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 그림은 조선 사신이 중국에 입조하러 온 베트남 사신들을 그린 그림이야.
잘 보면 조선의 관복 체계와 그다지 차이점이 보이지 않는다는 것을 알 수 있는데
이는 조선과 마찬가지로 베트남도 중국의 관복 체계를 받아들였기 때문임.
게다가 베트남은 조선의 양반들이 들으면 경악할 만한 유교 문화를 가지고 있었는데
농민들이 사석에서 관료들을 상대로 야자 타임을 하거나 신하들이 왕을 상대로
사석에서 야자 타임을 하는 문화가 굉장히 자연스러웠음.
즉, 베트남의 유교 문화는 조선과는 다르게 수직적이 아니라 수평적이었다는 거지.
실제로 왕과 신하들, 관료들과 백성들의 관계도 사석에서는 수평적이었으니까.
덕분에 베트남에서는 조선과는 달리 서원이 그다지 발달하지는 않았었지.
조선에서는 양반들을 중심으로 한 서원이 백성들의 삶을 통제했으니까.
한국도 처음에는 조선 초기에 조선의 유교 사상이 그다지 여성 차별적인 분위기는 없었는데 임진왜란 이후에 여성 차별적인 분위기로 급격히 바뀌었다고 하잖어. 뭐 베트남의 유교는 여성관에 대해서 일관되게 쭉 유지해온 거지.
비트남은 유교보단 불교의 영향이 더 컸다고 보면 됨. 우린 고려기대까지 불교 폐단으로 정책적으로 숭유억불 정책으로 유교를 숭상하면서 수직적인 관계가 잡힌거고
불교가 오히려 신분제를 공고히 하는 역활이 더 큰데 불교의 영향으로 수평적 소리하는건 좀 그렇다 윤회사상이나 왕즉불 사상같이 불교도 거의 왕족의 권위와 귀족의 권력 정당성 유지에 쓰여서 유교보다 수직적 체계를 공고히 했음 했지 덜하진 않았음
오히려 신분이나 성별에 수직적 관계를 공고히하는건 유교보단 불교의 영향이 컸음 특히나 중국 거쳐서 온 불교는 그 불교 좋아하던 고려나 신라가 얼마나 문벌귀족이나 골품제같은 수직적 체계를 가지고 있는지를 생각해야지
베트남이 문화적으로 진짜 한국하고 비슷하더라
조선시대 여성 차별의 근본적인 원인은 경제 구조 변화임. 유교는 거기에 양념 친 것에 불과하고. 조선 초중기는 자식들에게 적당히 균등 상속해도 양반들이 충분히 자기 세력을 유지할 수 있었는데 조선 후기로 갈수록 인구가 늘어나다 보니까 가문간 파워 경쟁에서 이기려면 가문의 적장자에게 몰빵해서 규모의 경제를 만들어야 했거든. 이러다보니 권한이 장자 중심으로 몰리고, 가문의 파워를 몰아 넣을 수 없는 여성들의 인권이 수직하락한 거.
소중화를 주장해서 중국처럼 외왕내제를 했고 자신들이 정복한 소수 민족이 살던 곳을 형식적인 국가로 만들어서 베트남 왕들이 자신을 황제라고 자칭하고 그랬어.
웃긴사람아님
당연히 이것저것 찾아보고 공부를 열심히 할 수 밖에 없지.ㅎㅎ
그쪽은 유교 문화권치고는 여성 차별이 비교적 적었다고 카드라
한국도 처음에는 조선 초기에 조선의 유교 사상이 그다지 여성 차별적인 분위기는 없었는데 임진왜란 이후에 여성 차별적인 분위기로 급격히 바뀌었다고 하잖어. 뭐 베트남의 유교는 여성관에 대해서 일관되게 쭉 유지해온 거지.
