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at's The Underground?!
'언더그라운드(Underground)'와 관련한 몇 가지 개념적 정의들 - 상대적 개념들과의 비교를 중심으로
- 차례 -
1. Definition Of The Art
2. Where Is The Underground
3. It's Not Minor, Just Not Major
4. Independent Money
5. All For The Auteur
이 보고서는
1. '언더그라운드'라는 개념과 혼동하기 쉬운 여타의 몇 가지 개념들에 대해 알아보고,
2. '언더그라운드'와 그것들과의 구체적인 차이점을 이해하여,
3. '언더그라운드'의 개념을 보다 확실히 이해 하고자 하는
목적으로 쓰여졌다.
1. Definition Of The Art
시작에 우선하여, 이 문서가 '언더그라운드'라는 용어의 오용을 막기 위한 이야기로 쓰여짐을 먼저 밝혀두는 바이다. 언더그라운드는 일개 예술 장르를 지칭하는 용어가 결코 아니다. 따라서 특정 예술가들의 집단을 지칭하는 용어는 더더욱 될 수 없다. 그렇다면 대체 '언더그라운드'는 정확하게 무엇을 지칭하는 용어란 말인가? 이 질문에 대한 해답을 찾는 것은 답답하더라도 잠시 뒤로 미루기로 하자. 우리는 '언더그라운드'라는 용어를 이해하고 그 무분별한 사용을 피하기 위해서, 먼저 '언더그라운드'라는 개념 주변을 둘러싸고 있는 개념의 카테고리, 즉 '예술'이라는 추상적 범주의 개념에 대해 우선적으로 이해해야 할 필요가 있다.
"'예술'이라 함은 도대체 무엇을 의미하는 것입니까?"
누군가 내게 불시에 위와 같은 질문을 던진다면, 난 다음과 같이 대답할 예정이다.
"표현하고자 하는 자(공급자)와 이해하고자 하는 자(수용자)들을 비롯하여 그들 사이에서 일어나는 일련의 커뮤니케이션, 그리고 그 커뮤니케이션의 도구로 사용되기 위하여 구상되어지고 생산되어지는 모든 것들이 바로 예술이며 또한 예술을 구성하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표현하는 자는 곧 예술가요, 이해하는 자는 바로 관객이며 청중이겠습니다. 이들 사이에 일어나는 커뮤니케이션이 곧 예술행위이고, 이 행위 과정에서 도구로 사용되어지거나 그 자체로 목적시 되어져 만들어지는 모든 것들이 곧 예술작품입니다. 이 모든 것이 예술을 구성하게 되는 것이며, 따라서 이 모든 게 그 자체로 예술이라 할 만 합니다. 본질과 그 기능을 이야기하자면 '기예(技藝)'에 관한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 없겠습니다만, 현상에 관해서만 대답하자면 그것은 의사소통의 과정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우리가 '언더그라운드'를 얘기하기에 앞서 '예술'에 관한 개념을 먼저 이해해야 하는 이유는, 이제부터 몇 가지 질문들의 해답을 찾아가는 과정에서 반드시 전제해야만 하는 굵직한 한마디가 저 대답 안에 있기 때문이다.
"예술은 의사소통의 과정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앞으로 우리는 다음의 몇 가지 질문들에 대한 해답을 찾아가는 방식으로 본격적인 '언더그라운드' 용어 개념에 대한 논의를 시작할 것이다.
Q-a: '언더그라운드'라는 용어가 지칭하는 대상은 정확하게 무엇인가?
Q-b: '언더그라운드'와 '인디펜던트(소위 인디)'는 같은 것인가 다른 것인가?
Q-c: '언더그라운드'와 '반주류(anti)'는 어떻게 다른가?
당신은 논의가 진행되는 동안 이 서론에서 언급한 정의를 결코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예술은 의사소통이다.
2. "Where Is The Underground"
Q-a: '언더그라운드'라는 용어가 지칭하는 대상은 정확하게 무엇인가?
'언더그라운드'는 일개 문화 장르를 지칭하는 용어가 결코 아니다. 따라서 특정 아티스트 집단을 지칭하는 용어 또한 결코 될 수 없다. 국내에서는, 특정 지역에서 성행하는 Rock 음악 내지는 Hiphop 음악계가 주목받기 시작한 결과로 '언더그라운드'라는 용어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다. 그 때문인지, '언더그라운드'를 특정한 음악 장르로 받아들이고 사용하고 있는 예가 많다. 그러나 '언더그라운드'는 딱히 음악에 한정된 개념이 아니고, 따라서 '언더그라운드'를 특정 음악 장르 혹은 그 장르에 속하는 음악인 집단 쯤으로 이해해서는 안된다.
