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적, 나는 1980년대 강원도 시골에서 살았다. 왜정시절 탄광촌이었고, 한국전쟁 시절엔 치열한 격전지로
알려져 있던 곳이었다. 나는 국민학교에 등하교 할 때마다 버스정류장 옆에 있는 서낭당을 매일같이 보곤 했다.
서낭당이라 하면 서낭신이라 하는 마을의 수호신을 모시는 곳인데, 그 서낭당은 특이하게도 한국 전쟁때 전사한
국군과 인민군들을 모시는 곳이라 하였다. 정류장 옆의 구판장에 사는 양씨 할아버지에게 왜 국군은 그렇다 쳐도,
인민군까지 모시냐고 물어보자 할아버지는 한동안 서낭당을 바라보더니, 과자 한 봉지를 건네 주고는 그 사람들도
전쟁에 끌려온 불쌍한 사람들이니 그렇지... 라며 다시는 물어보지 말라 하였다. 그 시절 나는 과자를 공짜로 받았단
것에만 정신이 팔려, 그 분의 말씀에 그냥 네-네 하고 답하였고 그 궁금증은 이내 잊혀졌었다.
한편으로 마을 근처에는 군부대들이 있었다. 이 곳에는 특이하게도 여러 부대가 있었는데, 심지어 전차와 대포(그것이
당시엔 갓 배치되었던 신형 K1 전차와 KH-179 곡사포였단 것을 알게 된 것은 한참 뒤의 이야기다.), 헬기들이 즐비하게
있었다. 어린 시골 애들이 뭘 알았을까? 그저 땡크가 멋있다 대포가 멋있다 그랬을 뿐. 하지만 그곳에 주둔한 병사들은
늘 어딘가 긴장이 역력한 표정이었다. 그리고 이들 부대의 지휘관들이 보름이 되면 서낭당에 찾아가 제사를 지내는데,
어찌나 성대하게 제사를 지냈는지 마을 잔치나 다름없었다.
어느날, 나는 친구인 김OO에게 이상한 이야기를 들었다. 이 친구가 어느날 밤에 잠이 안와서 마당에 나왔는데, 군부대 근처
산에서 요란한 총소리와 폭탄이 터지는 소리들이 끝없이 났더란다. 밤눈이 밝았던 김군은 그 곳으로 올라갔다. 한참을 산을
올랐던 김군은 그곳이 산 중턱에 있는 동굴에서 나는 것을 알고 계속 올라가려 했다. 하지만 동굴 근처까지 갔을때, 매복해
있던 군인들이 그를 발견해 붙잡고선 끌고 내려왔고 군인들과 함께 내려온 김군은 부모님에게 엄청 혼났다고 하였다. 다시는
그 동굴로 가지 말라는 말을 들으면서.
그 이야기를 듣고 궁금해진 나는 집에 가서 부모님께 물어보았다. 혹시 산 중턱에 있는 그 동굴에 총소리가 나냐고. 흠칫 놀란
두 분은 내게 그 동굴에는 가끔 무장공비들이 나타나는 일이 있다며, 무장공비들에게 붙잡히면 이승복처럼 잔인하게 죽는다며
총소리는 군인 아저씨들이 그 무장공비들과 싸워서 나는 거라 하였다. 그리고, 다시는 그 동굴에 대한 어떤 관심도 갖지 말라는
경고를 들었다. 그렇게 동굴은 아이들끼리의 이야깃거리로 남다가, 이내 흐지부지 되고 말았다.
90년대가 될 무렵, 가족들과 함께 서울에 상경해 거기서 살았다. 어느덧 세월이 흘러 나이를 먹게 되었고, 어느 사람들이 그렇듯
직장에서 일을 하며 가족을 꾸리고 살다 고향이 그리워졌다. 논의 끝에, 아내와 두 딸과 함께 옛 집으로 돌아온 나는 낮에는 농사를 짓고,
밤에는 시와 소설을 쓰며 지냈다. 아내와 두 딸들도 시골 생활이 제법 마음에 들어한 듯 했다. 서울에선 못 느낀 맑은 공기란.
