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국주의의 시작이 언제인 가 묻는다면 아마 그건 대항해시대가 기점이라 할 수 있다.
스페인과 포르투갈이 중남미와 인도에 진출하고 이윽고 영국과 프랑스, 네덜란드 등의 국가들이 앞다투어
식민지를 깔았던 그 시기.
이 시기만 하더라도 식민지를 만든 이유는 경제적인 동기가 더 컸다고 할 수 있다.
당시 식민지는 대체로 특정 국가를 공격하여 정복, 지배한다기 보단 본국의 사람들이 이주해서 정착하는 형태에
더 가까웠다.
물론 스페인이 아즈텍을 정복한 것이나 포르투갈이 인도의 항구도시 고아를 정복한 것처럼 근대 제국주의의
면모가 여기서도 나타나긴 한다. 다만 이들의 동기또한 결국 경제적 동기였다.
아즈텍을 정복한 스페인 콩키스타도르들은 대체로 가난해 어떻게든 한탕을 하려는 동기였고, 고아를 점령한
포르투갈인들은 이 항구도시가 번성해있으며 인도 무역에 중요한 거점이 될 것이란 기대가 컸다.
그러다가 근대로 올 수록 제국주의는 서구국가들에 국내외 정치목적으로 쓰이게 된다.
경제적인 동기는 여전히 존재했지만 근대에 접어들면서 그 중요성이 옅어져갔다.
민족주의 이념과 우생학이 태동하면서 정복과 지배, 그리고 그것을 성공적으로, 신화적으로 수행하는
우월한 우리 민족이라는 고양감, 고취감이 서구 사회에 나타난 것이다.
우생학은 열등한 인종을 우월한 인종이 지배하는 것은 자연의 섭리라고 주장하고 이치에 맞다며 정당화했으며
그들은 그 증거로 산업혁명을 통해 발생한 엄청난 서구와 비서구간의 경제적 성과와 과학기술, 문화와 제도 등의
격차를 꼽았다.
그러나 우습게도 이러한 점들이 결국에 자신들이 내쫓기는 원동력이 됐다.
민족주의의 개념은 피식민지인들이 수용하여 써먹을 수 있었고 그들이 식민지배가 용이하도록 설치한
철도나 전신, 교통과 통신망같은 인프라는 피식민지배인들의 물적 교류와 정보전달도 용이하게 해주었다.
당초엔 자국의 프로파간다, 식민지에서의 경제적 이득 확대를 위한 것들이었는데 점차 자신들의
지배력을 약화시키는 결과를 낳은 것이다.
그 대표격이 바로 인도라 할 수 있는데 본래 인도는 역사적으로 하나의 국가로 통일된 적이 없던 나라다.
인도 대륙 자체가 매우 큰 데다 인도 중남부에 위치한 데칸 고원같은 지리적 장벽으로 인해 이들은 여러 왕국들로
갈라져 있었고 민족적 동질감도 옅었다. 그런데 근대 들어 영국에 의해 최초로 통일되며 현대의 인도가 독립하는
마중물이 된 것이다.
혹자는 이를 두고 서구 제국주의 국가들이 식민지의 발전을 도왔다는 소릴 하기도 한다.
특히 이들이 즐겨하는 소리가 경제발전을 했다는 소리인데 이건 이들의 얄팍함과 양면성을
드러내는 점이기도 하다.
근대 자본주의의 진출이 확실히 식민지의 경제발전을 일정부분 상승시켰을 진 모르나 대부분
원료생산지로 수탈되는 역할에 그친 편이었다. (가공해서 부가가치가 더 발생하는 것들은 서구 국가들의 것이다.)
오히려 서구국가들이 미친 긍정적인 영향은 제도나 세계관의 변화였다.
앞서 민족주의처럼 자유주의나 민주주의 등 여러 근대 서구 사상과 제도의 전파 말이다.
일례로 한국또한 그 영향을 크게 받은 편인데, 일제가 한국을 강제 병합한 경술국치 이후 옛날 같았으면
근왕주의자들이 왕조 수호를 위해 결집 했었을텐데 대부분의 독립단체들은 왕정복고에 전혀 관심이 없었다.
처음에 좀 있었다 한들 주류는 결코 되지 못 했고 한국인들의 세계관에 군주와 군주제라는 개념은 조선이
망한 후 완전히 희미해졌다.
그런데 이 개념들의 전파가 서구의 식민지배를 종친 밑바탕도 된 점이라던가, 정치 철학적인 것들이
원체 복잡한 만큼 그냥 단순히 숫자 나열하면 끝나는 경제성과수치보다 객관적으로 증명하기 어려운 점도
있긴 하다.
