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단 고대로마의 전성기때
로마의 유명한 도시들은 성벽이 없거나
있어도 쓸모없는 수준이었다.
옛로마를 둘렀던 성벽이다.
파란선이 기원전 4세기에 지었다가 카이사르가 부순 세르비우스 성벽
그리고 빨간선이 기원후 3세기때 지은 아우렐리아누스 성벽이었다.
카이사르가 기원전 1세기에 활약한 인물이니
대략 200~300년동안 로마는 적을 방어할 성벽없이 있었던것이다.
그렇다면 왜 성벽이 없었을까?
답은 간단하다
공격이 최선의 방어였기 때문이다.
포에니전쟁에 로마가 최종승리한 이후
로마가 겪은 전쟁은 저 아나톨리아 너머 페르시아와 싸우거나,
라인강 너머 게르만 못넘어오게 막거나
사실상 로마 영토 밖이나 국경에서 싸우고
로마 영토 내에서 싸우는 일은 내전때나 있는 일인데
내전 치러도 도시 내에서 시가전 치르는 경우는 더 없었다.
그래야 내전 후 시민 지지얻고 패배자 재산을 온전히 내 재산으로 만들지
그런데.
로마가 쇠퇴기로 들어가면서
성벽없이 살던 로마는
그 대가를 치를때가 오게 된다.
게르만인이 대이주를 시작한것이다.
쇠퇴기때 로마, 특히 서로마의 경우, 국경을 제대로 방비할 군단편제 조차 안되는 상황이라
라인강 이남의 로마 영토들이 그대로 게르만인에게 노출되는데,
자 생각해보자.
훈족의 아틸라 피해서 오느라 부족은 굶고 있고, 눈앞의 도시는 성벽도 없는데
방비할 병력은 거의 없고, 우리 부족에는 건장한 청년 200명이 도끼와 단칼로 무장되어있다.
이때 로마 시민들이 느꼈을 감정을 경험하고 싶다면
토탈워 아틸라 서로마 팩션을 진행하면 된다.
로마도 트라야누스 이후 확장공세를 멈춘지라 도시 방어가 필요를 느껴
기원후 3세기에 부랴부랴 수도 로마 주위에 성벽을 만들긴 했는데
문제는 너무 넓게 지었다.
성벽은 넓은데 병력은 없으니.
제대로 작동은 안하고
서로마 황제도 그걸 아니깐 라벤나로 튀었다.
결과는?
약탈 퍼레이드다.
서고트의 왕 알라리크의 군대가
로마를 약탈하고
이어서 아틸라, 가이세리크가 약탈하러 왔다.
다행히 로마에는 대교황 레오1세가 아틸라, 가이세리크와 협상을 해서
로마시민의 안전과 도시의 보존에는 성공하였지만
(로마에 교황청이 박힌게 다른 이유가 있어서가 아니다. 떠나려하면 시민들이 바짓가랑이 붙잡고 안놔줄 상황)
그외 다른 도시들은 약탈을 당하고
서로마는 도시 약탈에 대해 어떻게 할 수도 없다가
멸망해버리고
그 결과
도시의 시민들은
자신들의 안전을 보장할 수 없는 도시를 버리고
주변의 안전한 요새나, 군사 기지로 이동하거나
정 안되면 잘 안알려진 지역에 성짓고 모여살게 된다.
그리고 이제 이주한 시민들은 딜을 한다.
지역 유력자에게 농산물을 바치겠으니
우릴 지켜주소서하고(농노화)
유력자들이 그렇게 농노를 받다가 자기가 감당할 수 없을 정도가 되면
기사를 고용해서 관리를 시키거나
더 큰 유력자의 봉신이 되거나(봉건주의)
도시는 버려졌으니
물류의 유통 역할도 할 수 없고
이후 게르만족이 쓸면서 타거나 폐허가 되거나하면서 사라지고
도시들을 이어줬던 도로도 쓸모가 없어진다.
길가다가 비명횡사하기 쉬운시대다.
그러니 각 지역들은 고립되고
기술은 실전되며
그렇게 유럽은 중세를 맞이하게된다.
저렇게 자기 영토에 몰려든 사람들을 지켜주면서 그 댓가로 방어력을 제공해주던 사람들이 후에 기사들이 되고 왕은 그 기사들을 고용하게되는군 그렇게 봉건제가 시작되었나?
반란 일으킬 군대는 있어도 야만족 막을 군대는 없는 나라 서로마 wwwwww