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나와 호다카. 서로가 이어지는 이유.]
왠지 학대의 흔적이 보이는 호다카
그러고보니 영화 초반부 도쿄의 오다이바로 상경한 호다카의 얼굴엔 반창고가 많이 붙어 있었습니다.
벗어나고 싶은 환경, 비와 바다, 즉 물은 불안한 정서와 고립을
빛은 마음의 안식, 하지만 섬에 사는 호다카는 닿지 못하죠.
결국 가출 하기를 선택하고 자신을 고립시킨 섬에서 벗어납니다.
빛을 따라 도쿄에 상경했을때 그 끝엔 호다카가 그토록 찾던 안식인 히나 가 있었습니다.
자신을 고립시킨 환경에서 호다카는 사회의 틀에서 벗어나 도시에서 혼자 살아가기 라는
극단적인 선택을 합니다.
어린아이 같은 발상이지만 어린 아이가 하기에는 대담한 발상 이기도 합니다.
이런 호다카에게 이끌리는 히나.
서로가 왜 이끌리는 걸까요?
히나는 이미 도시에서 어린 동생까지 데리고 한사람 몫 이상을 해내는 어른의 역할을 자처한 아이 입니다.
히나는 호다카와는 다르게 사회에 순응해가며 살아갈 수 밖에 없는 친구 입니다.
하지만 적응하지 못하는 환경에 처해 있습니다.
벗어나고 싶지만 동생이 있기 때문에 그건 불가능 하죠.
호다카는 히나와 전혀 다른 방향의 사람 입니다.
사회에 순응하길 거부하는 문제아 이지만 자신이 가장 원하고 바라는것을 실행할 수 있는 친구 입니다.
호다카는 무의식적으로 자신의 반항성이 히나의 사회적 의미를 찾아줍니다.
생활비를 벌며 사회에 적응해 나가기를 원하고 바라던 히나의 바람을
실제적으로 이끌어 준것도 호다카의 발상 덕분 이었죠.
호다카와 특히 히나는
맑음소녀의 일을 통해서 사회에 적응해 나갈수 있었고
(사진에서 처럼 사람들 사이에 섞여있는것, 즉 평범하지 않은 소년 소녀가 평범할 수 있게 된 것)
이 경험은 이 장면에 나오는 ost의 제목인 축제와도 같은
기분 좋은 경험이었을게 분명합니다.
이 아이들은 스스로 이 도시에서 적응하며 살아 가는 것에 큰 고양감을 느끼게되고
자신들의 힘으로만 살아갈수 있다는 확신에 차게 됩니다.
맑음소녀의 일이 호다카와 히나를 고립시키던 물에서 해방시켜주는 하나의 장치가 됩니다.
[반지의 의미]
결론적으로 이 영화에서 반지가 하는 역할은 두가지 정도 입니다.
첫번째는 소중한 것에 대한 이미지를 형상화 한 것이고
두번째는 그 소중한 것으로 부터 오는 '책임' 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 반지를 매개체로 이야기를 풀어 나가는 인물은
스가와 히나 그리고 호다카 입니다.
셋 다 이 소중한 것을 다루는 방법과
그 책임을 물게 되는 방법이 전부 다 다르다고 할 수 있습니다.
첫번째로 스가 케이스케 라는 인물이 반지를 어떻게 다루고 있는 가에 대한 이야기 입니다.
스가 케이스케는 이 반지를 벗어버리고 싶어 하는 어른 입니다.
자신이 불리한 상황에 처하거나
피하고 싶은 상황이 닥칠 때 마다
그는 반지를 만지작 거리는 습관이 있습니다.
하지만 스가는 반지를 불편한듯 만질 수 밖에 없고
끝끝내 벗어버리는건 불가능 한 인물 입니다.
왜냐하면 그는 책임을 포기할 수 없는 어른이기 때문입니다.
그는 딸 아이를 사랑하고
딸의 양육권을 위해 위험한 일을 피하려고 합니다.
결국 자신이 거두어준 호다카를 다시 내쫒게 되고
히나를 인간 제물로 바치는데에 동의하는 어른이기를 선택합니다.
반지는 사랑했던 아내와 딸의 이미지를 형상화 했고
그는 딸을 위해서 반지를, 다시말해 어른으로써의 책임과
자신의 안위를 포기하지 않습니다.
스가는 어른의 책임을 지기 위해(자신의 딸과 함께 하기 위해)
원치않는 금연도 하는 인물 이지만
호다카에 대한 책임을 버렸을땐
금연도 깨버리는 모습을 보여 줍니다.
반지와 담배
소중한 것과 책임에 대한 갈등 사이에서
아슬아슬 하게 줄타기를 하는 것 같은 모습을 보여주는 스가 이지만.
