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25년 음력 3월 모문룡 휘하 참장 역승혜의 명을 받은 승려 조영이 조선으로 파견을 왔다.
당시 의주부윤 이완은 조영으로부터 대단한 소식을 들었다.
누르하치가 금주를 공격하려 하다가 대패를 당했는데
그 전투에서 암바 버일러 다이샨이 전사한데다가, 어마어마한 손실로 말미암아 고작 2만여 군대만 남아, 요양을 버리고 심양으로 후퇴했다는 소식이었다.
이 보고는 조정에까지 올라갔는데, 조정의 대신들은 "일개 승려가 모문룡의 상황을 좋게 표현하기 위해 아첨을 하는 것일 수도 있다."며 쉽게 믿지 않고 의심했다.
조정 대신들의 의심은 합리적이었다.
사실 누르하치는 금주로 쳐들어간 적이 없었고, 단지 그로부터 얼마 전에 여순구를 망굴타이를 시켜 공격했을 뿐이었다.
그리고 그 전투에서 망굴타이는 승리했고, 후금군의 피해도 그리 크지 않았다.
또한 누르하치가 심양으로 천도한 것은 맞으나, 그것은 패전때문이 아니라 내부의 통치문제로 인한 천도였다.
한인들의 집단적 반발과 반란에 질린 누르하치가 결국 요양에서의 통치를 거부하고 수많은 한족들을 학살, 노복화 한 뒤 심양으로 거처를 옮긴 것이었다.
물론, 다이샨 역시 죽지 않았다. (이로부터 20년 정도는 지난 뒤에야 다이샨이 자연사한다.)
모문룡쪽은 이런식으로, 조선측에 사실이 아닌 정보를 흘리는 경우가 꽤 많았다. 의도한 경우도 있었고 실수로 흘린 경우도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