 해결이 불가능하다' 라는, 따지고 보면 논의의 다음 스텝에서 제안되어야 할 이야기를 '사실이니 마땅히 할 수 있는 이야기이며 시비거는 것이 아니다' 라고 주장했으니 '혁명을 통해 시스템을 파괴한 다음엔 어떻게 할 건가?' 라는 이야기에 니가 생각한 답이 있겠지? 나한테 답은 없음 애초에 난 니가 나한테 말하는 전개 방식 자체가 옳다고 동의하지 못하겠으니까 니가 전개하는 이야기 방식이 옳다고 여긴다면 너도 혁명 다음을 생각해뒀겠지?
나한테 답은 없음 나는 필요성을 주장했을 뿐임 너는 사실로써 답을 제시한다고 스스로 생각하고 있겠지만 그건 그냥 문제를 파괴하는 것만이 답이라고 이야기했을 뿐이며 최소한 거기서 멈추는 게 아니라 '그것은 필요없는 논제다' 라고 이야기하고 있음 그러한 논리 전개가 옳으며 필요성을 주장하는 이는 마땅히 그 다음을 준비해야 한다고 여긴다면 니가 말하는 혁명과 그것을 통한 문제의 파괴 다음을 너도 생각해 뒀겠지? 나는 그러한 논리 전개를 옳다고 여기지 않으니 주장 그 자체로도 주장의 논리 자체는 완결되었다고 보는데 너는 그러한 논리 전개를 옳다고 여기니까 주장 그 자체로는 완결되지 않으며 다음 주장에 대한 논리가 있어야 한다고 보는거겠지?
자 보세요 길게 말씀하신거 읽었는데요, 그렇기에 조금 우울한 이야기를 할게요? 우리 모두가(최소한 대다수가) 죽음은 나쁘고 어떻게든 죽는 사람을 줄이고 싶어합니다 하지만 결국 인구수만큼의 죽음은 빠르건 늦건 찾아오는게 현실이예요. 초과학 초기술력이 있어서 탤로미어를 갈아치우든 의식을 스토리지에 전송하든 엔트로피가 버티고 있는이상 우리는 설사 수억년이 걸리더라도 죽고 말아요 "좀더 길게 살게 한다"는 수단이라면 얼마든지 있겠죠. 하지만 죽음을 해결할 수는 없습니다. 자, 그럼 "죽음은 나쁘니 해결해야 한다"는 명제에 의미가 있습니까? 아 물론 나는 당신의 말대로 문제 자체의 파괴에 일가견이 있는 사람입니다. 가령, 죽음은 나쁘니 지금 당장 모두 죽어버리면 적어도 현 지구 인구수만큼의 사망으로 죽음이 그친다거나 하는 주장 말이죠 이 결론을 좋아하든 말든(저도 이 결론은 별로 취향이 아닙니다) 우리는 이 다음 논의가 가능합니다. 가령, 정말로 백년 후 후손 수억명의 죽음을 더 끌고가면서까지 인류를 유지하는 대신 지금 전부 죽는게 가치가 있는가 그 가치란 무엇인가 등등등등등등 근데 불가능한 명제에 매달려서 "죽음을 해결해야 한다"고 던져버리면 거기서 이야기는 더 나아갈 수가 없어요 무의미하다고요
당신이 던진 문장이 의미를 갖기 위해서는 "죽음은 극복할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해야 할 필요가 생깁니다 내가 계속 묻죠. "어떻게" 제도보완제도를 만들거냐고 왜 물을거 같습니까? 시비걸려고?
