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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은 후삼국 통일이 되었기 때문이다
고구려면은 모르겠지만 백제면 죽으니까
진국(발해)에서 온 진라면 하나 드실래오?
고구려면은 모르겠지만 백제면 죽으니까
옥저면은?
혹시 민며느리제 세요?
진국(발해)에서 온 진라면 하나 드실래오?
그것은 후삼국 통일이 되었기 때문이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안성탕면)
나라 이름부터 좀...
신라는 뭘 통일하기는 커녕 649년에 스스로 당나라 지방정권이 되었고 설인귀 사당을 만들만큼 당나라 백성이라는 인식을 갖고 있었죠. 그리고 819년 이사도의 난때 당황제의 징발명령으로 군사 3만명을 모집하는 성의도 보이는 데 이 또한 신라가 당나라의 한 지방이었음을 인정하는 것. ㅡㅡㅡ "일본의 역사학자 하야시 다이스케가 자신의 저서 「조선사」에서 신라의 통일로 정의 ... 일제의 ... 식민사학자들은 신라의 반도통일 ... 로 정리 ... 발해의 역사를 한국사의 범주로부터 분리시키려 ... 김부식도 고려시대와 조선시대 왕조에서도 삼국통일이라 ... 표현하지 않았다 ... 신라는 스스로를 당나라의 속국으로 인식하였다." < [논문] 신라의 삼국통일에 대한 재검토 참조 > "백제는 신(문무왕)의 변방을 침범하여 핍박하고 하늘의 군대를 이끌어 신(문무왕)을 멸하여 치욕을 갚고자 하므로 신(문무왕)은 파멸의 지경에 이르러 스스로 살 길을 찾으려다가 억울하게도 역적의 이름을 뒤집어 쓰고 ... 신(문무왕)은 김춘추 이래로 조공을 끊이지 않다가 근래에 백제 때문에 거듭 조공을 빠뜨려서 드디어 성스러운 큰 조정에서 말이 나오게 하고 장수에게 명하여 신(문무왕)의 죄를 토벌하게 하셨나니 ... 아무개(문무왕)는 머리를 조아리고 조아리고 죽어 마땅하고 또 마땅합니다." 이와 동시에 은 3만 3천 5백푼, 구리 3만 3천 푼, 바늘 4백 개, 우황 1백 20푼, 금 1백 20푼, 40승포 6필, 30승포 60필을 진상했다. 이 해에 곡식이 귀하여 사람들이 굶주렸다. <삼국사기 신라본기 문무왕 12년 - 문무왕이 당나라의 고종 황제에게 올리는 사죄표문(表文)> 672년 이근행은 자신의 부족인 말갈족 병사 3만을 지휘해 한반도에 왔다. 당 조정이 이근행에게 20만이나 되는 대군을 주어 신라 원정에 보냈다고 볼 수 없다. 이근행이 신라군에게 패배했다면 토번과 전쟁에 투입되기는 어려웠다. 신라군이 이근행이 이끄는 말갈군을 패주시킨 게 아니라, 토번과의 전쟁을 위해 이근행 부대가 소환돼 철수했다고 보아야 한다. 매초성(매소성) 전투는 이근행이 토번과 전쟁을 위해 말갈 주력부대를 이끌고 철수한 뒤에 벌어졌다. 675년 가을에는 당의 신라 원정군 대부분이 철수한 상태였다. -한나절에 읽는 발해의 역사 우리가 속고 있는 것.
진라면은 있는데 선라면 미라면은 없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