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실한청년 김유붕
추천 1
조회 34
날짜 05:38
|
디레센세
추천 1
조회 19
날짜 05:37
|
만☆족한듀얼리스트
추천 0
조회 12
날짜 05:37
|
데빌쿠우회장™
추천 0
조회 12
날짜 05:36
|
담백한버터
추천 1
조회 43
날짜 05:36
|
안면인식 장애
추천 4
조회 110
날짜 05:36
|
Baby Yoda
추천 2
조회 67
날짜 05:36
|
초코치즈햄버거
추천 0
조회 19
날짜 05:35
|
데빌쿠우회장™
추천 0
조회 26
날짜 05:35
|
사악한악마
추천 0
조회 40
날짜 05:35
|
으향~
추천 1
조회 88
날짜 05:34
|
MUL-CLEAN
추천 2
조회 69
날짜 05:34
|
IlIl바코드lIlI
추천 2
조회 49
날짜 05:34
|
지구는아파요
추천 2
조회 78
날짜 05:34
|
Exhentai
추천 0
조회 30
날짜 05:34
|
kime
추천 6
조회 121
날짜 05:34
|
ELEPHANT MAN
추천 0
조회 46
날짜 05:34
|
데빌쿠우회장™
추천 0
조회 23
날짜 05:33
|
안면인식 장애
추천 17
조회 1075
날짜 05:33
|
소실은소울실버
추천 0
조회 58
날짜 05:32
|
Ygolonac
추천 1
조회 77
날짜 05:31
|
루리웹-2677040933
추천 1
조회 115
날짜 05:30
|
건실한청년 김유붕
추천 10
조회 306
날짜 05:30
|
루리웹-2809288201
추천 1
조회 86
날짜 05:30
|
요르밍
추천 3
조회 219
날짜 05:29
|
시크릿데이브레이크
추천 1
조회 83
날짜 05:29
|
칼댕댕이
추천 5
조회 99
날짜 05:29
|
루리웹-6244225157
추천 2
조회 97
날짜 05:28
|
왕명으로 혼인해도 된다는데 '아 과부라서 결혼은 좀...'이런 변명하는 가문이 나오면 그것도 대단한거임 그것만으로도 어느정도 문제를 해소한거지
원래 조선시대때 격쟁이라고 왕 행차할때 억울하면 나와서 얘기하는 법 있었음 신문고는..한양 올라가다가 호랑이한테 물려갈 확률이 너무 높아서..주로 격쟁으로 호소했을껄?
의외로 읍소 관련해서는 조선 후기쯤 되선 다들 학습되어서 관을 어떻게 대하고 어느선까지 들이밀수 있는지 간볼 수 있는 레벨까지 간거 같다는 얘기가 있음.
글케 말하면 다시 결혼하라고 한 임금은 관념 이상한 사람이 되겠지. 임금이든 예판이든 당시의 생각으로도 '와 이건 좀...' 싶었던 거임.
진짜 과부래서 싫은 경우->뭘 해도 안 됨 과부랑 결혼시켰다는 세간의 평판이 싫은 경우->도움이 됨
역시 제 목을 쳐주소서의 나라야. 백성도 프로읍소러들이었구나.
조선시대가 생각보다 그렇게까지 꽉 막힌 시대는 아님. 의외로 노빠꾸들도 많았고.
중성마녀
의외로 저런거 자주 하지 않았나? 뭐 모욕하는것도 아니고 이상한말도 아닌대... 왕이 밖으로 나왔다 싶으면 근처 주민들 와서 억울하다 꽹가리치기도 했대매
[삭제된 댓글의 댓글입니다.]
중성마녀
원래 조선시대때 격쟁이라고 왕 행차할때 억울하면 나와서 얘기하는 법 있었음 신문고는..한양 올라가다가 호랑이한테 물려갈 확률이 너무 높아서..주로 격쟁으로 호소했을껄?
[삭제된 댓글의 댓글입니다.]
중성마녀
의외로 읍소 관련해서는 조선 후기쯤 되선 다들 학습되어서 관을 어떻게 대하고 어느선까지 들이밀수 있는지 간볼 수 있는 레벨까지 간거 같다는 얘기가 있음.