존대를 사용하시니 존대로 답해드리겠습니다만 '죽음' 이라는 현상을 비유로 드셨는데 죽음이라는 현상은 당신이 던진 논제에 비교대상이 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죽음은 그 현상이 발생하는 것 자체는 문제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당신이 제시한 사회문제는 그 발생 자체가 문제입니다. 왜나하면, 저 현상이 발생한다는 것 자체가 자본을 견제하는 시스템이 제대로 굴러가고 있지 않는다는 뜻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죽음은 그것이 발생하는 현상 자체는 문제가 아닙니다. 문제가 된다면, 죽음과 엮인 주변인들과 그 다음이 문제죠. 죽는 사람을 줄인다는 것은 죽음이라는 현상 자체를 제거하는 해결이 아닙니다. 죽음이라는 현상을 미루고 또한 그것이 야기하는 구성원들간의 혼란 및 고통을 경감하기 위한 해결이지. 그러나 자본의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것은 저 현상의 발생을 제거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사회의 시스템이 제대로 굴러가야 시스템에 대한 신뢰도를 얻을 수 있으며, 그것에 실패할 경우 사회에 대한 신뢰도는 떨어지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죽음은 자본에 의한 사회문제에 대해 비교할 수 있는 주제가 되지 못합니다. 그러므로 애초에, 제 주장은 '죽음을 해결해야 한다' 는 주장이라고 단어를 치환해서 말할 수 없습니다. 이것을 치환해서 말할 수 있다고 인지하신다면, 당신이 '이것은 해결 불가능한 문제' 라고 단정짓고 있기 때문에 그렇게 인지하는겁니다. 그런데, 해당 문제의 해결 불가능성은 해결하기 어려운, 사실상 해결 방법이 보이지 않는 수준에 이르는 것일 뿐이지 '죽음' 이라는 자연적이고 필연적이며 그 현상을 맞이하는 개인에게 있어 그 다음이 있는지 없는지조차 알 수 없는 어떠한 종류의 '끝' 이 아닙니다. 물론 해당 문제를 제도적으로 해결할 수 어렵다는 당신의 주장은 틀리지 않습니다. 모든 종류의 권력은 모든 종류의 다른 권력과 야합하기 쉬우며, 그 목적은 스스로의 권력을 공고히 하기 위함입니다. 사람에게 욕심이 있는 한 이러한 종류의 문제는 끊임없이 발생할 것이며 그렇기 때문에 제도적으로 해결하기 어려움이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어려운 문제' 이지 '불가능한' 문제라고 빗대는 것은 성급하게 단정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특히 '죽음' 에 빗댈 수 있을 정도의 불가능성을 함유한다고 생각하신다면 그것은 엄연히 성급한 판단이라고 말하겠습니다.
만약 당신이 죽음을 어떠한 해결이 불가능하다고 볼 수 있을 정도로 어려운 종류의 문제로 봤고, 죽음은 매우 해결이 어려우므로 그걸 해결해야 한다는 주장이 의미없다고 이야기하신다면, 그것의 '해결에 대한 필요성' 을 주장하는 것이 왜 의미없습니까? 그것의 필요성이 너무 많이 주장되어 있기 때문에 그 이상의 주장이 필요하다는 식이라면 납득하겠습니다만, 그것이 '의미없기 때문에' 불필요하다는 식의 주장은 납득할 수 있는 논리 전개가 아니라고 말하겠습니다. 죽음의 원인에 대한 회피, 혹은 해결 방안을 죽음이라고 이야기하신거라면, 이미 사람들은 그것의 해결에 대한 필요성을 성토하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불치병, 혹은 난치병에 대한 치료법이 개발되기를 소망하며 또한 사지가 불구가 된 이들이 정상적으로 생활할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불치병이라고 해서, 신체의 소실이 회복될 수 없다고 해서 그것에 대한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포기해야 합니까? 지금 제가 불타는 것에 빗대서 이야가하면, '그것이 필요하다' 라고 하는 것 조차 함구해야 합니까? 그 방법을 생각해낼 수 없다면? '불가능한 명제에 매달려서 해결해야 한다고 던져버리면 더 나아갈 수 없다' 고 하셨는데, 왜 나아갈 수 없습니까? 맬서스 트랩이 제시되었을 때 멜서스는 이 문제는 사람을 줄이지 않는 이상 해결 불가능하다고 봤었을 겁니다. 그 주장에 대해 모든 사람들이 동의하여 하버-보슈 질소 고정법을 이용해 질소비료를 얻어낸다는 아이디어를 통해 식량생산을 폭발적으로 증가시키지 못했다면 과연 멜서스의 생각대로 되었겠죠. 현재 상황에 불가능하기에 그 원인을 파괴해야 한다는 결론은 나올 수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멜서스는 멜서스 트랩을 제안했습니다. 문제의 해결의 불가능성은 그 자체로 그 문제의 심각성을 배가시킵니다. 문제의 해결이 힘들다면 그 문제는 언제고 우리의 목을 죄여 올 것이기 때문입니다. 또한, 그러한 문제의 불가능성을 외면하여 어처구니없는 해결책을 내세우는 것 또한 지양해야 합니다. 해결책이 제대로 돌아가지 않았을 경우, 그 해결책을 시행하기 위한 자원, 시간 등의 비용이 소모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러한 문제에 대한 해결책을 필요로 하는 논의를 비효율적이라 말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해결책을 필요로 하는 논의란 문제를 문제로써 인식하는 논의이기 때문입니다. 심지어 앞서 말씀드렸던 멜서스 트랩의 예시에서조차 '사람들을 줄여야 한다' 는 멜서스 나름의 해결책은 멜서스 트랩의 해결책이었지 멜서스 트랩 자체가 아닙니다.