우리는 '언더그라운드'가 지칭하는 정확한 대상을 알기 위해 'Scene(씬)'이라는 용어의 개념에 대해 이해할 필요가 있다. 씬이란 개별적 문화 장르의 공급자와 수용자들이 형성하고 있는 세계, 그리고 그들이 직접적으로 만나게 되는 (경제적 개념의)시장 전반을 통틀어 칭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달리 말하자면 씬이란, 아티스트와 관객이 공유하고 있는 문화계 전반을 일컫는 표현인 것이다.
따라서 '언더그라운드'는, "각각의 예술분야 어디에나 존재하고 있는 특정한 성격의 씬"이라 정의하는 것이 가장 적당할 듯 싶다. 따라서 당신이 '언더그라운드'를 신촌이나 홍대 일대에서 연주되어지고 있는 특정한 성격의 Rock이나 Hiphop 음악쯤으로 이해하고 있었다면, 교양 있고 생각할 줄 아는 문화인 반열에 끼기 위해서라도 한시 바삐 그 생각을 바꾸는 게 좋지 않을까 싶다.
3. Independent Money
Q-b: '언더그라운드'와 '인디펜던트'는 같은 것인가 다른 것인가?
매체에서건 젊은이들의 잡담에서건 '인디'라는 말은 요즘 어렵지 않게 들을 수 있는 말 가운데 하나이다. 이 말은 다름 아닌 '인디펜던트'를 뜻하는 말이다. 하지만 이 '인디펜던트'에 대한 개념을 제대로 이해하고 그 용어를 사용하는 예는 극히 드물며, 심지어는 '언더그라운드'와도 구분 없이 사용되어지고 있는 예 또한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인디펜던트'의 개념은 예술계를 경제적 개념의 시장형태로 인지하고, 그 관점에서 예술 시장을 바라보았을 때 그 안에서 유통되는 자본들에 대한 개념으로 이해하는 편이 올바르다. 스폰서와 대중에 관계하며 대량판매에 의존하는 형태의 대자본이 아닌, 독립된 형태의 소자본을 생산자원으로 지향하는 씬을 일컬어 '인디펜던트'라 부른다. 즉 '인디펜던트'는 해당 예술계의 예술적 성격이나 지향점 따위와는 상관이 없는 경제적 관념인 것이고, 따라서 '언더그라운드'와는 그 성격을 완전히 달리하는 또 하나의 분류기준에 따르는 관념이다.
하지만 '언더그라운드' 씬이 '인디펜던트' 적인 자본형태를 지향하는 예는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이는 '언더그라운드'라는 예술계가 지향하는 '작가주의'에 의한 결과라 할 수 있다. '언더그라운드 예술가'들은 자신들의 예술품을 만드는 데 드는 비용을 스폰서들이 지원해주나, 그 대가로 스폰서들의 의사가 어느 정도 자신들의 예술품에 투영되는 것을 용납하지 않는다. 또한 대량판매로 이윤을 남기기 위해 대중의 바람을 자신들의 예술품에 투영시키지도 않는다. 따라서 '언더그라운드 예술가'들은 자신들이 만들고 싶은 것만을 만들기 위한 최소한의 자본을 추구하게 된다. 바로 이러한 이유로 '언더그라운드'가 '인디펜던트' 적인 양상을 띄게 되는 경우가 많게 되는 것이다. 당신이 반드시 명심해야 할 점은, 저러한 형태의 '언더그라운드'들은 어디까지나 '언더그라운드'의 성격을 띄면서 또 다른 한편으론 '인디펜던트'의 성격을 띄는 것이라는 점이다. 따라서 결론을 내리자면, 언더그라운드 = 인디펜던트라는 공식은 각각의 개념들이 관장하는 영역이 다르기 때문에 성립할 수 없는 것이라 할 수 있겠다.
4. It's Not Minor, Just Not Major
Q-c: '언더그라운드'와 '반주류(anti)'는 어떻게 다른가?
