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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게 일단 인조편의 "일부"다
이유야 어찌됐든 저 기록들 덕분에 ㅈ같은 이웃놈들이 지.랄할때 반박할 수 있는 경우가 생겨서 다행이지. 어쩌면 그 때도 비슷한 이유로 기록했을지도 모르고
이래서 조선 연구는 아직이라는 말이 있구나..
조선 초기 A:저 어떻게 해야할까요? 조선 초기 B: 뭐 처음이니 할수 있을만큼 하죠 조선 중기 : 초기때 해떤 관습이니 계속해 조선 후기 : 전통이잖아 해
스타트를 저렇게 해버려서...사관들이 어 기록해야 후대에 남긴다고? 기록을 어캐해야하지? 일단 다적어?->진짜 다 적음. 조선 후기로 갈수록 조금씩 내용이 정제되었다고함. 특히 태종의 사관이었던 민인생같은 애덜이 광기어린 기록을 남기니까 후대 애들도 ㅆㅂㅆㅂ 거리면서 짤없이 다 기록에 남긴거지. 야 니 선배님은 이걸 다 하셧는데 니가 안한다고? 하게되니까..
사관이 취합한게 아니라 국회 속기록 같은거임 한마디로 안걸러진 자료
고려시대엔 기록을 많이 했음. 몽골 환경전사들이 오기 전까진
저게 일단 인조편의 "일부"다
인조 76보다 더 있다구여??
인조 때 분량도 병자호란 때문에 좀 날아갔을 거임
인조 27년이면 죽던 해인데 앞쪽은 언제부턴지 안보이네... 어쨌건 저게 인조 전체라 해도 300년어치중 25년밖에 안되니 전체 양은 장난 아닌게 맞지. 한자 자수만 2억자랬나... 전기 파트가 없는게 아쉽지.
이래서 조선 연구는 아직이라는 말이 있구나..
왜 저렇게까지 기록을 했을까
기록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앗으니까
스테이어와일
이유야 어찌됐든 저 기록들 덕분에 ㅈ같은 이웃놈들이 지.랄할때 반박할 수 있는 경우가 생겨서 다행이지. 어쩌면 그 때도 비슷한 이유로 기록했을지도 모르고
그리고 저거도 보고기록 세조때 간소화하고도 저런거임
저게 그냥 단순기록뿐만 아니라 공문서 포함 공문서 만들기 위한 자료나 공문도 포함으로 알고 있음
스테이어와일
조선 초기 A:저 어떻게 해야할까요? 조선 초기 B: 뭐 처음이니 할수 있을만큼 하죠 조선 중기 : 초기때 해떤 관습이니 계속해 조선 후기 : 전통이잖아 해
스테이어와일
스타트를 저렇게 해버려서...사관들이 어 기록해야 후대에 남긴다고? 기록을 어캐해야하지? 일단 다적어?->진짜 다 적음. 조선 후기로 갈수록 조금씩 내용이 정제되었다고함. 특히 태종의 사관이었던 민인생같은 애덜이 광기어린 기록을 남기니까 후대 애들도 ㅆㅂㅆㅂ 거리면서 짤없이 다 기록에 남긴거지. 야 니 선배님은 이걸 다 하셧는데 니가 안한다고? 하게되니까..
고려 시대 삼국시대 역사 기록이 너무 없어서 크게 깨달은 바가 있었겠지… 자기들도 없는 자료 겨우 겨우 옆나라 가서 알아오고 하는 것도 꽤 많았었겠고… 아 빡친다. 우리 후손들에게는 이런 고생 하지 않게 해야지 싶어서 꼼꼼하게 다 기록 한거 아닐까 싶기도. 근데 우리나라 역시 치고 전투 전쟁 기록은 대단히 부실하다고 하더라… 어찌 이겼는지 자세히 알기 힘들어 학자들도 재현 하기 빡시다고 하던…
Mister_Q
고려시대엔 기록을 많이 했음. 몽골 환경전사들이 오기 전까진
[삭제된 댓글의 댓글입니다.]
사관이 취합한게 아니라 국회 속기록 같은거임 한마디로 안걸러진 자료
지금 관료조직이 문서 근거 남기른거랑 같은거라 생각하면 됨
그리고 동양 문화권에서 시시콜콜한 것까지 묘사하는 것을 좀 많이 미천하게 여겼음. 핵심적인 단어로 축약하는게 좋은 문장이라 여겼음. 여기엔 종이라는게 값비싼 물건이란 점도 영향이 있었고. 그래서 소설같은건 좀 저급한 취미로 여겼고 양반들이 소설을 쓰는 것은 굉장히 부끄러운 일이라 여겼음
아마 사관이 직접 본게 아니니까 조정에서 오고가는 대화와 자료만 기술해서 그런 것 아닐까? 임금이 하는 욕설까지 그대로 적을 정도로 객관적인 기술은 꼼꼼하지만 사견을 적을때는 "사관은 논한다"라고 분명히 표기했던걸 보면 뇌피셜이 여론인양 써제끼는 요즘 기레기들이 배워야할 자세인듯.