대전 1988
비트남은 유교보단 불교의 영향이 더 컸다고 보면 됨. 우린 고려기대까지 불교 폐단으로 정책적으로 숭유억불 정책으로 유교를 숭상하면서 수직적인 관계가 잡힌거고
조선초는 고려시대 영향으로 숭유억불 정책을 펼쳐도 개인적으로 믿는 불교를 완전히 억압하진 못했지. 그래서 그 영향으로 여성에 대한 차별도 덜 했던거고. 갈수록 유교 영향력이 커지면서 바뀌지
니미12345
조선시대 여성 차별의 근본적인 원인은 경제 구조 변화임. 유교는 거기에 양념 친 것에 불과하고. 조선 초중기는 자식들에게 적당히 균등 상속해도 양반들이 충분히 자기 세력을 유지할 수 있었는데 조선 후기로 갈수록 인구가 늘어나다 보니까 가문간 파워 경쟁에서 이기려면 가문의 적장자에게 몰빵해서 규모의 경제를 만들어야 했거든. 이러다보니 권한이 장자 중심으로 몰리고, 가문의 파워를 몰아 넣을 수 없는 여성들의 인권이 수직하락한 거.
니미12345
오히려 신분이나 성별에 수직적 관계를 공고히하는건 유교보단 불교의 영향이 컸음 특히나 중국 거쳐서 온 불교는 그 불교 좋아하던 고려나 신라가 얼마나 문벌귀족이나 골품제같은 수직적 체계를 가지고 있는지를 생각해야지
조선초기 기록들을 보면 상속도 남 여 차별없이 1/n 로 한 기록들이 많지. 제사도 남자만 지내는게 아니라서 양자제도도 없었고.
신사임당만 봐도 조선 중기까지는 그렇게 여성에게 힘든 사회가 아니었죠. 가부장제 사회는 조선후기부터 시작됨
근데 그것도 대승불교냐 상좌부 불교냐에따라 사회성향이 다른거 아님? 보통 동남아쪽은 상좌부 불교인데 베트남은 중국식 대승불교였나?
베트남은 전체 비율적으론 대승계가 주류였긴한데 남부는 상좌부가 좀 더 주류라는 남북 차이가 심하긴 했음
베트남이 보면 주변 태국이나 라오스 캄보디아하고도 꽤나 문화가 이질적인거 같음......
베트남이 문화적으로 진짜 한국하고 비슷하더라
그리고..명나라 망했을때 베트남도 조선처럼 소중화 주장하지 않았냐???
소중화를 주장해서 중국처럼 외왕내제를 했고 자신들이 정복한 소수 민족이 살던 곳을 형식적인 국가로 만들어서 베트남 왕들이 자신을 황제라고 자칭하고 그랬어.
사실 조선도 오키나와같은 주변 소국한테 조공 받아먹으며 비슷한 일을 하기도 했음 제주도도 완전 편입되기 전까진 비슷한 모양새였고
중앙집권적인 정치체계가 우리보단 오래 지속이 안되서 그럴 수 있다고 봄. 우린 통일신라 고려 조선으로 가면서 중앙집권적인 정치체제가 점점 강화된데다가 한 왕조의 역사가 길었지. 그러나 배트남은 아니였어. 그 차이로 같은 유교를 수용하도라도 수직적인 관계가 우리보단 덜 잡혔을거임
오히려 배트남은 우리보다 불교가 더 영향을 많이 끼친 이유도 있을거임. 우린 고려시대 불교 폐단으로 정부가 정책적으로 유교를 불교 대신 수용하면서 더욱 수직적인 관계가 확고해진것도 있을거고
배트남 역사도 잘 들어보면 꽤나 화려한 역사더라고.. 레 러이 라던가 쯩 자매 라단가 쩐흥다오라던가... 진짜 제법 화려한 역사임.
