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에 한 한달 전 쯤? 어떤 유게이가 위 소재로 대역물 "써줘" 했길래, 마침 그 때 심심한 때라서 작가도 뭣도 아닌 일개 유게이인 내가 하루만에 써봐야지 하고 삘받아서 글을 썼었음.
그런데 일하면서 짬날 때만 써야 하고, 내용도 처음 생각보다 길어지다 보니 1주일 정도 걸리더라.
그리고 나서도 여기 올리기가 귀찮아서 결국 처음 그 글 본 때로부터는 한 한달 정도 되는 것 같은데 써놓고 그냥 버리기는 싫어서 아마츄어의 허접한 글이지만 올려 봄.
참고로 4편으로 나누었는데 양이 너무 많은 거 같아서 나눈 거고 제대로 챕터를 나누거나 한 건 아님. 글이 중간에 뜬금없이 끊겨도 이해 바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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삐익- 삐익-
알람 소리가 울렸다. 카를은 책상에 쌓여있는 서류 속에 묻어두었던 얼굴을 들어 반대편 벽면의 시계를 보면서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그가 몸을 일으킴과 동시에 반대편 벽면에 떠올랐던 시계는 다시 천천히 사라지고 벽은 원래대로 지도로 바뀌었다. 그가 정복한 지역을 모두 나타내는 홀로그램 지도.
지도는 유럽도 아시아도 아프리카도 아메리카도, 오세아니아 조차도 모두 파란 빛으로 물들어 있었지만 지금 그가 몸을 일으킨 집무실이 위치한 런던에서 고작 320여 킬로미터밖에 떨어지지 않은 맨체스터만은 빨간 불이 깜빡이고 있었다.
과거와 현재를 통틀어 유일하게 지구 상의 모든 대륙을 정복한 위대한 지배자 카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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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43년 12월 24일 저녁 6시에 그는 처음으로 정복을 위해 발걸음을 내딛었다. 여러 차례의 풋풋한 입맞춤, 어쩌면 그보다 더 깊었던 애정과 수년간의 편지 교환 끝에 혼인하기로 서로 약조한 제니가 그 아버지의 손에 이끌려 대귀족에게 보내졌기 때문이었다. 사랑을 위해 그는 수년간 틀어박혀 있었던 연구실에서 나와 트라팔가 광장의 군중 속으로 들어갔다.
그가 연구실에서 가지고 나온 단거리 심상 투사 및 고강도 성애 유도 시스템 (Short-range Image Projection and High Intensity Love Inducement System) – SIPHILIS. 아직 완성된 장치는 아니었지만 효과는 강렬했다. 그 날, 그 시간 광장에 있던 모든 사람의 마음 속에 제니의 모습을 새겨 넣었고 그들은 모두 카를처럼 제니에 대한 강한 사랑을 품게 되었다. 하지만 동시에 이는 완성된 장치가 아니었다. 광장의 군중들은 모두 이성을 잃고 분노하였으며 제니의 남편인 대귀족, 에른스트 공세자의 집에 몰려가 에른스트 공세자를 처참히 살해하였다.
카를은 거기서 그치고 싶었을 것이다. 하지만 제니를 지극히 사랑하는, 또한 피를 보고 극도로 흥분한 군중들 앞에서 제니만을 빼내어 도망치는 것은 불가능했다. 또한 그는 멈출 수 없었다. 형을 잃은 남편의 분노보다도 감히 왕가의 일원을, 그것도 자신이 사랑해 마지않는 알버트 대공의 형을 건드린 신민들에 대한 빅토리아 여왕의 분노는 너무나도 커 도망치는 것 만으로 피할 수는 없었다.
그는 계속해서 SIPHILIS를 가동했고 군중을 향해 다가오던 왕의 군대들도 하나 둘 제니에 대한 사랑에 무너져 내렸다.
