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젓하고 고즈넉한 팔당호 호반 한 쪽은 생태습지와 공원이 조성돼 있고, 45번 국도가 들어선 건너편엔 아무일 없다는듯 자동차들이 달리고 있습니다. 지금은 이렇게 평온하기만한 팔당호지만, 30여 년 전 이곳에서 포성과 굉음 속에 끔찍한 사건이 발생했다는 믿기 힘든 제보가 스트레이트에 들어왔습니다.
대한뉴스 (1985년 9월)
"건군 제37주년을 맞아 중서부전선에서 펼쳐진 85 필승특전훈련"
1985년 9월 27일. 당시 전두환 대통령은 물론 전현직 장차관, 국회의원, 주한외교사절, 정재계 학계 언론계 인사 등 4500여명이 참관한 가운데 국군의 날을 앞두고 대규모 시범훈련이 펼쳐졌습니다. 특전사 2300명을 비롯해 육해공군 주한미군까지 모두 3500명의 병력이 참여한 건군 이래 최대 규모 시범훈련. 전투기, 공격헬기, 수송기, 수륙양용전차 등 당시 최신 병기들도 총동원됐습니다.
하지만 전투력 증강을 위한 실제 군사훈련이라기보다는 국군의 날 행사처럼 각본을 짜서 연습을 한 달 넘게 하는 보여주기 식 시범 행사였습니다.
그런데...
30여년 전 이 시범훈련 도중 탱크 한 대가 팔당호에 빠졌다는 목격자가 나타났습니다.
◀장원규 (당시 시범훈련 참관 특전사 소위)▶
“전차 11대로 알고 있어요. 11대가 기동훈련을 하는 거예요. 그 중 3~4대에서 연막탄이 막 나오는 거예요. 달려가다가 그걸 보고 있었는데 깡하고 쇠가 쇠에 부딪히는 소리가 나더라고요. 추돌이 된 거죠. 추돌되면서 한 대가 팔당 호수로 빠진 거예요. 그래서 그게 빠져 가지고 떨어지면서 굴러 내린 거예요.
더 놀라운 건 이런 위급하고 중대한 사고가 났는데도 시범 훈련 행사가 다 끝날 때까지 아무런 구호 조치가 없었다는 겁니다.
◀장원규 (당시 시범훈련 참관 특전사 소위)▶
"세월호 그런 거 있을 때 그 생각이 나는 거예요. 저기 그 때 공기가 있었던 그 탱크 안에 있던 사람들이. 바로 좀 구해야 되는데 ‘그 사람들이 죽겠구나‘ 그런 생각 했거든요. 마음이 답답하고 그랬어요. (전두환 전 대통령이 앉아있고?) 그렇죠. (훈련이 끝날 때까지 계속 그랬던 건가요? 그 상태로 있었던 건가요?) 그렇죠. 훈련 끝나고 나서야 그때서야 움직였죠.“
제보자는 당시 막 임관해 훈련엔 직접 참여하지는 못했지만 지원 병력으로 현장을 참관했다는 전직 특전사 장교였습니다.
◀장원규 (당시 시범훈련 참관 특전사 소위)▶
(특별히 기억을 잘 하시는 이유가 있나요?)
"그거 충격적인 사건이죠. 탱크가 물에 들어가서 뒤집혀 있는 장면을 본 게 충격적인 거죠. 이게 밝혀졌으면 좋겠다라는 생각도 제가 오랫동안 했었고요. 어쨌든 (구조) 노력은 안했으니까 바로. 그게 저는 그때 젊은 나이, 혈기가 있는 상황에서 그걸 보고 분통이 터지잖아요."
먼저 당시 훈련 장면을 담은 정부 영상기록물을 살펴봤습니다. 10여분 분량 정부 영상기록물엔, 탱크 기동 장면이 7초 정도 짧게 삽입돼 있을 뿐 사고 장면은 없었습니다. 더 짧게 편집된 대한뉴스나 국방뉴스엔 아예 탱크 기동 장면은 편집돼 있었습니다. 사고 관련 언급도 전무했습니다.
<당시 국방뉴스>
"(전두환은) 유사시 오늘의 시범 훈련처럼 하면 아군의 별다른 피해 없이 임무를 훌륭히 달성할 수 있을 것이라고 격려하였습니다."
당시 신문들도 검색해봤습니다. 대대적인 훈련 홍보 기사들만 실렸을 뿐, 사고 소식은 한 줄 없었습니다. 국가기록원이 보관중인 85필승특전훈련 관련 기록물 전체를 청구해 받아봤습니다. 7백 페이지가 넘는 자료엔 안기부를 비롯한 각 부처의 참관인 동원이나 주차 안내 계획까지 세세히 나와 있었지만, 역시 탱크 사고 내용은 그 어디에도 없었습니다.
