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로 근접 병종인 창병의 비중을 줄여버린 거였음. 문종 때까지만 하더라도 근접 병종인 창병의 육성을 결코 게을리 하지 않았고
일정 비율 이상을 항상 확보하면서 창병의 훈련에도 공을 들였는데 수양대군 때에 와서는 창병의 비중을 많이 줄여버리게 되었음.
흔히 말해서 사거리에 목숨 거는 궁병, 궁기병 일색이 되어버린 조선군의 편제는 수양대군 때부터 만들어진 거라고 봐도 무방함.
수양대군이 바꿔버린 저 군 편제는 이순신 장군도 해결을 못해서 해전에서의 선상 백병전은 극히 꺼려했을 정도였음.
수양대군의 궁병, 궁기병 위주의 군 편제는 쉽게 말해서 조선의 근접 병종인 창병의 백병전 능력을 크게 약화시켰다는 게 문제였음.
게다가 군대의 허리 부분을 담당하고 책임지는 갑사들(지금의 부사관)의 비중을 많이 줄여버렸기 때문에 명령 계통과 지휘 체계의 효율을 떨어뜨렸음.
조선시대 사극에서 최고위 장수들이 전장에서 소리를 고래고래 지르며 일일히 명령하는 모습이 많이 나오는 건 어찌 보면 현실 고증이었던 셈이지.
학교 역사 쌤이 세조는 롤모델이 태종이라 비슷하다고 했는데 세조 이후로 조선이 맛이 점점 가버리는걸 보면 확실히 단종이 왕 하는게 나았을 수도 있음 걍 폭정이라는건 똑같고 능력은 수준 이하
세조는 권력욕에 미쳐서 조카를 죽이고 왕위에 오른거라서 권력 지키기에 급급했고, 정사보다는 공신들 챙기고 항상 불안해 하는 거 말곤 한게 없으니.... 그 뒤를 이은 예종도 세조 뒷정리 하려다가 일찍 요절하고 성종대에 간신히 안정화 들어가나 했더니 연산군이 폐비 윤씨 일 알고 다 말아먹고... 중종은 반정으로 올라가서 또 공신들한테 좌지우지되고.... 인종도 요절하고 진심 세조 부터 조선은 항상 위태위태 했지...
세조가 능력이 없다기보단 적을 너무 많이 만든 상태에서 왕이 되어서 왕자리 지키는데도 힘들었기 때문에... 세조가 조선 초기에 끼친 악영향은 진짜 레포트로도 쓸수 있을정도로 어마어마함. 그냥 개색기 그 자체
가오나 잡을줄 알았지 영....
세종 아들이면 납득갈만한 외모네 ㅋㅋ
태평성대에 장자로 태어나서 왕했으면 그냥 평범한 왕정도 할수 있는 정도 능력치였는데 권력욕은 어마어마해서 왕위를 찬탈해버린데다가 공신들까지 많이 만들어버렸는데 그 공신들을 우대해서 훈구파로 만들기까지 했으니 뭐 답이 없음 그냥... 파도파도 괴담만 나오는 왕
물론 공신들도 걔 싫어하긴 했지만 기묘사화는 중종 본인이 ㅈ같다고 적극적으로 조져버린 거에 가까움.
그냥 생각이 짧은 것 같음. 저 창병 창기병 TO줄인 것도 요즘 병사들이 창병이나 도수등을 꺼려해서 지원을 잘 안하더라 라고 신하가 말하니까 "그래? 그럼 그거 그냥 줄여버려"이러고 끝내버림.
태종은 누군가는 했을 일을 본인이 뒤집어쓰고 한건데 세조는 그것도 아님. 단종이 별로인 임금이었냐 하면 그것도 아니고 나름 능력있는 군왕이었음
아버지가 SS급이어서 그렇지 단종도 A급은 충분히 되는 군왕이었음
학교 역사 쌤이 세조는 롤모델이 태종이라 비슷하다고 했는데 세조 이후로 조선이 맛이 점점 가버리는걸 보면 확실히 단종이 왕 하는게 나았을 수도 있음 걍 폭정이라는건 똑같고 능력은 수준 이하
태종이 폭정이라면 폭정이겠다만 누군가는 해야했을 일이지만 세조가 한 짓은 그 누구도 해서는 안됐을 일이라
아르펠
태종은 누군가는 했을 일을 본인이 뒤집어쓰고 한건데 세조는 그것도 아님. 단종이 별로인 임금이었냐 하면 그것도 아니고 나름 능력있는 군왕이었음
오히려 사실 태종은 아예 학살한건 또 아니라는 소리도 있고 민생도 잘 다뤘고 진짜 꼭 해야 했던 일들이었지. 세조는 역으로 왕의 정통성을 없애버리고
유전자 어디 안 간다고 꽤 총명했다던데
아르펠
아버지가 SS급이어서 그렇지 단종도 A급은 충분히 되는 군왕이었음
이후로 왕들도 이거 문제 인거 다 알았는데 해결 못함. 그럼 뭐가 문제일까?
