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편 : https://bbs.ruliweb.com/community/board/300143/read/44880891
이전부터 명나라는 건주를 꾸준히 눈여겨 보고 있었다.
17세기 초중엽까진 건주와 우호적인 관계를 계속 유지했으나 건주의 성장속도가 비정상적으로 빨라지자 명나라 조정은 두 세력으로 나뉘었다. 온건파와 강경파였는데,
온건파의 경우 누르하치가 아무리 날고 뛰어봐야 일개 야만추장이고, 또 지금껏 명나라에 유순히 행동해왔으니 따로 군사적 행동을 취할 필요는 없다고 주장했다.
반면 강경파는 이미 누르하치가 해서 4국의 하다, 호이파, 울아를 멸망시킨 시점에서 대여진정책이 망가졌으니,
여기서 더 늦기전에 누르하치에 대해 강경책을 써야 된다고 주장했다.
당시 황제가 뛰어난 황제였으면 어찌되었건 확실한 정책방향이 결정되었겠으나, 당시 황제인 파업ㅈ... 만력제는 그리 능동적인 인물이 아니었다는게 문제였다.
결국 1613년 9월, 현재 시점까지 명나라는 지지부진 건주에 대한 확실한 압박을 가하지 못하고 있었다.
조공시장 철폐나 외교적 압박등을 가하긴 했으나 그것은 누르하치의 움직임을 막기엔 너무 약한 밧줄이었다.
그러다가 결국 예허가 명나라에 직접적으로 지원요청을 하자 그제서야 직접적인 군사적 행동을 했다.
유격 마시남과 자대기가 이끄는 1천명의 병력이 예허에 지원군으로 파병되어 각각 서예허, 동예허에 나누어 주둔했다.
1천명은 숫자로 치면 별 것이 아니었다. 그러나 그들은 신식 조총으로 무장한 총병부대였으며,
또한 그들의 숫자가 얼마이건간에 그들이 있는 성을 공격하면 그것은 곧 명나라와의 전쟁으로 이어진다는 리스크가 있었다. (주한미군을 생각해보자.)
결국 누르하치는 명나라까지 직접 군사개입을 하자 더 이상 군사적 행동을 하지 못하고 물러날 수 밖에 없었다.
누르하치는, 적어도 그 때 까지는 명나라와의 싸움을 피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