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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문당직 서다가 오싹했던 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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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 관련해서 일하시는 분들은 아시겠지만, 해군이나 해양경찰에서는 현문당직이라는 걸 섭니다


현문은 배의 입구로써, 500톤급 이상 즉 함급 이상의 배들은 바지 잔교가 아니라 육상에서 바로 현문사다리라고 하는 다리를 통해 드나들게 되죠.


그래서 떠다니는 섬과 같은 배는 현문에서 당직을 서면서 외부인의 출입을 통제합니다.  당직자는 보통 붕어빵 장수 비닐 같은 걸 덮어쓰고 현문 바로 앞에서 대기하는 경우가 있고, 현문 앞에 공간이 여의치 않으면 현문을 최대한 빨리 감시할 수 있는 위치에서 서지요. 


현문당직은 정박중인 배의 유일한 파수라고 할 수 있기 때문에 굉장히 중요하고, 만약 감찰관이라도 오는 날이면 곧바로 당직자에게 알려서 문제될 만한 것들을 모조리 처리하도록 하고 함장이 승함하기라도 하면 즉시 방송해야 하기에 현문에 최대한의 신경을 쏟아야 하죠.


제가 근무햇던 태평양 1호는 현문 앞에 공간이 없어서 현문에서 몇m 정도 안쪽으로 걸어들어가 배로 들어가는 입구 바로 안쪽에서 근무를 서야 했습니다.  덕분에 다른 배와 다르게 춥지도 않았고 또 의자에 앉을 수도 있어서 부러워하는 전경들이 많았습니다.


하지만 자리에 앉아서 현문을 직접적으로 내다볼 수 있는 위치가 아니라, 벽을 통해 시야가 가려져 있어서 입구로 고개를 빼꼼 내밀어야 누군가 오는지를 볼 수 있는 취약점도 있었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초소근무가 되냐고 말씀하시는 분도 있으시겠지만, 당직을 서보면 시끄러울 것 같은 바닷가는 의외로 고요합니다. 철썩, 철썩 하는 파도가 부두에 부딪혀 부서지고, 안벽에 매달린 거대한 휀다를 3천톤짜리 배가 밀어 누르는 고무 눌리는 소리와 쇠사슬 소리가 규칙적으로 반복되는 가운데 사람이 만들어내는 소리는 일절 없죠. 만약 10m 밖에서 저벅 하는 발자국 소리라도 날라치면 바로 알아채는 정도인 것입니다. 특히 현문사다리는 얇은 철판이기 때문에 소리가 더 크죠.


아무튼 그래서 태평양1호의 현문당직은 소리에 굉장히 민감하게 반응해야 하기에 혹한기에 쓰는 귀마개도 금지였습니다. 다른 배에서는 암암리에 사용하고 하는 mp3나 라디오는 당연히 금지였죠. 허용되는 건 독서나 공부 뿐. 



그 날은 제가 이 배에 발령받은지 2주가 조금 넘은 시점, 상경을 갓 달고 군생활의 절반이 꺾인 날이었습니다. 훈련,정기감찰,행사,발령 등이 겹쳐서 16주째 외박을 못 나가고 있었기에 심적으로도 상당히 피폐해진 상황이었죠. 상경을 달았어도 24명의 전경 중에서 고작 서열로 따져서 15등밖에 되지 않았기 때문에, 근무시간은 거진 새벽시간 고정이었습니다. 특히 고참들이 모두 외박을 갔다오고 막내들이 외박을 나가는 시간이라 저는 근무서열에서도 엄청 밀려서 모두가 기피하는 01-03 당직을 서야 했죠.



12시 45분에 복장을 갖춰 현문으로 올라가니 전직자는 세상 모르고 졸고 있더군요. 졸고 있던 선임을 깨워 침대로 내려보내고 자리에 앉아, 당시 유행하던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개미'를 꺼내들고 독서를 시작했습니다.