'언더그라운드'는 제도권에 대한 단순한 'anti' 집단의 개념이 아니다. '언더그라운드'는 주류에 대해 상대적으로 존재하는 소수를 지칭하는 것일 뿐이지, 제도권에 대한 반발로 생겨난 반동 부류들이 아니라는 얘기다. 모든 언더그라운드 예술이 비상업적인 노선을 취해야 하는 의무가 있는 것도 아니고, 언더그라운드 예술의 산물들이 잘 팔리지 않아야 할 의무도 법칙도 없다. 그렇다고 언더그라운드 예술의 산물들은 항상 삐딱한가? 반듯하지 않아야 할 의무라도 있는가? 그것 역시도 아니다. 그렇다면 많은 이들이 대체 왜 '언더그라운드'를 반동적 성향의 집단으로 오해하고 있는 것일까? 물론 '언더그라운드'가 그 자체 즉자적으로 존재하는 씬일 수는 없다. '언더그라운드'는 어디까지나 '오버그라운드'에 대하여 상대적으로 존재하는 씬이다. 하지만 그 대자적 존재상황을 이유로 '언더그라운드'를 무조건적인 주류에 대한 반동집단으로 여겨서는 위험하다.
문제는 많은 사람들이 '비주류(not trend)'와 '반주류(anti)'의 의미를 혼동하고 있다는 점에서 발생한다. '언더그라운드'는, 작가들 각자가 하고픈 예술을 외부조건에 구애받지 않고 자유롭게 하는 씬쯤으로 이해하는 것이 가장 적당하다. 따라서 '언더그라운드'라는 씬은 주류권을 거부하는 동일한 목적을 가진 작가들이 모여 반동의지를 함께 다지는 씬이 결코 아니다. '비주류'라는 말을 '반주류'와 구분해서 쓰는 것이 바람직하다.
달도 차면 기우는 법이다. 어떤 형태의 문화 건 생겨나서 정착되고 발전하고 정형화되다가 결국엔 쇠퇴한다. 즉, 라는 5단계의 진행모델을 따르게 되는 셈이다. '비주류'는 바로 저 다섯 단계 가운데, 정형화의 시점에서 생겨나게 된다. '비주류'가 생겨나는 시점을 상기할 때 '비주류'는 '주류'에 대한 대안(alternative)을 잉태한 체 발생하는 것이라 이해할 수 있겠다. 하지만 우리가 여기서 짚고 넘어가야 할 부분은, 결코 '비주류'들이 잉태하는 대안은 그 대안이 목적시 되어져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일련의 목적의식 아래서 '주류권'에 대한 반발로 태동하는 '반주류(anti)'들과는 바로 이러한 점에서 그 성격이 갈린다고 본다. 내가 보기엔 '비주류'들의 예술적 제작의도는 보다 더 자유롭다. 그들은 그저 자신들의 방식을 사심 없이 수용자들 앞에 제시할 뿐이다. 그것이 받아들여지건 안받아들여지건 그들은 자신들의 목소리를 그렇게 내는 것이다. 혁명적 의지를 가진 소위 '안티'들과는 확실한 차이가 있다. 따라서 정리하자면, '언더그라운드'는 그 산발적인 창작의 자유로움을 통해 정형화 되가는 주류권 문화의 단점을 자연스레 보완하는 씬, 그리고 동시에 새로운 시도의 모색을 지향하는 씬으로 이해할 수 있겠다.
5. All For The Auteur
Answer: 언더그라운드란 무엇인가
앞서 하나씩 따져가며 작은 개념들 사이에 분명한 선을 긋긴 했어도, 그 개념들 사이의 유기적 엮임은 막을 수가 없는 노릇이다. 또 그 유기적 연관성이 보다 밀접하게 서로를 옭아매어 그것이 필연성으로 이어지니, 그 용어의 개념들이 쉬이 헷갈리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난 이런 '선긋기' 작업은 계속되어져야 하고, 나보다 더 뛰어난 다른 사람들의 연구를 통해 보다 더 구체화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자, 그럼 이제 결론을 향해 한 걸음 내디뎌 보자. 당신이 앞선 질문들의 대답들을 잘 이해했다면 다음과 같은 결론에 이르러 있을 것이다. '언더그라운드'는 아티스트들 각자가 자유롭게 그리고 산발적으로 자신들의 방식을 주장하는 씬이고, 그 과정에서 정형화된 주류권 예술들에 대한 대안적 시도들이 행해지는 씬이다. 따라서 그 결과물들의 가운데에는 언제나 작가 자신이 있다. 그들은 자신들의 신념을 자신들의 목소리로 자신들의 작품에 투영시킬 뿐이다.