대신 이러다 보니까 초기때는 진짜로 있는거 없는거 다 적었는데 나중에는 사관 개인의 사적인 평가나 그런게 들어가서 신뢰도가 초반에 비해서 약간 떨어진다던가 ㅋㅋㅋ
조선시대의 가치관은 유학이라드라 유학은 기본적으론 원래 철학인데 종교의 영역 까지 도달했다고 함 그럼 종교에서는 죽음을 어떻게 다루는가? 다른 종교는 결국 죽음을 부정 한다 대개 구원을 통해 사후세계에서 영생하는 방식 근데 유교는 사후 세계를 중시여기지 않음 그럼 타종교의 천국 발할라 극락은 어디인가? 유교의 영상과 구원은 "역사"에 이름을 남기는것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기는 것 효자, 충신으로 역사에 남는것과 탕자, 간신으로 역사에 남는것이 매우 중요시됨 "역사가 심판한다" 라는 말도 이미 역사(=기록)의 권위가 "신"과 동급으로 사회에서 받아 들여 진다는 거
실무자료다 보니까
일종의 미니멀리즘인가 ㅋㅋㅋㅋ
공자부터 시작된 한 문장으로 사람의 마음을 꿰뚫어버린다란 집착?
소설을 깐건 내용도 없고 사사로운 감정이나 묘사하는 글이라고 깐거지 축약을 못한다고 깐건 아니죠. 그리고 기록을 미천하게 여겼으면 여불위는 왜 학자들 모아서 여씨춘추같은 기록물을 만들고 자기 최고업적이라고 자랑하고, 사마천은 왜 자기 명예를 걸고 사기를 썼을까요? 동양에선 기록을 중요하게 생각했습니다. 단지 그 기록을 어떻게 얼마나 남기냐에 차이가 있는데 조선은 좀 그게 과했던거죠.
내가 알기로는 사서가 정치에도 꽤 중요한 기록이었을거임. 어떤 정치적 결정이 필요한 일이 발생했을 때 과거에 비슷한 일이 있었을 때 어떻게 대응했는지를 사서를 통해 확인하고 현대의 결정에 참고하는거지. 그래서 저렇게 자세하고 최대한 정확하게 기록하려 한 것도 있을걸
조선왕조실록이랑 뭐가 다른거임?
조선 왕조 실록은 대충 한 번 깔끔하게 편집해서 나온 편집본이고 저거는 국회 속기록 같은거라고 보면 됨
실록의 원재료중에 하나임
실록은 저런거 추려서 정리 해놓은거고 저건 실록같은거 만들기전에 일단 자료 들어오는대로 끌어모아서 기록하고 첨언해놓은것들.
승정원일기는 일단 한 일 다 적은 근무일지 조선왕조실록은 왕 죽고 나서 찬찬히 쓴 역사서
조선왕조실록은 실제 공문이나 있었던 일을 기록해두었다가 나중에 편집작업을 거쳐서 기록된 정제된 기록물임. 편집자의 정치적 성향이나 신념에 기록내용이 좀 영향을 받았다고 볼 수 있음. 승정원일기는 승정원이라는 왕의 비서실에서 사소한 것들을 다 기록한 1차 사료임. 편집도 없었고 시시콜콜한 것도 다 적혀있음. 비사도 있고, 야사도 있고, 그 당시 외국에 대한 이야기도 있고... 여하튼 많음.
조선왕조는 그냥 교과서 라면 저건 일기장. 날씨까지 다 적혀 있고 왕이 아침부터 저녁 까지 뭐했는지 필터 없이 다 적혀 있는거… 승정원 일기 덕분에 소빙하기가 언제부터 인지 간접적으로 알수 있다고… 약 300년 전 날씨 기온까지 다 적혀 있어서
사초 - 말그대로 다 적음 (실록 만들고 나면 종이 재활용해서 안남음) 승정원일기 - 승정원에서 그날 한 회의, 공문 다 기록함 실록 - 사초를 기반으로 중요한거만 추려서 적음
그정도면 세계 기후사에서도 중요한 책이내
실록은 사관들이 기록한거 모아서 간추린거 저건 지금으로치면 대통령비서실 일지 간추리지 않아서 내용이 길다 실록에서 "누가 이리저리논하니 왕이 옳다고 했다" 로 줄인걸 실제로 뭔 발언했는지 다 적어둠
승정원일기가 그날그날 적어서 보관해놓는 날기록이라면 실록은 왕 죽은 뒤에 승정원일기랑 사초(승정원일기와 기능은 같지만 주관부서가 다르며, 담당자가 어느 사건에 입회했는지에 따라 같은 날이라도 기록이 다를수 있음), 기타문서 등등의 기록을 취합하고 정리해서 완성된 공식 역사기록으로 만들어 내는게 실록임.