저는 이 문제의 해결이 어렵다는 데 동의하며, 그 이유는 사람들의 욕심이 존재하기 때문이라고 여깁니다. 사람에게서 욕심을 제거할 수 없으므로, 욕심이 가속화하는 것을 다른 사람들의 집합체, 사회적 시스템 등으로 견제할 수 있어야 합니다. 법은 엄정해야 하며, 자본으로 움직일 수 없어야 합니다. 지금까지의 시스템이 그러한 문제를 해결할 수 없었다면, 그러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방법과 제도 생각해야 합니다. 어쨌든 문제는 문제이고, 문제는 해결해야 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문제가 해결이 불가능하다고 판단하기 때문에 그 문제를 파괴하는 것만이 답이며 문제의 해결책을 단지 '필요' 로 하는 제안에 있어 의미없고, 나아갈 수 없는 제안이라고 주장한다면 그것은 '해결 불가능하기 때문에 문제는 없는 것이다' 라는 주장이 되어버립니다. 당신은 당신이 문제를 제시해놓고 이에 대한 이해와 해결의 필요성을 주장하는 사람에게 문제의 해결은 불가능하며 문제는 파괴될 뿐 해결의 시도는 무의미하다 라고 말 한 것이라고요. 심지어 제 주장은 해결책이 필요하다 였을 뿐인데. 설령 무의미하다고 한 들, 문제의 인식마저 무의미하겠습니까? 아니죠. 문제를 문제로써 인식하는 한 당신 말대로 무의미한 논쟁이 되는 일은 없을 겁니다. 오히려 '혁명을 통한 문제의 파괴'로 인해 문제를 인지하지 못하게 됬을 때 언젠가, 물론 다르지만 비슷한 문제가 발생하기 마련이겠죠. 공산주의가 괜히 부패했겠습니까? 자본주의의 문제가 자본의 권력을 견제하지 못해서 사회가 자본에 이끌려다니기 때문에 발생하듯, 공산주의의 문제 또한 초법적 행정기구의 권력을 공산주의의 인민이 견제하지 못하기 때문에 국가가 행정부 수반에 휘둘리기에 발생합니다. 문제의 인지는 중요하며, 오히려 당신이 말한 것처럼 혁명을 통해 문제 그 자체를 파괴하여 치워버리는 것 이상으로 핵심적입니다. 설령 혁명을 통해 문제를 파괴하더라도 그 문제의 발생 가능성은 언제나 염두에 두어야 합니다. 공산주의의 전철을 밟기 싫다면 말입니다. 앞서 말했듯 이 문제의 해결에 있어 정말로 방법이 없고 혁명밖에 답이 없다면, 시스템을 무너트려 문제를 파괴하고 그러한 문제가 발생하지 않을 것 같은 시스템을 재구축하는 것 외에는 답이 없다고 해도, 그러한 사실이 '필요성에 대한 주장' 에 대한 반박이 되지 못합니다. 필요성에 대한 주장은 문제의 인식과 동시에, 혹은 직후에 발생하는 논의입니다. 1.문제가 존재하는가? 2.문제를 해결해야 하는가? 3.문제의 해결책은 적절한가? 로 나누었을 때 2번에 해당한다고요. 2번의 논의가 완료된 다음에 3번의 논의가 진행되어야 합니다. 해결책의 제시는 엄연히 3번에 해당하는 논의이며, 이러한 논의에서 제안되어야 할 혁명의 필요성은 2번의 논의에서 제안되더라도 논지에 맞지 않습니다. 제가 초반에 당신에게 '뭘 원하는거냐' 라고 했죠. 왜 그랬겠습니까? 그냥 제가 멍청해서 그랬을까요?