죄수번호-25980074
역시 제 목을 쳐주소서의 나라야. 백성도 프로읍소러들이었구나.
중성마녀
그지같은 왕이었으면 괘씸죄 걸려서 저 여인이 사형당했을지도
그거도 케바케지 숙종 아니라 영조나 뭐 성깔좀 있는 왕이면 무엄하다고 걍 의금부 동원해서 줘패거나 옥에 가뒀을듯
그러니까 왕이 아니라 판서한태 갓지 판서쯤돼면 왕 성격 잘알거니까
영조는 민생은 잘 챙기는 왕이어서 영조도 읍소를 들어줬을 거임 하필 그놈의 편집증적 광기로 아들을 죽이는 바람에...
아녀 세조 같은 인성 문제있는 왕도 북 치면서 하소연 하면 들어줬음
오히려 영조는 백성한테는 잘했음 아들만 조졌지
세조는 반정으로 올라서 오히려 민심은 신경썼어. 공신관련 아니면 무조건 고집한게 민심 안정이라 세종조차 포기한 수령고소법 허용하고 뒷케어까지 깐깐히 했어.
숙종 성깔을 과소평가하다니ㄷㄷ
고양이가 어딨어?
1컷
아ㅋㅋ 중간 보고있었네
맨첫짤
낑낑 덜덜 슬프다ㅠㅠ
근데 혼처를 다시 구해도 좋은게 문제가 아니라 저 상황에서 저당시 관념이면 과부라 혼담넣을 남자 집안이 없다는게 문제 아님? 임금이 단순히 다시 결혼하는걸 허가해준다고 해결될 일이 아니지 않나. 애초에 법으로 저 상황에서 다시 결혼하는게 금지된게 아니라… 저 집안에 딸 다시 결혼 보내도록 하라고 명령을 내리고 남자도 하나 찍어줘야 해결되는 문제라는 생각이 드는데 그게 아니었던 모양이네. 신기하게도.
메현후인
왕명으로 혼인해도 된다는데 '아 과부라서 결혼은 좀...'이런 변명하는 가문이 나오면 그것도 대단한거임 그것만으로도 어느정도 문제를 해소한거지
1726364849
과부라는 이유로 거절 안해도 다른 명분을 내세워서 얼마든지 거절할 수 있지…. 그래서 하는 얘기잖아. 그러니까 단순히 다시 혼처를 찾는걸 허가하는 걸 넘어서 얘 다시 시집보내라고 강제하는 명령을 내리고 남자도 하나 찾아줘야 한다고. 애초에 법에서 금지해서 다시 결혼을 못한게 아니라 문화적인 문제때문에 그런거였으니까.
어명 한방에 남자 찍어주는거 빼고 그런 내용이 다 들어있다고 봐야 할 듯
당연하지. 왕이 허락했는데 어느 집안에서 대놓고 “과부라 좀…” 이러겠어. 과부인세 문제라고 해도 그냥 “허러 저희 집안에는 너무 과분한 처자라 저희가 부담되네요. 허허…” 이러면서 거절하겠지.
메현후인
진짜 과부래서 싫은 경우->뭘 해도 안 됨 과부랑 결혼시켰다는 세간의 평판이 싫은 경우->도움이 됨
메현후인
글케 말하면 다시 결혼하라고 한 임금은 관념 이상한 사람이 되겠지. 임금이든 예판이든 당시의 생각으로도 '와 이건 좀...' 싶었던 거임.
다른 왕도 아니고 숙종임. 개기면 집안이 잘 났고 뭐고 그냥 박살난다.
메현후인
조선시대가 생각보다 그렇게까지 꽉 막힌 시대는 아님. 의외로 노빠꾸들도 많았고.
