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단 만화나 인터넷 커뮤, 위키글로만 접했는지라
머릿속에선 이미지가 많이 안 좋음...
일단 왕개 석숭 이야기는 유명하고, (고우영 십팔사략으로 처음 접함)
사마염의 1만궁녀, 그의 아들 정박아 사마충, 황비 가남풍
구품관인법의 부작용 이야기나(삼국전투기), 문벌귀족의 타락
강화된 호족들의 힘으로 인해 실제론 힘도 없었던 황제
사마씨들의 내분...
그 이후로 시작되는 개막장 나라들의 난립...
뭐 이런 것만 머릿속에 박혀있어서 긍정적인 이미지가 없음
위의 내용중에는 내가 디테일하게 읽은게 아니라서 오류가 있을것이고
언제부터? 왜 꼬였는가?에 대한 자세한 이유가 머릿속에 없는지라 궁금해짐
아무리 그래도 이렇게 막장화 되는게 쉽지는 않을텐데, 어디서부터 시작이었을까
아니면 과장된게 있었을까 하는 생각
찬탈자 왕조인지라 유교적 덕목을 강조하지도 못했고 당시 사대부들 사이에 오석산이 유행해서 약쟁이들이기도 해서 도덕적 기준이 반쯤 멸망한 상태였음 왕개와 석숭 에피소드도 사치라는 덕목만 문제가 아니라 석숭이 황실을 무시할정도로 황실의 권위가 없다시피했단거고 실제로도 긍정적인것도 없는게 맞음 당장 위나라 진군의 구품중정제에서 오호16국으로 바로 점프뛰는게 괜히 그런게 아님 팔왕의 난도 사마예빼고 황실권위를 복구하려는 사람도 없었을 정도고
따지고 보면 조조까진 선을 타고 있다가 조비가 헌제한테 강제로 양위 받으면서 흔히말하는 유교적 덕목 자체가 균열이 가고 사마의가 정변으로 뒤집으면서 손자대에 양위받으니 충이라는 덕목이 완전 망했지뭐
만약 그렇다면 실리주의에 입각한 해석으로 고평가하려고 해도 충과 명분이 시대의 흐름을 결정해버렸구만...
그나마 부여하고 친한 것, 사마염이 오촉 인사들 대우해줌이 정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