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곤란하네 ..."
멍하니 입에서 가볍게 중얼거렸다.
그러다 머리에 묻은 빗방울을 털면서,
망가진 천막 앞으로 펼쳐진
비구름 떼를 올려다본다.
강우 확률 10 %.
아침의 일기예보는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거실에서 동생들과 잼을 발라 식빵을 먹으며,
10 %라면 좀처럼 내리지 않는다.
내려도 이슬비 정도일거야 라고 생각했었다.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있었다.
그래서 이슬비 조차
맞을 것이라곤 생각치 못했다.
그러나 기다린 것은 굵은 빗방울이
방울방울 쏟아지는 귀가길.
이것이 우산도 없이,
가벼운 발걸음으로 등교한 대가일까?
"잔혹..."
무자비한 현실에 내던져져,
무의식적으로 배 주위를 부등켜 안았다.
그러나 팔이 허공을 내짓는 느낌으로
문득 떠올랐다.
오늘은 누리공이 없다...
어제 동생들이 유치원 장기 자랑에서
누리공의 벌룬을 사용하고 싶다고 졸랐었다.
어쩔 수 없지만, 소중히 한다는 조건으로
데려가는 것을 허락했다.
누리공이 없다.
그 사실이 나를 더욱 예민하게 만든다.
생각해보면 오늘은 숙제를 잊어먹고,
도시락에는 젓가락이 없고,
맛없는 사탕을 맛보는 등
웃음이 나올 정도로 엉망이었다.
발 밑을 내려다보며,
오늘 하루를 되새기며 쓴웃음을 짓는다.
그러고 보니 아침에 샌들을 신고 있을 때,
우산은 안 가져가도 되냐고 엄마가 물었던가?
그때는 기분이 들떠 있었기 때문에,
뭐라고 답했는지 잘 기억나지 않는다.
아마 필요없다며,
두서없이 대답했을지도 모른다.
잘 들었어야 했구나....
운수가 나쁘다.
귀신에 홀린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바보같다.
그러면서도 어딘지 모르게
신경이 쓰여 뒤를 확인해 본다.
닫힌 셔터가 있었다. 약간 녹슬어 있다.
시선보다 조금 위에 붙여져 있는 것은
로열 돔 개설 기념의 포스터.
돔을 배경으로, 빛바랜 사진의
중앙에 들어가 있는 것은 1명과 1마리.
하지만 로열 마스크와 어흥염이 아니다.
도전자 구함! 이라며, 큼직 큼직하게
고딕체로 쓰여진 글씨의 뒷 쪽으로
거기에는 왜소한,
그러면서도 역전의 분위기를 풍기는
정장 차림의 중년으로 보이는 남성 사회자와,
파트너인 에레브가 함께 팔짱을 끼고
이쪽을 응시하고 있었다.
아무도 없다.
당연하려나?
차라리 귀신에 홀려있는 편이,
이 불운의 이유도 붙을 텐데.
깔보는 듯한 2인조의 시선이 묘하게 느껴졌다.
평소에는 아무렇지도 않은데,
오늘은 왠지 다르다.
2인조를 흘깃 보고,
고개를 돌리며 다시 빗줄기를 바라본다.
아직 하늘은 울고 있었다.
울고 싶은 건 이쪽이야.
왠지 몸이 무겁다.
조용히 휘몰아치는 바람에서 벗어나도록,
셔터에 등을 기댄 채 몸을 굽힌다.
쓰윽, 샌들의 겉을 쓰다듬었다.
군데 군데 진흙 자국이 붙어 있었다.
펄럭 펄럭 흔들리는 젖은 바지 자락.
바람이 강해졌다...?
근처의 나무들은 가지를 흔들었고,
먼 바다에서는 풍파가 신음 소리를 내질렀다.
비구름도 사납게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스쳐 지나간다.
멍하니 눈앞의 웅덩이를 바라본다.
톡 하고 빗방울이 닿을 때마다 파장이 생긴다.
그것은 동심원으로 퍼졌고,
곧 다른 파장과 상쇄되어 사라졌다.
그것의 반복.
웅덩이 주제에 유난히 맑은 것 같다.
