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는 육상 교통이 발달할만한 환경이나 조건이 여러모로 부실했기 때문에 수운 교통이 중심이 되었는데,
한반도 중부 지역의 수운 교통로가 될 강줄기가 모두 서울에 모일 수 밖에 없도록 만들어져 있었거든.
풍수지리적인 이점 이건 부차적인 이유일 뿐이고, 서울이 한 나라의 수도로서 최적화 된 입지를 가지고 있었던 이유도
이런 점이 가장 컸음. 강줄기를 통한 수운 교통로로 인해 한강 하류 지역의 서울로 모든 물자들이 모이기가 쉬웠거든.
게다가 이 지역을 틀어쥐고 있으면 중국과의 교역에도 숨통이 트였기 떄문에 한강 유역의 중요도는 뭐 말할 것도 없었음.
한반도의 가장 중심에 있는 중부 지역에 줄기가 한 곳에 모일 정도로 한강은 수운 교통의 중심지였으니까.
사실 호남 지역이 한반도 최고의 곡창 지대이긴 하지만, 곡창 지대로서 식량 생산량을 제대로 빨아먹기 시작한 건
주요 저수지들이 완공이 된 1890년대부터라고 하니까 생각보다 그리 오래 안 됐음.
그래서 한강 유역이 한반도 최고의 중심지였던 것이지. 그래서 서울이 수도로서 최적화 된 입지를 가지고 있었던 거고.
한강이 도시 크기에 비해 깊이랑 폭이 압도적인 수준이지 유게이들이 좋아하는 극태거근쇼타 // 대형맘마통로리 생각하면 될듯
보통 수운으로 나라 기반 닦을 생각을 안 하는데 조선 왕은 한강 마망 맘마통 짱커 테에엥 거려서 수운을 주로 삼았다는 얘기군
저래서 수도가 아니었던 시절에도 꽤 발달해있었고 국가에서도 특별 취급했었음. 당장 삼국시대 때 한강 유역을 차지하는 게 곧 전성기인 수준이었으니깐
국내 물자만 그런게 아니라 그때 당시엔 미국처럼 선진국이였던 중국이랑 무역하기도 좋아서 그러지 않을까? 신라랑 백제도 중국이랑 무역하려고 한강유역가지고 다툰것처럼...
저기에 첨부터 근거지 잡고 성장한 한성백제가 삼국 중 젤 먼저 최전성기(근초고왕~근구수왕) 맞이한게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던듯
진짜 개빡치는게 이해하고 싶지 않을정도로 천박한 비유인데 비유가 뇌리에 쏙쏙 박힌다는게 나 자신에게 너무 빡친다 증말… (ㅂㄷㅂㄷ)
반면 부산 쪽은 순전히 끝쪽이라는 이유로 피난 때 사람들이 몰리면서 형성된 거라 대도시엔 비교적 부적합한 지형임. 그래서 연산교차로 같은 괴물이 나오고 경사로가 엄청 많은 거고
한강이 도시 크기에 비해 깊이랑 폭이 압도적인 수준이지 유게이들이 좋아하는 극태거근쇼타 // 대형맘마통로리 생각하면 될듯
深く暗い 幻想
보통 수운으로 나라 기반 닦을 생각을 안 하는데 조선 왕은 한강 마망 맘마통 짱커 테에엥 거려서 수운을 주로 삼았다는 얘기군
그...외설적이라 이해가 안돼요 선생님...
이거 완전 유게이용 어린왕자 비유 아니냐
혹시 눈높이 교육 종사자신지...?
뭐야 시발 ㄷ
深く暗い 幻想
진짜 개빡치는게 이해하고 싶지 않을정도로 천박한 비유인데 비유가 뇌리에 쏙쏙 박힌다는게 나 자신에게 너무 빡친다 증말… (ㅂㄷㅂㄷ)
유럽은 우리나라보다 더 심한 강 기반 도시 문화라서 바이킹이 배타고 파리 털어가고 그랬지. 식량생산 물류운송 도시에 필요한 대량급수 모두 해결되는게 강이라서.
오늘부터 유게 끊어야겠다
아니...후손들아....
이해가 되다가 아랫줄 보니 안되는데요 ㄷㄷ
비유 좀 돌려서 하세요…
저기에 첨부터 근거지 잡고 성장한 한성백제가 삼국 중 젤 먼저 최전성기(근초고왕~근구수왕) 맞이한게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던듯
삼국시대때에 신라 백제 고구려가 가장 강성할시기엔 서울지방을 반드시 점령하고 있었던가...
