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니, 그것도 있지만,
음, 오늘 하루 그다지 운이 좋지 않아서,
그것 때문."
"그렇구나. 뭐, 그런 날도 있지."
그는 내 발밑으로 살짝 시선을 돌리더니,
다시 빙그레 웃는다.
나도 입꼬리를 억지로 올려 웃는 얼굴을 만든다.
어색하다는 것을 스스로도 알 수 있었다.
서먹서먹한 분위기에 휩싸여,
고개를 숙이듯이 시선을 돌린다.
잠깐의 침묵.
빗소리만이 부슬 부슬 우산을 두드린다.
"수련아, 사탕 아직 남아있지?"
갑자기 그가 자기 주머니에서 알사탕을 꺼냈다.
"응, 가지고 있지만...."
"안 먹을거야?“
"음, 오늘은 괜찮으려나?
내일 점심에라도 먹을게."
웅덩이를 조심스레 피하며,
반 웃음으로 대답했다.
"지금 먹지 않을래?"
입에서 능청스런 목소리가 나왔다.
역시 오늘 그는 이상하다.
독버섯이라도 먹은 것이 아닌가 하고,
의심 될 정도로.
"음, 뭐, 괜찮지만."
떨떠름한 목소리로 승낙의 뜻을 전했다.
솔직히 거절 할 이유도 없기 때문에,
순순히 왼쪽 주머니를 뒤적였다.
포장지 양쪽에 있는 꼬여진 부분을 에잇 하고,
양손으로 잡아당겨 둥글둥글한 그것을 꺼낸다.
하늘을 반사해서인지,
뻣뻣한 비닐 종이는
희미하게 잿빛을 뒤집어쓰고 있었다.
왼쪽의 엄지와 검지로 그것을 끼워 넣고,
이마 근처까지 들어 올려,
하늘에 비치도록 눈을 가늘게 떴다.
딱딱한 표면의 색은
굳은 피처럼 거무칙칙 해서,
그것을 통해 하늘이 보이는 일은
전혀 이뤄지지 않았다.
별로 입맛이 당기지 않네.
이것으로 세 번째가 될 불만을
마음속으로 푸념했다.
지우 쪽을 바라보니,
그도 사탕을 입 앞으로 가져오고 있었다.
그리고 왠지 자신있게
아니, 완전 자신만만하게 히죽히죽
이쪽을 보고있다.
달콤한 것을 뽑아 맞출
상당한 자신감이라도 있는 걸까?
내게는 없다.
또 다시 쓴 것이 아니길 빌며,
마음을 굳게 먹고, 입 속에 밀어 넣는다.
잠시 혀 위에서 데굴데굴 굴리고 있었더니,
복슝열매의 달콤한 부드러움이 터져 나왔다.
북돋으며 감싸오는 그것은
이내 신경을 타고 흘러내려와,
비바람에 얼어붙은 나의 몸과 마음을
따뜻이 녹였다.
마음은 둥실 둥실 가벼워지고,
머리는 취해버린 듯 한 느낌에 사로잡힌다.
느리지만 활짝,
온 몸에서 꽃이 흩뿌려진다.
잿더미 세계를 찢고,
장미, 히아신스, 호접란, 팬지, 은방울꽃, 제라늄
등의 꽃들이 눈 가득 피어올랐다.
사탕 하나로 이렇게 행복해질 수 있다니 놀랐다.
그만큼 피폐해 있었는지도 모른다.
피곤할 때 일수록
밥맛이 좋아지는 법칙을 되새긴다.
그리고 내 옆을 걷는 그도
드문드문 꽃 피우고 있었다.
아무래도 달콤한 것이었던 것 같다.
므흣 하고, 이상한 웃음이 절로 새어나온다.
"어떻게 달콤한 줄 알았어?"
"이제 그거밖에 남지 않았으니까."
"그랬던가?"
기억을 더듬어 보면,
확실히 러시안 룰렛에서 달콤한 것을
알아맞힌 사람은 마오 밖에 없다.
그렇다면 남은 3개의 사탕 중
2개는 달콤한 것이었다는 셈이다.