사실 확인이 어려운 막연한 순간, 마지막으로 MBC 지하영상자료실을 찾았습니다. 지금까지 보관된 당시 촬영 테이프는 단 한 개. 단서가 있을까. 촬영 테이프엔 당시 전두환 대통령 등이 앉아있던 이른바 VIP 참관석에서 시범행사를 찍은 18분 분량 영상이 담겨 있었습니다. 건너편 호반에서 이뤄진 문제의 탱크 기동 장면도 포함돼 있었습니다. 언뜻 보기엔 별 일 없어보였습니다.
그런데...
탱크들이 달리는 호반 언덕 바로 아래 수면 한 켠에서 특이한 현상이 포착됐습니다. 하얀 기포로 보이는 물기둥 여러 개가 지속적으로 솟구치는 듯한 모습. 잔잔한 다른 수면과 달리 유독 이 수면에서만 발생하고, 기포 기둥 주변 물결의 크기도 예사롭지 않게 컸습니다.
하지만 이런 특이한 현상에도 시범 행사는 아무 일 없다는 듯 계속됐고,
<시범행사 안내방송>
"우렁찬 굉음과 함께 적진을 누비는 지상의 왕자.."
전두환 등 신군부 인사들의 박수갈채와 함께 시범행사 영상은 끝났습니다.
[Studio]
◀김의성▶
그런데 이 사건은 당시 신문에도 한 줄도 보도되지 않았고 관련된 국가 기록물 문서나 영상도 존재하지 않는다면서요. 보도 지침까지 만들어서 언론을 통제하던 시절이니까 기사화 되지 않은 건 이해를 합니다. 근데 만약 그렇다면 이 사고가 진짜 있었던 사고인지는 어떻게 알 수 있죠?
◀양윤경▶
이 사건을 취재하면서 가장 어려웠던 점이 바로 그 점이었습니다. 사고가 있은 지 33년이나 지났기 때문에 목격자들의 기억은 희미해졌고 증거들은 모두 사라지고 없었습니다.
◀이정신▶
그런데 사고의 흔적, 단서가 MBC 지하 자료실에서 찾은 18분짜리 영상에 있었습니다. 앞서 보신 영상에서 기포들이 솟구치는 장면, 보셨을 겁니다. 놀랍게도 이 짧은 영상 속에 33년 전 진실이 담겨 있었습니다.
[VCR 2]
MBC 영상자료에 담긴 문제의 기포 현상에 대해 영상전문가에게 분석을 의뢰했습니다. 화질을 높이고 흔들림을 보정해서 프레임 단위로 영상을 쪼개서 본 결과. 외부에서 돌덩이 같은 물체가 계속 떨어지면서 생긴 건 아니라고 했습니다.
◀황민구 소장 (법영상분석연구소)▶
"이 정도 부피 크기를 가진 피사체면 굉장히 큰 돌이나 이런 거여야 하는데 이게 돌, 작은 돌 몇 개가 떨어져서 이런 파향을 만드는 것 같지는 않고요. 뭔가 이렇게 돌이 하나 튀어서 생기는 물방울로 보긴 어렵고요 뭔가 계속 밑에서 치고 올라오는 물기둥이 치고 올라온다고 보시면 됩니다. 전적으로 안에 있는 공기가 계속 뿜어져 나오는 장면이라고 보시면 될 것 같아요."
외부 요인이 아닌, 물 속 내부의 공기가 솟구친다는 건데, 기포 기둥이 여러 곳에서 치솟는 게 전형적으로 차량이 빠졌을 때 나타나는 현상과 유사하다고 했습니다.
◀황민구 소장 (법영상분석연구소)▶
"여러 군데에서 (기포가) 나와요. 솟구쳐 올라오듯이 올라오기 때문에 이런 거는 전형적으로 자동차가 물에 빠졌을 때라든지, 배가 침몰했을 때 안에 있는 가스의 공기가 바깥으로 분출되면서 나오는 패턴하고 유사하다고 보여집니다."
더 특이한 건, 이 기포 기둥이 솟구치는 수면 위로 매연 같은 뿌연 연기까지 발생한 거였습니다.
◀황민구 소장 (법영상분석연구소)▶
"위에 이렇게 떠가는 피사체들, 이런 것들이 연기로 보여 지거든요. 잠기면서도 뭔가 연기가 계속 나고 있는...안에 있는 가스가 나오는데 다만 그 가스가 저렇게 회색을 띄게끔 나오
는 인공적인 거야 하겠죠. 그냥 일반적인 공기라면 저렇게 회색으로 나오진 않겠죠."
선입견을 배제하기 위해 탱크 관련 내용은 영상전문가에게 미리 알려주지 않았던 터였습니다.