그리고 심심하면 나오는 서울 불바다 발언
국내 물자만 그런게 아니라 그때 당시엔 미국처럼 선진국이였던 중국이랑 무역하기도 좋아서 그러지 않을까? 신라랑 백제도 중국이랑 무역하려고 한강유역가지고 다툰것처럼...
정작 조선때는 사농공상 하면서 무역쇠퇴하지 않았나
그건 어디까지나 농업을 중시해서 상업을 억제했을 뿐이지 국가단위의 교역은 계속 커졌음 그러다가 임란, 호란 이후 상업의 발달과 함께 지역 상인들의 영향력도 증대했다구 무역이 쇠퇴한게 아니라 단지 억제했을 뿐, 경제규모로 봤을 때 지속적으로 성장할 수밖에 없다
무역은 해금령 문제가 더 큼. 조공무역도 육로로 했고.
우리가 유럽처럼 한 군데 막혀도 다른데 무역할 수 있는 환경이 아니라 중국이 우리 무역 안해! 하면 우린 그냥 농사지으며 밥벌어먹는게 최선이었음. 그게 조선시대였고.
중국도 예전에 나라 규모 커지기 시작한게 대운하 뚫려서 황하랑 장강 두 지역 물자가 교류되고 집적되면서니까.
한마디로 말해 심시티 최적조건
저래서 수도가 아니었던 시절에도 꽤 발달해있었고 국가에서도 특별 취급했었음. 당장 삼국시대 때 한강 유역을 차지하는 게 곧 전성기인 수준이었으니깐
루리웹-2533335882
반면 부산 쪽은 순전히 끝쪽이라는 이유로 피난 때 사람들이 몰리면서 형성된 거라 대도시엔 비교적 부적합한 지형임. 그래서 연산교차로 같은 괴물이 나오고 경사로가 엄청 많은 거고
기술이 엄청나게 발달한 현대시대에서도 물을 이용한 교역이 가장 활발하고 가장 효율적이니...
그래도 인접해안 수심이 깊어서 거점항구로 쓰기에는 좋음. 단순히 끄트머리라서 625때 얻어걸린건 아니야.
그건 맞는데 지금처럼 제2의 대도시가 될 만한 지형은 아니란 뜻임.
애초에 서울 지명 영등포, 반포 등등 포 붙은 곳들이 다 수운 물류 하던 한강 내 항구들 이름이니까
헐ᆢ지식이 늘었다
더욱이, '진'이 붙은 지명들은 옛날에 나루였던 곳임. 노량진, 광진
원래 어떤 나라건 큰 강을 낀 지역이 중심이 되지 않냐 ㅋㅋ
맞음 바빌로니아부터 그랬으니.
모든 문명의 수도 특징이 강과 바다가 잘 이어져 있으며 농식물등등 키우기에 조건도 좋았고, 산업 발달이 쉽게 발전 할수 있었지
하지만 겨울만 되면 얼어붙었다는 단점이....
근데 저 시절 대부분 조세는 미곡이니까 큰 상관 없긴 했지. 수확철 뒤에 운송끝나고 나면 겨울엔 뭐 별로 볼거 없으니...
애초에 겨울에 뭐하러 움직여?
겨울에는 얼음 채취 개꿀
당장 백제가 서울 끼고 있던 시절에 고구려 티배깅하던거 생각해보십셔
휴전국이 수도를 적국 방사포 사정거리안에 둔다? 이길생각이 없다고 봐야지
대전 1988
수도 이전 떡밥은 북으로
이것도 북한산 같은게 막아줘서 어느정도 커버 된다고..
근데 지금 수도라고 하기에는 사회적으로 너무 안좋지 않나 휴전중인 국가와의 물리적거리가 가까운데다가 육로 물류가 엄청 빨라진 현대사회에서는 너무 북쪽이네 물론 헌재 개샛
지금은 그렇게까지 수도로서의 입지가 좋은 편은 아니지. 조선 때까지는 충분히 좋은 입지 조건이었을지는 몰라도 지금은 분단이 되어서 휴전선에 가깝게 있다 보니까.
ㄹㅇㅋㅋ 한반도를 전체적으로 봤을때는 굉장히 좋은위치인데 북한이랑 적대하고있는 시점에선 시한폭탄이지
사실 지금도 장거리 무역은 수운이 대세긴 함. 한강 하류가 DMZ로 막힌 김에 강남쪽과 연결하려고 다리를 엄청 박아놔서 지금은 수운 기능을 상실했지만 그래도 그 많은 인구한테 물 공급이 된다는 것만으로도 나름 괜찮음.