뭣보다 근대 서구 제국주의와 식민지배가 얼마나 엉망으로 이뤄졌는 지 살펴보면 그들의 입장은 더 난처해진다.
그 대표격들이 바로 아프리카와 중동 국가들로 이들이 지금도 현재진행형으로 내전이 터지는 이유중
적지 않은 게 서구 국가들이 엉망진창으로 행정을 벌인 여파다.
이들 국가들은 처음엔 말라리아같은 풍토병이 자연 방벽이 돼 제국주의에서 벗어나 있었으나
의학의 발달이 길을 터줬고 동기부여는 서구인들이 '백인의 의무' 같은 인종사상과 그걸 의식한 정치인들의
행동으로 이뤄진 것이었다.
이러다보니 사실상 그 실체는 땅따.먹기 놀이에 가까워 막상 통치력이 미치는 범위는 국한돼 있었고
그들 스스로도 이들 지역에 정복 이후 별 애착을 갖지 않아 정말 대충 관리했으며 이것은 추후 중동과
아프리카 국가들이 독립할 때 국경선을 대충 직선으로 다 긋고서 떠나는 막장 행보로 까지 이어졌다.
이들이 이러는 까닭은 딱히 식민지를 통해 얻는 소득이 크지 않았음도 있었다.
원료수입과 수출거점으로서 식민지들이 서구 열강들에 이익에 기여한 바는 우리 생각만큼 엄청난 크기는 아니였으며
(정확히는 케바케가 원체 심하다고 해야 할 것이다. 특히 근대에 정치, 전략적 동기로 정복한 식민지면 더더욱)
현지의 반발을 억제하기 위해 들어가는 군사비와 자신들의 통치를 정당화 또는 용이하게 하기 위해 들어가는
행정비가 되려 상당했을 거란 말도 있다.
즉 제국주의뽕을 빨기 위해 별 소득도 없는 것에 잔학무도하고 무자비한 노름질을 한 비중도 있다는 것이다.
이를 어느정도 간파한 이로 독일 통일에 혁혁한 공을 세운 철혈재상 비스마르크를 뽑을 수 있는데
마침 이 사람이 떠오른 시기가 딱 제국주의가 막장에 접어들던 시기와 일치하던 때로 그는 당시 영국이나
프랑스같이 해외에 식민지를 확보하는 제국주의 -해외팽창 행보를 지양하고 내실을 다지는 데 힘썼다.
이를 통해 내부적으론 독일의 급성장을 이룩하고 외부적으론 독일의 성장을 경계하는 국가들, 특히 제국주의
국가들의 경계심을 누그러 뜨리는 데 성공하는 외교적 성과를 만들어낸다.
그런 그가 그토록 노력한 독일 제국이 제국주의뽕에 회까닥한 후계자에 의해 단명해버렸지만 말이다.
빌헬름 2세: ㅎㅎ ㅈㅅ^^
식민지 자원 역할이 컸던거 아니냐? 식민지 감당할 역량 안되자마자 전 열강들 전부다 자국산업키우기 시작했는데?
그거는 또 따로 책을 좀 읽어봐야 하는데 의외로 당시 서구 국가들의 교역 비중보면 같은 서구 국가들간의 비중이 훨씬 컸고 투자도 자기들끼리 했었음. 생각보다 식민지가 주는 경제적 소득은 지대하다고까지 할 만큼은 아녔던 것으로 보임. 물론 자기네들에게 안정적인 원료 공급지로 종속시켜서 고혈을 빨아먹은 건 분명한데 마른오징어를 빡빡 짜내서 수탈해간 거에 가까운 듯..
독일은 그냥 해외 식민지가 없는 후발주자라 내실 다진거고 그럴 능력 되자마자 바로 식민지 쟁탈전쟁 들어가지 않았었냐?
식민지가 없어 내실을 다졌다기 보단 내실부터 다져야하는 게 그냥 1순위였음. 오랫동안 독일은 분열돼 있다 프로이센 주도의 소독일주의로 하나로 합쳐진 거였으니까. 그리고 그것만으로도 이시기 독일의 산업과 경제성장은 아주 단기간에 영국을 추격해올 만큼 엄청났음. 모범생인 영국이나 프랑스의 발전모델을 배우고 노하우를 빼오기도 하고 뭣보다 시행착오 없이 통일에서 온 활력을 오롯이 자국에 투자했던데다 독일의 낮은 문맹률도 이를 가속화시켜준 원동력이라고 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