급기야 제니는 군중들에게 여신이 되었고 여신을 해치려 한 여왕은 이제 용서받을 수 없는 존재가 되었다. 카를은 제니를 이끌어, 아니 군중을 이끌어 버킹엄으로 향했고 그들을 막아서려 오던 이들은 어느 틈에 모두 방향을 돌려 총끝을 왕궁으로 향했다.
여왕을 끌어내리고 제니를 옥좌에 앉힌 후, 카를은 더 이상은 버티지 못할 것 같았다. 정말 그만두고 싶었다. 하지만 이미 그와 제니는 버킹엄 궁을 짓밟고 왕족들을 학살한 주범이었다. 살기 위해서는 이제 멈추지 않는 것만으로는 부족하고 그 앞에 무엇이 있든 더 나아갈 수 밖에 없었다. 또한, 왕족이 몰살당한 왕궁에 머무는 시간이 생각보다 길어지면서 불안함은 마음 속 깊숙하게 가라앉고 욕심이 서서히 수면 위로 올라왔다. 카를은 이제 언제 끝날지 모르는 지금 이 순간의 행복으로 만족할 수 없고 영국을 손에 넣고 싶었다.
카를은 SIPHILIS가 점차 더 넓은 범위에 작동할 수 있도록 개량하였으며, 자신이 원하는 심상을 원하지 않는 부분에 덮어 씌울 수 있도록 개조하였다. 처음에는 이를 이용해 자신과 제니만을 위해 목숨까지 바칠 수 있는 친위대를 만들었다.
이번에도 카를은 거기서 그치지 않았다. SIPHILIS가 영국 전역에 그 힘을 발휘하게 하려면 자기 혼자만으로는 부족했다. 두뇌가 우수한 인재를 찾기 위해 왕립학회 회원들을 끌어와서는 SIPHILIS를 사용해서 다른 모든 생각은 지워버리고 오로지 SIPHILIS를 개량하는 데에 모든 힘을 쏟도록 하여, 수년이 지난 후인 1849년, 결국에는 (SIPHILIS Signal Electrical eXchange) 방식 –. S.S.E.X를 발명해냈다.
카를은 즉시 제니의 이름으로 여신께서 신의 백성들을 위하여 신문물을 전파하고 잉글랜드 전역을 밝힌다는 명목으로 전 국토에 전선을 깔고 SIPHILIS 신호를 송신하기 시작하였고, 이렇게 기반 시설 작업이 완비된 1853년 초에는 이제 카를도 잠시 멈출 수 있을 것만 같았다.
그러나 그에게는 그러한 휴식의 시간이 주어지지 않았다. 1853년 여름 카를은 제니와 함께 켄트 지방으로 여행을 떠났고, 지긋지긋한 잉글랜드에서 잠시라도 멀어지고자 도버에서 친위대도 전부 항구에 대기시켜 놓은 채 작은 배를 타고 도버 해협을 항해하고 있었다.
그 때 프랑스측 해역에서 열두어 살 남짓으로 보이는 소년이 갑판 위에 서 있는 배 한 척이 카를과 제니의 배 근처로 다가왔다. 소년은 밝은 미소를 지으며 카를과 제니에게 열심히 왼손을 흔들었다. 서로 선물 교환이라도 할 수 있을 정도로 가까워지자 소년은 마치 카를과 제니의 얼굴을 보고 싶어하는 것마냥 난간으로 걸어와 「여신님이신가요?」하고 물었다. 여신과 그 주변인으로서 사는 데에 지쳐 바다로 나온 것이었지만 아직 인간성이 남아있던 시기이기에 어린 소년이 해맑게 묻는 것을 물리칠 수 없었던 카를은 다소 못마땅한 표정으로 제니를 쳐다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소년은 뒷짐을 진 채로 리볼버를 꼭 쥐고 있던 오른손을 내밀었다. 소년은 더 이상 웃고 있지 않았으며, 큰 소리로 「알버트와 빅토리아의 아들인 나 알버트 에드워드, 오늘 영국 왕실의 명예와 부모님의 원수를 갚노라!」고 외친 후 천천히 제니의 가슴을 겨누고 총을 쏘았다.