일기장 끝판왕.....!
일기장은 일성록이라고 또 따로 있음. 왕도 하다보니 지쳐서 직접 쓴건 아니긴 한데.
정말 조선은 기록에 환장한 나라였구나....차라리 조선은 기록이라도 있서서 방대한 시간이 걸리겠지만...근데 다른 과거의 고려 백제 신라 고구려 고조선 알려면 책이 있서야하는데 기록이 없스니...학자들이 왜 다른 나라가서 기록까지 가서 보는 이유를 알겠다.
디지털작업이 아직도 진행되고 있는 이유
저게 다 한자인거지? 바쁠땐 날림체였겠지?
승정원일기는 사실상 초서덩어리. 그래서 해석에 시간과 인력이 미친듯이 들어감. 초서 읽을 줄 알면 승정원일기 해석으로 평생직장 잡을 수 있다는 이야기 나오는게 괜히가 아녀ㅋㅋㅋ
수백년동안 사관이 바뀌니 날림체도 다 다름ㅋㅋㅋ
요사이 AI가 열일한다는 소문이 있드라
초벌번역은 프로그램 돌리는데 결국 그거 다시 손보는건 전문가ㅇㅇ
그렇지 일단 막노동은 기계가 하고 그다음 전문가가 읽고 손봐야 겠지 “It's the end game”(어벤저스) 를 "가망이없어" 라고 하는 사태를 막아야 하니
근데 저건 초서라 초서를 우리가 아는 한자로 바꿔야하는데 그 바꾸는건 또 전문가들이 머리 싸매야하긴 함ㅋㅋㅋ
알파고가 시각정보로 학습하게 하였으니 머신 러닝을 잘하면 될거 같음
초서는 사람마다 달라서 쉽지 않을걸? 현직 종사자분한테 여쭈니까 초서는 진짜 하드하다함 초서가 저마다 다른건 https://m.blog.daum.net/widerock1/13385415 이런 블로그 글만 봐도 장난아님ㅇㅇ 언젠가는 될 수 있겠지만 진짜 쉽지 않을걸?
200년치는 왜날아갔대
임진왜란
임진왜란...
임진왜란이지
왜란, 호란
임진왜란이나 이괄의난이나 아니면 그냥 화재가 나서 자주 날라감 저게 초벌원고라 실록처럼 여러부 만드는것도 아니라 한번 날라가면 복구가 안됨
히데요시 : ㅋㅋ ㅈㅅᆢ
정답은 모르지만 200년 하면 우선 떠오르는게 1392년 조선 건국 1592년 임진왜란
임란이니 호란이니 625니 전쟁이 많았지
아 여러부 짜리가 아니구나 ㅠ
임란 이괄의 난 화재 기근... 관리들의 일일보고서나 메모장에 비슷한 녀석이라 철저하게 보호하거나 하지 않았음
실록은 같은걸 4개씩 만들어서 따로따로 보관해서 다행이도 한 서고가 임진왜란때도 공격 안당해서 남았는데 승정원일기는 저걸 또 많이 만들기 그러니 다 타버림
625때 손실 많이 됬겠지...북한은 미친듯이 남하하는데 책 따위 눈에 보일까 그냥 무조건 아래로 도망가야하는 상황이니...
말그대로 일기라서 킹절 수 없음.
역시 기록의 나라야
이제 저걸 다 대학원생들이 번역하는거지?
저거는 번역하는 기관이 따로 있어서 거기 직원들이 하실걸
ㄴㄴ 요즘은 기계 돌리고 전문기들이 검토한대 그래서 백년 가까이 걸릴걸 몇십년으로 줄였다 하더라
고전번역원에서 박사나 그에 준하는 급의 양반들이 번역함
그게 초벌번역ㅇㅇ 재벌번역은 전문가들이 하는데 저거 초서는 전문가들도 머리 싸매야해서 컴퓨터로 돌릴 수 있을지 몰긋다
고문서를 읽고 검토할 수 있는 전문가를 보고 우리는 대학원생이라고 부르기로 했어요!
저거 일반 대학원생 수준으로 안됨 괜히 국편위나 고전번역원에서 사료해석이나 한문 교육하는게 아님 심지어 저건 초서(흘림체)라 따로 교육받아야함
세종대왕이 고려사 편찬했듯이 조선사도 편찬을 해야하는데 저게 번역이 안되어서 아직도 못쓰고 있다고 하더만
원래 전 왕조 역사서는 새로 들어선 국가가 하는게 전통이니까
아 그거 재밌더라 망해버린 전대 왕조의 역사를 새로 들어선 왕조에서 편찬해주는거. 재밌는건 고려에서 고구려,백제,신라 역사를 정리해줬는데 발해사는 빼버린거... 조선에서 고려사 편찬은 해줬고..