사회에 저항하고 반항하는 것 보다
자기가 우선순위로 두어야 할 것이 무엇인지
무엇을 버려야 할지 무엇을 책임 져야 할지에 대해서
결국 반지를 빼지 않는 인물이 바로 이 스가 케이스케 라는 인물입니다.
스가를 통해 반지에 대한 책임의 의미
소중하게 생각 하는 것이 늘어날수록
책임져야 할 것도 늘어난다는 것 그리고 반지는 쉽게 빼지 못한다는걸 보여주게 되는데,
이 반지를 자진해서 끼겠다는 아이들이 바로 호다카와 히나 입니다.
나기와 미츠하가 반지를 선물 하는것에는 특별한 의미가 있다는 것을 내포하고 이야기 해줍니다.
반지에는 그 사람을 소중하게 생각하고 있다 라는 메세지를 전달하고 있기 때문이죠.
그런데 아이들의 시선에선
이 반지는 아이에서 어른이 되는 멋진 아이템이라고 생각을 합니다.
로맨틱하고 고양감이 느껴지는 물건이죠.
어른인 스가의 시선에서 바라봤을때 반지는 설명하기 참 애매한 물건입니다.
소중하게 간직은 하지만, 가끔은 빼버리고 싶은.
그럼에도 절대로 포기할 수 없는 어른들만 이해할수 있는 물건이죠.
빨리 어른이 되고 싶었던 히나가
어느순간부터 어른으로써의 책임을 알아버리는 장면이 바로 이 장면입니다.
나츠미 언니한테서 인간 제물에 대한 이야기를 전해 들었을 때 말입니다.
날씨는 호다카의 기분을 의미하고 즉 호다카의 안위를 뜻합니다.
호다카가 준 반지를 낀다는건
호다카의 안위를 위해 자신이 희생하겠다는 의미가 되는거죠.
사실 히나는 18세(우리나라로 치면 19세)가 아니죠
일본에서 18세면 어른에 아주 근접한 나이 이지만
히나는 15세, 호다카보다 한 살 어린 나이 입니다.
그러니 이 장면이 사실은 로맨틱한 분위기에 장면은 아니게 되는 겁니다.
히나는 받을 수 없는 선물을, 아니 받으면 안되는 선물을 받아 버린 셈이죠.
반지는 소중한 사람이 생겼다는 의미를 내포하기도 하지만
어른의 책임을 의미하는 물건이기도 합니다.
이제까지 호다카를 통해서 맑음 소녀의 일을 하며
한사람의 몫 뿐만 아니라 어린 남동생과 호다카의 생계까지 커버 할 수 있게 된 히나 였지만
반지를 줌으로써 완전히 히나를 한사람의 어른으로 인정 해 버리는 셈이 되버린 것이니까요.
그래서, 히나는 반지를 선물 받은 후 바로
이 비가 멎기를 바라냐며 호다카에게 물어봅니다.
다시 말 해 히나 한 사람이 가정을 지탱하기 위한 책임자
즉 히나 자신이 어른이 되기를 원하냐는 말을 물어 본 것이라고 할수 있지 않을까요?
그리고 하늘로 사라진 히나.
반지를 낌으로써 히나는 하늘의 제물로써 완성이 됩니다만.
그의 반동인것 마냥 반지를 낄 수 없는 모습이 되어 버리고 맙니다.
당연한 이야기이지 않을까요, 히나는 어른으로써의 책임을 질 수 없기 때문에 반지를 낄 수 없으니까요.
결국 호다카가 선물해준 반지는 히나에게 가지 못했고
다시 호다카에게로 돌아왔죠.
어찌보면 이 장면은
반지를 끼게 만든 호다카의 사죄 장면 같기도 합니다.
그리고 히나가 15살이라는 진실을 알게된 호다카에게
그 책임이 돌아온 장면이기도 합니다.
호다카는 이 반지를 통해서 히나를 구할수 있는 책임을 져야할 사람은 자신뿐임을
잠재적으로 깨닫게 됩니다.
이 말은 동시에 호다카는 어린 아이에서 어른이 되어야 할 수 밖에 없다는것을 이야기 합니다.
문제는 책임을 질 수 밖에 없는 호다카의 상황을
어른들은 이해해주지를 못한다는 것입니다.
[대단원 일본의 전체주의 비판]
이야기를 이어나가기 전 개인적인 감상을 이야기 하자면
이 파트에서 일본 전체주의를 비방하려는 메세지가 강해서
영화를 봤을때 이해가 잘 안된다거나 이전까지의 이야기와 잘 안맞아 떨어지는 느낌이 들었다고 생각했습니
아이들 에게도 나름의 말 못할 사정이 있다는 것을 알아달라고 외치는듯한 호다카
하지만 어른들은 수습하기에 바쁩니다.