어명 한방이면 다 끝남
일단 전제군주정이니까 왕이 오케이했으면 그게 곧 법이긴 하지
조선은 전재군주정이 아니고… 아니 그게 문제가 아니라 저 명령은 마치 왕이 길거리 거지한테 “너 돈 벌어도 된다고 내가 허락한다”라고 하는거하고 비슷한 상황이라는거야… 애초에 그 거지가 돈 버는게 허락이 안돼서 못벌고 있는게 아니잖아. 왕이 그 거지한테 “너 돈벌어도 됨” 이랬다고 지나가던 사람들이 왕명을 받든다고 그 거지한테 돈을 갖다 바치겠냐. 왕명이라는게 문제가 아니라 왕명의 구체적인 내용이 문제… 뭐 이래저래 어쨌든 결국 결혼을 한거보니 어찌 해결되긴 한거겠지만. 사실 여자 집안도 다시 시집 보내고 싶은데 사람들 눈치 보여서 못한거고 그 집안하고 사돈맺고 싶은 남자집안도 있었겠지. 남자집안 입장에서도 눈치가 보여서 못했는데 왕의 허락도 있겠다, 진짜 쌩 처녀만은 못하지만 그래도 저정도 집안 딸이면 설령 사람들이 뒤에서 좀 수군대기는 해도 왕명때문에 앞에서 대놓고 뭐라고는 못할테니 우리 집안 수준에 원래대로면 넘볼 수 없는 집안 딸이니 이정도면 괜찮은 딜이다 하고 무는 남자집안이 아주 없지는 않았을테니…
본인 기준미달이라 안되는거랑 법적으로 못하는건 아예 다른 레벨이에요
임금이 허락했다잖어. 까딱하면 너 어명 무시하냐? 할 수 있어서 잘못하면 집안 박살나
그러니까 법적으로는 애초에 저 상황에서 결혼 못하게 된 적이 없다고… 법으로 금지된걸 왕명으로 특별히 풀어준 상황이 아니라고…
난 반대로 강단있는 처자라고 생각해서 채씨집안에서 며느리로 들인거라고 생각할수도 있겠다 싶은데? 그리고 저게 진짜 문화적으로 에바였음 저 일 가지고 중신들이랑 유림들 상소 올리고 난리 났었을 거임. 조선이 그렇게 유교탈레반같은 나라가 아녀
과부재가금지법??? 왕명으로 안풀어주면 낙인찍히고 자식들은 벼슬도 못하는데요?
과부의 재가는 갑오개혁 때 법적으로 가능해집니다
잊으면 안되는게 왕이 허가했는데 과부라고 안된다고하면.. 왕 얼굴에 먹칠하는 거임
뇌피셜 전개를 위해 아닌걸 맞다고 우기면 개털되는거야
자꾸 법적이라는 부분으로 대응하고 있는데, 본문에서 문제는 다른 집안이 아니라 처자의 부모가 재혼에 거부감을 갖고 있는 것임. 양반은 명분이 밥 먹여주는 계층이라 법적 금지가 아니어도 인식상 금지 행동을 하는데 거부감이 강할 수 밖에 없음. 그 거부감을 숙종이 해도 된다고 허락해줌으로서 크게 덜어주는게 핵심인거고. 그리고 자꾸 결혼 상대를 지정해주는걸 해결책이라고 말하고 있는데, 청원의 내용은 결혼 금지를 풀어달라는 것이지, 결혼 상대를 정해달라는게 아님. 숙종이 임의로 결혼 상대를 정해버리면 그건 개인을 넘어서 집안을 무시하는 행동임. 숙종이라고 그런 고민을 안한건 아닐거고.
저시대에 대단하구만!
중국 고대에도 시집가기도 전인데 남편(진)이 징집령 피해서 도망가니까 연대 처벌 받는거 억울하다고 항의해서 관료가 봐주자고 청 넣는 장면이 있었던 것 같은데
걸크러시 오졌다
저 그림체 왜 이렇게 익숙하지
맹꽁이 서당 그림체라 어릴때 한 번 봤을법함
여걸이시네..
이게 진정한 걸스캔두애니띵이지
ㅇㄱㄹㅇ
의외로 숙종 저 지랄쟁이가 지랄을 안했네 으딜 감히 여자가 이럴거 같은데
결혼 안하겟소도 아니고 남편한테 개긴것도 아니고 결혼하는거 안싫은데 남편 얼굴도 못보고 과부로사는게 억울하다고 하소연하는거니
혼사도 안치럿고 기냥 사주단자만 교환한건데 과부취급한거부터가 애비가 씹꼰대 개시키란거라.
