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실 나는 성녀가 아니다.
그냥, 생명의 천사였다.
그런데 잠깐 졸다가 추락했고, 눈 떠보니 인간 몸이었다.
그래서 지금은 필멸자 코스프레 중이다.
“성녀님, 오늘도 치유 감사합니다.”
루크, 우리 파티의 용사님이 그렇게 말했다.
미소로 대답했지만 속으로는 좀 복잡했다.
왜냐면 내가 하는 건 치유가 아니라 생명력 직접 주입이다.
진짜로 내 생명을 잘라서 주는 거다.
그러니까 요약하자면, 지금 이 파티는
내 수명을 깎아가며 유지되는 셈이다.
“오늘도 덕분에 살았어요.”
“하하, 신께 영광을…”
아니, 신은 모르실 거다. 나 쫓아냈으니까.
그래도 웃는다.
‘천사’가 아닌 척하는 데는 웃음이 제일 자연스럽거든.
문제는 요즘 들어 자꾸 깃털이 빠진다는 거다.
오늘은 아침에 하나, 전투 중에 두 개.
그걸 브람이 주워서 “장식 떨어졌어요” 하길래,
“그거 헤어핀이에요!”라고 했다.
…머리에 헤어핀이 있으니 문제는 없는 변명이였는데 덕분에 파티에서는 매번 장식품을 흘리는 허당이미지가 생겨버렸다.
사실 나는 전사가 아니다.
리치가 만든 플래시 골렘이다.
근데 다들 나보고 ‘고통을 이겨내는 인간 전사’라고 부른다.
아니, 고통을 안 느끼는데 뭘 이겨내.
느낌 자체가 없어.
그냥 ‘시스템 오류 없음’ 상태일 뿐이다.
오늘 전투 중엔 팔이 떨어졌다.
쾅 소리 나길래 잽싸게 주위를 둘러보고는 아무렇지도 않게 주워 껴맞췄다.
성녀님이 걱정스러운 얼굴로 다가왔다.
“브람님, 손 괜찮으세요? 방금 강한공격을....”
“아, 네. 근육이 좀 굳었뿐이네요.”
밤엔 내 몸이 썩지 않도록 향유를 바른다.
원래는 ‘부패방지 마법약’인데 요즘은 그냥 향수 취급받는다.
“브람님은 남성분치고는 향수에 신경을 많이쓰시네요!.”
“...향기는 남자의 장식이죠”
뭔개소리냐고? 나도몰라. 근데 이러면 납득하더라
사실 나는 마법사가 아니다.
나는 주문도 외울줄 모른다..
외워야 할 필요가 없으니까.
“플레어 애로우!”
그냥 해봤다.
말하자마자 불덩이가 나간다.
다들 감탄한다.
“역시 실피아님은 캐스팅 속도가 다르네요!”
…다르긴 하지.
나는 드래곤이니까.
그냥 인간 크기로 변신해 있는 중.
가끔 꼬리가 나올 뻔할 때가 있다.
오늘도 전투 중에 순간 집중 풀려서 꼬리 끝이 나왔다.
루크가 슬쩍 봤지만 다행히 불빛이 가려줬다.
“실피아님, 옷자락에 뭔가 움직인 것 같았는데?”
“아! 그거 장식이에요.”
…이 핑계,너무 자주쓰는거같은데 다들 이해해준다. 인간들은 장식으로 치장하는게 보통인게 맞는거겠지?
나는 용사가 아니다.
정확히는, 마왕이다.
심심해서 마왕성에서 가출해서 인간왕국에 놀러갔는데 용사축제인지 뭔지 이벤트를 하더라
그런데 어쩌다보니 용사로 뽑혔다.
그냥 추첨에 당첨되서 경품이나 받는거엿는데 하필 그때 마력이 찐빠나서 내 몸에 빛이나는바람에 진짜용사가 나타났다고 용사로 추대하더라
다행히 지금까지는 완벽하게 인간 행세 중이다.
정체가 들키면 곤란하다.
마왕이 용사 파티에서 활동 중이라니,들키면 인간에겐 척살당하고 마족들에겐 개쪽이다
요즘 특히 긴장되는 건,
성녀 리리에가 마력 기운이 너무 깨끗하다는 거다.
마왕인 내 입장에선 솔직히 눈부시다 못해 따갑다.
하지만 꾹 참고 미소 짓는다.
“루크님은 항상 차분하시네요.”
“용사의 덕목이죠.”
덕목은 지랄, 마왕의 생존본능이다.
밤이 왔다.
용사파티는 모닥불 앞에서 저녁을 먹었다.
루크가 말했다.
"우리들 새삼 대담하지 않아요?이렇게 강한 사람들이 한자리에 모이게 되다니"
리리에가 미소 지었다.
“그건 믿음이 있어서겠죠.”
브람이 웃으며 말했다.
“하하 '인간'이란 그런거 아니겠나 인간은 언제든지 한계를 뛰어넘을수 있다고 ”
실피아도 덧붙였다.
“맞아요. 인간의 가능성은 무궁무진하죠 마치 마법처럼 ”
잠시 그들은 침묵했다 그리고 다들 속으로 생각했다
(하씨 진짜 나빼고 다 인간인가보네....역시 들키지 말아야겠다)
그때ㅔ 모닥불이 퍽, 하고 터졌다.
그 불빛 아래서 리리에의 머리 위에서 깃털이 하나 떨어지고,
브람의 팔에서 미세한 김이 새고,
실피아의 꼬리 끝이 스르르 나왔다.
그리고 루크의 그림자가 잠깐 뿔 모양으로 흔들렸다.
그리고 그들은 동시에 말했다.
"""“…이거 장식이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