카를은 첫 총성을 듣는 순간 너무 당황하여 아무런 반응도 할 수 없었다. 그러나 제니의 어깨죽지에서 피가 뿜어져 나오고 다시 두번째 총성이 들린 후 제니가 갑판 위로 쓰러지는 모습을 보자 정신이 들었다.
카를이 비로소 자신의 총을 집어 소년을 겨누었을 때 소년은 이미 자신의 총으로 스스로의 관자놀이를 겨누고 있었다. 「나는 신을 자처하는 악마에게 천벌을 내림으로써 내게 맡겨진 천명을 다하였노라 」라는 마지막 말을 남긴 후 소년은 스스로의 생명을 끊었다.
총을 던지듯 내려놓고 제니에게 다가갔을 때 제니는 어깨와 배에서 피를 쏟으며 정신을 잃어가고 있었다. 그녀는 더 이상 아무런 기력도 느껴지지 않는 목소리로 카를에게 「더 이상은… 못 가겠어, 미안…」이라는 말만 남긴 후 눈을 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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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를은 버킹엄 궁으로 돌아왔다. 제니도 함께였다. 피를 제법 흘리기는 했지만 그리 오래지 않아 영국 군함이 그들의 옆을 지났고, 총상을 치료하는 데에 지겨울 만큼 익숙한 군의관이 응급조치를 하였기에 제니는 목숨을 건질 수 있었다. 하지만 그녀의 심장이 멈추지 않았을 뿐 그녀의 정신은 그 날의 그 갑판 위에서 결국 멈추고 말았다.
천성이 여린 그녀는 사실 남편인 에른스트 공세자가 군중들에게 찢겨 죽었던 그 날부터 이미 더 이상 나아갈 수 없었다. 비록 자기 뜻으로 한 결혼은 아니었지만 그를 싫어하는 것은 아니었는데… 여왕과 대공과 그 아이들의 죽음 또한 그녀의 발목을 붙잡아 더 이상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도록 하였다. 그리하여 군중들은 그녀를 여신으로 모셨지만 그녀는 그저 돌로 만들어진 여신상처럼 움직이지 못한 채 군중들이 생각하는 상징으로서만 존재하였다.
아마도 그 때는 아직 그녀를 구할 수 있었을 것이다. 첫사랑이었던 카를이 그녀를 따뜻이 보살폈다면, 다른 이들의 관심에서 벗어나 오롯이 둘만의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면 혹시 몰랐을 것이다. 하지만 카를은 그 때 멈출 수 없었다. 그리고 그렇게 몇 년이 지나 겨우 카를이 숨을 고르고 그녀의 곁에 돌아왔을 때 제니에게도 삶이 돌아올 것만 같았다.
배를 타고 나가 따뜻한 햇살과 시원한 바닷바람을 맞으며 사랑했던 사람과 함께 누워있는 순간은 그녀에게 주어진 신의 마지막 선물이었으리라. 잠시 후 마주친 해맑은 미소의 소년을 보며 그녀는 한순간 앞으로 나아갈 생각까지 들었다. 카를과, 그와의 사이에서의 아이까지 함께 하는 미래. 그 소년이 부모님의 이름을 이야기하는 순간 그녀는 깨달았다. 자신을 붙들고 있던 왕가의 유령들이 여전히 그녀에게 매달려 있음을.
총을 쏘는 것을 보면서도 그녀는 몸을 피할 수 없었다. 총알이 그녀의 어깨에 한 발, 배에 한 발. 하지만 그 두 발보다 치명적인 것은 소년이 자신의 머리를 향해 쏜 마지막 세번째 총알이었다. 목숨이 다한 소년의 몸이 천천히 쓰러짐과 동시에 그녀는 작은 소년과도 같은 유령이 그녀의 몸을 감싼 채 지옥으로 끌어당기는 것 같은 느낌을 가질 수 있었다. 이제 나는 영원히 앞으로 더 나아가지 못하리라. 그녀는 모든 것을 놓아버렸다.
(2)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