외세 침입이 줄어들어서 창병 부활할 명분이 사라진거 아닐까? 병종수요라고 해봐야 북방에서 유목민 기병과 궁기병 카운터인 기병과 궁기병이니.
세조는 권력욕에 미쳐서 조카를 죽이고 왕위에 오른거라서 권력 지키기에 급급했고, 정사보다는 공신들 챙기고 항상 불안해 하는 거 말곤 한게 없으니.... 그 뒤를 이은 예종도 세조 뒷정리 하려다가 일찍 요절하고 성종대에 간신히 안정화 들어가나 했더니 연산군이 폐비 윤씨 일 알고 다 말아먹고... 중종은 반정으로 올라가서 또 공신들한테 좌지우지되고.... 인종도 요절하고 진심 세조 부터 조선은 항상 위태위태 했지...
사실 중종은 공신들한테 휘둘리지 않았음. 조광조 먹버까지 한 사람임.
주초위왕도 공신탓인 거 아니었음?
폭주몽키
물론 공신들도 걔 싫어하긴 했지만 기묘사화는 중종 본인이 ㅈ같다고 적극적으로 조져버린 거에 가까움.
명분보태기 +1 정도였구나 우와
가오나 잡을줄 알았지 영....
꼭대기를 먹을 수 있는 능력과 꼭대기에서 잘 할 수 있는 능력은 별개지
실제로는 정형돈이랑 닮았다 카드라
あかねちゃん
세종 아들이면 납득갈만한 외모네 ㅋㅋ
파도파도 괴담만
세조가 능력이 없다기보단 적을 너무 많이 만든 상태에서 왕이 되어서 왕자리 지키는데도 힘들었기 때문에... 세조가 조선 초기에 끼친 악영향은 진짜 레포트로도 쓸수 있을정도로 어마어마함. 그냥 개색기 그 자체
로리콘은고칠수있습니다
태평성대에 장자로 태어나서 왕했으면 그냥 평범한 왕정도 할수 있는 정도 능력치였는데 권력욕은 어마어마해서 왕위를 찬탈해버린데다가 공신들까지 많이 만들어버렸는데 그 공신들을 우대해서 훈구파로 만들기까지 했으니 뭐 답이 없음 그냥... 파도파도 괴담만 나오는 왕
로리콘은고칠수있습니다
그냥 생각이 짧은 것 같음. 저 창병 창기병 TO줄인 것도 요즘 병사들이 창병이나 도수등을 꺼려해서 지원을 잘 안하더라 라고 신하가 말하니까 "그래? 그럼 그거 그냥 줄여버려"이러고 끝내버림.
태종이 킬방원 소리들으면서 공신 숙청 해놓은걸 사실상 도루묵으로 만들어놔버렸으니
이 이후로 사실상 왕이 권신들 눈치나 보게 되는 신세가 됨. 성종때 잠깐만 빼고..
수군 힘들다고 다 도망가는데 수군의 왜 폐지 안시켰을까
근접보병 경시한 결과가 임진왜랑 이후로 병자호란때도 톡톡히 치뤘다는 얘기도 있더라 조총과 그걸 보조할 제대로 훈련받는 창병들의 부재가 대기병전에서 패인이 됐었다고
영화 남한산성에 조선 조총병들이 맥없이 털린게 그거였나보네.
참고로 세조의 2대 뒤 왕인 성종은 조선조에서 손꼽을정도로 능력있는 왕이지만 사실 정상적으로 왕조가 굴러갔다면 사실 왕 되기 힘든 위치였음. 왜냐 이미 성종보다 계승순위가 높은 전대 왕의 장자도 눈 뜨고 존재했음에도 불구하고 훈구파한테 왕실이 휘둘려서 즉위한게 성종이기 때문. 즉 세조는 결과적으로 왕조의 힘 마저 약화시키고 권신들을 들끓게 만들어서 조선의 불안을 가중시켰음.