지하의 수맥에서 솟아나고 있는 것이 아닐까,
하고 의심하고 싶을 정도로 맑았다.
문득 지우에게 루어를 빌려줬던 것이 생각났다.
피카츄 모양의 샛노란 녀석.
정말 지우가 좋아할 것 같은 녀석.
내일 돌려받자. 집까지 찾아가자.
그리고 들려주는 오늘의 일.
그러면 조금은 우울한 기분도 잊혀진다.
바지에 얼굴을 파묻고,
이것도 이야기하자, 저것도 이야기하자.
생각에 잠겨 본다.
꽤 즐겁다. 이거
이러면 비가 그칠 때까지
심심풀이 할 수 있을지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을 때.
"수련?"
떨어지거나, 솟아났다는 말이
이 경우를 뜻 할지도 모른다.
귀에 익은 목소리.
얼굴을 들어올린다.
과연 거기엔 지우가 있었다.
아마 하늘에서 내려 왔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니, 웅덩이에서 솟아 왔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방문객.
갑작스런 방문객의 등장으로
얼떨결에 그런 생각을 해버렸다.
큼직하고 연한 밝은 노란색 우산을 쓰고,
웅덩이에 한쪽 발은 담근 그는
걱정스러운 얼굴로
온화한 시선을 떨구고 있었다.
어딘가 평소보다 차분하게 느껴졌다.
상대방의 모습을 볼 자신이 왠지 없었다.
"왜? "
너무나도 간단한 물음이 그에게 향했다.
조금 전, 그토록 궁리하던 이야깃거리는
멀리 날아가 있었다.
"응, 루어 돌려줄까 해서. 고마워."
부스럭 거리며 오른쪽 주머니를 만지더니,
멋쩍은 듯 노란 빛을 도는 그것을 꺼낸다.
오른손이 내밀어졌다.
"고마워."
앉은 채로 있는 부자연스런 모습으로,
그의 뻗은 오른손으로부터 양손으로
주뼛주뼛 그것을 받아든다.
종자가 주인으로부터 상을 받는 듯한,
그렇지만 전혀 모양이 나지 않는
그 꼴사나운 모습은
옆에서 보면 우스운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지우야, 이걸 돌려주려고 온거야?"
"뭐, 돌아가는 길이기도 하고"
"그렇구나, 이제 돌아가니?"
"음, 아직 아무런 생각도 안했는데."
뭐야, 그게
하지만 이러니 저러니 해도 곧 돌아가겠지?
그래, 그것이 보통.
볼일도 없는데,
이런 곳에 더 있어야 할 필요성 따윈 없는걸.
적어도 배웅 정도는 제대로 하려고
루어를 배낭에 넣고 일어섰다.
그 모습을 보고 뭔가 마음에 걸리는지,
약간 의아한 듯.
그래서 멍하니 서 있는 채,
뭐라고 형용하기 어려운 표정으로
이쪽을 향했다.
"우산 없는 거야?"
들켰다.
딱히 숨긴 건 아니다.
빗속에서 이런 외진 곳에
혼자 잠자코 앉아있으면 누구나 알 수 있다.
다만, 그에게 들키는 것이 조금 싫었다.
우산을 하나 더 가지러 갈지도 모른다.
함께 비를 피해 줄지도 모른다.
나에게 우산을 주고,
비 맞으며 달려가 버릴지도 모른다.
그런 걱정이 있었다.
상냥하니까, 지우는.
하지만 폐를 끼치고 싶진 않다.
정도에 따라 다르겠지만,
지우에게 폐가 될 것 같은 제안은
고집을 부려서라도 거절하겠다고 마음을 굳혔다.
"응, 까먹었어.“
”그럼 들어와, 바래다줄게.”
아무렇지도 않은 듯이, 그는 말해버렸다.
정작 나는 무슨 말을 했는지, 순간 알 수 없었다.
그럼 들어와? 바래다줄게?
그 말은 같이 우산에 들어가, 같이 돌아가는 것?
뺨이 뜨거워지는 것이 전해져 온다.
"아니, 저, 그게..."