지금도 좋은편임
사실 서울이 분단만 안 되어있으면 수도로서 정말 좋은 입지 조건을 갖춘 도시인데 분단이 된 이상 안보 면에서는 그다지 좋은 입지 조건은 못 됨.
이번에 종전선언만 잘 마무리 된다면 그런 리스크도 사라지는 셈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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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이리맨
ㅇㅇ. 조선부터. 고려시대 때는 남경이라고 불렸을 정도로 중요한 도시 취급은 받았었지만 수도는 아니었거든.
파이리맨
ㄴㄴ 백제도 수도였음. 기간만 따지면 웅진이나 사비보다 훨씬 김.
그게 하남 위례성은 지금의 서울이라기보다는 경기도 광주 쪽이라고 봐야 됨.
하남 위례성의 정확한 위치가 밝혀지진 않았지만 어쨌든 풍납토성, 몽촌토성 둘 다 송파에 있는 만큼 지금의 서울인 건 맞을 가능성이 높음. 따지자면 오히려 옛날의 한양이 아닌 거지.
파이리맨
수도로 계속 유지한건 조선부터고 삼국시대 때는 누가 한강지역을 빼앗냐가 전성기 여부라서 어느 한 나라의 수도였던 적은 없음
후백제가 장악했던 전라도가 지금만큼은 아니었어도 상당히 비옥한 토지였나봐 견훤이 심심하면 왕건한테 깨지면서 했다던 소리가 “우리는 신라와 고려보다 열갑자는 더 강하고 많은데 왜 항상 깨지는 소식만 들리냐”
저런 강줄기들도 물론 중요하긴 하지만 실제 운송루트는 대개 서해를 거쳐서 김포쪽으로 들어오는 거였음. 이 루트로 조선남부(전라도, 경상도)랑 북부 황해도까지 커버했음. 사실상 대부분임. 괜히 조선말기에 양놈들이 강화도에 와서 진을 친게 아님. 물류를 끊어버린거임. 실제로도 그렇게 됐었고.
그래서 호남이 역사적으로 힘을 못 쓴 거군.
사실 생각했던 것보다는 호남이 식량 생산량 포텐이 생각보다 늦게 터지긴 했어. 물론 저수지 개발하고 이러기 전에도 호남 지역이 한반도 최고의 곡창 지대였던 것은 맞는데, 그 포텐셜을 다 못 터뜨린다는 느낌이 많이 있었거든.
저러다보니 포구와 담당 해운 조직의 힘이 컸고, 성장 과정에서 조직간 알력도 있었음. 그런데 일제시대 일본이 자기들 편하기 위해 철로 깔기 시작하면서, 포구or해운 조직의 영향력 다운.
여담으로 한반도 역사 중 수도로서 가장 많이 선정된 도시는 개성. 최단기는 철원
수운경제론은 전라도쪽이 연결되지 않았으면 다 개소리임 아니 한강 상류쪽에 잘좀 봐요 조선경제 근간은 쌀인대 쌀나오는곳인가 다 산지이고 뭐 처먹을곳없이 비루한곳이었는대 이딴식의 적용이 될려면 임진강이랑 한강이랑 만나는곳은 세계 최대의 포구가 형성되어야함 ㅋㅋ 중국이 남부의 쌀을 북부로 올리려고 수운 만든게 발전의 근간이 돼었다고 한국도 이런식이다 하는건 개소리일 뿐이죠 저 위에 나오는 영등포 마포 이런대도 바다에서 들어오는 조운선이 선착하던곳이고 그냥 경상도 산지나 강원도에서 나오는 얼마 안돼는 토산물이 한강을 통해서 배달 돼었다 수준일 뿐임 왜 차라리 보부상이 택배 수준이었다라는 소리랑 같은 급인대.. 내륙수운이 흥햇다는 증거를 댈려면 내륙수운에서 사용했던 배라도 가져와야함 600 년동안 그 흥햇다는 내륙수운에 썼다면 응당 최소한 조운선 수준의 배가 수십척은 돌려야하는대 18세기 사진이고 16세기 그림이고 나룻배 한두척이 다임 ㅋㅋ 조선은 운하에 관심이 1도 없는 나라였는대 이런식의 포장은 아니됩니다.
헐..이글을 보니 이글이 맞는거 같기도 하고.. 어느쪽이 정답이지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