오히려 자기 이미지 관리용으로는 쩌는거 아님?
자주 변복해서 민가에 나돌아다니며 민심 살폈던 왕인지라 백성에게 막되먹진 않았어. 조선왕조에 그런 짓하던 두 왕은 반정으로 갔고. 승질 드러워도 그건 제 스승 감싸고 왕명 안 듣던 신하들에게나 방방뛰었지. 뭐 경종에게도 차갑긴 했다만
그 불같은 숙종한테 그것도 그 성깔 뻔히 아는 판서양반이 이야기 올린거면 이건 누가봐도 좀 아닌데 싶었던거겠지. 조선은 나이 차도 결혼 못하면 나라에서 직접 짝을 구해줄 정도로 혼인을 중시여겼는데 애초에 혼례도 안올리고선 과부로 살도록 하는것도 뭔가 안맞았을 것이여.
츤츤판서..
근데 죽은 남자 집에선 왜 골골대는 사람을 중매 시장에 올린거지 건강하다가 사고로 급사한거면 몰라도, 총각귀신 만들기 싫어서 물귀신 작전 쓰려한거면 좀 노양심인데?
급사라자나..
급사란 단어를 쓰면서도 신랑이 골골대는 사람이었을 거라 상상할 수 있다는 게 신기하다 진짜
당시에 대를 이어야 한다는 관념을 고려해보면 타임어택하려다가 실패한거겠지
'충신은 두 임금을 섬기지 아니하고 열녀는 두 지아비를 섬기지 아니한다.' 왜 그 때는 시집 다시 가는 게 배신과도 같이 여겨졌는지...
성리학의 교조화
임진왜란 끝나고나서 그렇게 됐다던가.
고냥이 이름 뭐였드라
금묘
얼굴한번 못봤는데 수절하라는건 좀 아니올시다이지.
서울에 살고, 예조판서 근처에 살아서 억울함을 풀기 용이했던 것인가… 역시 집터가 중요하구나…
첫날밤은 치룬 것도 아니고 그저 서류 하나로 묶여서 평생 수절과부로 살라고 하면 누구나 아 이건 쫌 하겠지
첫날밤이라도 치뤗으면 재수옴붙엇네 씨불로 넘길텐데..
그 시대에 진짜 대단하네 걸크러쉬 존나 멋있어 진짜 운명이라고 순응하지않고 저항해서 개척해냈네 아들이 정승될만하다 그게 또 채제공이라니ㅋㅋ
조선이 은근 재미있는게 저거더라 전제왕정이라곤 하는데 묘한데서 다름
뭐랄까 조선도 윗분말대로 잼있긴함 초창기엔 고려(원)의 영향덕에 아무리 성리학으로 세운 나라라고 해도 남녀간에 이혼할수도 있고 고려처럼 여성이 재산 반을 가져갈수도 있었음 문제는 본격적으로 나라가 힘들어지는 중후기로 갈수록 나라 말아먹은 윗대가리와 성리학 꼰대들이 책임 회피를 가장 약자인 여성과 노비에게 돌려버림. 우리모두 알듯이 덕분에 조선 중후기로 갈수록 그 유명한 남녀유별이 편찬되고 노비의 수가 폭발하는등 악순환이 계속되지. 뭐 쉽게 말하면 지금도 나라가 힘들어 질수록 기득권은 단단해지고 저소득층이 늘어나는거랑 비슷함.
어어 조선 생각보다 오픈되고 합리적인 구석들이 많더라
뒤로 갈수록 진짜 심각해지긴하지ㅠ 거기다 외침까지 있었으니
어 그거 지금이네
중후기는 조정에서 노비를 줄이려고 했던때라 노비가 줄면 줄었지 늘지는 않음. 오히려 조선 전기가 노비가 많았지. 그리고 책임회피가 아니라 양란이후에 사회질서를 재정비하려고 성리학에 기반한 질서를 더 강하게 내세워서 성리학이 교조화되면서 여성 인권이 악화된거임.