"괜찮아. 수련이네 집,
앞으로 10분도 안 걸리잖아."
말을 잘 잇지 못하는 나를,
짙은 갈색의 맑은 눈동자가 응시하고 있다.
도망칠 수 없어.
그렇게 생각했다.
"아, 응... 그럼 부탁...할게..."
더듬거리며, 주뼛거리며,
그의 우산에 느닷없이 들어선다.
안에는 앞으로1명은
더 들어갈 정도의 여유가 있었다.
이거라면 서로 어깨가 젖을 걱정은 없을 것 같다.
"가볼까?"
천천히 오른쪽의 그가 움직이기 시작한다.
그 보폭에 맞추도록, 이쪽도 걸음을 옮긴다.
그저 나란히 걷는다.
언제나 그랬던 것처럼.
다른 점은 같은 우산에 들어가 있다는 것 뿐.
엄청난 차이라고 생각했다.
"어깨나 다른데 젖진 않아?"
"응, 괜찮아."
세심한 배려가 마음을 간질였다.
조용히 경치를 옮겨,
어두컴컴한 숲길을 벗어나,
곧바로 바닷가를 한 눈에 볼 수 있는
키 작은 구릉으로 나섰다.
기다렸다는 듯이 바닷바람이 몰려온다.
막아주던 나무가 사라졌기 때문일까.
조금 추울 정도였다.
이럴 때 민소매 셔츠는 불편하다.
부르르 어깨를 떨며,
반사적으로 주머니에 양손을 찔러 넣었다.
왼손에 무언가 잡힌다.
알사탕이다...
달콤한. 매콤한. 떫덜한. 씁쓸한. 시큼한.
5가지 맛이 3개씩 들어간 총 15개들이.
점심 때 마오가 가져온 버섯의 맛을
정교하게 본떠 만든 사탕들.
그것을 러시안 룰렛 방식으로
6명이서 2개씩 먹었었다.
남은 3개는 나와 지우,
마마네가 1개씩 받았었다.
그 나머지가 이것.
덧붙여서 내가 먹은 2개는 모두 쓴 것이었다.
벌레 씹은 듯한 얼굴을 연속으로 찌푸렸고,
달콤한 맛이 당첨된 마오한테서 놀림 받았었나?
말 그대로 씁슬한 기억이 도지면서,
또 다시 자그맣게 어깨를 떨었다.
"그건 그렇고, 엄청 쏟아져 내리는구나.“
이쪽의 모습을 눈치채지 못한건지,
지우는 회색의 하늘을 올려다보고 있다.
"응. 예상외로."
"춥지 않아?"
"괜찮아. 고마워."
역시 눈치채고 있었나?
움찔하고 눈을 내리깔며,
무심코 주머니에서 손을 뺐다.
그리고 방심할 수 없는 녀석...
이라며 곁눈질로 그를 힐끔 쳐다보았다.
아직도 하늘을 바라보고 있다...
오늘은 지우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잘 모르겠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오늘보다는 아까 루어를 돌려받았을 때부터다.
평소와 분위기가 다르다고나 할까,
먼 곳을 바라보는 눈을 하고 있다고나 할까.
어딘가 마음이 여기에 있지 않다는 느낌.
마음을 어딘가에 두고 온 것은 아닌지 걱정된다.
항상 생각하는게 티나는 녀석이.
"그러고 보니, 피카츄 오늘은 없네?"
"집보고 있어.
냐오불 녀석들이랑 낮잠 중 일려나?"
"함께 있지 않은 거, 드물어.“
"뭐, 그렇지."
싱긋하고 지우가 웃는다.
눈동자 속엔 슬픔이 배어있을 것이라곤
도저히 생각되지 않는다.
그렇구나.
비와 바람 소리에 섞이며,
파도 소리가 슬픈 듯이
가냘픈 울음소리로 들려온다.
가슴이 꽉 조여지는 듯 하다.
오늘은 끝까지 내 기분을 살려주지 않을 것 같다.
짧은 한숨이 새어 나왔다.
"뭐, 그리 따지자면, 수련도 그렇지만."
"응?"
"수련과 누리공 말이야."
"아, 좀 여러가지 일이 있어서."