조선도 초기때 세조가 맨날 신하들이랑 야자타임가지고 그러던데 ㅋㅋㅋ
불교가 오히려 신분제를 공고히 하는 역활이 더 큰데 불교의 영향으로 수평적 소리하는건 좀 그렇다 윤회사상이나 왕즉불 사상같이 불교도 거의 왕족의 권위와 귀족의 권력 정당성 유지에 쓰여서 유교보다 수직적 체계를 공고히 했음 했지 덜하진 않았음
하긴 신라시대 골품제도 보면 그럴만하네. 결국 신분제 타파는 혁명 아니고는 힘든가보네. 신라시대 골품제에 대한 불만으로 통일신라 말 호족들이 들고일어나서 결국에는 고려가 만들어지니깐. 그 과정에서 신분제가 좀 더 단순화되지. 마찬가지로 고려말에서 조선이 성립하면서 고려시대보다 신분제가 법전상으로는 더 단순화되었고
그러면 베트남은 우리보다 통일왕조가 더 늦게 성합하면서 수평적인 체제가 유지되었다고 봐야하나?
통일신라의 복잡한 신분제도는 삼국을 통일하면서 복속시킨 왕족과 귀족을 차등화시키다보니 그렇게 된 걸로 아는데 베트남은 그게 아니였으니까
조선의 신분제는 법제상의 양천제와 실질적인 반상제로 상당히 복잡한 구조를 가지고 있어서 중앙집권도 집권이지만 외침으로 인한 신분의 동요현상이 꽤나 커달랬다고 봄
역사적으로 이런 신분동요 현상이 생기면 대개 두가지로 갈리는데 하나는 신분제가 완화되는거고 하나는 오히려 기존 세력이 자신의 권위 유지를 위해 더 격차가 심해지는거인데 조선은 양란이후 더 심해지는 쪽으로 갔고
그건 케바케임 반대로 선종처럼 중앙 권력의 약화 이데올로기에 쓰이는 경우도 있어서.
선종이 왕권과 중앙 약화에 쓰인건 맞지만 그걸 써먹은건 또 귀족이라 왕족이든 귀족이든의 권위 유지에 쓰인건 변함이 없긴해서
민중불교로 가려면 정토종이나 진언종 계열로 가야 하는데, 거기는 애초에 교단 자체가 세력이 약하지. 권력의 지원을 못 받으니까. 그리고 그런 귀족들의 권위를 부수려는 사상이 나올 수 있긴 했음? 애초에 그 사상들을 연구하는 사람들 부터가 귀족인데?
근대 이전 사상에선 거의 없지 그래서 신분제 타파가 근대 사상 뜨고나서 되는거잖어 뭐 어떤게 더 민중친화적이냐는 줄 세울순 있겠지만
뭐 그렇게 따져도 누구나 배우면 군자가 된다는 유교나 누구나 깨달으면 부처가 될 수 있다는 선종은 민중 친화도 측면에선 비슷비슷하다고 볼 순 있겠네
근데 일체중생 실유불성 개념 나오는 건 열반경이라서, 선종 교종 상관없이 가지고 있던 개념임. 근데 그걸 엘리트 중심적으로 풀어내면 교종과 성리학이 되는거고. 좀 더 실천적이고 대중적으로 풀어내면 양명학이나 선종 스타일이 되는거고.. 그래서 교리 자체의 민중 친화도라기보다는 그 교리를 해석하는 교단에 따라 갈리는 면이 크다고 생각함. 애초에 동아시아 사상들은 죄다 주석학이라.
유교 문화권이긴해도 우리나라와 비엣남는 많이 다르긴 함 일례로 조선 때는 정치적으로 국토가 완전히 하나가 되서 전국에 서원 건설로 몰빵했지만 베트남은 남쪽으로 끊임없이 확장해서 우리나라에 비해 유교문화 자체가 덜함 오죽하면 중국에 사신으로 갔다가 베트남 사신 만나본 조선 사신들이 돌아와서 안남국 저것들 겉으로만 유학을 숭상함이라고 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