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토 히로부미(1841~1909)
이토 히로부미는 본국에서도 악평이 자자한 사생활을 지니고 있었으나 정치인으로써는 탁월한 감각을 가진 인물이었다.
일본이 만주 문제에 한창 손대려 하던 1906년 5월, 이토의 요구로 일본에서는 만주 문제에 관한 협의회가 개최되었다.
이 협의는 최고수뇌회의급이었는데 이토는 여기서 이렇게 주장하였다.
'미,영이 요구하고있는 만주문호개방 정책에 맞추어 성실한 문호개방으로 그들과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해야한다.'
또한 다음과 같이 그 근거를 들었다.
1. 미,영의 지원이 절실한 처지에서 만주 문호를 폐쇄하여 그들을 적으로 돌리는것은 자1살행위이다.
2. 만주에서 보이는 일제의 행동은 청국 정부와 인민의 불만을 불러일으켜고 있다. 이대로는 청국 전체가 반일민심으로 치닫게 될것이다.
그러나 만주에 대한 지배 야욕이 강했던 군부는 별 문제가 아니라는 태도를 보였고
이토는 이미 강화조약이 체결되어 평화가 회복된 상황에서 전시적 군정을 계속하려는 군부의 잘못을 통렬히 지적하였다.
회의가 끝날 무렵 만주의 주권을 담당할 관아 조직을 만들면 어떻겠냐는 의견이 나오자 이토가 매우 역정을 냈는데,
1. 군은 만주에서 일본이 가지는 지위를 근본적으로 오해하고있다.
만주에서 일본의 권리는 강화조약에 따라 러시아로부터 양도받은 요동반도 조차지 외엔 아무것도 없다.
2. 군이 '만주 경영'이라는 표현을 쓰는데 만주는 결코 일본의 속지가 아니다.
순전한 청국 영토의 일부이며 속지가 아닌 땅에 주권을 행사할수는 없는것이다.
이처럼 이토는 만주 문제가 자칫 미,영과의 관계를 커다란 문제로 비화시킬수 있음을 알고 군과 정부 정책에 끊임없이 제동을 걸었다.
당시 이토의 권력은 대단했던 반면 반대로 군은 사회적으로도 무시당하는 풍조가 짙어 입지가 비교적 좁았고
이토가 고위급 인사를 모아놓고 역정을 내면서 정책에 제동을 걸어도 함부로 거기에 덤빌 수가 없었다.
(흔히 생각하는 일제의 군 이미지는 나중에 생긴것으로,
실제 메이지 말엽~다이쇼 시대 당시에는 군인이 제복을 입고 전차에 타면 민원이 쏟아질 정도로 군 멸시 풍조가 매우 강했다.)
그러나 이토가 1909년 10월 26일 하얼빈에서 안중근 의사에 의해 총격, 살해당하면서 날뛰는 군부에 제동을 걸어줄 권력자는 사라졌고
그 뒤, 잘 알려진 역사와 같이 고삐가 풀린 일제 군부는 만주의 수렁에 발이 빠진 채
무리한 확장을 계속하다가 미국과 충돌하여 태평양 전쟁을 거친 끝에 패망하였다.
안중근 의사의 하얼빈 의거는 단순히 정치인 한명 제거한 암살 수준이 아니었던것임
감사합시다
이토는 더 간교한놈이라 숨이 더붙었으면 식민지배가 아프리카처럼 늘어지고 후유증도 훨힌 더 심했을거여
"온건파"였던 이토가 죽음에 따라서 군부의 폭주 개시가 더 빨라짐 (이토를 안죽였어도 어짜피 얼마 뒤 군부 쪽에서 손 썼을거라는 예상이 우세하긴 함) 폭주에 따른 태평양전쟁의 발발과 그 결과로 인한 일제 똥망으로 인한 독립 성공 다 안의사님 덕분입니다
이토가 10년만 더 살아있었어도 우리나란 오키나와 처럼 됐음
역사의 아이러니이긴 한데 그렇다고 의거가 폄하되거나 그럴필요는 없고 이 이토 히로부미가 영어도 좀 하고 나름 국제적인 감각이 있던 인물이긴 했는데 안중근의 동양평화론적 관점에서는 이토 히로부미도 침략자에 지나지 않았으니
ㅇㅇ 부드럽게 압제하더라도 식민지배자라는 본질은 다르지 않음.