책을 읽으면서도 사실 거의 머릿속으로 잘 들어오지 않더군요. 1,2차 발령을 너무 빨리 나서 3차발령지에서 엿같이 꼬인 군생활 짬밥에 대한 고민, 그러면서 이제 1년 정도밖에 남지 않은 군생활과 빨리 배를 내리고 싶다는 고민 등 군대에서 근무하며 제일 많이 하게 되는 걱정과 고민과 근심 그리고 사색으로 시간을 때웠죠.


그러던 어느 시점인가, 현문사다리에서 쿵 쿵 하는 소리가 들리는 겁니다. 발자국 소리는 아닌 것 같지만 일단 경계를 위해 밖으로 내다봤는데, 밖에는 아무도 없었습니다. 소리가 나자마자 밖을 내다봤기에 누가 몰래 들어온 것도 아닌 것 같고 해서 다시 안으로 들어갔는데, 가자마자 밖에서 또 쿵 하는 소리가 나는 겁니다.


저는 당연히 그 소리가 아마 무언가에 부딪혀서 나는 것으로 생각하고, 신경쓰이게 자꾸 소리가 나는 게 짜증이 나서 원인이 뭔지 파악하기 위해 밖에 서서 소리가 나기를 기다렸는데, 이번엔 몇 분이 지나도 소리가 나지 않는 겁니다. 그렇게 고개를 돌려 들어가는 찰나, 다시 사다리에서 쿵 쿵 하는 소리가 나는 겁니다. 소름이 쫙 돋아서 사다리를 봤는데 사다리는 미동도 없었습니다. 저는 생각하기 싫어서 그냥 다시 배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조금의 망상을 섞은 체 서늘해진 등골을 느끼며 잡생각을 떨치려 노력하던 조금 뒤, 시계를 보니 아직도 근무는 한 시간 가까이 남은 시점이더라고요. 저녁에 음료수를 너무 많이 마셨는지 오줌이 슬슬 마려워져, 화장실을 가려면 당직자가 근무 중인 식당을 지나야 하는데 근무 중 자리를 비운다고 한 소리 들을 것 같아서 그냥 현문에서 그대로 바다로 오줌을 누기로 했습니다.


배에서는 마땅히 밟고 올라설 자리가 없어서 현문사다리를 통해 밖으로 나가야 했죠. 부두안벽에 올라서서 배와 육지 사이의 공간을 향해 시원하게 배출을 하면서 주위를 살펴보았죠. 여느 때와 같이 규칙적인 밤바다 파도소리와 은은하게 비치는 달빛. 그리고 바람소리... 오늘다라 더욱 스산한 밤바다를 보며, 허해지는 맘을 달래기 위해 혼자서 김경호의 노래를 휘파람으로 부르고 있었습니다. 부르다 보니 심취하더라고요.


헌데, 아는 사람들은 알겠지만 밝은 곳에서 어두운 곳을 보면 의외로 잘 보이지를 않습니다. 배의 서치라이트는 워낙 강력하기 때문에 오히려 더 그렇죠. 오줌을 누며 주위를 둘러보는데, 저 멀리 부두 끝 등대 쪽에서 검은 그림자 같은 것들이 일렁이는 겁니다. 바로 옆에 있는 배의 밝은 불빛 때문에 잘 보이지 않았지만 분명히 일렁이는 것이 보였습니다.


새벽 2시, 민간인 출입이 금지된 이 부두의 구석 저 바다 한복판에 위치한 등대에 사람이 있을 턱이 있겠습니까? 그렇다고 간첩이 이곳에 올리도 없고, 온다 하더라도 저 등대쪽으로는 갈 턱이 없기에 전 이상하다 잘못 보고 있나 하고 그곳을 한참 바라보았는데, 보면 볼수록 사람이라기엔 요상했습니다. 좌우로 묘하게 흔들리며 빙글빙글 등대를 돌고 있는데 이 야밤에 저기서 저러고 있을 사람은 없을 테니까요.


