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사사건 기념비
대한민국과 마찬가지로 대만 섬 또한 일제의 강제지배를 받고 있는 지역이었다
당시 일본은 대만섬 주민들을 한국보다도 더욱 열등한 존재로 보며 생번(야만인)이라는 멸칭과 함께 가혹하게 다뤘다
▲봉기를 이끌었던 지도자 모나 루다오 (가운데)
그러던 1930년 10월 9일 대만 북부의 원주민 중 하나였던 '세디크' 족의 족장 모다 루다오는 아들의 결혼 축제를 열고 있었는데
순찰을 돌던 일본 경관에게 모나 루다오의 아들 모나 다호가 술잔을 권유했으나, 경관은 '열등인종의 피가 흐르는 수족으로 따르는 잔'은 받을 수 없다며 거절하였고
그럼에도 모나 다호가 술잔을 계속 권하자 경관이 먼저 다호를 곤봉으로 구타하여 몸싸움이 벌어졌고, 일본 경관이 부상을 입는 사건이 벌어진다
다음 날 모나 루다오는 사과의 뜻으로 먼저 찾아가 그에게 포도주를 건넸으나 이 마저도 매몰차게 거절 당했다
사실 모나 루다오에게 일본은 큰 감정을 남긴 존재들이었다
자신이 아끼던 여동생이 일본인에게 시집을 갔으나, 가정을 꾸리기는 커녕 그들의 노리개로 모욕을 당하고
조카들과 함께 버려졌던 과거가 있던 그에게 있어서 아들과 자신 또한 모욕을 당했다는 사실에 결국 폭발하고 말았다
결국 1930년 10월 27일, 그는 300명의 전사들을 이끌고 봉기를 일으켜 134명의 일본인과 2명의 친일 대만인을 살해했다
이것이 바로 대만 토착민의 대대적인 봉기인 '무사사건' 이었으며, 일본은 즉각 2천명의 병력을 투입하여
진압을 목적으로 대만인들에게 독가스를 살포하거나 포로들을 학대, 참수하는 등 무자비한 방법을 써먹었고
결국 1200명의 세디크 족은 맹렬히 침략자들에게 저항했으나 644명이 사망하고, 봉기를 이끌었던 전사 모나 루다오도 목숨을 잃었다
이후 500여 명의 세디크족은 1931년 12월 1일 항복하였으나, 4월 25일에 나라를 팔아먹은 친일 대만인들의 학살로 인해
214명의 세디크 족이 목숨을 잃었고, 남은 생존자들 마저 고향을 등지고 강제이주를 당하고 말았다
지금 일본 빠는 대만의 주류는 중국인 저 사람들은 대만 원주민 완전히 다르고 실제로 중국계와 원주민계 사이에 갈등도 있는걸로 알고있음
이런데도일본빠는대만은 대체
이런데도일본빠는대만은 대체
2011년에 이들을 조명한 세디크 발레라는 영화가 대만에서 제작되기도 함
대만은 다민족국가니까 출신별로 이해관계가 다 다름
그야 현대 대만의 주류는 저렇게 당한 원주민이 아니라 중국 본토에서 이주해 온 내성인(한족)들이거든.
지금 대만 사람들은 원주민 들 말고 대륙에서 넘어온 사람들이 주류라 그런듯
어차피 중국 본토쪽도 우리 멸시하는데 그나마(?)낫다고 생각해 일본 빤 거죠. 대만 민족 구성도 본성인(본토에서 온 사람들)이랑 토박이들+소수민족들인데 이 토박이들은 본성인도 싫어하고 소수민족들도 싫어하거든요.
그후...일제를 몰아내고 들어온 장제스도..
지금 일본 빠는 대만의 주류는 중국인 저 사람들은 대만 원주민 완전히 다르고 실제로 중국계와 원주민계 사이에 갈등도 있는걸로 알고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