안중근 의사가 아니었다면 우리나라가 덩치큰 오키나와가 됐을 수도 있어
이토 죽고나서 애들이 머리가 잘 안돌아가서 그냥 전국시대에 지들 농민 수탈하던것처럼 조선 대해서 계속 투닥투닥하다가 독립된거지 저런애가 계속 권력 잡고 있었으면 프랑스 자치령 될뻔한 알제리나 지금 오키나와처럼 그냥 피 한방울 안흘리고 스무스하게 합병됐을수도 있음 ㄹㅇ...
당시 이토히로부미 일본 만평
https://www.youtube.com/watch?v=--GdDrkp6IE
이거 맞다. 알게 모르게 스며드는 게 제일 무섭지 군부가 ㅂㅅ 같이 폭사할 수 있도록 원인 제거 해주신 거지
역사의 아이러니이긴 한데 그렇다고 의거가 폄하되거나 그럴필요는 없고 이 이토 히로부미가 영어도 좀 하고 나름 국제적인 감각이 있던 인물이긴 했는데 안중근의 동양평화론적 관점에서는 이토 히로부미도 침략자에 지나지 않았으니
루리웹-3048174
ㅇㅇ 부드럽게 압제하더라도 식민지배자라는 본질은 다르지 않음.
루리웹-3048174
안중근 의사가 아니었다면 우리나라가 덩치큰 오키나와가 됐을 수도 있어
"온건파"였던 이토가 죽음에 따라서 군부의 폭주 개시가 더 빨라짐 (이토를 안죽였어도 어짜피 얼마 뒤 군부 쪽에서 손 썼을거라는 예상이 우세하긴 함) 폭주에 따른 태평양전쟁의 발발과 그 결과로 인한 일제 똥망으로 인한 독립 성공 다 안의사님 덕분입니다
비스마르크도 무리한 해외진출을 자제해서 다른 열강들과의 충돌을 피하느라고 애를 썼는데, 빌헬름 2세가 그를 사임시킨 이후 독일은 헬게이트 오픈
이토는 더 간교한놈이라 숨이 더붙었으면 식민지배가 아프리카처럼 늘어지고 후유증도 훨힌 더 심했을거여
바람의 소마
이거 맞다. 알게 모르게 스며드는 게 제일 무섭지 군부가 ㅂㅅ 같이 폭사할 수 있도록 원인 제거 해주신 거지
바람의 소마
https://www.youtube.com/watch?v=--GdDrkp6IE
ㄹㅇ 이렇게 됬을수도 있음
그 영화가 바로 2009 로스트 메모리즈
근데 여기나온 유물은 누가 만들었지? 외계인?
나비효과 갑
원래 조용조용하게 행동하는 인간이 더 무서운 법이야.
이토가 10년만 더 살아있었어도 우리나란 오키나와 처럼 됐음
나 그 다큐 보고 깜짝 놀람 조선의 황국신민화가 거의 성공한거... 진짜 이토가 살아있어서 더 영악하게 지배 했으면 한민족 자체가 없어졌더라지
당시 이토히로부미 일본 만평
여자 밝히는 놈의 최후 ㅋㅋㅋㅋ
이토 죽고나서 애들이 머리가 잘 안돌아가서 그냥 전국시대에 지들 농민 수탈하던것처럼 조선 대해서 계속 투닥투닥하다가 독립된거지 저런애가 계속 권력 잡고 있었으면 프랑스 자치령 될뻔한 알제리나 지금 오키나와처럼 그냥 피 한방울 안흘리고 스무스하게 합병됐을수도 있음 ㄹㅇ...
