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일병 1호봉 시절, 두번째 즉각대기 때 이야기임.
즉각대기는 보병 5분대기조마냥 포병들이 상황 발생시 바로 튀어나가서 사격준비하는 거라 보면 간단함. 우리는 포대마다 돌아가면서 했음.
하여간 이 즉각대기라는 게 상황 발생 시점부터 5분 안에 달려가서 탄약고 열고 화포 빼고 사격준비를 끝내는 게 목표인데, 우리는 막사랑 포상과의 거리가 좀 먼데다 진입로에 경사까지 져서 시간이 존나 안나왔음.
그래서 대대장한테 까이던 포대장이 답이라고 내놓은 게 포상 근처 컨테이너에서 사격 필수 인원들 재우는거. 컨테이너에 전등은 없지만 전기는 들어와서 어떻게든 잘 순 있더라고. 물론 나는 당시 사격에 존나 쓸모없는 3번포수 나부랭이라 별로 안 끌려갔음.
근데 우리는 자주포 부대라 좀 먼 곳을 조준해야 한단 말임. 그래서 포 쏠 방향이랑 각도랑 탄종이랑 장약(쏘는힘) 계산하는 FDC들이 상황 발생 때 바로 계산 때려서 정보 보내주려면 매 시간 장약의 온도를 재야 함.
원래 장약온도는 불침번 교대시간에 전번초 사수랑 후번초 부사수가 가서 재고 오기로 되어 있지만, 탄약고 바로 옆에 사람들이 있는데 굳이 갈 필요는 없잖음? 결국 컨테이너 쪽 불침번들이 장약온도를 재게 되었음.
솔직히 여기까진 사람들 기분 뿅뿅같은거 말곤 별 문제 없음. 장약 온도 재는 게 그렇게 어려운 일도 아님. 탄약고 들어가서 헐거운 장약통 뚜껑 따고 꽃혀있는 온도계 숫자 읽은 다음 도로 닫으면 끝임.
문제는 거기가 존나 어둡다는 거랑, 탄약고 전등이 너무 약해서 그거만으론 뭘 제대로 볼 수가 없다는 거였음. 물론 탄약고 문에 라이트를 걸어둬서 그거로 장약통 보면 그만임.
불침번 초번초 기분좋게 끝내고 자려는데 갑자기 방송으로 집합하라더라. 즉각대기 기간엔 중사 이상 간부들 다 까칠해지긴 한데, 아무리 그래도 그 자리에서 뭐라 하고 끝내지 취침시간 이후에 싹 다 모으는 건 처음이었음.
다들 모여서 모지? 모지? 하는데 통신 쪽에서 탄약고랑 장약이랑 불 이야기가 드문드문 들리는 거임. 매사 쿨하던 분대장 선임은 얼어붙어있고.
선임 입장에선 당연한 게, 우리 탄약고는 온도확인용 장약통 둔다고 열어놨거든. 탄약고 관련해서 ↗될 확률 있는 곳이 우리 탄약고밖에 없음.
아니나다를까 씨바 우리 탄약고에 불났었음.
불낸사람 A랑 불 끈 사람 B말에 의하면 상황이 대충 이럼
A가 당시 불침번 사수였음. 온도 확인 시간이라 탄약고로 가는데, 그때 너무 졸렸던 데다 달도 안보이는 밤이라 헤드라이트를 못 봤다고 함.
그래도 자주 가서 대충 위치는 아니까 탄약고 문 열고 장약통을 열어서 온도를 보려 했음. 근데 너무 어두워서 안 보이네? 이사람은 주머니에 있던 라이터를 켜서 온도를 보려 한 거임.
분명 탄약고에서 불을 켜는 건 맞아 뒤져도 싼 행동이지만, 사실 라이터 불 켠다고 바로 폭발이 일어나거나 하진 않음. 포탄은 터지라고 있는 거지만, 톡 치면 터지라고 있는 건 아니라서 화약이 엄청 둔하거든. 625 수기 보면 아예 불을 붙여도 천천히 탄다는데, 아마 A와 컨테이너에서 자던 사람들은 그 덕에 산 건지도 몰라.
하여간 문제는 장약임. 장약 설명을 안했는데, 이건 총알 뒷부분에 채워진 화약이 존나 커진거임. 약 30kg짜리 쇳덩이를 최대 40km 거리까지 쏴야 하는데 어지간한 화약으로는 택도 없을 것 아냐.
이건 폭발하면서 생기는 순간적인 힘으로 그 쇳덩이를 밀어야 하기 때문에, 존나게 잘 탐. 장약 분해하면 나오는 수십개의 장약 가닥 중 하나만 땅에 던져놓고 불 붙여도 불길에 놀랄 정도로 잘 탐.
근데 이거도 원래라면 문제가 안 되는 거였음. 당연히 이 장약이 든 통은 도구 없이는 못 열 정도로 꽉 닫혀있으니까.
근데 ㅆㅂ 온도 보라고 열어둔 장약통에 라이터를 가져다 댄 거임.
정말 최소한의 의식은 있었는지, A는 장약에 불을 직접 대진 않았다고 함. 근데 불을 켜니까 공기에 불이 붙었대. 장약통 위 허공에서 불길이 타닥타닥 타고 내려가서 장약에 닿았는데
불기둥이었댄다. 딴 건 몰라도 이건 사실인 듯 함. 우리 탄약고 천장이 싹 다 그을려 버렸거든.
원래 사람이 불을 보면 꺼야겠다고 생각을 하는데, 그땐 그런 생각조차 안 들었대.
눈앞에서 3미터쯤 되는 불길이 올라가 있으니까, 걍 아무런 반응도 못하고 그대로 주저앉았다고 함.
소리 듣고 뛰쳐온 B가 바로 소화기 들고 와서 껐는데 그사람 아니었으면 진짜 ↗될뻔함. 그 탄약고에 탄 약 200발에 장약 110통이 더 있었는데 불이 옮겨붙어서 그게 다 터진다? 컨테이너 사람들은 기본에 위치상 본부 막사랑 식당까지 위험했음.
하여간 우린 그 주 내내 탄약고에 있던 탄 싹 다 꺼내서 그을린거 검사받고 교체함. A는 여기저기 불려다녔고.
군단 조사 결과 결국 못쓰게 된 건 불붙은 장약통이랑 A 군생활 뿐이라 판단해서 A는 징계받고 장약값 물어냄. A평소 행실이랑 인성이 엄청 좋아서 그렇게 끝난 거 같음. 결국 포대장도 A 계속 데리고 있었고.
A는 내가 선임급 되었을 땐 멘탈 어느 정도 회복해서 그때 감상한거 말해주더라. 아마 포병들 사고사례로 장약고 불난거 뜬 적 있을 텐데 그게 아마 우리일거임...
9시 뉴스감이네
탄약고 터졌으면 그주변 동네는 흔적도 안남을걸
9시 뉴스감이네
나도 4.2인치 추가장약 태우는거 본적있어서 장약 존나 잘타는거 봤지
3미터 불기둥이라니 상상이 안돼;ㄷ
와 어캐 살앗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