"기운이 없는 이유가 그것 때문이야?"
음, 역시 눈치챘구나.
채소에 소금을 뿌린 것 같이,
풀 죽은 얼굴을 하고 있었기 때문일까?
"아니, 그것도 있지만,
음, 오늘 하루 그다지 운이 좋지 않아서,
그것 때문."
"그렇구나. 뭐, 그런 날도 있지."
그는 내 발밑으로 살짝 시선을 돌리더니,
다시 빙그레 웃는다.
나도 입꼬리를 억지로 올려 웃는 얼굴을 만든다.
어색하다는 것을 스스로도 알 수 있었다.
서먹서먹한 분위기에 휩싸여,
고개를 숙이듯이 시선을 돌린다.
잠깐의 침묵.
빗소리만이 부슬 부슬 우산을 두드린다.
"수련아, 사탕 아직 남아있지?"
갑자기 그가 자기 주머니에서 알사탕을 꺼냈다.
"응, 가지고 있지만...."
"안 먹을거야?“
"음, 오늘은 괜찮으려나?
내일 점심에라도 먹을게."
웅덩이를 조심스레 피하며,
반 웃음으로 대답했다.
"지금 먹지 않을래?"
입에서 능청스런 목소리가 나왔다.
역시 오늘 그는 이상하다.
독버섯이라도 먹은 것이 아닌가 하고,
의심 될 정도로.
"음, 뭐, 괜찮지만."
떨떠름한 목소리로 승낙의 뜻을 전했다.
솔직히 거절 할 이유도 없기 때문에,
순순히 왼쪽 주머니를 뒤적였다.
포장지 양쪽에 있는 꼬여진 부분을 에잇 하고,
양손으로 잡아당겨 둥글둥글한 그것을 꺼낸다.
하늘을 반사해서인지,
뻣뻣한 비닐 종이는
희미하게 잿빛을 뒤집어쓰고 있었다.
왼쪽의 엄지와 검지로 그것을 끼워 넣고,
이마 근처까지 들어 올려,
하늘에 비치도록 눈을 가늘게 떴다.
딱딱한 표면의 색은
굳은 피처럼 거무칙칙 해서,
그것을 통해 하늘이 보이는 일은
전혀 이뤄지지 않았다.
별로 입맛이 당기지 않네.
이것으로 세 번째가 될 불만을
마음속으로 푸념했다.
지우 쪽을 바라보니,
그도 사탕을 입 앞으로 가져오고 있었다.
그리고 왠지 자신있게
아니, 완전 자신만만하게 히죽히죽
이쪽을 보고있다.
달콤한 것을 뽑아 맞출
상당한 자신감이라도 있는 걸까?
내게는 없다.
또 다시 쓴 것이 아니길 빌며,
마음을 굳게 먹고, 입 속에 밀어 넣는다.
잠시 혀 위에서 데굴데굴 굴리고 있었더니,
복슝열매의 달콤한 부드러움이 터져 나왔다.
북돋으며 감싸오는 그것은
이내 신경을 타고 흘러내려와,
비바람에 얼어붙은 나의 몸과 마음을
따뜻이 녹였다.
마음은 둥실 둥실 가벼워지고,
머리는 취해버린 듯 한 느낌에 사로잡힌다.
느리지만 활짝,
온 몸에서 꽃이 흩뿌려진다.
잿더미 세계를 찢고,
장미, 히아신스, 호접란, 팬지, 은방울꽃, 제라늄
등의 꽃들이 눈 가득 피어올랐다.
사탕 하나로 이렇게 행복해질 수 있다니 놀랐다.
그만큼 피폐해 있었는지도 모른다.
피곤할 때 일수록
밥맛이 좋아지는 법칙을 되새긴다.
그리고 내 옆을 걷는 그도
드문드문 꽃 피우고 있었다.
아무래도 달콤한 것이었던 것 같다.
므흣 하고, 이상한 웃음이 절로 새어나온다.
"어떻게 달콤한 줄 알았어?"
"이제 그거밖에 남지 않았으니까."
"그랬던가?"