마지막으로 '어떻게' 보완제도를 만들 것이냐? 라는 당신의 질문에 대해서 '이 문제에 대한 해결책이 필요하다' 는 결론에 모두 동의하고 이러한 문제에 대한 해결책은 어떻게 생각하는가? 에 대해서 이야기하겠습니다. 앞서 말했듯 이 문제의 본질은 사람이 욕심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발생합니다. 사람이 욕심이 있기 때문에 끊임없이 스스로의 권력을 불리려고 하며, 자본주의에서는 자본이 권력을 대행하기 때문에 시스템의 형태로 견제되어야 할 자본이 견제받지 않고 시스템을 휘두릅니다. 게임스탑이라는 이름으로 알려진 이슈에서 자본가들은 자신들이 위기에 처하자 시스템을 수정하기에 이릅니다. 당신이 올린 글에서, 개인의 욕심을 자본을 이용해 충족시킴으로써 형벌으로써 내려졌어야 할 자본의 회수를 비용 수준으로 절감시켰습니다. 문제의 해결은 당신이 말한 대로 일종의 혁명, 그리고 권력에 대한 끊임없는 감시와 견제의 활성화입니다. 또한 이러한 감시와 견제는 자본으로부터 자유로워야 하며 자본 이외의 동기가 존재해야 합니다. 그러한 동기는 명예욕이나 사회 윤리 등으로 충족될 수 있다고 개인적으로는 여기지만 가능성에 대해서는 확신할 수 없습니다. 또한, 혁명의 결과로써 만들어진 공산주의가 결국에는 권력의 부패를 방지하지 못한 사례로 미루어 보아 이러한 해결책이 얼마나 갈 지도 예상할 수 없습니다. 그렇다 하더라도, 이러한 문제가 발생하고 있으며, 또한 해결하더라도 언제든지 발생할 수 있으므로 문제를 끈임없이 인지해야 합니다. 일단 문제를 인지하고 있어야, 그러한 필요성을 느끼고 있어야 문제가 재차 발생하고 해결 불가능해졌을 때 다시 해결책이 고안 및 실행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문제의 해결책의 필요성을 인지하는 것은 문제 자체의 인지라는 측면에 있어서 중요합니다. '해결할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해라' 라는 이야기를 해결책 필요성이라는 논지에 빗대는 것이 시비거는 것에 불과한 것은 그래서입니다. '해결할 수 없다면, 그것은 문제가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가 되어버리기 때문입니다. 시비걸려고 물어보는 거 같냐고요? 네. 시비거는가 같아서 물어보는것 같습니다. 아니라고 생각한다면, 당신의 논지가 문제의 인지와 해결의 필요 단계에서 필요한 논지인지 생각해 보시고요.
우리나라 천룡인은 검레기 판레기다. 어딜 의사 따위가
검레기 판레기는 오로성이고 의사는 의룡인이면 되지
저 이후로 점장의 타락이 시작되었으니 작중에서 중요한 장면이지
작품 자체를 관통하는 메세지
이거 보단 눈높이 이야기가 더 ..
지금도 노동자가 분신■■해도 안바뀔세상임 그냥 우리는 이렇게 사라지고 아라서 잘해보라고 할수밖에 없음 애키우는 부모님들은 피눈물나겠지만 그럼 바꾸자할때 바꿧어야지 자신이 참고 돈벌어다 집에가져가면 나아질거라고 생각하겠지만 자식은 나보다 더 힘들어지고 저 사고난 노동자가 내새끼가 될수있다는걸
딥원같아.
진실이라기엔 작가 의도랑 많이 안 맞네. 작가는 단순히 가난하고 약자고 노동자라 선 돈많고 부자에 고위직이라 악 이런 구도로 그리지 않았음. 3부까지야 좀 그런 분위기가 있었지만 4부 이후부터 다양한 시점을 보여줌 당장 저 부사장만 해도 단순히 위법 저지르니까 개객끼 식으로 해석하는건 작품의 의도를 왜곡해서 전달하는거라 생각해.
실제로 저 장면도 원래 제대로 굴리려했던 매니저가 저딴짓이 이 나라에서 먹힌다는거에 충격먹어서 흑화하는 계기기도 함
그 매니저는 이후 이수인이 그건 변명일 뿐이고 원래 니가 그런거다라고 말하지만 이수인은 자기 정의를 관철하느라 가저에 소홀하기도 했고 이를 부사장이 챙겨주기도 하고 노무사도 목적을 위해서라면 수단방법 가리지 않는 모습을 보여주는등 그들도 딱히 선이 아니라는 관점을 보여주잖음
동의함, 흔히 송곳을 그냥 노조홍보만화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던데, 오히려 노조 vs 기업간의 관계를 최대한 중립적으로 다루는 작품이라고 봄.
까르푸는 2000년 중반 얘기고 저 만화는 2010년 중반에 연재됐다 2020년 중반을 향해가는 지금 바뀐게 하나 없는게 코미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