이사온 이후 보름이 될 무렵이었다. 밤 10시가 될 무렵, 첫째 아이가 밤에 멀리 산에서 총소리가 났다며 신고해야 하는 거
아니냐 물었다. 나는 문득 어릴적 내 부모님이 하신 말씀이 떠올랐다. 그리고 코웃음을 쳤다. 아니, 2020년에 무슨 무장공비?
그리고 강원도 전방 근처라 해도 그렇지, 뭔 무장공비가 매달 내려올 정도로 국군이 호구인가? 나는 딸아이에게 걱정하지 말라며,
알아보겠지만 별 거 아닐거라며 안심시켰다. 하지만 나도 멀직이서 들려오는 저 소리를 들으며 이 참에 오랜 궁금증을 해소하고 싶어졌다.
나는 손전등과 핸드폰을 들고 산으로 홀로 향했다. 마을은 마치 시간이 멈춘듯 옛날 80년대 모습 그대로였다. 어두컴컴한 마을엔
한 두집만 창가에 불이 켜져 있었다. 이곳도 여느 시골 마을처럼 사람이 줄었단 증거였다. 나는 울려 퍼지는 개 짖는 소리를 뒤로 하고
군부대를 지나, 개울을 건너서 산으로 올랐다. 아무리 달 밝은 밤이라 하나 어두운 밤에 오르는, 수풀이 우거진 산은 오르기 힘들었다.
잠시 잠잠했던 총소리는 다시 크게 울려퍼졌다. 산을 오를수록 점점 소리가 커져 갔고, 나도 덩달아 긴장이 되기 시작했다.
동굴에 다다랐을 무렵, 나는 앞에서 들리는 인기척에 몸을 숙였다. 내 앞에는 1개 분대의 병사들이 동굴쪽을 바라보며 잡담을
나누면서 매복해 있었다. 난 김군의 이야기를 떠올리며, 총소리를 틈타 몰래 이들을 피해 동굴로 올라갔다. 오르면서 본 동굴은 무언가
조명을 비추었는지 환한 불빛이 새어나왔다. 그 안을 들여다 보았다. 그 안에 있는 것을 보았다.
동굴을 본 나는, 뭔가에 홀린듯이 산 아래로 달음질 쳤다. 뭔가에 홀렸다 했지만 사실 본능에 따른 것이리라. 매복했던 군인들을 스쳐
지나가자 그들이 거기 서라며 고함을 치는것도 뒤로 한 채, 나는 미칠듯한 감정을 억누르며 겨우 겨우 집에 다다랐다. 도착한 이후에도
내가 본 것들이 따라온 것 같은 느낌이 몸서리가 쳐졌다.
아이들을 재운 아내가 무슨 일이 있었길래 그리 땀과 나뭇잎으로 엉망이 되었냐 묻자, 나는 대충 거짓말로 둘러대곤 다시는
그 산에 가지도 말고 총소리에 관심도 갖지 말라 한 뒤, 그것만으론 부족하다 생각해 당장 집을 내놓고 다시 서울로 돌아갔다.
아내와 아이들은 그런 내 행동을 이상하게 여겼지만, 난 내가 본 것을 그들에게 설명할 순 없었다. 아니, 설명해도 이해를
할 순 없을것이다.
동굴에서 국군과 인민군들의 혼백이 나란히 진을 쳐서, 차마 그 형상을 표현할 수 조차도 없는 괴기하게 생긴
'그것'들이 수백 수천마리가 동굴 밖을 향해 뛰쳐 나오는 것을 막기 위해 치열하게 사격을 퍼부어대는 모습을
설명한다 한들 그들이 믿을 리 없을테니까. 직접 본 나 조차 못 믿을 이야기를 그들이 믿을 리 없을테니까.
그제서야 이해가 되었다. 왜 서낭당에 국군과 인민군을 모시는지, 왜 그 군인들이 서낭당에 제사를 지내는지도,
왜 동굴 근처에 진을 쳤는지도, 그리고... 왜 모두가 동굴에 관심을 가지지 말라 했는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