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희가 관리 생활을 한 건 고려시대. 우왕 시절인 14세 때 부터다.
물론 과거 급제를 한 건 아니고
낙하산 인사로 관직 생활을 시작했다.
이후 26살 공양왕 시절
과거 급제를 해서
본격적으로 고위 관리직을 시작했다.
그리고 나라가 바뀌고
태조와 정종 밑에서 일하는 그는
'아, 왕들이 전쟁터 쏘다니던 인간들이라 말이 안통하네.
이거 이렇게 하면 안 된다니까.'
라는 마인드로
자신이 보기에 문제가 있는 행정 명령이 내려오면 왕의 명령이라도 거부하는
모가지 뻣뻣함을 보이며
관직에서 파직 당하는 일이 잦았다.
그리고
자기 인생 최고의 왕을 만나니
그 왕이 바로 바로 고려시대 때 무려 17세에 과거 급제했던 조선의 먼치킨 왕
태종 이방원이었다.
먼치킨과 먼치킨은 시너즈 효과가 매우 쩔었고
태종과 함께
영혼의 듀오로서
조선 500년 왕조의 기틀을 잡는 하드캐리를 한다.
하지만 이런 황희도
태종의 분노를 사는 일이 있었으니...
바로 사고를 제대로 쳐서 태종에게 세자 지위를 박탈 당하는 양녕대군을 옹호하는 바람에
파직 당했다.
이때 황희는 왕은 무조건 적장자가 옮다고 주장했다.
이때 태종의 배신감이 얼마나 컸던지
내가 죽으면 따라 죽을 사람이라고 생각했는데...
라고 하며
유배를 보내버린다.
그렇게 황희는 그렇게 영혼의 듀오로 활약하던
태종에게 버림 받고 유배지로 쫓겨나게 된다
5년 후...
허허... 인생 무상이로구나...
중앙에서 온 사람: 어명이오.
어명?
중앙에서 온 사람: 이번에 새로 즉위하신 왕께서 내리신 어명이오.
설마 사약...? 에이, 아무리 세자 되는거 반대 했어도 상왕 전하와 함께 해온 세월이 얼만데 사약은...
복직 하시오.
!!!!!!!!!!!!!!!!!!!!!!! ! 복직이다!!!!!!!!!!!!!!!!!!!!!
세종이 세자가 되는 걸 반대했던 황희가 왕이 된 세종에게 다시 간택 받은데는 내막이 있었다
아들아. 아빠가 도라에몽 같은 신하를 소개해주마. 황희라고
그렇게 황희는 태종이 강력 추천한 도라에몽 같은 신하 답게 복직하자마자 강원도 지역의 기근을 해결하는 큰 공을 세운다.
이걸로 세자 책봉 반대 해서 눈 밖에 난 거 좀 만회 했겠지? ㅎㅎㅎㅎ
공을 세워 새로운 왕에게 능력을 어필했다고 뿌듯했을 황희..
하지만 황희는 그때 그러지 말아야 했다
올~? ㅋ 진짜 쓸만하네
[세종님께서 재위 초기 노예, 아니. 황희를 얻으셨습니다]
태종의 아들인 세종과 다시 영혼의 듀오로 활약할 꿈에 가득 찼을 황희.
하지만 세종은 황희와 파티를 맺을 생각이 없었다
세종: 신하란 노예처럼 부려먹는 것이다
올 때는 내 마음대로 나갈때도 내 마음대로
노예 처럼 부려먹는데 파티 맺을 필요가 어디 있단 말인가?
그렇게 황희는 관리 생활을 하는 동안
우왕 창왕 공양왕(고려) 태조 정종 태종 세종
심지어 문종 밑에서까지 일하며
죽기 전 까지 개처럼 일만하다 죽었다.
... 복직 하는게 아니었어.
참고로 관리 일을 하기 전 고려의 왕은 공민왕이니
무려 살아서 아홉명의 왕을 본 셈
저 퇴직 요구는 썰에 따라선 진짜 그만두려는 게 아니라 왕이 나 왕 그만둘까? 하는 거랑 비슷한 거라던데 ㅋㅋ
그니까 유배보낸게 휴가 보냈던거임 그리고 황희가 양녕을 지지한거는 예전이라면 성리학자라서 장자를 믿었다라고 했지만 이제는 그냥 양녕이 장자라서 공들이고 줄서놨는데 이거 나가리되면 지도 졷됟겠다 싶어서 그런거 아닐까 함 +적당히 해처먹을 수 있는건 양녕이라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