이등박문 죽인 이야기 보니까 배아픈놈들이 많은가보네 댓글 쓰면 죽도록 얻어맞을것 같고 비추만 누르고 튀나봅니다
비추 보이지도않는데 쉐복 ㄴㄴ
이 댓글 쓸때는 20개도 안되는 추천에 비추 4개 박혀있었음 ㅇㅋ?
그 먼 미래까지 내다보신겁니까 안중근 의사님.......
영화의 원안?이라 할 대체역사소설 비명을 찾아서가 바로 이등박문 저격안당하고 살아남아서 군부폭주를 막는바람에 제국주의 일본이 안망하고 더 존버해서 조선식민통치가 계속되는다는 내용임. 게시글 본문에 상세히 다룬게 작품의 역사개변 출발점(?)
근데 거기 유물은 누가 만들었지? 외계인?
중간보스
아 그러니까 이토가 제거되어서 썩은 부위가 더 빨리 곪아 터질수 있던 거였구먼!
얘가 살아있었으면 진주만 꼴박 안했을수도 있음 잘죽었다고 생각함
레알 닥터 안트레이지임
저 교활한 놈이 죽음으로써 일본은 윗줄에 븅신밖에 안남아 온갖 븅신짓끝에 패망했지
안죽였으면 우리 문화 말살당하고 황국신민 됐을텐데
이토의 플랜은 어디까지나 미국 영국을 자극하지말고 걔내가 허락하는 한도에서 움직여야하자 이거였고 조선병합정도면 됫지 이 이상은 위험 이거였지. 실제로도 그 판단은 매우 정확한거였고. 물론 대공황이라는 치명타가 남아있는한 결국 일본의 파시즘화는 막을 수 없었을 수도 있지만 만약 살아서 군부의 폭주를 막아냈다면 우린 진짜 그냥 일본한테 병합당하고 끝났을수도 있었음
삿쵸 출신이면서 일본 근대 정치사 불세출의 천재였으나 하얼빈에서 가버렸지 저 양반도 한때 강경파였지만 미국한테 쳐맞고 온건파가 된게 유멐ㅋㅋㅋㅋ
저거 잘못된거 아님? 이토 히로부미 암살에 대해 일본측이 니네 잘못 판단한거야라고 일부 극우들이 헛소리로 알고 있는데? 이토가 오히려 일본의 군국주의를 부추기던 놈이었어 이토의 정권 수립 자체가 전에 메이지 유신 세력들이 공장 근대화를 통해 산업화라는 형태로 일본 부국을 하려했으나 제국주의 국가들의 산업력에 밀려 하청으로도 적자를 보며 일본이 어려운 상황이었음 이토는 조선침략 세력과 산업화세력을 중재한다는 식으로 권력을 쟁취하고 조선을 침탈하면서 얻게되는 막대한 배상금과 빨대질, 불공정한 무역을 통해 제되로 빨대꽂고 이익을 보자 산업화를 통한 자력 부국 노선을 전면 폐기하고 조선과 대만, 중국으로 침탈 및 식민지 전쟁이라는 군국주의적 약탈경제체제로 전환시킨 놈이었음 덕분에 일본은 전쟁을 통한 약탈과 늑탈이 산업화보다 더 많은 이득을 준다는 점에서 군국주의로 가는 그 뿌리를 만들어 노았음 또한 이토 시기에는 명치 유신 건국세력이었는지라 군부가 일제시대의 군부가 절대 아님 순수 군부인사들은 복종하는 병졸이었고 이토를 비롯한 명치 유신의 수뇌들이 돌아가면서 군과 정, 의회를 모두 지배하던 시기였음 그냥 강약을 조절하는것뿐이지 조선뿐만 아니라 만주 침략에 동일함 당연하게 그가 만들어노 놓은 노선이었으니까 만주에서 러시아 영국 프랑스등의 열강의 압력이 강하니까 발빼고 기회를 보자는 식이지 아예 포기하자는것도 아니었음 특히 만주 경략에 질색한것은 조선경략도 질색했음 왜냐하면 왜 식민지 새키들한테 투자해야되냐는 식이고 그래서 실제로 조선도 대한제국 광무제 시기에 깔아놓은 기반시설 그대로 일제 34년동안 발전없이 그대로 유지만했었으니까
그러니까 이토는 미영이 허락하는 한도 내에서 움직이자 싸울 시기가 아니다. 이거고 실제로도 맞는 판단이었음. 군국주의를 안하자 이런게 아니지. 그냥 패권국들의 눈치를 보면서 행동해야한다에 가까움.
