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충 게임업계에 20년정도 종사해온 기획자다.
그냥 생각난 바가 있어서 기억과 경험에 의거해 대강 써 본다.
옛날에는 게임사업이라는게 상당히 단순한 사업 모델을 가지고 있었다.
패키지 판매, 아니면 월 정액(온라인).
그렇기에 게임의 퀄리티가 가장 중요했다.
게임이 좋아야 많이 팔리고(혹은 이용자가 늘어나고) 그만큼 돈을 더 많이 벌 수 있었으니까.
그렇기에 게임회사의 결정권자들은 스스로가 게이머일수밖에 없었다.
더 좋은 게임을 만드는게 더 큰 돈을 버는 유일한 방법이었으니까.
그런데 2000년대 중반, 온라인 게임이 대세가 되면서 부분유료화라는 사업모델이 등장했다.
그 당시만 해도 신세계였지.
무료라는 강점으로 엄청난 수의 유저들을 끌어모을 수 있는데다, 적당히 상품 구성만 잘 하면
월정액 사업모델로는 꿈꿔보지도 못할 만큼의 돈을 벌어들일 수 있었으니까.
하지만 대부분의 게임이 부분유료화 정책을 택하면서 경쟁이 심화되자 결국 사업부의 필요성이 대두되기 시작한다.
컨텐츠로써 게임 을 보는게 아니라 '사업'으로 게임을 보는 사람들을 통해 좀 더 효율적인 수익을 내 보고자 한 거지.
그리고 게임에 '사업'이 도입되면서 엄청난 효율 개선이 이루어졌다.
단순하게 말하자면, 사업부 없이 한달에 10억 벌던 게임이 사업부의 관리를 받으면서 20억, 30억을 벌게 된 거다.
기업 입장에서는 '사업부가 대단히 중요하구나'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실제로 그랬으니까.
게다가 사업부 인력들은 게이머 출신 개발자들과는 달리 사내정치에도 익숙하고, 윗사람에게 잘보이는 일에도 익숙했다.
결국 기업의 주요 결정권자의 자리는 점차 사업부 출신들이 차지하게 됐다.
모바일 게임으로 대세가 옮겨지면서 이 구조는 더욱 더 고착화된다.
엄청난 숫자의 라이트 유저가 유입되고, 모바일 광고가 큰 위력을 발휘하면서
사업부의 결정으로 인해 매출이 뻥튀기 되는 경향이 더욱 심해진 것이다.
막말로 말해서 적당히 게임같은 형태만 갖추고, 사업부에서 요구하는 리텐션(재접속률)만 맞춰주면
상품 구조 개선이나 상품 노출, 각종 이벤트 등으로 ARPU를 끌어올려 LTV를 높이는 건 충분히 가능한 일이 되어 버린 거다.
LTV(단순하게 말해 유저 한명이 게임을 접을 때까지 지출하는 평균 비용)가 UA cost(광고로 유저 1명을 끌어들일 때 사용되는 평균 비용)를 넘어서는 순간
광고만 빵빵하게 때려주면 무조건 수익이 난다는 소리다.
결국 비슷비슷한 모바일 게임들이 쏟아져 나오고, 게임과는 전혀 관계없는 낚시성 광고로 사람들을 끌어들이고,
그러다가 대충 단물 빠지면 서비스 종료하고 비슷한 새 게임 런칭하는 악순환들이 계속되게 된다.
왜냐고? 돈이 되니까.
굳이 인건비, 개발비 들여서 게임성을 높이는 것보다는 적당한 IP를 사오든, 중국에 외주를 주든, 다른 게임을 베끼든
어느 정도 지표만 맞춰줄 수 있는 게임 하나 저렴하게 만들어서 사업부의 마법으로 BM 조정해서 돈 뽑아먹는게 더 효율적이 되었다는 거다.
유저가 운영에 불만을 가진다고? 광고비 몇억 태우면 신규 유저는 얼마든지 만들 수 있는데 굳이 유저 말을 들어줘야 하나?
광고비를 얼마 쓰면 신규 유저가 얼마나 모이고, 수익이 얼마나 늘어나는지 숫자로 명확하게 나오는데?
(물론, 시장 규모에 한계가 있는 장르라거나 팬덤 의존성이 큰 경우는 예외긴 하다)
결국 온라인/모바일 플랫폼 의존성이 큰 국내 게임사들은 결정권자의 자리에 있는 사람이 '나는 게임은 잘 안해서...' 라는 소리를 당당하게 할 수 있는 상황이 된 거다.