◀황민구 소장 (법영상분석연구소)▶
"다만 주변에 탱크가 이렇게 지나가거든요. 원근감을 감안하더라도 그 탱크 정도의 큰 피사체가 저 안에 있을 가능성이 저는 있다고 보여집니다. (알겠습니다. 그 정도죠? 더 이상 뭐) 탱크가 빠졌어요? (예?) 탱크가 빠졌어요? (처음에 이 영상 보셨을 때 어떤 느낌이 혹시 뭐?) 그냥 ‘뭔가 빠졌구나’라고 (그냥 바로?) 예. 뭐가 빠졌구나“
뭔가 물 속에 빠졌지만, 그게 탱크인지는 아직 알 수 없는 상황. 제보자를 다시 만났습니다. 해당 영상을 보여주기 전에 사고 전후 상황을 다시 자세히 들어봤습니다. 시범 행사가 다 끝난 뒤 사고 현장에 가서 현장 통제 업무에 투입됐다는 제보자. 그 때의 기억을 다시 더듬었습니다.
◀장원규 당시 특전사 소위▶
"이제 전봇대가 하나 이렇게 쓰러졌어요. 그리고 전봇대 전선주가 길가에 이렇게 널브러져 있었고요." "아 가서 봤더니 전선들이 널브러져 있고 전봇대도 이렇게 부러져 있었던가요?" "하나가 이렇게 부러져 있었었다."
제보자와 함께 영상을 확인해봤습니다. 실제로 기포가 올라오는 수면 왼쪽 언덕에 이미 오른쪽으로 기울어진 전신주 하나를, 기동하던 탱크 한 대가 치고 가면서 반대편으로 다시 쓰러뜨리는 장면이 보입니다.
◀장원규 당시 특전사 소위▶
“다시 한 번 기억을 하실 게, 현장에 가셔서 사고 통제를 하셨을 때.." "그 전봇대 앞에, 거기 맞아요. 위치 맞아요. 전봇대요." "그 전봇대가 떨어진 지점에서 탱크가 떨어졌었나요?" "네 제가 갔을 때 전봇대 한 대였거든요 부러진 게. 제가 전봇대 근처에서 여기서 통제하고 있었어요. 전봇대하고 그 아까 물, 수포가 올라오는 그 거리 정도 있잖아요. 그게 맞아요. 제 기억에 거기. 아주 거의 정확하네요, 기억이."
'탱크가 팔당호 물속에 빠졌다' 그리고 ‘행사가 다 끝나도록 아무도 구하지 않았다'는 제보자의 믿기 어려웠던 기억이, 30여 년 전 촬영 영상과 함께 조금씩 사실로 복원되는 상황. 그 오래된 기억을 지금 다시 꺼내든 건, 생명을 가벼이 대했던 정권에 대한 가슴 속 여전히 묵직한 분노,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장원규 당시 특전사 소위▶
"보여주기 위한 훈련 상황인데 거기에서 이제 탱크가 물에 빠졌고 거기에 살아있는 생명이 4명이 그 안에 있지 않습니까. 그랬을 때 저는 그 사람들을 구조하는 것 자체가 가장 우선적이어야 된다고 생각을 했는데, 그게 이뤄지지 않았기 때문에 굉장히 안타까웠거든요. 아무리 군대라고 하더라도 전쟁 상황도 아닌데 이렇게 사람의 목숨을 너무 가볍게 여긴 게 아닌가"
[Studio]
◀김의성▶
네, 저 18분짜리 영상이 33년 전 사고의 가장 확실한 목격자가 됐던 거네요. 그런데 영상을 찍었던 카메라 기자는 당시에 이 탱크 사고를 인지하고 있었던가요?
◀이정신▶
네. 지금은 퇴직을 하셔서 전화통화를 했습니다. 탱크 사고를 봤거나 기포 현상을 의식하고 찍은 것은 아니다. 라고 했습니다. 그러니까 이 탱크 기동장면을 멀리서 당겨 찍었을 뿐인데, 우연찮게 이 문제에 기포현상이 포착 된 거다 그런 얘기입니다. 그런데 행사 취재가 다 끝난 뒤에, 탱크가 빠졌다는 얘기를 들었던 것도 같다. 이렇게 말했습니다. 어렴풋한 기억이지만 이 제보 내용을 뒷받침하고 있었습니다.
◀주진우▶
사고였습니다. 그런데 사건이 됩니다. 탱크가 물에 빠져서 기포가 올라오고 있습니다. 생명이 숨 쉬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광경을 수천 명이 쳐다봤습니다. 몇 명은 목격했습니다. 그런데 구하지 않았습니다. 사건이 됩니다. 세월호 참사하고도 똑같습니다. 국가는 구하지 않았습니다. 2014년에도, 그리고 1985년에도 국민이 위기에 처했습니다. 그때 국가는 없었습니다.
◀김의성▶
그런데 이상합니다. 이 수 천 명이 지켜본 현장에서 사망 사건이 발생하지 않았습니까? 그런데 어째서 이제서야 이 사건이 세상에 알려지게 됐을까요. 유가족들 역시 가만있지 않았을 텐데요.
높으신 분들의 가오가, 사람 목숨보다 중하게 여겨지던 시대
지금 보니 애비나 자식이나 부전녀전이네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