나도 비슷한 입장임. 실제로 메이지 말 - 다이쇼 시대의 논문과 사료들을 찾아보면 저런 주장은...좀 약간 근본없는 편의주의적 사고방식에 불과하다고 봄. 실제로 조슈 육군 일본병졸 출신이지만 출신세탁하고 일왕에 빌붙어서 1900년도 이전까진 잘나가던 문벌파의 거두는 맞지만 1900년도 언저리부터 각종 정책 실패와 외교문제로 나가리 되고 조슈파에서조차 사다리 걷어차기 및 출신세탁 들어가면서 육군파인 야마모토 아리가타랑 싸우다가 밀려났음. 그 후 내각은 뭐. 조슈 육군계파가 싹쓸이한거고. 그렇기에 안중근 의사의 의거가 아니었어도 만약 이토가 조선-만주를 해결하고 본토 복귀했다면 일본의 유구한 전통인 총리 칼빵의 대상이었을거임. 이건 뭐 IF 없어도 백퍼임. 이토가 상식적이긴하고 대화가 통한건 맞다만. 그게 일제의 브레이크였냐면 그건 절대 아닌데 왜 자꾸 브레이크라 하는지 모르겠음. 일제의 브레이크인 애들은 많았음 다 군부에 암살당해서 그렇지 ㅋㅋㅋㅋㅋ 이건 일제의 태생부터 이해를 잘못한 케이스라 봄. 결국 쇼군체제의 연장선인 메이지시대역시 청일-러일 전쟁 이전까진 조슈-사쓰마 계파가 모든걸 쥐어채고 흔들었는데 그들 화족. 구 귀족이 아닌 신진 화족들 조차 군부로서 승진했는데 그걸 사다리 걷어차면서 군부 좃까 참아 새끼야. 하는 애들을 밑 사관들이 가만히 봐줄리가 없음.
현재도 브레이크걸 인간이없어 폭주중
이토가 안죽었으면 다행인건 일본이지 우리가 아님. 이토는 무력보다는 외교로서 해결하려고 했고, 이토의 뜻대로 되었다면 일본은 서구의 협조와 묵인을 발판삼아 안정적으로 동아시아의 맹주가 되었을테니... 이토의 죽음과 야마가타 아리토모의 득세가 일본의 군국주의에 풀악셀을 밟아버린거임.
막줄만 이야기하면 이토의 죽음이랑 아리토모 득세는 순서가 잘못됬음 이미 1900년도에 아리토모가 이토계파 싸그리 밀어내고 조슈 육군파가 내각 잡아먹었음. 이후 육군 내각의 병크로 일왕 명령하에 총사퇴하고 다시 문벌파가 득세하긴 했는데 순서가 좀...많이 다르지.
막줄을 헷갈리게 써서 미안. 시간 순서가 아니라 두 가지를 그냥 나란히 놓은거임.
ㄴㄴ 님말고 이 비슷한 과거 글들에선 이거 순서를 바꿔서 이야기함 이토가 죽어서 야마모토가 득세했다. 그래서 군벌이 가속화되었다는 주장이 자주 나옴
안전장치를 제거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