그런 호다카의 손에는 반항심의 상징인 권총이 쥐어져 있습니다.
이른바 호다카의 이유있는 반항의 총구가 어른들을 향해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걸 뭐라고 이야기 해야 할까요?
모르는 척 하는 어른들
아이들의 어려움을 이해해 주지 않는 사회
그런 사회속에라도 섞여들어가고 싶었던 아이들
하지만 사회의 안정을 위해서 반항하는 아이들을 희생해버리는 사회
전체를 위해서 소수를 희생해 버리는 사회
아이를 둘러 싼 어른들
반항의 표시
아이를 돕는 어른
아이를 돕는 아이
사회는 반항하는 아이들을 가만 놔두지 않습니다.
문제아들은 그저 보이지 않으면 그만이야.
보여지는 모습이 중요하지, 그 안이 어떻게 형성돼있던 그런건 중요하지 않아.
비가 내리는건 싫어 맑은 하늘이 좋아!
너가 제물이 되지 않아서 비가 내리는건 너의 탓이야!!
그런 모든 메세지를 호다카는 나기와 스가의 도움으로 벗어나 드디어 히나에게 도달합니다.
하지만 그런 사회속에 몰려져 있던 탓인지
히나는 스스로 제물이 되어야만 한다는 강박에 시달리는듯한 대사를 내뱉습니다.
하지만 그런 히나를 호다카가 다시한번 구해내죠.
세상에 이유 없는 반항은 없다.
중요한건 그 이야기를 들어줄 귀가 필요하다는 것
자신의 이야기를 이야기 하고 그것에 공감하는 것
이 영화는 일본 사회에 기본적으로 깔려져 있는
전체주의 사상을 비판한다고 합니다.
호다카가 읽던 호밀밭의 파수꾼과 이 영화에 나오는 스가를 포함한 어른들의 공통점은
위선적 이라는 점이죠.
남은 단 하나의 가족과 떨어지지 않기를 원하는 히나의 가정을 갈라놓으려 하는 경찰들의 모습
호텔을 전전하지만 미성년 아이들에게 방을 내어주지 않아 밖을 전전하는 아이들
어른들의 시선에선 미성년자가 보호자 없이 호텔을 전전하는것, 가출 하는 것 자체를 문제로 볼 수밖에 없지만
그런 아이들의 삶을 유심히 관찰해 보면 사회에 반항하는것 처럼 보여지는 행동을 선택할 수 밖에 없다는 점을
어른들은 보지 못한다는 점에서 그렇지 않은가 생각해봅니다.
[마무리]
솔직히 말해서 이렇게 많이 쓸거라고 생각을 못했음...
여기서부터는 지극히 해석 관점이 아닌 개인적인 관점에서 본 바를 이야기 합니다.
세상을 바꾸었다고 하는 이야기를 호다카가 하게 되는데
그 이유는 비가 호다카의 기분과 밀접하게 연관 돼 있다고 볼 수 있기 때문이라고 봅니다.
처음 비와 섬에서 벗어나고 싶어하던 호다카가
마지막엔 히나와 비가 멈추지 않는 도쿄에서 살아가기를 선택합니다
정말 최후의 마지막엔 모든 일을 겪고 난 이후의 호다카는
사회나 환경을 뛰어넘어 한 사람과 함께 하는 경험 자체에서 의미를 찾지 않았나 싶습니다.
세상을 바꾸었다는건 어찌보면
히나가 그 나이대에 가장 잘 맞는
의무 교육을 받는 환경에 지낼수 있게 되었다는
결정적 증거인 교복을 입고 있다는 점
초커나 반지에 얽매이지 않아도 되는 환경에서 지내게 됐다는 점에서
히나를 선택했다(구했다) 라는 확신을 가지게 되어 눈물을 흘린게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비가 오는 사회는 고립을 나타내지만
고립된 사회 속에서 서로를 소중히 생각하며 살아가면
분명 괜찮을 것이라는 희망적인 메세지를 담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입니다.
물론 반지는 비하인드(뮤직비디오)에서 감동적으로 끼워주었답니다
히나가 신카이 작품의 히로인중 가장 마음에 들었던 인물인데, 반대로 가장 와닿지가 않던 히어로가 호다카였음... 고향으로 돌아갔을 때 너무 아무렇지 않은 모습을 보여줘서 도대체 뭐가 애를 도쿄로 내몰았는지가 설명이 안 되는 느낌이었어서 심지어 그 인물이 히나 옆에 있으니 그 무게감이 너무 가벼워졌던거 같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