조정에서 어떻게 하더라도 한반도에서 창병 병과가 크게 성장할 일은 없었을것이라 생각되던데 창병은 그나마 근접병과 중에서 훈련치가 낮아도 집단운용으로 어느정도 성과를 낼 수 있다지만 평지가 그렇게 많지 않은 울나라 지형 특성도 그렇고 구릉지에서 창병집단은 큰효율을 내지 못한 사례가 아마 로마랑 그리스랑 싸울때였나 또 우리나라 나무들은 장창을 만들기에는 너무 무겁고 그나마 쓸만한 나무들은 곧게 자란걸 찾기도 어려워 안정적인 수급이 힘들었다고 하더라 게다가 장창이 의외로 전투중에 잘 부러져서 당시 군인들한테도 불만사항이 많았던 병기라고 하더라고 이는 곧 장창병 유지비가 생각보다는 많이 들게 되고, 결국 후기에는 조총을 운용하는게 창병을 운용하는 것보다 싸게 먹혔다고 하더라고 아무튼 창병을 대규모로 운용하느니 산에다가 성 올려서 수비하는게 한반도에서의 주요 전략이었으니 창병이 소외되는건 아무래도 자연스러운 결과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임
근데 군대의 허리인 부사관 직책을 약화시킨 건 빼박 실책이지. 이런 건 쉽게 복구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원딜앞에 탱라인을 배치하는건 유구한 전술인데 창은 별명이 만병지왕이자너 간격벌리는데는 최고지
갑사가 줄어 군사능력이 떨어지고, 창병이 올라운더라는거에 대해서는 반론은 없음. 그리고 뭉뚱그려 창병이라고 하기는 했지만 내가 주로 말한건 장창병이였어 다만 조선에서 창병이 줄어드는 이유가 무엇인지에 대해서 더 생각해볼만한 사항들이 있다는거지. 여기서 부무장으로 창을 가지는건 논외로 하자구 공세나 야전에서는 창병의 탱커역할이 중요하겠지만 수세에서는 굳이 성벽을 버리고 창병 뒤에서 원딜을 하는건 글쎄.. 그 당시 상황을 눈앞에서 본 건 아니라 잘 모르겠지만 나같은 쫄보는 성벽이 더 안전하다고 느꼈을거 같음 게다가 임란 이전에는 북방 유목민들의 침략에 초점을 맞췄기 때문에 창병의 느린 기동성은 상황에 대처하기 힘들었고... 이미 앞마당 일꾼 다 털린 다음에 병력 보내봐야 소용 없다는거지. 그래서 성에서 막는동안 병력을 빠르게 파견하기 위해 기병위주의 편제에 대해서 중요시 했던거고 결국 제한된 예산 안에서 선택과 집중을 하면서 장창병의 대규모 운용보다는 다른 전략을 세워보고자 한 것이 저런 결과를 가져왔다고 그냥 생각해본거야 물론 어느 상황에서나 뒤에서 받쳐줄 창병이 필요하다는데에는 큰 이견은 없어. 단지 조선의 상황이 그만큼 여유가 있었던건 아닌거같다라는게 내 의견이야
기병편제의 카운터로도 창병이 필요하지 괜히 기병카운터가 창병이 아니라생각해 유지비가 많이 든다고 우리가 전투기를 안띄우는게 아닌것처럼 전쟁만큼 가성비란게 안통하는 부분이 있어야지
전술쪽으로는 맞는 말이기는 한데 내 이야기는 그 부분을 말한건 아니야. 장기적인 전략에서 조선이 취할 수 밖에 없던 선택에 대해서 이야기 해보고자 한거야. 기병에 대한 카운터로는 창병이 적격이긴 하지만 앞서 말했듯이 상황변화에 보병은 적극적으로 대처하기 힘들다는 단점이 있었고, 이는 중앙정부에서도 인지하여 국경 부대에서의 기병편제수에 대해서 지속적으로 관심을 갖고 지시하고 있었어 뭐 기병유지 때문에 당시 창병의 숫자가 줄었는지에 대해서는 나도 전문가가 아니다보니까 상관관계에 대해서 이렇다저렇다 할 말은 없지만 북방 유목민에 대항하기 위해서 조선은 창병보다는 맞기병으로 승부하는 쪽을 선택한거지 다른 전략으로는 대규모 침략이 예상되는 길목마다 숲을 조성하여 상대 기병의 움직임을 둔화시키고 쉽게 수비할 수 있도록 하는 방법도 고려하고 실천하였지. 근데 그게 어느 왕때였는지는 기억안난다 아무튼 조선도 바보같이 의미없이 창병을 줄이려고 한게 아니라 상황 변화에 맞춰서 합리적인 판단을 하려고는 노력한거 같은데.. 이긴것보다는 털린게 더 와닿아서 불쌍한 모습을 많이 보인것처럼 느껴지는게 안타까워서 조금이라도 쉴드쳐보고자 적어봤으
대충 근육조선 입장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