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에 살던 동네는 빌라가 많았음. 수도권 출퇴근이 가능한 동네인데, 신도시는 아니라 대규모 아파트단지 대신 원래 살던 원주민들이 단층, 2층 주택들을 밀고 빌라로 지었던 거지. 그러니까 그냥 평범한 외곽도시인데 대도시가 성장하면서 편입되어서 집값이 오르고 빌라촌이 된 거야.
아무튼 그런 식으로 지어진 빌라들은 보통 5층에 10개씩 집이 나오고, 집주인은 그 중 하나에 살고 나머지는 팔아서 건축비와 이익을 얻는 형태로 이어져. 한 마디로 건물 한 채에 집주인이 다 다른 경우가 많지.
보통 빌라촌은 한 집이 시작하면 죄다 따라하는 식이라 건축업자도 보통 같고, 집 구조도 대부분 비슷해. 아예 처음부터 여러 집이 같이 시작하기도 하고. 다시 말해서 한 동네의 집값은 대부분 비슷비슷하다는 뜻이야. 그런데, 유별나게 가격이 다른 빌라가 있었어. 보통 그런 경우는 인테리어 공사를 다시 해서 가격이 더 높은 경우인데, 이건 가격이 더 쌌어.
이유인즉슨, 그 빌라에 이상한 사람이 살았거든. 정확히는 모녀인데, 딸 쪽이 동네 사람들에게 시비 걸고 다니고 경찰을 무슨 배달 부르듯이 불러대던 사람이었지. 너무 유명해서 동네에서 모르는 사람이 없었고, 그러다보니 그 빌라에 알고 입주하는 사람은 없었지. 그러니 자연스레 집값이 떨어지고, 임대료도 낮을 수 밖에 없었고.
누가 그 사람들을 쫓아낼 수도 없었던 게, 그 이상한 사람이 집주인이었거든. 그런데 위에도 말했지만 보통 빌라 한 채의 집주인들은 각각 다 다른 경우가 많다고 했잖아. 그 빌라도 그랬어. 대부분 그 동네 사는 사람은 아니고 대도시에 사는 부동산 투자자들이었지만 이유야 대충 알았겠지. 어차피 그 동네 부동산중개인들과 소통을 했을 테니까.
결국 그 빌라는 이런 식으로 돌아갔어. 일단 살던 사람이 빌런을 못 이기고 이사 나가거나 계약 끝나자마자 연장 안 하고 나가려고 해. 그러면 집주인은 전세금이건, 보증금이건 줘야 하니 주변보다 싼 가격으로 내놓는 거야. 그렇지만 동네 사람들은 다 알고 있으니 필요해도 안 들어가려고 하고, 결국 입주하는 사람들은 제대로된 정보 없이 들어오는 다른 지역 사람들인 거야. 부동산에서는 굳이 알려주지 않고. 물론 새로 온 사람들도 오래 못 버티고.
내 입장에서는 솔직히 궁금했어. 그 빌런 때문에 집값이 떨어지면 다른 집주인들이 화가 날 텐데 왜 참지? 그런데 방법이 없는 거야. 빌런들에게 책임을 물으려면 민사소송이라도 걸어야 하는데 그게 쉬운 일도 아니고, 이긴다는 보장도 없거든. 결국 방법은 아무 것도 모르는 새로운 임대인을 구해서 어찌어찌 1년을 채우는 식으로 이어나가는 거 뿐인 거지.
이번 달 초에 지금 사는 아파트 미친 노인 하나가 집에서 다른 이웃들 몰카 찍다가 걸렸는데, 경찰이 일 하기 싫어서 그냥 돌아간 적이 있어. (사실은 이거 법적으로 다퉈볼 사안인데 경찰이 일 하기 싫어한 거였더라고) 다들 난리가 났고 결국 지난 주에 한 집에서 이사를 나갔어. 뭐 바로 짐 싸서 도망간 건 아닐 테고, 계약연장이 있었는데 안 하고 나간 거겠지. 그런데 1주일이 지나도록 비어 있어. 아무 것도 모르는 사람이 속아주지 않는 한 여기도 예전 동네의 빌라처럼 되는 거 같아.
난 적어도 내 후년은 되어야 나갈 수 있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