"수련이 돌아간 뒤에,
마마네가 사탕을 먹은거야.
그래서 토망열매의 매운맛을 알아맞춰서,
덕분에 딱 느낌이 왔지.
수련이랑 달콤한 거 같이 먹자고."
마마네가 기절한 모습도 떠올랐는지,
킥킥 웃으며 “루어도 돌려줬어야했지."
라고 그는 덧붙였다.
왠지 목덜미 주변이 근질 근질 낯 가려워졌다.
순수하게 기뻤다.
힘들 때 곁에 있어주는 것이.
지우가 있어주는 것이 기쁘다.
굉장히 기쁘다.
위험해, 웃음이 나와.
들키지 않으려고 허벅지를 힘껏 꼬집었지만,
억누를 수 없는 미소와 통증으로
얼굴이 다시 일그러져 더욱 이상해지고 말았다.
애써 정색을 하여 숨겼다.
"샌들, 아쉽게 됐네."
지우는 젖은 얼굴로 포장지를 구겨놓고 있었다.
"비가 오는데, 어쩔 수 없지."
흙탕물로 더러워진,
갓 신은 하늘색 샌들을 보았다.
멋지게 첫 출전을 장식하려고 벼르고 있었는데,
산산조각 나고 말았다. 솔직히 슬프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좀 전 만큼 그다지 우울하지 않았다.
지우 덕분일까? 그래, 그런 걸로 해 두자.
돌아가면 엄마한테
더러운 것이 안 빠지는지 물어 봐야지.
"괜찮아, 수련아?“
”응, 이제 괜찮아.”
“그렇구나, 조금은 기운이 난 것 같아 안심했어."
"후후, 좋은 일 있었으니까."
"좋은 일이라니?"
"글쎄, 무엇일까?"
짓궂은 미소를 지었다.
"비가 그쳤기 때문이려나?"
"흐에?"
우산을 접으며 말하는 그의 예상 밖의 대답에,
나도 모르게 그만 이상한 소리가
새어 나오고 말았다.
고개를 들어올렸다.
숨을 들이마셨다.
어느새 비구름은 작아지고 있었다.
희미한 검은 구름 사이에서는
햇빛이 간신히 손발을 쭉 내밀어,
주위를 반들반들 상냥하게 감싸고 있었다.
나무들도, 푸른 바다도, 새햐얀 구름도.
거기로 들여다본 맑은 하늘도
화창한 햇살에 빛나며 살아 숨쉬고 있다.
그리고 멀리 남쪽 하늘에서는,
선명한 한 쌍의 무지개가 자리 잡고 있었다.
길고, 묵직하게
서쪽과 동쪽의 하늘을 잇는 다리처럼.
좋은 일이 일어날지도.
알로라에서 행운의 상징으로 회자되는 그것은,
나의 어두운 기분을 반전시킬
마지막 카드로 충분했다.
문득 몸이 가벼워지는 것 같다.
아마 샌들의 망령이 정화 된 것 같다.
"예쁘다..."
"응, 예뻐..."
둘이서 눈을 반짝반짝 뜨고,
입을 절반 쯤 멍하니 벌려,
서로 이야기 하듯 중얼거렸다.
나도, 지우도 잠시 넋을 잃고 바라보았다.
선명하고 장엄한,
하늘의 밑바닥에 넘쳐흐르는
광휘한 대 파노라마를.
"쓴 맛 같다."
침묵을 깨고, 혼잣말을 했다.
"어? 무지개가? "
"아니. 오늘의 내가."
무슨 말을 하는지 몰라,
어리둥절해 하는 그를 힐끗 쳐다보고는,
나는 얼굴 가득 만면에 해바라기를 꽃 피운다.
나의 웃는 얼굴을 보고,
그 또한 못지 않게 따뜻한 햇살처럼 웃는다.
전혀 이상한 게 없는데, 둘이서 웃었다.
사탕은 입 안에서 녹아, 이윽고 사라졌다.
-fin-
세줄 요약좀
길어
님 이젠 소설도 써요?
잘읽고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