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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 졷같은 질문만 들고오는구나, 아무로. 차라리 전쟁을 물어보던가 해라."
"하지만 나는 이게 궁금한걸?"
"아오 시1바 진짜."
"어쨌든 질문을 했으니 답변은 해주마. 자르구치란 몽골 세계에서 '법리 심판관 혹은 형정 집행관'을 뜻한다.
이 개념은 몽골 세계에서 칭기즈칸 시대 이후 몇 세기동안 그들의 '몽골 울루스' 사이에서 유효했지.
금나라가 멸망한 뒤 몽골의 지배를 받고, 그들과 상호적 교류를 많이 한 여진에도 자르구치 개념이 도입되었다.
즉, 자르구치란 몽골과 여진 양 세력에 모두 존재했던 개념이다.
하지만 네가 암바 자르구치를 물었다는 것은, 몽골 세계의 자르구치가 아니라 여진 세계의 자르구치를 질문한 것이므로 이에 대해 답변하겠다. "
"여진 세계에서의 자르구치 역시 몽골 세계에서의 자르구치와 마찬가지로 일단 기본적으로 '법'과 관련된 직책이었다.
그러나 15~16세기 여진 세계가 뿔뿔이 쪼개진 시점에서 '법'을 제대로 다룰만한 세력은 그리 많지 않았지.
해서 여진계 국가인 훌룬, 예허(단 예허는 해서 여진계라곤 하나 근본이 달랐다), 그리고 훌룬에서 파생된 울라와 하다, 최후로 건국된 호이파같은 세력은
덩치가 제법되는데다가 몽골과의 교류가 활발하여 자르구치 제도를 활용했던 것으로 추정된다만(다만 호이파는 덩치가 작았던데다 몽골과의 거리가 있어서 불확실하다),
16세기 이전의 건주 여진에 자르구치가 있었는지는 쉽게 파악되지 않는다.
동해 여진 같은 소규모 세력들의 군집은 말할 것도 없지."
"그러다가 건주가 누르하치에 의해 통일된 이후 누르하치가 법제를 세우면서 건주 역시 자르구치 제도를 도입, 본격적으로 유용하게 된다.
1587년 기초적인 법제가 반포된 뒤, 1588년 귀부한 피옹돈이 자르구치가 된 기록이 보이며, 이후 1593년 이전에 복수의 자르구치가 있던 것이 파악된다."
"피옹돈이? 내가 알기로는 그 인간 장군 아니야? 분명 도즐 자비급의 근육뇌였을 것 같은데 어떻게 자르구치가 됐지?"
"여진족 세계에서는 무장이 행정도 동시에 담당하기도 했다. 이는 후금시기 까지도 계속되다가, 홍타이지 집권기서부터 점차 개선되기 시작했지.
피옹돈도 그 중 한 명이었다. 장수이면서, 법관이었던 것이지."
"이후 건주 세력의 크기가 커지면서 자르구치의 수는 점차 늘어났는데,
누르하치가 구축한 제도에 대한 1615년 설명 기록을 보면 5명의 대신(흔히 5대 개국공신이라고 칭해짐)과 10명의 자르구치가 있었다고 설명하고 있다.
그러나 이 '10명의 자르구치'라는 것이 꼭 고정된 숫자는 아니다. 자르구치란 필요에 따라 숫자가 늘어나거나 축소되기도 했기 때문이지.
다만 평균적으로 10명이었다고 알아두면 좋을 거다.
한편 개국 초기쯤에 '자르구치' 직책을 가졌던 인물은 총 18명인데, 실제로 18명의 자르구치가 동시에 근무하던 시기가 있을 지는 확실치 않다.
이 18명의 자르구치의 재임기가 불확실할 뿐더러, 자르구치들 중에 전사하거나 반역 혐의로 처형당하는 등 쭉 자르구치 직책을 유지하지 못한 경우가 있기 때문이다.
18명은 당시 누르하치 세력에 존재할 수 있던 최대수의 자르구치 인원이라고 생각하면 될거야."
"어쨌든 건주에 자르구치가 한 10명쯤 있었다는거 아니야. 암바 자르구치가 그들의 리더인거지?"
"그렇다. 아무로. 자르구치들의 최고 통솔자가 바로 '암바 자르구치'다. 이는 몽골의 '예케 자르구치'와 동일선상에 놓고 볼 수 있는데, 대심판관 정도로 번역할 수 있다.
자르구치들의 필두는 최초에 알란주가 있었다. 그러나 기록이 남은 것이 별로 없어 뭐 말할 것이 별로 없다.
그러다가 암바 자르구치로 확실히 거론되는 것이 바로 앞서 소개한 '피옹돈'이다. 그는 네 생각대로 뇌까지 근육덩어리인 무식한 돌격대장이 아니라
문무를 겸비한 용장이었지. 그는 자신의 매부가 잘못된 행동을 저지르자 곧장 심판함으로서 누르하치로부터 칭찬을 받고 자르구치의 직함을 얻었다.
그리고 평소에는 법률과 송사, 형집행을 주관하였으며, 전장에서는 군대를 지휘했지. 그는 '암바 자르구치'임과 동시에 '5대 공신'의 일원이었다."
"생각했던 것보다 존내 똑똑했구나. 피옹돈. 지휘에 법률까지 보다니."
"그에 비하면 우리 함장은 뭐지?"
"나 사관학교 출신이야 이 새끼야!"
애미야 탄막이 얇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