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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팬픽에서 모티브 따서 그린 만화라고 함
약간 씁쓸하고, 애틋하게
모르모트 군이 학원을 떠난지 며칠이 지났다. 아침에 도시락을 챙겨주거나, 수업이 끝나면 트레이닝을 하거나, 실험에 어울려주는 등 모르모트 군이 많은 걸 내게 해줬단 사실은 요 며칠 동안 뼈저리게 느꼈다.
그 중에서도 내가 가장 힘들었던 건 그가 만들어준 밥을 못 먹게 됐단 것이다. 이제와서 믹서식으로 돌아갈 수도 없고 카페테리아에 갔는데, 왠지 만족스럽지 못 했다.
아니, 그 밖에도 많은 게 견디기 어렵단 사실을 인정할 수밖에 없다.
그가 타준 홍차의 향기. 내 입맛에 맞게 설탕을 듬뿍 넣은 굉장히 달콤한 것이다.
그리고 실험에 어울려줄 때의 곤란하단 표정. 내게 무슨 짓을 당하더라도 상관없다는, 객관적으로 봤을 때, 정신줄을 놓은 것으로만 보이는 열의가 내 마음을 녹여준 것이다.
그가 없어지자, 이러한 생각들이 머릿 속을 어지럽혀 내 정상적인 사고 회로를 뒤엉켜놓는다. 끝끝내 무의식 중에 그의 트레이너실 앞으로 발을 옮기고 있었다.
아아, 그가 내 달리기에 매료되었 듯이 나 또한 그에게 얽매이고 말았구나.
생각을 정리하지 못 한 채로 나는 트레이너실의 문고리를 돌렸다. 다행히도 잠겨있진 않았다.
방에 들어가 보니 미세하게나마 그의 냄새가 남아있었다. 그건 결코 불쾌한 것이 아니었으며, 오히려 날 안심시켰다. 하지만 그와 동시에 형언할 수 없는 감정이 가슴 속에서 소용돌이치는 것만 같아, 이도저도 못 할 기분이 들었다. 단순한 심박 상승과는 다르다. 내가 이제껏 느껴보지 못 했던, 알 도리가 없었던 감정이다.
마음의 정리가 되지 않은 채로 그의 자취가 남은 방을 요한다. 컴퓨터 전원은 당연히 꺼져있고 책상 위는 서류나 작은 먼지 하나 없이 깔끔하게 청소되었다. 하지만 유일하게 남아있는 것을 발견했다. 모르모트 군이 사용했던 머그컵이다. 안을 보자 전부 마시고 비어있었지만, 블랙 커피를 탔던 것임을 알 수 있었다. 그러고 보니 그는 자주 이걸 마셨었지.
계약했을 무렵에는 자주 봤지만 최근 들어서는 마시는 걸 보지 못 했었다. 아마도 내가 실수로라도 마시지 않게 배려했던 거겠지.
한숨이 섞인 미소가 흘러나왔다. 내가 어린 애도 아니고 그런 배려는 불필요하거늘…. 하지만 내가 모르는 곳에서 그가 배려하게 만들었다는 사실이 또다시 내 감정을 어지럽힌다.
머그컵에 얼굴을 가까이하자 커피의 잔향이 코를 찔렀다. 내게는 어려운 냄새. 평소 같으면 저리 치우라고 하겠지만 어찌된 일인지 자발적으로 그 냄새를 맡고 있었다.
쓴 향기의 뒷편에 자그마하게나마 모르모트 군의 냄새가 나는 것 같아, 내 심장은 다시금 고동쳤다. 어리석은 짓이란 건 차고 넘치게 알고 있다. 이런 행위에 무슨 의미가 있겠냐고.
하지만 내 이성을 초월한, 표현하기 힘든 욕구는 멈출 줄을 몰랐다.
나는 천천히 방에 있던 전기 포트의 물을 끓여 인스턴트 커피 분말을 녹였다. 물론 그의 머그컵에.
증기를 타고 쓰디쓴 향기가 스며들었다. 그건 내 거짓 한 점 없는 진심이었으며, 내가 지금까지 눈치채지 못 했으며 불필요하다고 여겨온 감정이었다. 누가 누구더러 제정신이 아니라는 건지 정말….
역시 이런 걸 마실 수 있을 리는 없었고, 나는 쌓여있던 설탕을 전부 녹여 남은 커피를 들이켰다.
기숙사로 돌아가 이를 닦아도 입 안에는 쓴 맛이 남아있는 것만 같았다. 하지만 그것이 지금의 나와 그의 유일한 연결고리인 듯한 느낌이 들어 불쾌하진 않았다.
***며칠 뒤***
1주일에 걸친 지방 트레센 출장을 마치고 겨우 중앙으로 돌아왔다. 타키온은 밥을 잘 챙겨먹고 있었을까? 내가 평소에 그녀의 어리광을 받아주는 정도에 감을 못 잡다 보니, 그녀는 생활력을 완전히 잃고 말았다. 쓰러지지나 않았으면 다행인데….
"안녕, 타키온? 내가 출장 중에도 잘 지냈어? 아니, 그 헬쑥한 얼굴을 보니 밥도 제대로 안 먹었지? 그럼 못 쓰지. 도시락을 못 만들어준 건 내 잘못이지만, 타키온은 아직 현역 선수니까 컨디션 관리를 신경 써야지. 애당초가─"
"아아. 정말 트레이너 군. 그렇게 걱정된다면 중간에 돌아와도 괜찮았는데 말이지! 날 내버려두면 어떻게 될지 쯤이야, 자네라면 잘 알았을 텐데?"
타키온은 내 말을 끊고 연달아 출장 중에 겪은 불평불만을 늘어놓는다. 나도 일만 아니었으면 그녀와 떨어지고 싶지 않았다.
하는 수 없지. 그녀의 성이 풀릴 때까지 불평을 들어주자. 어떤 실험이든 어울려주자.
"듣고 있나, 모르모트 군? 나는 말이야 자네의 주인 의식이란 게 아직까지 부족하기 짝이 없단 생각이 든단 말이야."
화내는 타키온을 흐뭇하게 보고 있었더니 아무래도 그녀의 말에 제대로 반응하지 못 했던 모양이다.
"미안, 타키온. 다신 떨어지지 않을게. 적어도 오늘은 계속 같이 있을 거야."
그리 말하고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으려 했는데, 머리를 건드리는 걸 싫어한단 걸 떠올렸다. 다른 무엇보다 한창인 소녀를 스스럼없이 만지려 드는 게 아니다. 뭔가 어색해져서 방을 둘러보자 내 머그컵이 눈에 들었다. 어라? 출장 전에 정리 안 했던가?
가까이 가서 커피 세트를 보자 설탕이 전부 없어져있었다.
"아! 타키온. 여기 있던 설탕 전부 가져갔지? 연구실에 있는 거 다 떨어졌던가?"
"어?"
타키온은 여지껏 한 번도 못 봤을 정도로 얼굴이 새빨개져있었다.
"무슨 소릴 하는 겐가!? 나는 지금 자네가 나를 대하는 태도에 대해 얘기하고 있었을 텐데?"
"아니, 그런데──"
"됐 · 으 · 니 · 까. 내 얘기를 듣도록 하게."
그녀는 증기가 나올 정도로 새빨개져선 그렇게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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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모르모트 죽인 줄 알았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