왕조가 망하면 다음 왕조에서 망한 왕조의 역사서를 편찬하는게 관례인데 한국이 건국된지가 꽤 지났는대도 발전된 현대 기술로도 아직도 공식적인 조선왕조역사서가 없는것도 보이는것처럼 자료가 너무 많고 또 대충 휘갈겨 쓴거라 글자자체를 해독해야되서 그런거라 하더라구
현대는 더이상 국가가 주도해서 특정 역사를 기록하는게 적합하지 않은 시기니까. 당장 국사 교과서만 해도 지금은 검정제로 하잖음
대충 수험생들 머리 쥐어뜯는짤
저건 수험생들이 아니라 박사나 그에 준하는 양반들이 머리 쥐어뜯는 수준이라ㅋㅋ
수험생들은 해석된거만 보면 되니까 상관없긴함 진짜로 뒤지는건 역사석박사들
유게이일기도 100년뒤에는 기록유산이 될까? 부라리편, 스마일편
그래도 디지털 작업이 이루어지고 있고, 실록도 일단 디지털화 되고 나서는 검색되고 새로 조명되는 사례가 등장함. 연구를 위해서는 디지털화가 필수임. 안그럼 너무 양이 많아서 찾기가 힘듬.
승정원일기 양은 중간보스고 최종보스는 초서지 한자의 필기체 빨리쓴다고 흘려쓰느라 심지어 본인조차 못알아보는게 비일비제
애초에 초서는 자주 읽던 친한 사람들끼리 아니면 못알아보는 경우도 있었다하니ㅋㅋㅋ 거기에 광초믄 뭐ㅋㅋ
국회 속기사들이 타이핑 안하고 진짜 쓰고 있다고 생각하면 흘려쓴것만해도 용하지
요즘도 시골 종가집 가면 저런 편지들이 널려있고 그걸 모아서 연구할 수 있다면 조선시대 생활사 연구가 활발하게 이루어 질 수 있다는데 문제는 전부 초서라 탈초는 필수, 번역은 선택이라ㅠㅠ
그래도 몇년전에 역사저널 그날에 관계자 나와서 선배학자들의 노력으로 초서->정자 번역은 완료됐다함 아 물론 그래도 높은확률로 우린 완역본은 못볼듯
지렁이급이네......
꼴데-8888577
.....속기사 시절에 뭔가 타이핑 하는것도 아니고 오로지 붓으로 했슬텐데.........어떻게 저렇게 적었데!
전용 문자가 있음 대한속기회 홈페이지 들어가면 무료로 교본을 구할수 있음
AI가 열일해서 2030~60년대 사이에는 된데
만약 승정원일기가 완역되어 전부 데이터화 됬다면, 몇중으로 백업을 할 지 궁금 서버 여러대는 필수에 저장장치 몇십개에 전부 백업해서 어디 묻어놓거나 하려나
승정원일기가 아직도 번역중이고 몇십년더 번역해야 한다던가...
으아 .. 입이 안 다물어지네... 진짜 깐깐하게 고증하려면 혀돌아갈듯 물론 기록만으로 고증이 된다는 게 아니지만 진짜 고대사와 중세사 기록들과 현격히 차이가 나네... 제발 역사 사극볼 때 참고 좀 해줬으면... 인터넷에서 실록이나 승정원 일기 못 보나?
볼 수 있음. 솔직히 조선실록 번역 다 되고 나서 조선사극은 판타지 사극으로 넘어간게 고증 너무 힘들어서란 말도 있음
저런게 남아있어서 다행이야.. 옆나라 중공에서 문혁&홍위 주작할려고 시도해서 시알도 안먹힘. 당시 중국 외교 상황 같은게 다 있으니 ㅋㅋ
삼국시대나 상고시대는 기록이 너무 없는게 아쉽다 ㅜㅜ
제대로 된 유교 국가의 장점. 명분이 ㅈㄴ 중요해서 사소한 것까지 다 기록함. 사료가 그냥 ㅈㄴ 많음. ㅋㅋㅋㅋㅋ
요즘은 디지털이라 검색은 쉽겠네
학부생은... 안 봐도 되는 거지...?
저렇게 남겨놓으면 뭐하냐 역사에 대한 판단은 개인이 하는게 맞다면서 삼국지 운운하는 새끼들이 널렸는데 당장의 마이피의 누가 임진왜란 잘못알려진 사실들 짧막편 올리니까 저딴 개소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