기억을 더듬어 보면,
확실히 러시안 룰렛에서 달콤한 것을
알아맞힌 사람은 마오 밖에 없다.
그렇다면 남은 3개의 사탕 중
2개는 달콤한 것이었다는 셈이다.
"수련이 돌아간 뒤에,
마마네가 사탕을 먹은거야.
그래서 토망열매의 매운맛을 알아맞춰서,
덕분에 딱 느낌이 왔지.
수련이랑 달콤한 거 같이 먹자고."
마마네가 기절한 모습도 떠올랐는지,
킥킥 웃으며 “루어도 돌려줬어야했지."
라고 그는 덧붙였다.
왠지 목덜미 주변이 근질 근질 낯 가려워졌다.
순수하게 기뻤다.
힘들 때 곁에 있어주는 것이.
지우가 있어주는 것이 기쁘다.
굉장히 기쁘다.
위험해, 웃음이 나와.
들키지 않으려고 허벅지를 힘껏 꼬집었지만,
억누를 수 없는 미소와 통증으로
얼굴이 다시 일그러져 더욱 이상해지고 말았다.
애써 정색을 하여 숨겼다.
"샌들, 아쉽게 됐네."
지우는 젖은 얼굴로 포장지를 구겨놓고 있었다.
"비가 오는데, 어쩔 수 없지."
흙탕물로 더러워진,
갓 신은 하늘색 샌들을 보았다.
멋지게 첫 출전을 장식하려고 벼르고 있었는데,
산산조각 나고 말았다. 솔직히 슬프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좀 전 만큼 그다지 우울하지 않았다.
지우 덕분일까? 그래, 그런 걸로 해 두자.
돌아가면 엄마한테
더러운 것이 안 빠지는지 물어 봐야지.
"괜찮아, 수련아?“
”응, 이제 괜찮아.”
“그렇구나, 조금은 기운이 난 것 같아 안심했어."
"후후, 좋은 일 있었으니까."
"좋은 일이라니?"
"글쎄, 무엇일까?"
짓궂은 미소를 지었다.
"비가 그쳤기 때문이려나?"
"흐에?"
우산을 접으며 말하는 그의 예상 밖의 대답에,
나도 모르게 그만 이상한 소리가
새어 나오고 말았다.
고개를 들어올렸다.
숨을 들이마셨다.
어느새 비구름은 작아지고 있었다.
희미한 검은 구름 사이에서는
햇빛이 간신히 손발을 쭉 내밀어,
주위를 반들반들 상냥하게 감싸고 있었다.
나무들도, 푸른 바다도, 새햐얀 구름도.
거기로 들여다본 맑은 하늘도
화창한 햇살에 빛나며 살아 숨쉬고 있다.
그리고 멀리 남쪽 하늘에서는,
선명한 한 쌍의 무지개가 자리 잡고 있었다.
길고, 묵직하게
서쪽과 동쪽의 하늘을 잇는 다리처럼.
좋은 일이 일어날지도.
알로라에서 행운의 상징으로 회자되는 그것은,
나의 어두운 기분을 반전시킬
마지막 카드로 충분했다.
문득 몸이 가벼워지는 것 같다.
아마 샌들의 망령이 정화 된 것 같다.
"예쁘다..."
"응, 예뻐..."
둘이서 눈을 반짝반짝 뜨고,
입을 절반 쯤 멍하니 벌려,
서로 이야기 하듯 중얼거렸다.
나도, 지우도 잠시 넋을 잃고 바라보았다.
선명하고 장엄한,
하늘의 밑바닥에 넘쳐흐르는
광휘한 대 파노라마를.
"쓴 맛 같다."
침묵을 깨고, 혼잣말을 했다.
"어? 무지개가? "
"아니. 오늘의 내가."
무슨 말을 하는지 몰라,
어리둥절해 하는 그를 힐끗 쳐다보고는,
나는 얼굴 가득 만면에 해바라기를 꽃 피운다.
나의 웃는 얼굴을 보고,
그 또한 못지 않게 따뜻한 햇살처럼 웃는다.
전혀 이상한 게 없는데, 둘이서 웃었다.
사탕은 입 안에서 녹아, 이윽고 사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