그래도 되니까.
게임 같은거 몰라도 숫자만 볼 줄 알면 회사의 수익을 극대화하는 데 아무런 문제가 없었으니까.
게이머이자 개발자로써 이 상황이 마음에 드는 건 아니다.
하지만 이제와서 바꿀만한 뾰족한 방법이 없다.
이미 시장은 게임성보다는 상업성을 추구하는 방향으로 변해 버렸기에 게임성을 갖춘 제품을 만드는 것 자체가 거의 불가능에 가까워진 거다.
창업을 한다 해도 유저를 제대로 빨아먹을 수 있는 확실한 BM을 제시하지 못하면 투자 단계에서 막혀버리기에 그것도 쉽지 않다.
게임업계에서 오래 굴러먹던 개발자들이 괜히 회사를 나와서 1인개발로 인디게임을 만드는 게 아니다.
만들고 싶은 게임, 게임성이 중심이 되는 게임을 만들 수 있는 방법은 이제 그것 밖에 없거든.
그러다 보면 생활고에 허덕이다 생활비라도 벌어보자며 창렬한 BM을 어설프게 탑재하는 비참한 결말이 기다리기도 하지만...
아무튼 현실은 그렇다.
이런 경향은 국내뿐만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비슷한 추세로 흘러가고 있다.
우리 입장에서 외국 게임사들이 더 나아보이는 이유는 그들이 콘솔/패키지 게임을 만들고 있기 때문이다.
패키지 게임과 같은 고전적인 사업모델에서는 아직도 게임성을 높이는 게 수익을 높이는 길이니까.
하지만 적극적으로 부분유료화를 도입하려는 콘솔/패키지 제작사들의 행태를 보면... 이게 얼마나 갈까 싶기도 하다.
그나마 유일한 희망이라면 범용 게임엔진의 발전이 눈부시고 좋은 퀄리티의 상용 애셋들이 많아져
인디게임의 퀄리티들도 점차 올라가고 있다는 것 정도일까.
요즘 골수 게이머들의 관심이 AAA급 게임보다는 인디게임으로 옮겨가는 것도 비슷한 맥락이 아닐까 싶다.
아님 말고.
나도 몇번 창업했다 말아먹음ㅋ
난 일본에서 게임회사 일러레
돈이 되야 하는건 맞지. 그런데 옷에 상업성만 추구한다고 거적데기만 나오면 결국 팔릴까? 과자에 상업성만 추구한다고 빈공간 자꾸늘리면 팔릴까? 팔려도, 만약 이슈화되어서 규제 돌돌 말려도, 그때도 그럴수있을까? 그게 제일 문제지
아직은 거적데기도 잘 팔려서..ㅠㅠ 미래가 문제가 될 순 있지만 확정적인 미래가 아닌 이상 회사가 거기에 투자할 이유는 없지.. 규제야 나온 다음에 대응해도 충분하다는 게 사업쪽 마인드다
그러다가 외산에 시장내어준게 한두개가 아니지않나?
사업하는데 거기까지 생각하고 하는 사람은 거의 없지. 있다 해도 바꿀 방법이 있는 것도 아니고
사업쟁이들은 그딴거 신경 안씀. 아이템 바꿔서 갈아타면 그만이니까. 시장을 키워서 먹는다는 개념이 일체 없습니다. ㅎㅎㅎ
확실히 AAA게임보다 인디게임들이 참신하고 재밌는 게임이 더 많음.
다들 체감하고 있고 걱정은 하고 있지만, 사업하는 사람들이야 단물 빠지면 사업 아이템 바꾸면 그만이니 신경 쓸 부분이 하나도 없다는게 슬픈 일이지. 실제로 게임업으로 단물 쪽쪽 빨아먹은 양반들이 하는 짓거리가 결국 딴 우물 파고 있는 꼬라지들이니. 미련 가지고 남아있는 사람들이야 구멍 숭숭 빠지고 물이 콸콸 들이차는 배 안에서 전전긍긍하고 있고. 게임업계만의 이야기라기 보단 문화 컨텐츠 사업 전반에 걸쳐서 일어나는 순환구조라고 해야하나. ㅋㅋㅋ 아 줫같다.
지금으로썬 뾰족한 방법이 없지. 노후 대비라도 빨리 해 두는 수밖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