그렇게 이상하다 싶어서 쳐다보고 있는데, 왠지 '그것'이 움직임을 멈추더라고요. 눈도 얼굴도 분간할 수 없었지만 왠지 눈이 마주친 느낌이 들었습니다. 갑자기 쭈뻣 소름이 온몸에 돋아서 남은 오줌을 모조리 싸버리고 급히 바지를 추스리고 현문사다리를 후다닥 건넜습니다. 사다리를 건널 때까지도 그 검은 것은 사라지질 않았습니다. 묘하게 이쪽을 바라보는 느낌도 들었고요.


저건 아마 사람일 거라고 스스로를 납득시켜가며, 만에 하나 귀신일 가능성을 대비하자니 어디서 들은게 귀신은 물을 넘지 못한다더라고요. 그래서 현문사다리 안쪽으로 들어가면 귀신이라도 괜찮을 거라고 근거 모를 납득을 혼자 했습니다.


다시 근무지로 돌아와도 안심은 되지 않더라고요. 근무지에서 밖을 슬쩍 내다봤는데 그림자는 아직도 그 자리에서 일렁이고 있었습니다. 1~200미터 정도 떨어져 있을까? 거리가 좀 있어서 실루엣 말고는 알 수 있는 것도 없었죠.


조금 지나니 두려움도 없어져서 대놓고 몸을 내밀고 그림자 쪽을 보았는데, 얼씨구 헛것을 본 양 그림자는 어느새 사라지고 없더군요. 눈을 떼지도 않았는데... 아마 눈의 피로함으로 착시를 봤나 하고 눈을 세게 비비는데 갑자기 어깨에 뭔가가 턱 하고 잡더라고요.


정말 혼비백산해서 흐아아아악! 하고 숨을 들이키었습니다. 급히 뒤를 돌아보니 제 어깨를 건든 것은 금일 당직관인 부장(부함장)님의 손이었습니다. 나이 지긋한 장 경감님은 평소 다른 건 다 눈감거나 아니면 유도리 있게 해 주시지만, 기본근무에 충실하지 않는 것을 굉장히 싫어하셔서 당직근무는 철저히 서야 했죠. 제가 자고 있는지 감시하기 위해 발소리를 죽이고 오신 듯 했습니다.


아무튼 자고 있지 않고 현문 쪽을 내다보고 있는 걸 보고 부장님은 '야가 군기가 빠짝 들었네. 어째 근무 딱 FM으로 서고 있노?' 하면서 저를 칭찬하며 담배를 하나 빼 물으셨습니다. 

'뭐하고 있었노?' 

'아 예, 그냥 근무 서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내가 오니까 왜 이렇게 놀라노.' 

'너무 조용히 오셔갖고 말입니다...흐흐흐'

얘기를 하면서도 아까 그림자가 있던 자리를 눈으로 훑었는데 거기엔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부장님은 담배를 피우며 농짓거리를 했습니다.


'야-달 밝다. 니 그거 모르제? 달 없는 날보다 이런 날 구신 잘 본다 아이가.' 


내가 그걸 봤는 줄 모르실 텐데...어찌 이런 얘길 꺼내시는지. 어쩌면 30몇년간의 바다 근무 중에 뭔가 알고 계시는 바가 있을까 하여 얘길 경청했습니다.


'니 구신 보고 싶나?'

'아...저는 별로...ㅎㅎ..'

'나중에라도 구신 보고 싶으면 밤에 저그 배 위에서 휘파람 불믄 된다. 물귀신이 꼬인다이가. 육지에선 비암이 온다카는데 배에서는 물귀신 온다이. 알았제?'

'...'


근무시간이 끝날때까지 저는 무슨 소리가 들려도 밖을 내다보지 않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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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우 굉장히 사실적으로 묘사 표현하셨네요

스타드림 | 211.36.***.*** | 19.10.03 09: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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