그럼 이 시점에서 본 보고서의 서론에서 본인이 내뱉고 넘어갔던 정의를 떠올려보자. "예술은 의사소통이다." 그렇다. 예술을 커뮤니케이션으로 이해했을 때 '언더그라운드'의 화자들은, 청자들이 듣고 싶어하고 듣기 좋아하는 것을 얘기하는 사람들이라기 보다는 자기가 하고 싶은 말을 하는 사람들이다. 따라서 그들의 자기 목소리 내기는 자칫 예술적 자위행위에 그칠 수도 있다는 위험을 수반한다. 하지만 그 위험을 동반하고서라도, 그 자유로운 외침들은 중단되어선 안 된다. 비록 빛이 만들어낸 그림자 속 외면 받는 음지에서라도, 그 독백들은 떳떳하고 당당하게 읊어져야 한다. 내가 굳이 이 자리에서 헤겔의 변증법을 구구절절 떠들어대지 않더라도, 중학교 시절 뉴튼의 작용-반작용 법칙 정도만 이해한 사람이라면 내 생각에 동의할 수 있으리라. 끊임없는 대안의 제시를 위한 자유로운 발언이 어느 문화계 어느 예술계에나 반드시 필요하다는 내 생각에 분명 동의할 수 있으리라. 작용을 위해 반작용이, 그리고 그 작용 다음엔 다시 반작용이. 엑션 다음엔 리엑션이, 행위 다음엔 반응이 반드시 따라붙게 되어있다.
어떤 작가가 '언더그라운드'를 지향하는 것은, 짧게 생각하면 돈키호테가 되기를 자처한 그가 그저 자기세계 안에만 갇혀서 겨우 자기하늘만 바라보는 것 정도로 생각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 돈키호테의 무모한 돌진은 세상 사람들 눈에 가시밭길 위로 미련한 발걸음을 내딛는 것처럼 보여질 수도 있을 것이다. 어쩌면 그 미련한 행보들에 대한 보상은 영원히 받을 수 없는 것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들이 자기 자신을 그 음지 속에 헌납한 이유는, 그런 복잡한 속세의 가치들 속에서는 애초 부터 찾을 수 없는 게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그들은 보다 더 단순한 이유 때문에 그 어두운 지하의 발언대 앞에서 자신들의 주장을 부르짖고 있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그들은 그저 자기존재의 독창성과 개성을 철저하게 자신을 위해 부르짖고 있을 뿐이다. 그것이 다른 이들에게 발상의 다양함과 시도의 신선함으로 받아들여지고, 나아가 그것이 씬 전체의 풍요로움을 야기할 수 있기를 원했다면, 그들은 아마도 훨씬 효율적인 방법을 택했을 것이다.
나는 최근 헤르만 헤세의 소설 가운데 "황야의 이리"라는 책을 읽었다. 헤세가 사용한 '황야의 이리'라는 말의 의미는, 시대와 시대, 문화와 문화, 사람과 사람 사이에 끼인 자들, 그래서 철저하게 고독한 자들을 의미한다. 세상과 사람과 어울리지 못하고 방황을 거듭하며, 그 고독감과 함께 자기 내면 속으로 침잠하여 자기만의 의미를 찾아 헤매는 사람들. 헤세는 소설 속에서 철학자 니체를 예로 든다. 당대에는 니체를 정신병자라 손가락질 받게 만들었던 그의 사상이 이제는 그의 서럽던 지난 날들을 빛내준다. 언젠가 '황야의 이리'였던 니체가, 이제는 시간에 종속되지 않았던 현자들 가운데 하나가 된 것이다. 속세의 물질 보다는 궁금함을 탐했던 순수한 사람들, 시대를 앞질러 걷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았던 용사들, 에덴에서 쫓겨난 아담, 당나귀를 탄 돈키호테, 오늘의 정신병자들, 내일의 선구자들.
우리는 지금 까지 '언더그라운드'라는 용어의 진정한 의미를 파헤쳤다. 진정한 의미의 '언더그라운드', 그 씬을 지키고 있는 사람들....... 그들이야 말로 헤세가 말하던 '황야의 이리'가 아닐까. 그들은 자신들이 다른 길을 택할 수 없는 시대의 돌연변이로 태어났다는 것을 스스로 너무도 잘 알고 있다. 그렇기에, 조용히 어두운 곳에서 그 업을 따라 나름의 생을 살고 있을 뿐이다. 운명의 결과가 좋으면 다행이겠지만, 결과가 나쁘다고 해도 어찌할 수 없지 않은가!
독립영화 같은거지
진짜 오랜만이네 이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