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중해로 열린 그리스의 최대 항구.
국가 부도 위기로 존립 기반이 흔들렸던 피레우스항에 생명을 불어넣은 건 중국이었다.
중국 국영기업 '코스코'가 운영권을 거머쥐면서,
일자리 수천 개가 살아났고 시설은 첨단화됐다.
"항구 정문에는 군데군데 녹이 슨 낡은 크레인이 서있습니다."
"그리스가 조선업 강자였던 1970년대와 80년대를 기념하기 위해서 남겨둔 거라고 합니다."
지금은 바로 맞은편 본사 건물에 중국어 간판이 내걸려 있다.
세계적인 해운업체로 성장한 코스코는 지난해, 항구 일대를 관광지로 개발한다는 계획도 내놨지만, 그리스 당국은 인근 유적지가 훼손될 수 있다며 불허했다.
2016년, 코스코는 약 4천 7백억 원에 피레우스항 컨테이너 터미널 지분 100%를 사들였다.
헐값 매각 논란 속에 관광지 개발 불허가 중국 자본 잠식을 우려한 그리스 관료들의 저항이었다는 외신 보도가 나왔다.
코스코 측은 억울해 한다.
하지만, 중국의 그림자는 아테네의 관문부터 드리워져있다.
"25만 유로(3억 2천만원) 정도의 부동산만 구입하면 그리스와 26개 국가의 영주권을 얻을 수 있다"는 중국어 광고가 곳곳에 붙었다.
아테네 공항도 지분 일부를 중국이 차지했다.
2013년, 그리스 정부가 이른바 '황금비자'를 도입한 이후 중국인 소유가 된 아테네 부동산은 4천 건이 넘는다.
그리스는 중국보다 집값이 싸기 때문에 죄다 몰려드는 것이다.
하지만, 아테네 도심에는 국가 부도 위기가 끝나지 않았음을 보여주듯 빈 건물, 짓다 만 건물이 즐비하다.
"아테네 거리를 걷다 보면 팔거나 세를 주려고 내놨지만 오랫동안 거래가 돼지 않아서 이처럼 흉물이 된 건물을 아주 흔하게 볼 수 있습니다."
국영철도까지 외국에 넘긴 정부의 자산 매각 바람은
문화유산으로도 닥칠 기세다.
2014년 이후 유적지 일부가 매물로 나올 거라는 보도가 끊이질 않았던 아크로폴리스.
2018년엔 매각설이 구체화되자 문화부 공무원들이 파업 시위를 벌였고, "아크로폴리스는 매각 대상이 아니다"라는 정부의 공식 발표를 이끌어 냈다.
이탈리아의 관광명소 베네치아.
12세기 교황 지시로 지어져 수백 년 간 베네치아인들의 성지로 사랑받아온 산살바도로 성당.
이탈리아 정부가 최근 경매 매물로 내놓은 뒤, 리모델링 공사가 한창이다.
최저 입찰가는 370억여 원으로 책정됐는데,
중국계 자본이 호텔로 개조하고 싶다며 관심을 보인 것으로 알려졌다.
현지 부동산 중개업자에 따르면 중국인들이 상업시설 투자에 이어 호텔 숙박 시설 투자에 관심을 많이 갖고 있다고 한다.
이런 분위기 속에 베네치아에도 중국인 관광객은 물론, 중국인이 경영하는 음식점이 부쩍 늘었고
기념품 가게까지 베네치아산을 판다고 써붙여야 할 만큼 중국산이 밀려들고 있다.
베네치아 상인은 불편한 기색을 보인다.
이탈리아 정부는 최근, "공공건물 경매를 통해 3년 동안 120억 유로(약 16조 원)를 확보한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로마 근교, 중세에 지어진 치비텔라 체시성.
대문은 잠겨진 지 오래고 잡초만 무성하다.
주민들의 추억이 깃든 체시성도 정부의 매각 리스트에 올라 최저 입찰가 4억 4천만 원에 매물로 나왔다.
뛰어난 풍광을 자랑하는 오르시니 오데스칼키성.
웅장함에 구석구석 중세 예술 양식이 녹아있어 은은한 자태까지 뽐낸다.
최근 이 성도 매각됐다는 보도가 잇따랐지만, 오보였다.
스타들의 결혼식장으로 유명세를 떨치다보니 뜬소문에 휩싸인 것이다.
현재까지 이탈리아 정부가 경매에 붙인 건물은 420여개.
여기에는 정부 청사도 포함됐다.
"관공서들이 모여있는 로마 중심가입니다."
"제뒤로 보이는 건물은 이탈리아 국방부인데요. 이 국방부가 소유한 부동산 41건도 매물로 나왔습니다."
국적 항공사와 국영통신사도 외국에 팔렸다.
하지만, 이탈리아의 노숙자는 5만 명을 넘어선지 오래고,
그리스에서는 정부의 긴축재정에 반대하는 시위가 끊이질 않고 있다.
지난해 1분기 그리스와 이탈리아의 국내총생산 대비 국가 부채 비율은 각각 182%와 134%.
유럽연합 권고치 60%보다 훨씬 높다.
이탈리아 정부가 국유재산을 팔았어도 부채 비율은 0.1%보다 적게 줄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